견적이 안 나와요(글/이인우-의성 안평중학교 교사)5교시가 시작되었다. 한낮의 땡볕은 시멘트 건물을 여지없이 가마솥으로 만들어 놓고 아스팔트 위로 김을 모락모락 피웠다. 학생들은 지쳐 축축 늘어졌다. 1학년 여섯 명 중 여학생이 한 명인데 그 홍일점 정희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책상 위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엎드려 있었다. 실장이 인사 구령을 해도 얼굴을 들 줄 몰랐다. 간혹 우울한 그림자가 보일 때도 있지만 수업 준비는 누구보다 먼저 하고 선생님을 기다리는 착한 학생이었다. 교과서를 펴면서 이름을 불러 보았다. 대답은 하면서도 얼굴은 들지 않아 혹시 몸살이라도 하는가 싶어 아프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교과진도는 나가야 하고 그와 실랑이나 벌이며 마냥 있을 수 없어 “정희야 그러면 계속 엎드려 있어라.” 하고 책을 펴는데 다섯 명이 동시에 소리 내어 웃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웃던 상철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다른 선생님은 어디 아프냐며 자상하게 묻는데 선생님은 너무 무뚝뚝하여 웃었다’고 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정희가 고개를 들지 않고 오른 손을 이마에 받치고 있는 것이 몹시 궁금했다. 학생이 활동하는 순서가 되자 실장 옆에 가서 슬쩍 물었다. 실장은 앞머리가 이상하여 놀렸더니 하루 종일 저런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재상이가 추가 설명을 했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니 정희가 제일 먼저 와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작은 가위로 앞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한다. 처음 자르고 나자 조금 삐뚜러진 것 같아 또 잘랐는데 이번에는 다른 쪽이 삐뚜러져 또 잘랐다. 그러자 다섯 명의 남학생들이 모두 등교하여 정희의 머리를 이리저리 봐 주며 참견하게 되었고 정희의 앞 머리카락은 균형을 잃어 보기 싫게 되었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자 남학생 다섯 명은 밖으로 나가는데 정희는 나가지 않고 자리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오라고 하면 오지 않을 것 같아 그가 학급 서기인 것을 생각하고 학급일지를 가져오라고 엄숙하게 말했더니 일지를 가지고 내 앞으로 왔다. 손을 내려 보라고 몇 번 말해도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어떻게 하면 손을 내리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의 자존심을 살려 주기로 하고 교실을 나와 버렸다.
3학년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는데 남 여 학생들이 마루와 마루 사이의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놀았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울려 장난을 치고 있는데 남학생에게 물었다.
“너희들 사귀고 있지?”
“아니요.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얘는 견적이 안 나와요.”
내가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눈이 작고 쌍꺼풀이 없고, 들창코여서 콧대가 작고, 볼이 너무 나왔고, 턱이 턱없이 작고, 키가 작으니 다리를 잘라서 키를 키워야 하고, 그리고 한참 머뭇거리더니 가슴도 해야겠네요, 도저히 저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견적이 안 나옵니다.” 하는 것이다.
물론 농담이겠지만 이런 농담이 나온다는 것은 시대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사람을 금전으로 환산하다니, 물질 만능 세태가 우리 학생들을 그렇게 말하도록 만들었구나! 가슴이 답답해 왔다. 이성을 보는 눈, 특히 여학생 몸을 성형수술 할 생각을 하다니,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성형수술을 수 십 번 한 사람이 출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수술 전에도 미남이었다. 그런데 성형수술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도 눈 쌍꺼풀과 코를 수술한 사람은 쉽게 볼 수 있다.
교실에 들어가 교재를 펴는데 용감한 한 학생이 일어서더니 다짜고짜 “선생님 머리 가발이지요.” 했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사태파악을 하느라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내 머리 모양이 매일 같은 것에 학생들은 의문을 품은 것 같다. ‘가발일거야! 그럴지도 몰라!’ 그러다 학생들은 내기를 한 모양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의문을 풀어주기로 했다. 질문을 한 학생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내 머리카락 한 개를 뽑으라고 했다. 학생들은 긴장을 했다. 내 머리카락을 뽑아 든 학생이 실망의 빛을 얼굴가득 띄우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말했다. “가발이냐?” “아닙니다.” 가발 해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다른 학교로 옮기고 3월도 저물던 어느 날 학생들은 또 의문을 품었다. 내 코가 가짜라는 말이 오고 간 모양이다. 소문의 진원지를 알아보니 그 학생의 삼촌이 서울에 사는데 들창코를 수술한 학생이었다. 이번에는 증명할 길이 없었다. 생각하니 어릴 적 사진을 보여주는 도리 밖에 없었다. 출근길에 사진첩을 들고 갔다. 첫돌 사진부터 고등학교 때 까지 보여 주기로 했다. 어릴 적 내 사진을 들여다 본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더니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진짜 코를 증명하기에 바빠 첫돌 무렵 아랫도리를 벗은 나신을 보고 감수성 많은 여학생들이 웃는 것이었다.
외모가 흉하건 예쁘건 내적인 아름다움이 먼저라고 강조를 해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청소년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내적 아름다운은 아직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시골학교 선생님들
3학년 졸업고사를 치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 하필이면 실업계 고등학교 전형일과 맞물리게 되어 낭패가 생겼다. 고등학교 면접고사를 치는 시간을 알아보니 다행히 오후 2시라고 했다. 3학년 4명이 지원하는 공고는 가까운 의성읍에 있으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여학생 2명이 가는 실업계 고등학교는 안동에 있어 시간 운영에 문제가 되었다. 안평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의성에 가서 다시 안동 가는 시외버스를 타야 갈 수 있다. 안동에 가서 또 시내버스를 타야 하므로 적어도 3시간은 필요했다. 3교시 졸업고사를 치고 나면 11시 40분이므로 도저히 시간이 모자랐다.
방법이 없을까? 고등학교에 전화를 하여 조금 늦는다고 하면 될까? 졸업고사를 한 시간 덜 치고 공결로 할까? 교무실에서는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다 ‘자가용으로 안동까지 데려다 주면 어떨까?’하는 의견이 나왔다. 마침 3학년 담임이 가겠다고 하여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른 학교는 문제도 되지 않을 고등학교 입시 면접인데, 학부형이 학생을 데려가던지 학생이 직접가면 될 일인데 우리 학교는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다음날 졸업고사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런데 의성읍에 가는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안평에서 의성 가는 버스가 11시 30분과 13시 30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의성 가는 학생은 3교시 후에 가야 되는데 도저히 11시 30분 차는 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13시 30분 차를 탄다면 14시 까지 갈 수가 없었다. 3학년 담임에게 6명을 태우고 억지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마지막 한 시간 시험은 공결로 하자는 의견이 나와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의성까지 자가용으로 가면 버스를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30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고사도 칠 수 있고 학교에서 점심도 먹을 수 있었다.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선생님께 오늘 학사 일정은 변동이 없다고 하자 모두 의아해 했다. 그리고 내가 잠깐 의성읍에 다녀오기로 했다고 하자 평소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시던 김선생님이 큰소리로 “제가 갔다 오지요.” 했다. 조금 후 내년이 정년인 친목회장님이 “내가 갔다 오지 뭐!” 했다. 그러자 모두 가겠다고 했다. 참 난감한 일이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 왔다.
한참 후 학교일에 앞장서서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던 정보부장이 살짜기 내 옆으로 왔다. 예쁜 얼굴에 근심을 가득 싣고 “옆 교실에 가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괜스레 지은 죄가 있는 것 같기도 하여 겁이 났다. 예쁜 여선생님이 부르는데 아무 말 없이 따라가기도 민망하여 가슴이 설레 인다고 중얼거리며 따라갔다. 가사실에 들어서자마자 “제가 3학년 부담임이고 하니 의성읍에 가게 해 달라.”고 했다. 너무 고마워 얼굴이 붉어진 나는 “일없는 내가 가지요.” 했다. 정보부장은 사슴보다 더 선한 눈동자에 물기를 머금은 체 가겠다는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진정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돌아서던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데 말이 나오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다가 교무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향기가 나는가 보다. 어둡고 침침하던 교무실이 훤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아름다운 꽃으로 가득했다. 시골중학교에서는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하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