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 다 어머님이 계시니 받는 상 아일리껴˝ 어버이날 대통령표창 받은 효부 정국희씨(글/이미홍-객원기자)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했다. 그러나 명료하면서도 단순한 만큼 그렇게 살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 그 말을 맨 처음 한 사람도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시조 가락에 담아 오며가며 사람들 가슴을 울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에게는 마음 가는 대로 어버이를 섬기기가 물 흐르듯 쉬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밥 먹고 잠자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일부러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부모님께로 마음이 가고 발이 가고 손이 가는 것, 그렇게 사는 이들을 우리는 효자라고 한다. 그리고 시부모를 제 부모 모시듯 그렇게 마음으로 섬기는 이를 효부라고 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효부상은 있어도 효자상은 없다. 부모님께로 가는 아들의 마음이 천륜이라면 며느리가 남편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섬기는 일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시부모에 대한 공경, 헌신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기에 효자보다 효부로 살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시부모그늘에서 애들 키우고 살았을 뿐인데
처음 효부상을 받은 주인공을 만나러 가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은 그 상이 주는 무게가 무거웠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한없이 무겁기 그지없을 것 같은 그 상을 받은 사람은 순하고 여려 보이는 고운 얼굴에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인정이 느껴지는 안동 아지매였다. 안기동 산자락 외길을 찾아들었을 때 이번 호의 주인공인 국희씨는 작년부터 봐주고 있다는 외손녀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빨래를 하고 있었노라 했다.
그냥 시부모 그늘에서 애들 키우고 살았을 뿐인데, 대통령 표창을 준다고 하니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제가 특별히 잘해서가 아니라 주위 이웃 분들을 잘 만난 거죠. 저희는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효행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고요. 주위 분들이 추천을 해 주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솔직히 너무 당황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사는 거야 당연한 건데, 그리고 제가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데 상을 주신다고 하니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처음에는 막막하더라니까요. 경북에만 해도 어른들 모시고 사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상을 주신다고 하니 그분들한테 부끄럽지요. 어른 모시고 산다고 특별히 더 하는 것도, 더 힘든 것도 없어요. 아버님 살아계실 적에 치매로 고생하실 때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정말 고생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그렇게 힘들었던 것도 아니고요.”



새사람아, 내가 해놓은 보리밥 좀 먹어봐래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효행자 포상 경상북도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51년생 정국희씨는 월곡면 대곡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다. 칠남매 중 딸이 다섯인 딸 부잣집의 셋째 딸이었다. 열아홉에 친정 시매부의 중매로 세 살 많은 지금의 남편 한대수(의성 춘산초등 교감)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이웃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 날 저녁 선보러 가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서서 지금의 남편과 선을 봤다. 둘 다 첫 눈에 내 사람이라 느꼈고 일주일 만에 날짜를 잡자고 연락이 와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1년 있다가 남편이 군에 입대를 했다. 당시 안강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남편을 따라 안강에서 지내던 달콤했던 신혼생활을 뒤로 하고 갓난아기였던 딸아이를 업고 보따리를 싸서 그때부터 임동에 있는 시댁으로 들어가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안동초등학교에서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애를 업고 어머님하고 그 길로 바로 버스를 타고 임동으로 갔어요. 요즘 같으면 시댁으로 안가고 친정으로 갔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은 꿈에도 못했지요. 그렇게 버스를 타고 집엘 갔더니 우리 아버님이 ‘야야, 새사람아, 니 내가 해 놓은 보리밥 좀 먹어봐라’ 그래요. 요즘 생각해 보이 그게 우리 아버님이 날 위로하시려고 그러신 것 같애요.”


신랑 보내 놓고 애하고 시댁에 남겨진 어린 며느리가 당신께서 보시기에도 참 짠하셨던가 보다. 그렇게 시댁 생활을 시작했다. 정이 많으셨던 시아버지는 더러 친정 나들이도 보내주시곤 했다.
그래도 신랑이 없는 시댁에서의 시집살이는 낯설고 까닭 없이 눈물이 나는 날들이었다. 아버님이 손수 지었다는 한옥 집은 넘어가기 직전의 형국이었고, 시동생들과 같이 지내는 생활은 어렵고 불편했으며, 남편에게서 오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으로 달이 가고 해가 가는 날들이었다. 편지를 기다려 답장을 쓰고 다음 편지를 기다리고 하는 사이에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었다. 더러는 시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와 별도로 따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편지를 읽어 드리면서 둘만의 곤란한 이야기는 빼고 읽어드리기도 하곤 했다. 


동짓달 매서운 바람보다 더 시렸던 옛 시절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군에 갔던 남편이 겨울에 첫 휴가를 나왔다. 동짓달 매서운 바람에 강가에서 언 손을 불어가며 방망이를 두드려 홑이불 빨래를 해서 이고 들어오는데 시동생이, 형님이 왔다고 했다. 가슴은 뛰는데 드러내놓고 반갑다 내색도 못했다. 그렇게 잠깐 왔다가 간 남편은 다시 6개월이 지나 여름이 되어 다시 휴가를 나왔다. 그때 시댁에서 담배농사를 지었는데, 담배 잎을 엮다 보면 담뱃진 때문에 손도 더러워지고 여름이라 땀범벅에 뒷정리를 하느라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휴가 나온 남편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매불망 기다리다 6개월 만에 만나는 신랑인데 그런 모양새로 얼굴을 대해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떠했던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고 6개월마다 휴가를 기다려 만나고 하면서 군대생활 3년이 갔다.
남편이 군에 가 있던 3년 동안 저녁으로 한 번씩, 새벽으로 한 번씩 며느리 방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바퀴를 돌곤 하시던 시아버지는 남편이 군에서 제대를 하자, ‘나는 이제 짐을 하나 덜었다.’하셨다. 당신이 아들 대신 며느리를 지켜주신 거였다. 어질고 순하셨던 어른이셨다. 어쩌면 그런 사랑을 받았기에 지금의 국희 씨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제대를 하고 감포로 발령을 받아 잠깐 감포에서 생활을 할 때도 모내기철 추수철 등 일손이 바쁜 철이면 한 달씩 두 달씩, 일 년에 몇 달은 임동 시댁에 와서 지냈다. 감포에서 생활하면서도 남편의 마음은 늘 안동에, 부모님 곁에 있었다. 그래서 안동으로 전근 신청을 해서 남편이 안동 남선초등학교로 오면서 국희씨네는 본격적으로 시부모님 그늘에서 살게 되었다. 살림집은 용상동에 있었지만 매일 임동 시댁을 오가며 시댁 살림과 농사일을 거드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용상에 사글세 살림집을 얻어 살았는데, 남편 출근하고 그때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애 학교 보내고 나면 매일 어른들이 계시는 임동으로 출퇴근을 했지요. 아침에 각자 나갔다가 저녁 되면 만나고 그랬죠. 저희 살림집은 시내에 있었지만 그때부터 어른들과 늘 함께 살았지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알았죠.”




점잖았던 시아버지, 치매 앓다 5년 전 돌아가셔
시아버지는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시다 오년 전에 돌아가셨다. 한겨울, 잠깐 볼일 보러 갔다 온 사이 밖에 나가신 시아버지가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셨다. 온 동네로, 안동 시내로 찾아다니다가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큰집으로, 작은 집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해 놓고, 연락을 받고 급하게 집으로 온 남편과 전에 시부모님이 사셨던 임동 수몰된 데로, 시아버지 고향인 영양 입암 지르실 마을로 찾아다니다 영양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주변을 밤늦도록 찾아다니다 집으로 왔다. 새벽에 남편은 다시 안동댐으로, 낙동 강변으로 오르내리며 시아버지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맘 졸이는 사이 날이 밝았다.
그런데 아침 한 아홉 시 쯤 되어서 작은 집에서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임동촌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 길로 가서 시아버지를 붙잡고 “아버님, 어디 가셨다 오셨니껴? 왜 여기 와 계시니껴?” 하니까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보고 태연하게 웃으시며, “내사 내 가고 싶은 데 갔다 왔지. 뭔 걱정 하노?” 하시더란다. 그 길로 집으로 모시고 왔다.
병이 있으신 노인 분들이 으레 그렇듯이 시아버지도 덜하다가 더하다가 했다. 병증이 심할 때는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덜하면 퇴원을 하곤 했는데, 어른은 병원에 가는 것도 입원해 있는 것도 몹시 싫어했다. 의사가 입원을 시키면 눕지도 자지도 않고 집에 가자고만 했다. 잠도 안자고 주사도 싫다고 뿌리치고 침대에 머리를 찧으시며 병원에 있는 걸 그렇게도 못 견뎌 하셨다. 그래서 당신 마음 편하시게 하려고 집으로 모시고 왔다. 집으로 오셔서도 드시지도 않고 잠도 잘 못 주무셨다. 잠시만 눈을 돌려도 언제 어떻게 되실 지 알 수 없는 일이어서 항상 시아버지 곁을 지켜야 했다. 그때만 해도 시어머니 건강은 그만하셔서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시어머니께 부탁을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요양원 같은 데 모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남편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고생하는 아내를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듯, 몸이 힘든 것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픈 어른을 잘 모시는 것인지에 대해 부부는 밤이 깊도록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결국 어디를 가신들 집만큼 편하시겠느냐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그렇게 삼년을 치매를 앓으시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예전의 기력만 못하신 시어머니, 그러나 존재만으로 감사해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있어 시어머니 박삼희(93)씨가 쓰러지셨다. 비교적 건강하시던 분이 감기를 앓으시다가 갑자기 정신을 놓은 것이었다. 감기가 걸리신 시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와서 약을 챙겨 드리고, 가을이어서 밭에 농사지은 콩을 타작하러 갔는데 토요일이라 마침 집에 와 있던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려 한다고. 놀라서 남편과 한달음에 달려와 보니 시어머니가 혼절 직전의 상태라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세 시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어떻게든 살려 달라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매달렸다. 세 시간을 넘기고 그리고 밤을 지내고 나서 급한 고비를 넘긴 시어머니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약간 차도가 보이자 의사가 인공호흡기를 달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친척들은 가시는 길 편하게 보내드리자고 했다. 굳이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억지로 생명을 연장한들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들이었을 게다. 그렇지만 자식 된 도리로 하는 데 까지는 해 봐야 하는 거라고, 아버님처럼 가실 때가 되면 인공호흡기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붙잡을 수가 없는 게 저승길이더라고 부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3일을 더 보내고서야 시어머니는 정신을 차렸다.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어머니는 얼굴만 보면 집에 가자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2주일을 보내고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런데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신 시어머니는 더 이상 예전의 기력을 되찾지 못했다. 그때부터 일어서서 걷지를 못해서 지금까지 거의 누워서 지내거나 앉아 지내고 있다. 그래서 많이 드시는 건 절대 피해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때문에 식사량을 꼭 지켜서 드린다. 언젠가 섭섭하셔서 아들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신 날 남편은 눈자위가 붉어져서 어머님 방에서 나왔다. 마음이 아팠지만 마음을 모질게 먹고 꼭 그만큼씩만 드린다. 93세라는 연세에다 인공호흡기까지 다셨던 터라 이제는 아주 작은 탈만 나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걷지를 못하다 보니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데, 일일이 기저귀를 갈아주던 것이 몇 달 전부터는 시어머니 혼자서 기저귀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셨다고 한다. 간호사로 있는 질녀에게 시어머니 담당이셨던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 돌아가셨느냐고 물었다가 이제 기저귀도 손수 갈아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서 잘 모시는가 보다고 하시더란다. 아직은 심하지는 않지만 치매기까지 있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정신도 조금 맑아지신 것 같다고 좋아하는 국희씨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하신 연유가 달리 있었을까? 이 아들 며느리하고 사는 집이 그만큼 편하셨던 것이리라.




꼼짝마라상,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네요
방안에서만 지내다시피 하시니 시어머니가 오죽이나 답답하실까 싶어 산책이라도 시켜드릴까 하고 전동차 휠체어를 살 생각도 해 봤다. 그런데 국희씨도 관절통으로 고생하는 할머니인데다 대문 넘어 계단을 지나 현관까지, 혼자서 휠체어를 들고 날 수가 없어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다가 접고는 했다. 남편이 있어야 어머니 모시고 바람이라도 한 번 쐬어 드리지, 혼자서는 늘상 마음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못하게 되었다. 상을 받고 나서 오히려 조그마한 것 하나서부터 모든 게 몇 배는 더 조심스러워졌다는 거다. 평상시 해오던 행동도 괜히 효부상하고 연관 지어 생각할까 저어되는 그 마음이 짐작이 간다. 이래서 효부상을 ‘꼼짝마라 상’이라고들 하나보다. 
어디를 가도 항상 마음은 집에 계신 시어머니에게 매여 있는 국희 씨다. 세 끼 식사와 약을 늘 챙겨드려야 하기에 잠시 짬을 내어 볼일만 보고 들어오거나 일이 있어 멀리 가는 경우가 있어도 어지간한 큰 일이 아니고는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바로 옆에 시동생 네가 살아서 큰 걱정은 없는데도 바깥 볼일을 볼 때면 늘 마음이 바쁘다. 그런 국희씨가 잠깐씩 숨을 돌리는 때는 농사일을 하러 임동 밭에 갈 때다. 시부모님하고 짓던 농사를 지금은 국희씨가 짓는다. 농사라고 해 봐야 봄이면 채소며 고구마며 심어 놓고 시간 나는 대로 들여다보는 정도지만, 그것도 농사라고 시어머니 챙기면서 짬짬이 왔다 갔다 하려고 96년도에 작은 트럭을 하나 장만해서 그걸 타고 다니며 농사를 짓는다. 밭고랑에서 흙냄새 풀냄새 맡다보면 시부모님과 농사짓던 옛날도 생각나고, 가슴이 시원해지고 맑아지는 것 같아 별로 힘들지 않다고 한다.



다정다감한 남편 덕에 집안에 큰소리 안나요
“우리 주인은 어른들한테도 잘하고 저한테도 참 잘해줍니다. 다정다감하다 할까요. 그러니까 힘든지 모르고 살았지요. 시어른 두 분하고 조카까지 애들 넷하고 여덟 식구 살림을 살면서도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봤으니까요. 바로 밑에 시동생이 일찍 가는 바람에 조카를 세 살 때부터 데려와 같이 키웠는데 잘 키우든 못 키우든 같은 핏줄인데 한 우리 안에서 내 핏줄 속에서 같이 커야 된다 생각하고 키웠죠. 애들이 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많았지요. 같이 큰 넷 중에 우리 딸애하고 둘째는 결혼을 했는데, 베이징에 가 있는 첫째하고 조카는 아직 결혼을 안 했네요. 서른 셋 난 조카는 직장이 영주에 있는데 지금도 한솥밥을 먹고 있니더.”



도시락이 열 개에 등록금 납부가 다섯 명
용상에 살 때 늘 집안이 북적북적하고 삼시 세 끼 식구들 먹는 것 준비하는 것도 작은 일이 아니었는데, 그때 이웃에 보면 애들 둘하고 네 식구만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걸 보며 저 집은 참 단출해서 좋겠다 싶기도 했다. 애들 넷하고 여섯 식구에다, 당시만 해도 교통편이 좋지가 않아서 통학하기가 쉽지 않았던 때라 임동에서 안동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 시댁 쪽 조카들이 죄다 그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종질도, 종시누이도, 종시동생도 다들 용상동 그 집에서 애들하고 같이 학교를 다녔다. 식구가 일곱 일 때도 있고 여덟 일 때도 있고 그랬으니 도시락 싸는 일이 참 큰일이었다. 도시락 반찬이 모자라기 일쑤였다. 오뎅 볶음을 하고 남은 반찬국물은 으레 큰아들 차지였는데, 둘째는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큰 형만 장남이라고 차별했다고. 자기도 그 국물이 정말 먹고 싶었다고.
“낮에는 들에 가서 어른들하고 일하고 와서 몸은 고되건 말건 저녁 챙겨주고 다음날 도시락 반찬 준비해야 하니까 정신없이 바빴지요.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우리 아저씨가 장남이니까 으레 그래 해야 된다고 알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애들이 비슷비슷하게 같이 대학 들어갈 때 그때가 참 힘들었어요. 재수하는 놈도 있고 하다 보니 한꺼번에 다섯의 대학등록금을 내야 했던 해가 있었어요. 다섯 명 등록금을 일 년에 두 번 내야 하는데 그 많은 입에다 교사 월급으로 그게 말이 쉽지,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그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보냈어요. 그러다가 하나는 군대를 가고, 또 하나가 졸업을 하고 하면서 좀 나아졌죠.”
자식들 키우면서 통장에 돈을 모아놓고 써 본 기억이 없다는 국희씨. 통장에 돈 십만 원만 넣어 놓고 써 봤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키운 그 아이들이 다들 잘 자라서 자리 잡고 옛말하며 살게 되었으니 그 세월을 다 보상받은 듯하다.


내사 부끄런 맘, 가족들은 자랑스럽다네요
요즘 국희씨는 동네를 맘 놓고 다니지를 못한다. 방송에 나온 것도 부끄럽고 누구누구 효부상 받았다고 내걸린 현수막 때문에도 부끄럽다. 미장원에 갈 때도 송구스러워 어둑해지고서야 그 현수막을 멀찍이 돌아서 다녀왔다. 하지만 남편과 자식들이 고맙다고 자랑스럽다고 말해줄 때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을 받으러 가는 날, 어머님 대신 제가 이 상을 받으러 가게 되어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다 어머님이 이렇게 살아 계신 덕분이라고 했을 때, 손을 잡으시며 맑은 정신으로 잘 됐다고 고맙다고 가서 상 잘 받아오라고 하시던 시어머님의 좋아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도 시어머니의 하루 세 끼 일정량의 식사와 약을 챙기고 말동무를 해드린다.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켜드리고 누워만 지내시느라 나날이 약해져 가시는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한다. 더 잘하지도 더 못하지도 않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따름이다.
“제가 어머님께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내 자식한테 가는 마음만큼 일까요? 자식에게는 무엇이든 다 내줄 것 같은 마음인데, 부모한테는 그 마음의 삼분지 일이나 될까요? 우리 어머님도 아들한테, 우리한테 그렇게 다 내주시며 사셨을 텐데……. 지금보다 더 나빠지시지만 말고 이대로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셨으면 합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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