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그 통제된 혼란(글/김승열-포항 선린병원 응급의학과장)응급의학과 응급실도 의학의 한 분야이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점에서는 다른 임상 진료과와 다르지 않지만 응급실은 보통 사람들도 다 알다시피 매우 특수한 진료부서이다. 타 진료과와 다른 특성은 다만 응급환자를 진료함에만 있지 않다. 사실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응급환자가 아닌 환자가 더 많다. 이러한 응급실의 특성을 잘 말해주는 표현이 ‘통제된 혼란’이다. 질서로도 번역되는 코스모스(cosmos)와 반대되는 표현이 카오스(chaos) 즉 혼란, 무질서에 통제된 혼란이라는 말을 붙여 모순어법으로 형용한 이 표현은 응급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표현이다. 종합병원 응급실에 몇 시간만 있어보면 참으로 적절한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보통 통원 환자를 진료하는 외래 진료과는 하루, 혹은 일주일, 한 달의 일정을 대략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 즉 월요일에는 환자가 많다든지 하는 예측이 가능하고 언제 진료를 한다든지 정해 놓은 일정대로 진료가 진행된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응급실은 바람 없는 호수처럼 조용하다가도 순식간에 아수라장, 야단법석이 되기도 한다. 아수라장이 되면서 혼란과 무질서는 더욱 심해진다. 환자와 보호자만 출입하는 통원 환자만 보는 외래 진료실과 달리 응급실은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어떤 사람이 오고가는지 한번 살펴보자. 환자와 보호자, 의사, 간호사는 다른 진료부서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응급실에는 119 구조대원, 경비대원이 있는가 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위하여 방사선과 촬영을 위해 방사선과 기사, 검사를 위해 검사실 직원, 여기에다가 때로는 상해나 교통사고 환자, 혹은 변사자 수사를 위한 경찰, 드물지만 언론사의 기자까지 오고간다. 더구나 응급실 환자의 보호자는 보통 한두 명이 아니다. 때로는 십여 명이 넘는 보호자들이 와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뿐 아니라 새로운 보호자가 올 때마다 설명을 해달라고 하면 똑 같은 설명을 대여섯 번은 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두 마음은 급하고 응급실에서 바쁘게 움직이면서, 여기에다가 술 취한 사람의 난동과 욕설에서부터 빨리 진료를 재촉하는 환자와 보호자의 고함까지 더해지면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때로는 진료보다 환자나 보호자를 달래고, 설득하는데 더 힘을 소진하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말싸움이나 심지어 폭력에 이르는 상황에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와중에 응급소생술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기라도 하면 이제 거의 난장판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진료는 진행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과 아수라장이지만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환자 진료에 우선순위가 불문율, 혹은 이심전심으로 정해져 있기에 응급실의 혼란은 통제된 혼란이다.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는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최우선으로 어떤 환자가 위험한 환자인지부터 확인한다. 응급실에서는 응급실 밖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우선순위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응급실에서는 응급 환자가 최우선 순위이다. 늦으면 생명이 위태롭거나 장애가 남을 수 있는 환자가 최우선 환자이다. 그러므로 응급실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면서 특혜를 바라는, 혹은 바라는 듯 하는 환자는 어디에서도 환영받기 어렵겠지만 특히 응급실 의료진에게 있어서는 매우 싫어하는 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제된 혼란 속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간호사가 가장 싫어하는 환자는 어떤 환자일까? 의사나 간호사로서 물론 환자를 차별하거나 피하면 안 되겠지만 의사와 간호사도 인간이므로 진료는 하지만 그래도 싫은 환자는 있기 마련이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특별대우를 바라는 환자나 보호자도 싫은 환자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응급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환자가 가장 싫기 마련이다. 즉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리는 환자들이다.
물론 응급환자의 특성으로 취하지 않아도 난동을 부리는 환자는 있지만 대부분 난동을 부리는 환자는 술 취한 환자들이므로 응급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진료를 방해하고, 심지어 다른 환자의 생명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술 취한 환자나 보호자가 가장 싫은 환자들이다.
응급실에서는 뿐만 아니라 응급 상황이므로 일일이 설명을 할 수 없고, 그래서 겉으로만 보아서는 모르지만 환자가 도착하면 정해진 원칙대로 검사와 진료가 진행된다. 가끔 환자에 대하여 검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환자를 방치한다고 하는 환자나 보호자도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환자에 대한 검사를 위해 접수하고, 방사선과나 검사실에서는 검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해도 수액주사나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진료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환자나 보호자들도 응급실의 특성인 통제된 혼란 속에서 진행되는 진료를 모르기에 나오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이 글을 통해 간절히 바라는 바는 다음과 같다. 적어도 「안동」지를 읽는 독자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겠지만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응급환자가 아니면서 단순히 빨리 진료를 받고 싶다는 이유로, 혹은 무료라는 이유로 119를 이용하고, 119를 이용하였기에 응급실에 와서 진료를 받는 환자나 보호자도 많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난동이나 얌체 행동이거나 세금을 도둑질 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임을 알아서 응급실이 혼란보다는 통제와 질서로 유지되게 도와 주시기를 바랄뿐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