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며칠 전, 비 내리는 날 우체통을 봤습니다. 홀로 발갛게 서있는 우체통을 보며, 이제는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우체통을 앞에 둔 상점에서도 우표를 파는 곳이 드물다고 하네요. 문구점이나 구멍가게 등에서 팔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죠. 얼마 전 TV의 한 정보프로그램에서 우체통을 열어본 적이 있는데 정작 편지는 몇개 없고 잃어버린 주인을 찾는 신분증과 DM발송용지 몇 개뿐이더군요.
편지를 써본지 얼마나 되세요? 전자시대에 이메일이 일반화된 이 시대에, 우표 뒷면에 침 발라 봉투에 붙이곤 빨간 우체통을 찾아 받아볼 사람을 떠올리며 투입구에 넣던 기억들, 어렴풋하지 않나요? 길거리 풍경처럼 붙박혀 서 있는 우체통이 어쩐지 미련스러워 보이면서도 듬직하니 정이 갑니다.
형제, 자매의 연애편지는 봉투입구에 수증기를 쐬어 몰래 개봉해 본 뒤에 다시 붙여놓고 시침을 떼기도 하죠. 혹은 동성친구의 이름을 사칭한 이성친구의 편지를 입수하여, 폭로할 것을 협박하며 금품(?)을 갈취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던 일들도 기억나는군요. 풀이 없을 땐 가끔 밥풀을 이용해 봉투입구를 봉하기도 했고요. 방학 땐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보냈다가 복사한 테가 역력한 답장에 실망하기도 했답니다. 하긴, 예전엔 한 반에 50~60명의 학생들이 있긴 했었죠.
현재 우표 값은 250원. 관제엽서 190원입니다. 모임 알림이나 라디오DJ에게 뽑히길 기대하며 꾸며 보냈던 관제엽서 생각나시나요? TV퀴즈쇼의 정답이나 시청자 의견을 관제엽서에 써서 보내곤 했죠. 예전 가족오락관에 엽서를 보내던 아버지의 모습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엽서를 보냈던 저의 모습이 교차되는군요.
일명 네티즌들의 해결사 ‘네이버 지식인’을 검색해보면 네모칸의 우편번호란이 없는 민자 편지봉투가 당황스러워, 편지 보내는 방법을 물어보는 네티즌도 나옵니다.
결혼하기 전 옛 연인과 주고받았던 편지는 어떻게 할까?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도 저런 걸 갖고 있냐는 무덤덤형 부터 첫사랑을 못 잊어 간직하고 있냐고 다그치는 형, 쿨한 척 하지만 대부분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등 그 유형도 다양하다고 합니다.
예전엔 펜팔을 많이 했었죠. 최신히트가요 500곡집, 이런 류의 책 뒤편에 어김없이 펜팔원함, 취미 독서, 특기 댄스, 성격 차분하나 쾌활. 차분하면서 쾌활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싶어 궁금하기도 했지만, 특기가 댄스라니 읽는 사람을 부끄럽게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일본영화 러브레터를 보면 죽은 연인의 졸업앨범을 보다가 그리움에 사무쳐 앨범 뒤에 있는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여자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답장이 오자 너무 놀라는 여자는 알고 보니 동명이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죠. 혹자는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게 프로이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출기록카드에 10년 동안 아무도 빌려간 흔적이 없다는 것이라도 하더군요.
사랑에 빠진 남자가 매일같이 사랑의 편지를 보내는데 그 여자는 우편배달부와 사랑에 빠져버린 얘기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랑방’에서 왜 이리 말이 많을고? 생각 들지 않습니까? 펜을 들고 편지를 써서 그리운 사람에게 혹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세요. 며칠 뒤 너무 기뻐하는 수신자의 전화 목소리를 듣거나, 점심 대접을 받거나, 당신도 너무나 오랜만에 받아볼 그 편지가 광고전단지와 청구서를 제치고 우편함에 담겨져 있을테니까요.
이메일과 메신저가 생활인 요즘 아이들이 도대체 ‘편지’를 써본 적은 있을까요? 자 이 글을 읽은 김에 말 나온 김에 부치지 않을 편지라도 한 장 써보는 건 어떨까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