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촌놈 권위영씨의 오뚝이 인생(글/천남희-주부, 사진/박영대-동아일보 기자)
어려움 딛고 자수성가한 파란만장한 권위영씨
초등학교를 4번씩 옮겨 다니면서도 졸업장을 못 쥐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리저리 학교를 옮겨 다녀야했던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이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도 원망과 불평으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희망의 줄을 놓지 않고 한발 한발 고난의 삶을 헤쳐 나와 이제는 정상에 우뚝 서서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고난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기 쉽다. 내 코가 석자라는 생각 때문에 내 문제에만 매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서 옆 사람의 표정도 살필 줄 알고,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돌보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 그였다. 내가 무너지는 것은 주위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메마른 마음 때문인 것이다. KPE. 태광상사 대표 권위영(48) 씨가 그런 사람이다.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한 그가 지금은 어떻게 자산 20억 규모의 지퍼회사를 운영하게 되었는지 그와 함께 40여 년 전의 하회마을로 돌아가 그의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았다.
풍천면 하회1동이 고향인 그는 운산 조탑리에서 태어났다. 조탑리는 그의 외가이다. 시골에서는 외가를 ‘위가’라고도 불렀는데 외가에서 태어났다 하여 안동 권씨 35대손 영자 돌림 앞에 ‘위’자를 넣어 ‘위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부친이 생계를 위해 강원도 태백시 도계로 이사를 갔다. 그가 그곳에 있는 소달초등학교를 다니던 2학년쯤에 다시 하회로 이사를 왔다. 자식을 예의와 겸손, 유교적인 풍습을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하회에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부친의 생각이었다 한다.
“어려서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하회에 와서 전체 호적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전학이 안 되어 2년간 학교에 못 다니다가 풍남초등학교에 겨우 들어갔어요.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어담초등학교로 전학가고 또 중리초등학교로 갔다가 다시 풍남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죠. 공부 머리는 없었나 봐요. 자주 옮겨 다니니까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나이도 많고 가정 사정도 안 좋아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되었죠.”
하회 마을에서 부용대를 오가는 뱃사공 일을 하던 부친이 쓰러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쓰러진 후 부용대 뱃사공으로 일했죠
제도권에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상태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때부터 동네 취로 사업이며 경운기를 끌고 다니며 어른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품삯은 항상 어른의 반이었다.
“어렸지만 힘이 좋아 경운기로 하루에 쌀 50~60가마니를 날랐어요. 아버지께서 쓰러지셔서 어머니와 함께 동생 6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힘든 시절이었죠. 아버지께서 하회마을 부용대를 배로 건네주는 사공 일을 하셨는데 쓰러지신 이후로 제가 맡아서 하게 되었죠. 한 7년 정도 했어요. 주로 아침저녁으로 풍천중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태워 주는 일이었는데 하면서 속으로 울기도 많이 했어요. 가방 메고 학교 가는 친구들 보면서도 꿋꿋하게 버티었어요. 그 힘들었던 세월이 지금을 있게 한 힘이 되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봄, 가을 동네에서 곡식을 받아 우리가족 생계를 이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요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때가 제일 힘든 때이지요. 불어난 강물에 배가 떠내려 갈까봐 비만 내리면 잠을 못자요. 항상 걱정과 불안 긴장 같은 것이 있었나 봐요. 어린 나이에 배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거 있잖아요. 요즘도 그런 불안증이 있어요. 그래서 공장에서도 안전에 대한 신경을 제일 많이 써요. 겨울에 얼음이 녹을 때 얼음과 함께 떠내려가는 배를 구하기 위해 추운 줄도 모르고 물에 뛰어 들어 헤엄쳐 배를 끌기도 했는데 그만큼 그 배는 우리가족 생계를 지켜주는 소중한 존재였지요. 그 배로 물에 빠진 사람들도 많이 구했어요. 그런데 나룻배의 긴 삿대가 어린 나이에 힘이 부쳤나봐요. 손가락 끝이 조금씩 다 휘었어요.”
그러면서 그는 양 손을 펼쳐 보였다. 정말 손가락 끝 부분이 조금씩 한 방향으로 휘어져 있었다. 한창 공부할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쓴 마디 굵은 그의 손을 보니 내 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공부머리는 없어도 감각은 있었나봐요
그 무렵 그는 자전거 점에서도 1년 정도 일을 배웠다. 17세 되던 해에 풍천면에서 자전거 점을 직접 운영해 보기도 했었는데 그의 첫 번째 사업이었다.
"공부 머리는 없어도 감각은 있었나 봐요. 글로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일일이 기억해 두어야 하니 세심하게 보는 관찰력이 있었는지 같음에서 다름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손으로 만지는 일은 뭐든지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그것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어야 하니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실습을 하고 그랬지요. 뭐든지 힘들게 노력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끝까지 하다 보면 정상에 올라가게 돼 있어요. 원칙대로 똑바로 가는 것이 지름길이더라고요.”
몸으로 터득한 그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었다. 문맹인 으로서의 만만치 않은 삶을 그는 그렇게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모든 감각을 열고 귀 기울이고 집중하였을 것이다. 어떤 일을 잘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가 보면 잘하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였다. 그러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자에 대한 주위사람들의 무시가 그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1979년 19살의 나이로 경기도 하남에 있는 ‘대화자크’ 공장에 취직하면서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하남 올 때 추리닝 한 벌과 바지 한 벌, 돈 3천원 가지고 올라 왔어요. 한 달 월급이 3만7천원 이었는데 힘든 시절이었죠. 한참 먹을 나이에 야간수당이라도 더 받으려고 잔업하면서 배가 고파 빵을 사먹으며 울기도 많이 했어요.”
잇따른 성공과 실패 속에서 인생공부 했지요
손재주가 남달라 일을 쉽게 배웠나 보다. 또 어릴 때의 힘든 생활로 인해 남들보다 좀 더 잘 살고 싶은 욕망도 강했을 것이다. 공장 취직 한지 5년 정도 지난 후에 동대문에 지퍼공장을 차렸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혼자서 뛰고 일을 해야 했지요. 정신적 육체적 금전적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좋은 나무는 많았지만 짚고 일어설 지팡이는 없었어요. 아니 그 지팡이가 너무 빨랐어요. 아무리 좋아도 모든 것이 갖추어졌을 때 일어서야 하는데 너무 빨리 일어서서 내실이 없어 쓰러지고 말았죠, 고목은 고목이더라고요. 끝없는 비바람과 눈 태풍에도 끄떡없잖아요. 사업도 사회적응이더라고요. 어떤 시달림에도 이길 수 있어야 쓰러지지 않는데……. 좋은 경험 한 거죠. 그 때 집사람을 만났어요. 밥 사먹을 돈을 아끼기 위해 공장에서 밥 세끼를 모두 해결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제 밥을 해주고 있습니다. 제 뒷바라지를 너무 잘해주고 저를 잘 이해 해주는 순수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공장이 부도나고 한 달을 라면으로 버티기도 했어요. 쌀이 없어서 할 줄도 모르는 하수도 공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했던 사업이 부도나고 또 부도나고 그렇게 4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는 또 그 나름대로의 사업에 대한 혹독한 체험을 하며 내실을 다져 나갔다. 그 와중에 그가 경제사범으로 서울 구치소에 1년 정도 수감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몰라서 당한 일이었어요. 그때 그곳에서 서울대 국문학과에 다니던 학생에게서 글을 배웠어요.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때까지 글을 제대로 몰랐거든요. 내 세상을 깨우친 거죠.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어요. 글 배우면서 그 학생에게서 정신적인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옛말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고 내가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 때 깨달은 것이지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우선순위가 변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단순한 이론이라도 경험하면서 배워야 하는 발로 뛰는 삶에서 조금은 해방되는 자유로운 삶으로의 방향전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수감생활이 그에게서는 인생의 밑바닥이 아닌 밑바탕이 된 것이다
앞만 보면 욕심이 생기니 항상 뒤돌아봅니다
현재 그는 경기도 하남시에서 지퍼 공장을 운영하며 을지로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광주로 공장이전 계획은 있을 뿐 더 이상 사업을 확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내 자신이 튼튼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지금 크게 성공을 한건 아니지만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자식들 잘 크고 형제들도 잘 지내니 더 이상 바랄게 없어요. 제가 원했던 게 남들 보다 조금 더 잘 살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거든요. 많지 않은 돈이지만 나눠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독거노인들을 도우며 김장도 해 주고 쌀도 나눠주며 경로잔치도 하고 그래요. 7년 전부터 술을 끊고 그 돈으로 시작했어요. 사업하다 보니 술값이 1년에 천만 원 더 들더라고요. 그 돈으로 좋은 일 하자 마음먹었어요. 사람은 항상 뒤돌아 볼 줄 알아야 해요. 앞만 보면 욕심이 생기지만 뒤를 돌아보면 허무하게 죽지 않고 욕심도 사라지죠. 뒤를 보다 보면 옆도 보게 되고 남을 위해 양보도 할 수 있고 그러다가 넘어진 사람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잖아요? 손에 흙도 안 묻히고도 돈도 많고 배운 것 많은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지 않은 것을 보면 손 떼고 싶은 마음도 사실 들지만 제가 어릴 때 도와주던 분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죠.” 그는 그런 나눔의 삶으로 행자부 장관상과 하남시장상 등 여러 가지 상도 받았다.
그는 아직도 하회마을 양진당에 사는 종부 할매를 잊지 못하고 있다. 밥을 못 먹던 시절에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며 많이 보살펴 주었단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가끔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 어린 맘에 공짜 밥이 죄스러워 뽕잎도 따주고 청소도 해 주었다지만 그때 그 할머니에게서 받은 따뜻한 맘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살필 줄 아는 지금의 삶으로 이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힘들게 살긴 했어도 참 열심히 정직한 삶을 산 큰 아버지나 아버지도 모두 남에게 험한 욕 한번 못하고, 흔히 말하는 법 없이도 사는 분들로 기억하고 있다. 세상은 내 마음을 닮아 간다고도 한다. 내 마음이 삐딱하면 세상이 삐딱하게 보인다. 그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그에게 모두 올곧고 바르게 보이는 것은 그의 천성이 순수하고 바르기 때문이리라.
시행착오 끝에 이뤄낸 기술개발
지퍼를 하나 만드는데 부속이 28가지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중에서 그가 만드는 것은 지퍼의 처음부분 티쓰(이빨)가 시작되는 핀 박스이다. 그 부분이 많이 벌어지거나 떨어져 나가 지퍼가 고장 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 기술 개발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성공하여 그와 관련된 의장등록과 상표등록을 마쳤다. 그의 노력으로 쉽게 고장 나지 않는 지퍼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요즈음 기술이 다시 되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일 안타까운 것은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입는 조끼가 거의 중국산인 것입니다. 질 낮은 저가의 중국산을 사서 쓰다가 버리고 버려서 우리나라가 쓰레기장이 되어 갑니다. 20년 전 단가와 지금의 단가가 거의 변화가 없고 중국산이 물밀듯 들어오니 사업하기가 힘들어요. 세금도 너무 많고 규제도 많아요. 세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늘여서 나누어 세금을 거둬들이면 사업하는 사람이 조금 쉬울 텐데 말이죠. 사람들이 의욕적으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죠. 그러면 돈도 쓰고 회전 순환도 될 것 같은데 국가도 좀 뒤를 돌아 봤으면 좋겠어요."
변칙이나 꾸밈없이 오로지 자신의 발로 뛰고 노력해 힘쓴 만큼의 대가만으로 성공한 그 나름의 경제논리지만 새겨들어야 할 말인 것 같았다.
“내 삶의 페달을 계속 밟습니다.”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이지만 그에게도 고향에 대한 추억은 남들과 다름이 없었다. 하회마을 앞 넓은 모래밭에서 겨울에 굴을 파고 나무를 덮어 만든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지금도 웃음을 머금게 한다. 강에서 수영하며 사과밭에 몰래 들어가 따 먹은 사과들이며 수박 참외를 서리해서 물에 던져 놓고 먹었던 그 시간들이 지금도 그립기만 하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다부진 체구, 부리부리 한 눈에 굵은 체인 목걸이까지 한 그는 사실 같은 고향이 아니라면 말 섞기가 부담 되는 외모를 가졌다. 길을 가다가도 사람들 옷마다 모양이 다른 지퍼를 자세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어 오해를 많이 받기도 했었단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 본 지금 부리부리 하던 그의 눈은 맑고 순수함으로, 맘씨 좋은 삼촌처럼 정감 있게 다가 왔다. 사람이 좋아 시작했다는 검도, 수상스키, 볼링, 축구 등 여러 운동도 수준급이다. 뭔가 손을 대면 쉽게 포기 하지 않는 그의 성격과 끝까지 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을 잘 아는 그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지퍼 사업에만 28년 동안 매달린 것도 그런 이유인가 보다.
얼마 전 영주 부석사 부근에 산을 사서 3년 전 82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부친을 거기에 모셨다. 자신도 좋은 삶을 즐기다가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현재 70이신 어머니께서는 하회에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과 힘듦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을 시험하고 있는 기회이며 성공으로 나아가는 기회라고 말한 영화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그에게서 어려움은 그 자신을 성장시키는 기회였으며, 반복을 거듭한 실패의 시간들은 성공을 만들어 내는 가장 강력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 같다. ‘못하는 것은 안하는 것일 뿐이고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는 단순한 진리를 생각하게 한 사람,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살아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웃을 수 있게 하는 참된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