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의 의사(글/김승열-한동대학교 선린병원 응급의학과장)의사로 살아온 지 20년이 가깝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많음을 느낄 때가 수도 없이 많다. 의사로서의 부족함과, 인간으로서의 부족함, 그리고 의사인 인간으로서의 부족함 등등 부족함을 느낌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부족함에 대한 느낌은 의사로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이다.
한번은 동료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서로의 의견의 일치에 놀란 경험이 있다. 의사가 혼자 환자를 볼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나눌 때였다. 한국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보통의 경로는 의대를 졸업하여 의사 면허를 받고 그 다음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되어 종합병원의 봉직의가 되거나 개원의가 되어 환자를 진료함이 대부분의 의사가 거치는 경로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친 다음 의사 면허를 받으면 법적으로는 언제든지 단독으로 환자를 볼 자격은 생기지만 법적인 자격이 아니라 능력으로 볼 때 언제부터 환자를 단독으로 진료하여도 될까 하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의사로서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알 때’ 라고 서로 의견이 일치하였다.
의사도 인간이며, 인간이기에 능력에 한계가 있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엄청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의사, 이러한 책임감을 느끼는 의사라면 전지전능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의사는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 보다 많은 갈등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초보의사 시절에는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없는지도 모르고 진료를 하였다. 다시 말하면 경험이 쌓이면서 내가 무엇을 아는가하는 지식이 늘어남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가 점점 더 확실해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의사로서 단독으로 진료를 하여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의사는 많이 알기보다는 무엇을 모르는지가 더 확실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무지에 대한 인지에서 시작되는 진료
이미 그리스에 있던 격언이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자기의 무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의사에게는 더더욱 절실한 말이다. 자기 자신의 무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환자에게 해로운 진료는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의사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더 잘 아는 의사에게 환자를 의뢰하여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할 수도 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라면 오해 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경험이 많은 의사일수록 항상 하는 말이 좋은 의사는 환자에게 이로운 진료를 할까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해로운 진료를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의사라고 한다. 해로운 진료를 피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알아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의사로서의 판단, 인간으로서의 판단
다음으로 의사이지만 인간이기에 느끼는 부족함은 의료와 얽힌 복잡한 사회관계에서의 판단문제이다. 의사는 항상 복잡한 인간관계, 법적 관계에 얽매일 때가 많다. 교통사고만 하더라도 거의 항상 보험에 얽히거나 법에 얽힌 진단서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사회와 얽힌 문제에 있어 의사는 의학 외적인 판단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의사로서의 판단과 인간으로서의 판단이 항상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어 단순한 감기로 일주일에 3번이나 119 구조대를 불러 응급실에 내원한 의료보호환자에 대한 감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의사로서는 당연히 환자 편에 서서 환자를 옹호해야겠지만, 무료라는 이유로 단순 감기로 진단받고도 119와 응급실을 악용하는 환자에 대해서 인간으로서의 판단은 대부분 호의적일 수가 없다.
문제는 의사가 아닌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에 대한 감정이 감정으로 끝나지만, 의사가 환자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가지면 올바른 진료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이러한 상태를 라뽀(rapport, 의사와 환자와의 인간관계)가 깨졌다고 하거니와 라뽀가 깨진 상태에서는 좋은 진료가 어렵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의사는 불법이 아니라면 항상 환자의 편에 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9가 정말 꼭 필요한 응급환자의 후송을 지연시킬 수도 있어 다른 환자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세금을 낭비하게 하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이러한 사례에 대해서 인간으로서 의사는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20년 가까이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이다.
좋은 의사는 곧 지혜로운 사람, 그 아득한 길을 헤쳐 나가는 것이 숙제
초보의사 시절, 아직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를 잘 모를 때는 없었던 문제들, 이러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젊은 시절에는 단순하였던 문제들이 더 복잡해지는 문제들에 때로는 힘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의사가 명의가 되려면 큰 병을 앓아보아야 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의학적인 문제가 의학적인 문제로만 끝나지 않으니,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학 외에도 인간 문제에도 더 판단에 지혜로워야 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진료에만 있다 해도 어렵고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인간관계까지 이러하니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의사가 단독으로 진료하려면 의학적인 판단에서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면 가능하겠지만, 의료와 얽힌 인간관계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지, 의사라 할지라도 인간이므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