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손만두 빚어온 김영근 할아버지(글/이미홍-객원기자)

무궁화 빵에서 시작해 지금의 손 만두까지
1970년 한여름, 허름한 신시장 골목 모퉁이, 서른을 막 넘긴 젊은이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내며 리어카에 실린 빵틀 기계에서 부지런히 일명 ‘무궁화 빵’이라고 불리는 풀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막 나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궁화 빵은 구워내기가 바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 손으로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소문난 만두가게 주인 김영근 할아버지의 손이 밀가루하고 만나 처음으로 빚은 이 무궁화 풀빵이, 그가 지금까지 30여년을 밀가루를 주무르며 만두를 빚으며 살아온 만두인생의 시작이었다. 당시 그가 한 번에 제법 큰 무궁화꽃 모양의 빵 네 개가 찍히는 기계를, 그것도 한여름에, 큰 맘 먹고 전 재산을 주다시피 하고 구입한 것은 그 나름대로는 전국을 떠돌면서 깨친 견문으로 볼 때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름이라 빵틀이 실린 리어카를 끌고 처음 신시장 골목으로 들어설 때는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그가 한 번에 제법 큰 무궁화꽃 모양의 빵 네 개가 찍히는 기계를, 그것도 한여름에, 큰 맘 먹고 전 재산을 주다시피 하고 구입한 것은 그 나름대로는 전국을 떠돌면서 깨친 견문으로 볼 때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름이라 빵틀이 실린 리어카를 끌고 처음 신시장 골목으로 들어설 때는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막노동을 하지, 젊은 사람이 왜 빵을 굽노?”
워낙 가진 것도 없고 먹고 살 일이 막막한 터였지만, 그는 1년 내내 사람들이 북적대며 오가는 시장 모퉁이의 구석진 자리가 명당임을 알아보았다. 시장터 자리가 좋아 여기서 무엇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싶어 고육지책으로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쌀 한 되 값을 주고 빵틀을 사서 풀빵 장사를 시작하는 그에게 옆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들이 다들 한 마디씩 걱정들을 보탰다. 뙤약볕 아래서 풀빵을 구워내는 그를 보며, 한창 젊은데 차라리 막노동이라도 하지 왜 이걸 시작했느냐고 나무람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그때까지는 없던 새로운 모양의 무궁화 빵을 사 먹어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 둘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입소문을 타면서 그야말로 그의 리어카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때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끼리 서로 먼저 가져가겠다고 잡아당기고 싸우기도 했다.


당시 다른 붕어빵 같은 풀빵 류의  빵들이 1개에 2원하던 때였는데 그는 무궁화 빵 하나에 10원을 받았다. 재료에 신경을 써서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고급화 전략을 쓴 셈이었다. 그런데 그게 적중을 한 것이다. 2원하는 붕어빵 대신에 10원하는 그의 무궁화 빵 앞에 줄이 길게 이어졌다. 한여름에 시작한 풀빵 장사가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얼마 안 가 밀가루 파동이 났다. 밀가루 파동이 나서 1등급 대신에 2등급 밀가루를 써서 만드니 벌써 빵 맛이 예전 같지 않은 게 당연했다.그러면서 그가 생각한 것이 호떡이었다. 2등급 밀가루에 찹쌀을 섞어 만든 찹쌀호떡을 구워 팔기 시작했다. 밤을 새워가며 호떡 맛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재료를 섞어가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호떡에 찹쌀을 넣으니까 호떡 맛이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찹쌀호떡을 남들보다 비싸게 팔았다. 그래도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의 찹쌀호떡을 사려고 멀리서까지 와서 줄을 섰다. 당시에는 찹쌀호떡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 난 듯이’ 호떡을 구워 팔았다. 그런데 오른 밀가루 값에다 비싼 찹쌀까지, 바쁘기는 엄청 바쁜데 하루 종일 호떡을 구워 팔아도 남는 건 별로 없었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점방 두 칸으로 시작한 만두, 악착같이 매달려
그 시절 참 돈 없는 설움을 많이도 당했다. 길거리서 장사를 하다 보니 시청 위생계에서 툭하면 나와서 장사를 못하게 했다. 그때 위생계에서 단속을 나왔던 이가 안기동 시장에 물건 사러 왔다가 그의 만두가게에 들러 “그때에는 내가 참 심했지요?” 하고 미안하다 하고 갔다. 위생계 단속만큼이나 괴로운 일은 힘없는 시장 상인들을 협박해 시비를 걸고 돈을 뜯어가는 깡패들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장사를 방해하니 여간 문제가 아니었다. 참고 참고 하다가 한 번 크게 싸웠다. 마침 조카가 와서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깡패들이 조카 머리를 연탄불 속에 처박아 버린 것이었다. 그 길로 당장 경찰을 불러 잡아가두게 했다. 그놈이 붙잡혀 갔다 오더니 그 길로 와서 사과를 하고는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


그러던 차에 신시장 골목에서 중국집을 하고 있던 생질이 만두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당시 점방(가게) 두 칸을 가지고 중화요리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쪽 칸에서  만두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만두와 첫 인연을 맺었다. 호떡 맛을 내기 위해 불철주야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만두에 매달렸다. 어떻게 하면 만두를 맛있게 잘 만들까 혼자 이리저리 연구하기를 거듭하면서 그는 맛있는 만두 만들기에 매달렸다. 전국을 떠돌면서 맛보았던 맛있던 만두 맛을 내기 위해 온갖 재료들을 넣고 빼기를 반복해가며 온갖 모양과 맛의 만두 빚기를 거듭했다. 기실 그때부터 그는 그야말로 밀가루를 제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그에게 만두 만드는 비법을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만두 속에 이것도 넣어보고 저것도 넣어보고 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만두 맛을 내기 시작했다. 만두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면서는 도넛 종류도 같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한창 도넛을 많이 만들어 팔 때는 그 종류가 무려 28가지나 되었다. 그렇게 그는 무엇 한 가지를 해도 색다르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 손에서 밀가루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그는 한 때 돈도 많이 벌었다. 하루에 밀가루 두 푸대 세 푸대씩을 팔았다. 그야말로 돈을 끌다시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삶은 항상 예측불허,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기 마련이어서 그가 정신없이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집에는 자연 소홀해지게 되었고 결국 가족 간의 불화로 가정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하루아침에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가게 일도 제대로 풀리지가 않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은 만두를 빚어도 그의 마음은 딴 데를 헤매는 것을 하늘이 알았는지, 이상하게도 바쁘기는 정신없이 바쁜데 돈은 모이지가 않았다. 안되겠다 싶었다. 그는 신시장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은일이 있으면 나쁜일도, 인생사 그렇지요”
신시장 가게를 정리한 그는 대석동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안동교회 근처에 중화요리 식당을 차렸다. 자장면을 비롯한 면 종류와 만두를 빚어 팔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용상으로 가서 만두만 전문으로 하는 만두가게를 차렸다. 그런데 그때부터 거짓말처럼 만두가 그가 마음먹은 대로 맛을 내기 시작했다.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그가 만드는 만두가 맛있다고 줄을 섰다. 신바람이 저절로 나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춘삼월 호시절은 잠깐이었다. 이번에는 배추파동이 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시절이었다. 배추 값이 몇 배로 뛰었다. 다른 채소도 값이 덩달아 뛰었다. 50원하던 만두 값을 100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만두 사 먹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게세 주기도 빠듯해서 장사를 접었다.


마침 친구가 당북동에 땅 사 놓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포장마차라도 차려서 하라고 권했다. “7평정도 되는  규모였는데, 포장마차를 지으면서 참 애도 많이 먹었어요. 동사무소에서 시에서 뜯으라고 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뜯기기도 여러 번 뜯기고 그러면서도 여기 자리가 괜찮다 싶어서 포기를 안했어요. 뜯으면 다시 짓고 뜯으면 다시 짓고, 결국은 제가 이겼지요. 몇 번을 뜯기고도 밤에 용접을 해 가지고 포장마차를 지어 장사를 하니까 나중에는 그냥 두더라고요. 거기가 지금 농협연쇄점 자리 옆인데, 처음에 내가 포장마차를 지을 때는 값이 별로 없는 곳이었는데 장사가 좀 잘 된다 소문이 나니까 땅주인인 친구가 나한테는 말도 없이 그 땅을 비싼 값에 딴사람한테 팔아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그 친구가 나를 이용한 거지요.”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건물일 수도 있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힘들게 싸워서 지어 놓은 가게인데 너무 억울했다. 이제 겨우 장사가 될 만한데 고생만 하고 나가라니, 대신 건물 지은 값은 쳐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래서 재판을 걸었다. 그리고 2년여를 끈 재판에서 결국 그가 이겼다. 그는 당당히 건물보상비를 받아서 당북동을 떠나 용상으로 다시 갔다.



소문난 만두가 진짜 소문나기 시작했죠”
용상 복개천에 생긴 시장 안에 건물보상비를 받은 돈으로 당시 돈으로 700만원을 주고 가게를 샀다. 이제는 세입자가 아니라 당당한 자신의 만두가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곳에서 ‘소문난 만두’라는 가게 이름을 내걸고 만두 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그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개발했고 자신 있는 게 만두였기 때문이다. 그곳 용상시장에서 만두를 팔아서 생활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갈 무렵 안기동에 상가지구가 새로 개발되었다. 시장에 상가를 분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보니 이미 목 좋은 자리는 다 나가고 없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구석진 자리도 가격이 비쌌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게 참 이상했다. 때로는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던 일이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술술 풀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거의 포기를 하고 있던 차에 마침 도로변에 위치한 지금의 가게 자리를 세를 놓는다고 했다. 가게세가 3300만원이었는데, 용상 가게를 정리하고 전세를 뺀 돈을 합하니까 딱 가게 세를 내고 살림집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 그것도 지금 가게하고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용상 가게도 전셋집 내놓은 지 이삼일 안에 다 나가는 것이었다. 일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95년 무렵 그는 안기동 지금의 자리에 ‘소문난 만두’ 가게를 열었다.


“그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장사가 말도 못하게 너무 잘되는 거예요. 용상서 5일 파는 양을 여기서는 하루에 다 파는 거예요. 그때 만두를 만드는데 종일 정신없이 만들었어요. 손으로 일일이 직접 다 만들다보니 아무리 부지런히 만들어도 만두가 남아나질 않았어요. 어떤 때는 만두가 떨어져서 할 수 없이 일찍 문을 닫아야 하는 날도 있었지요. 만두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거든요. 제가 만두를 만들면서 맛있다고 소문나거나 유명한 곳은 물론이고 다른 집 만두를 많이 먹어봤어요. 그런데 맛있다는 집도 먹어보면 돼지기름 냄새 같은 능큰능큰한 맛이 나는 집이 많더라고요. 내가 만드는 만두는 그런 능큰한 맛이 안 나고 뒷맛이 가뿐하고 담백해요. 그러이 손님이 몰리드라고요. 그때 돈을 많이 벌었지요.”그때 번 돈으로 그는 세를 들었던 가게도 사고 집도 장만하고 시골에 채전 가꿀 땅도 얼마간 사 두었다.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쉽지 않네요.”
그는 30여년을 만두가게를 하면서 다른 사람 손에 만두를 맡긴 적이 한 번도 없다. 가게에 일손이 딸려서 배달하는 사람을 처음에 한두 번 썼지만 그것도 자신이 하는 것처럼 확실한 게 없다는 걸 알았고, 작은 가게에서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적어서 그 오랜 세월 일하는 사람을 두지 않고 부인이랑 둘이서 하루같이 가게를 운영했다. 물론 만두를 만드는 일은 오로지 그의 몫이었다. 그의 손이 가야 만두가 제 맛을 내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이 커서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걸로 만두 가게를 차렸을 때 만두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했지만 첫째 아들도 딸도 둘 다 만두 가게를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고 중도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맛을 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30년 손맛을 흉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즘 다른 곳에서도 손 만두를 파는 집들은 많지만 내처럼 이렇게 직접 만두만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집은 없어요. 찐빵하고 도넛하고 순대하고 이런 것들하고 같이 조금씩 하지 만두 한 가지만 가지고 장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다들 가게서 직접 안 만들고 만두 만드는 공장에서 받아서 파는 곳이 대부분이지요. 우리 만두는 36년 동안 한결 같이 이 두 손으로 직접 만두를 빚기 때문에 맛 하나는 어디 내놔도 내가 자신이 있어요.”


만두 맛도 맛이려니와 그가 자신하는 또 하나는 그가 만드는 만두 속은 모두 그날그날 시장에 가서 사 온 신선한 재료들로 만든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만두 파동이 났을 때 그의 만두집은 오히려 그 특수를 봤을 정도다. 그가 재료를 직접 사다가 만든다는 걸 시장 사람들도 단골손님들도 모두 다 알기에 그는 ‘내가 만든 만두는 얼마든지 먹어도 돼!’하며 큰 소리를 치면서 만두를 팔았던 것이다. 만두 맛이 소문난 덕에 한때는 해동사 절에 정기적으로 초하룻날과 추석, 1년에 두 번 120만원어치씩을 만들어 대기도 했다. 그의 만두는 서울로도 가고 부산으로 가기도 한다. 이곳서 살다가 이사 간 사람들이나 어찌어찌 그의 손 만두 맛을 본 이들이 가끔 안동에 올 일이 있으면 가게에 들러 만두를 사 가는 것이다. 그럴 때는 먼 길 갈 만두라고 포장도 신경을 쓴다.



“굶기도 많이 굶었던 어린시절, 이 익물었죠”
그의 고향은 봉화다. 그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동생이 있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다른 집으로 재가를 하면서 데리고 가서 헤어져 지내다가 다 큰 후에 만났다. 그는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열 살 무렵부터는 그 집을 나와 그때부터 여기저기 사방을 떠돌면서 일도 해 주고 때로 얻어먹기도 하면서 머리가 굵을 때까지 옮겨 다니며 남의 집 살이를 했다. 그 시절 그는 굶기도 참 많이 굶었다. “아침도 굶고 저녁도 굶고 저녁 한 끼 얻어먹고 자면 다행인 날도 많았지요. 6.25사변이 났던 무렵에는 다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라 저야 굶기를 밥 먹듯이 했지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배고팠던 기억이 제일 많이 나요. 그래도 크면서 남한테 안 좋은 소리 들을 일은 하지 않았어요. 더러 친구들이 꾀어도 남의 물건에 손 한 번 댄 적 없이 살았어요.”


또래들 중 못된 친구들이 혼자 떠돌던 그에게 같이 어울리기를 권해도 그는 그런 곳으로는 눈도 주지 않았었다. 그저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도 보듬어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홀로 그렇게 서러운 스물의 아리랑 고개를 넘었다.


안동, 풍천, 의성, 안계 등 안동 인근을 전전하며 그렇게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스무 살 무렵 부산으로 갔다. 그때부터 서른이 될 때까지 객지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첫아들을 낳고 안동으로 왔다. 가 보았댔자 의지할 아무도 없는 고향 봉화보다는 자신이 십여 년을 넘게 살았던 안동 지역이 더 정이 들었던 듯 결국 안동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신시장에서의 풀빵 장사였던 것이다.


시간은 참 많은 것들을 삭이고 익히며 흘러간다. 학교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그였다. 다행히 눈총이 밝아 보고 듣고 자신의 힘으로 익혀서 세상사는 이치를 알았다. 그리고 하늘이 무심치 않았는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손끝이 매워 남들보다 일을 맵짜게 했다. 그 덕에 일하는 집에서도 미운 털 박히지 않고 밥 얻어먹고 살 수 있었을 터였다. 그리고 밀가루를 만지면서부터 그의 손재주는 제대로 그 진가를 발휘했고, 그는 소문난 만두집의 사장님이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닮아 다들 손재주가 좋아요. 큰 아들은 광고 일을 하고, 둘째는 회사에 다니고 셋째인 딸은 요 옆 상가에 조물딱인지 뭔지 하는 수공예 작품 만드는 가게를 하는데 손재주가 있어선지 곧잘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공부를 많이 시키지를 못해서 미안하지요. 그래도 애비 원망 안하고 제 밥그릇 챙기고 잘들 살아주니까 그게 고맙지요.”


이제는 장사도 옛날만큼 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의 나이도 어느덧 예순 여덟, 뒷방 늙은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나이다. 애들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한 걱정은 덜었고, 나이 드셔서 힘든 장사 하시면 자식들이 얼굴을 못 든다고 아이들도 말린다. 그렇지만 앞으로 한 사, 오년은 더 만두 가게를 할 생각이다. 아직은 그럴 힘도 있고 손에서 만두를 놓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이제는 건강도 생각하며 쉬엄쉬엄 적당할 마치만 만두를 만들어 판다. 요즘은 보통 아침 10시 전에 문을 열고 저녁 9시 30분이 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그전에는 야식을 찾는 밤손님을 보고 11시 12시까지 했지만 이제는 내외 모두 크게 돈 욕심을 내지 않는다. 아침 5시 30분에 나와 새벽 장을 본다. 만두 속을 준비하고 만두를 만들기 시작해서 가게 문을 열 때까지 그날 팔 만두를 만든다. 한창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만두 2000개씩을 만들었다.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을 앉아서 꼬박 만들어야 했다. 요즘은 보통 한 번에 7~800개 정도를 만든다. 서너 시간 걸리는 작업이다. 옛날보다 많이 줄어서 일이 덜 힘들어 지금의 그에게 딱 알맞을 만치의 양이다.




할아버지가 빚고 할머니가 파는 찰떡궁합 만두
“장사라는 게 손님을 오도록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손님이 모이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고 돈부터 챙기는 장사는 옳은 장사꾼이 못 돼. 요즘 젊은 사람들 장사하는 걸 보면 다들 손님을 안 보고 돈을 봐. 돈을 안 보고 손님을 보고 손님이 오도록 하면 그 손님이 다른 손님을 물고 들어오고 하는 건데, 돈을 먼저 보는 건 손님을 쫓는 장사지 참말 장사가 아니야. 내가 삼사십 년 장사를 하면서 배운 거야.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장사에는 욕심이 없어. 그저 배 안 곯고 두 내외 살다 가면 그뿐이지. 그래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가게를 할 생각이야. 안사람도 그걸 원하고. 나는 만두만 만들고 장사는 벌써부터 안에서 다 하니까, 나야 만두 만드는 것 말고는 그저 옆에서 거드는 정도지. 할망구가 요새는 나한테 가게를 잘 안 맡기기도 하고. 내가 돈 가지고 다방에 커피 마시러 가고 한다고. 나야 편하고 좋지 뭐. 실제로 돈도 굳고.”


할아버지가 만들고 할머니가 파는 만두, 그래서 이 집 만두 맛이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만드는 만두의 겉과 속도 분명 그네들처럼 찰떡궁합일 테니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그는 마음이 내킬 때면 길안 도연폭포 근처의 약산에 간다. 20여 년 전부터 다니는 암자가 있다. 마음이 서걱거릴 때면 그는 그 암자에 올라 스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기도를 드리고 온다. 오래 전 그가 힘들 때 찾았던 인연으로 시주도 하고 법문을 듣다 오기도 한다. 그 근처에 양주(兩主)가 묻힐 자리도 봐 두었다. 명절을 제외하고 그가 약산에 가는 날이 ‘소문난 만두’ 가게가 쉬는 날이다. 이제는 간혹 그 앞을 지나다가 명절도 아닌데 소문난 만두집 문이 닫혔으면 할아버지가 또 약산에 가셨구나 생각하면 틀림없다.


지난 7월부터 소문난 만두집의 만두 값이 500원 올랐다. 십여 년 넘게 2000원 하던 것을 재료값이 올라 500원을 더 올려 1인분에 2500원을 받는다. 36년 동안 만두만 빚어온 손으로 오늘도 직접 빚는 만두 값으로 2500원은 참 소박한 가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속이 출출할 때 속이 꽉 찬 만두 생각이 난다면 한번쯤은 할아버지의 소문난 만두를 먹어볼 것을 권한다. 해마다 숲 속 동물들을 모두 불러 함께 만두를 빚어 배불리 먹고도 남아서 집에 갈 때는 한 소쿠리씩 싸주는 동화 속 손 큰 할머니의 만두처럼 김영근 할아버지가 만든 속이 꽉 찬 만두는 우리의 허전한 속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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