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말산재사(글/윤천근-안동대 교수)
말산재사 영역
옹천에서 학가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차선의 국도는 뱀처럼 구불거리며 학가산의 품을 파고 든다. 길 가에는 숲과 논, 그리고 밭이 이어진다. 산굽이를 돌아들 때면 계곡 아래쪽으로 펼쳐진 것은 영락없이 논이다. 깊은 산 속에도 계곡의 가장자리에 논을 풀어 벼농사를 짓는 것은 우리민족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미곡 중심의 농경문화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풍경인 것이다.
논농사 지대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늦가을 무렵이다. 이 때에 논은 황금물결로 뒤덮인다. 가을 논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평야지대가 아니다. 들이 넓은 곳에서는 논들은 대개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모습이기는 할지라도 미학적인 모습은 아니다. 산촌의 좁직한 골짜기 속에 마련된 논들은 경지정리를 할 수 있을 만한 규모가 아니므로 구불구불한 논두렁으로 구획되어 있고, 경사면을 따라 높낮이가 다르게 배치되어 있다. 경사면을 따라 펼쳐져 있는 논들이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논두렁으로 나뉘어져 있고, 논마다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모습은 보기드문 장관이 아닐 수 없다.옹천에서 예천까지, 학가산을 관통하는 길의 골짜기 아래로는 그런 논들이 펼쳐져 있었다. 산굽이를 돌아들 때마다 새로이 펼쳐지는 노오란 물결은 끝없이 굽어들어 어디까지나 나아갔으면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목적지는 그리 멀지는 않았다. 대여섯 굽이를 굽어 도니, 건너편 산자락 끝으로 재사가 보였다. 북후면 두산리, 말산재사가 있는 곳이다. 재사의 앞에는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건물은 안동권씨 도천공파 문중의 선조인 취규재(聚奎齎) 권심행(權審行; 1517-1579) 부부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진 재사이다. 대청 후벽에 걸려있는 중수기에 의하면 조선 영조 33년(1757)에 이 건물을 지었으나 장마로 무너져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재사는 야산 동쪽 산자락 끝에 남향으로 권심행의 묘소를 바라보고 있다. 튼 ㅁ자형으로 전면에 대문채가 있고 그 뒤에 좌우 익사가 각기 대문채와 직각으로 연접되어 있으며 그 뒤에 몸채가 있다. 몸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대청과 방 사이의 경계벽 두 군데에 창호를 설치하였는데 앞의 것은 키를 작게 하여 창의 기능으로 뒤의 것은 키를 높게 하여 문의 기능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수법은 조선 말기부터는 거의 채택되지 않은 옛양식이다. 특히 우익사를 2층 누각으로 구성한 점과 상층 바닥의 일부를 높인 점 등은 묘와 재실과의 관계를 알게 해주는 좋은 예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3호
안동시 북후면 두산리
골짜기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찢어져 있다. 동편의 산능선을 타고 내린 깊은 골짜기에 이르러말산재사 전경 90도를 굽어 돌아 남서향의 자세를 취하고 나아간다. 길이 90도 어림으로 굽어 도는 지점의 북쪽방면으로는 산자락 하나가 내려앉아 있다. 이 산은 여러 골짜기를 싸안고 있다. 가늘고 길게 타고 내리는 골짜기들이다. 바로 그 지점, 산자락의 서북쪽 끝 부분이 말산재사가 자리 잡고 있는 영역이다. 거기 산자락 끝에서 길을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서면 좁직한 분지가 열린다. 분지 속으로 오르는 방향에서 오른편으로는 마을의 집들이 몇 채 어울려 있고, 그 집들의 왼편 끝부분에 말산재사가 위치한다. 이곳이 진실로 좁은 의미의 말산재사 영역이다.
말산재사 영역은 전체적으로 삼지창 모양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좌 청룡 우 백호가 갖추어져 있고 한가운데 지렁이 같은 모양의 산록이 뻗어 나와 있는 모습이다. 이 세 줄기 산록은 상당히 가늘고 길게 뻗쳐 있다. 길이도 거의 비슷하다. 가운데의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산록을 살펴보면, 좌청룡을 이루는 산록은 조금 벌어진 자세로 가운데 산줄기를 감싸고 앞으로 오므라든다. 이 조금 벌어진 부분에 좁직한 분지가 마련되고, 거기 말산재사와 몇 채인가의 집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우백호를 이루는 산록은 가운데 산록과 좁직한 골짜기로 구분될 뿐이다. 그것은 길쭉하게 흘러내려 가운데 산록의 앞으로 우측의 산록보다 더 휘돌아 나와 앞쪽을 막듯이 하여 멈추어 선다. 가운데 산록에는 말산재사의 주인인 권심행 부부의 묘가 있다.
말산재사의 아랫채
말산재사는 남향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건물은 앞에 디귿자 형태의 행랑채와 좌우 연결채를 두고, 뒤에 일자 형태의 본채를 배치한 것이다. 두 건물 사이는 조금 떨어져 있으며, 이 틈은 담으로대문간과 행랑으로 구성된 아랫채 막혀있다.
앞에서 보았을 때 건물은 일선으로 행랑채 건물이 늘어서 있고 그 양편으로 좌 우 연결채의 건물 지붕이 시옷자 모양으로 솟구쳐 있는 모습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앞에서 보았을 때 앞쪽의 디귿자 건물은 둘로 나뉘어진다. 오른편에는 5칸의 행랑채 건물이 일선으로 늘어서 있고 왼편으로는 왼편 연결채의 옆면이 붙어서 있다. 두 건물의 앞 선은 서로 일치한다. 두 건물의 지붕 높이는 서로 다르다. 행랑채 건물의 용마루 선 바로 윗부분에서 왼쪽 연결채 건물의 처마선이 시작되고 있다. 지붕 하나 정도 왼쪽 연결채가 높이 솟아 있는 것이다. 왼쪽 건물은 누각 모습이다. 따라서 이 두 건물은 서로 나누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면 6칸은 오른편으로 행랑채 5칸, 왼편으로 누각 1칸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건물은 거칠게 4각형으로 다듬은 중간크기의 돌들을 높이 쌓아올린 대좌 위에 올라앉아 있다. 돌을 쌓은 모습은 대문영역 좌우가 서로 다르다. 대문의 우측에서는 6줄로 높여 쌓은 1단 석축 위에 기단면이 위치한다. 대문 앞에는 6단의 계단이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의 좌측에는 4줄로 높여 쌓은 석축을 2단으로 연결시킨 위에 기단면이 위치한다. 이 부분의 제1단과 제2단 사이에는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뜨락이 만들어져 있다.
행랑채 5칸은 중앙에 1칸의 대문을 두고 좌우로 2칸씩을 벌려 세웠다. 대문은 좀 작은 한칸 규모이다. 아래쪽으로 중간 부분이 낮게 호선을 그리는 문지방을 두고 있고, 양쪽 기둥 사이에는 안으로 두 개의 각재를 수선방향으로 세운 후에 문틀을 넣었다. 위쪽 문틀은 직선의 각재이다. 문은 전체 평면의 4분의 3 높이까지 지어져 있다. 위쪽 4분의 1은 허당인데 처마 밑으로 각재를 하나 더 가로질러 처리하였다. 대문의 오른 쪽 두칸과 왼쪽 두칸은 처리방식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대문에서부터 오른쪽 제 1칸의 벽면과 왼쪽 제2칸의 아래쪽 반이 나무판으로 처리되어 있다. 나무판벽 속에는 작은 나무 살창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위쪽 벽면은 그대로 흙이다. 대문의 오른쪽 제2칸은 아래는 흙벽, 위는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창틀을 집어넣은 모습이다. 대문의 왼쪽 제 1칸은 위쪽은 흙벽, 아래쪽은 윗부분 중앙에 작은 사각 창틀을 넣은 모습이다.
행랑채 건물이 동쪽 누각채와는 구조상 구분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오른쪽 연결채와는 구조상 복합되어 있다. 오른쪽 연결채의 지붕 측면은 행랑채 지붕의 용마루 위쪽에서 삼각형으로 솟구쳐 있다. 대문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제1칸 지붕 위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재사의 중심 건물인 본채의 대청재사가 앉아있는 정면 부분과 측면부분의 높이는 서로 다르다. 정면 부분에서는 마당에서 기단 면으로 오르기 위해 7줄 또는 8줄의 석축을 쌓아올려야 하였지만, 왼쪽 측면부분에서는 4줄로 돌을 쌓아 기단에 이르고 있고, 오른쪽 측면 부분에서는 높이의 차이가 없어져 버린다. 왼쪽 누각건물은 왼쪽에서 보았을 때 정면 4칸 측면 1칸의 2층 건물이다. 2층에 통으로 누마루를 두고 아래층에 헛간, 창고 등을 배치한 구조이다. 2층은 나무판 벽 속에 나무판 문을 다는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내정 쪽의 뒷면만을 제외하고는 3면을 다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였다. 내정 쪽에서 본다면 남측의 1칸은 아래쪽 행랑채의 옆쪽 벽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로 두 칸 부분은 낮은 약식의 난간을 세웠고, 나머지는 비워 주었다. 밖에서 보았을 때, 누각 건물의 아랫부분은 남쪽 측면 벽과 그것과 90도의 각을 이루고 있는 동쪽 제1면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중앙에 각재를 두 개 수선으로 박고 그 사이에 중앙쯤의 부위에 작은 창틀을 끼워 놓은 모습이다. 벽은 흙으로 메꾸었다. 그 두 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가 나무판 벽이다. 누각건물의 북쪽 끝 칸으로는 동문이 열려 있다.
안에서 보았을 때엔 디귿자 모양의 아래채 건물은 셋이 다 독립된 건물의 모습이다. 독립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였으므로, 지붕은 그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느라 재미있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오른쪽 부분에서 연결채의 지붕은 행랑채 지붕의 용마루 위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 두 건물은 반 칸씩 서로 물려 있는 셈이다. 왼쪽 부분에서 행랑채의 지붕은 누각채 지붕 속으로 파고든다. 서로 춤이 다른 지붕이 맞물리다 보니까 아래채 처마는 누각채 처마 아래부분에서 끝나는데, 그 용마루는 누각채 용마루 부분까지 파고드는 모습을 갖게 되었다. 누각채의 누마루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이므로, 길고 좁다는 느낌이 강하다. 누각채와 만나는 행랑채 부분에는 마루가 가설되어 있고, 행랑채 대문 왼편의 1칸은 위쪽에 다락이 만들어져 있다.
말산재사의 본채
말산재사는 좀 규모가 큰 대갓집의 모습이다. 누각건물도 2층 구조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리 크다고 하기 어렵다. 내정 역시 넓은 것은 아니다. 내정에서 본다면 본채는 상당히 높은 기단을 올려 쌓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바깥쪽 기단을 쌓은 돌보다 더 큰 것들이다.
본채의 기단은 2단으로 되어 있다. 길쭉길쭉한 자연석을 조금 다듬어서 썼다. 제 1단은 다섯줄로 쌓아올렸다. 본채 중앙에 걸린 편액과 중수기 1단과 2단 사이에는 1미터가 좀 안되는 폭의 뜨락이 마련되어 있다. 제 2단은 뜨락 위쪽으로 들여쌓기를 하였는데, 4줄로 쌓아서 올렸다. 본채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에는 정면2칸 측면 2칸 규모의 마루가 있다. 마루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렸다. 두 개는 ‘말산재사 중수기’이고 하나는 ‘추원재’(追遠齋)라는 글자이다.
‘중수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말산재사 중수기’
복주(안동) 서쪽 40리 떨어진 곳에 조골산(鳥骨山)이 있다. 그 중 북쪽으로 떨어진 산줄기 하나는 뱀이 서려 있는 형상이다. 거기서 몇리를 오르고 내려서 덕산(德山)이 된다. 덕산의 동쪽으로 뻗어나온 한 지맥은 끊어지고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그것은 태방향(兌방향은 문왕팔괘도에 의하면 서쪽 방향이다)을 등에 진 산록을 연다. 여기가 바로 나의 8대조 생원공의 모자와 신발을 묻은 장소이다. 배위인 의인 강씨도 남편을 따라 여기 합장하였고, 후손들의 장지 역시 10여 군데에 이른다. 좌청룡 우백호의 모양은 둘러싸고 끌어안은 모습이 빈틈이 없어 마치 후손들이 줄을 이루고 둘러서서 모시고 받드는 것과 같다. 묘의 북쪽 수십 걸음 되는 곳에 재사를 두어 제사를 받들고 모여서 추모하는 장소로 사용하게 하였다. 옛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서 비록 언제 창건하고 보수했는지는 상세히 알 수 없으나, 그것을 경영하여 온 기록은 적지도 많지도 않다. 위쪽 집 여덟칸 중 4칸은 당이다. 동 서의 협실은 각각 두 칸인데 제례를 봉행할 때 모여 강론하는 곳이다. 동쪽 날개 건물인 누각 4칸은 제사를 행한 후에 차례로 돌려 음복하는 곳이다. 서쪽의 2칸 방, 두칸 부엌, 창고 1칸은 위 아래에 사람이 거처하며 지키고 받들기에 편하게 한 것이다. 남쪽에는 5칸 행랑이니 하나는 창고이고, 둘은 주방이고, 또 하나는 출입하는 통로이고, 다른 하나는 위에 다락, 아래에 마구간을 두었다. 모두 22칸이니 지키며 제를 올리고 같이 숙식하기 위한 곳이다. 제기와 물품을 갖추고 제물을 올리거나 화수회의 모임이 있을 때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는 우리 가문 10세 이래 지켜 전해오며 키워 내려온 것이니 어찌 소홀히 할 일이겠는가? 지난 정축년 여름비가 많이 내려 윗집의 기초가 무너지니 문중 어른들이 걱정이 커져 나에게 수선할 것을 명하였다. 이 때 만헌(晩軒) 족형을 주장으로 모시고 인부들을 모아서 기운 것은 바로잡고 무너진 것은 수축하여 간신히 아주 무너지는 걱정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지붕을 고치고 기와를 바꾸는 것은 형편상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고 힘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지난 십수년 동안 문중에 좋지 않은 기운이 끼어들어 장로와 덕을 갖춘 이들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재사는 덤차 퇴락하여, 흡사 요양 성곽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후손들이 여럿 모이면 제일먼저 이것을 탄식하였고, 지붕을 새로 이을 계책을 마련하려 하여도 연달아 큰 화를 당하게 되니 별 뾰족한 수단이 있을 수 없었다. 부득이 제수 품목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여 곡물로 수십 포를 저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재사 소유의 밭을 새로 구입하지 않는 방책으로 50동(銅)을 마련하여, 한가하고 일이 없는 나에게 맡겼다. 내가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족형 장도(長度)씨와 같이 일을 감독하였다. 재목은 묘산 안에서 마련하고, 구운 기와는 밖에서 사 오고, 자손들의 노복과 묘산 아래 사는 촌민들을 일꾼으로 부렸다. 담장을 쌓고 새끼를 꼬는 일은 문중의 나이 어린 이들이 많았다. 봄 2월에 일을 시작하여 여름 4월에 일을 마쳤다. 전의 모습을 조금 바꾸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서, 동쪽 건물에는 장방을 두었다. 전의 1칸을 중당과 함하여 5칸 누당으로 만들었다. 머리 쪽에 있는 1칸은 남쪽 칸에 속한 것으로, 전사청방으로 삼아 유사가 청결하게 제물을 보관하는 곳으로 쓰게 하였다. 중간에는 창고를 두고, 서쪽에는 주사 1칸을 증설하여 수직하며 두루 일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들은대로 행하고 본대로 바꾸는 노력을 다한다면 우리 문중은 ‘추원보본’의 성대한 일을 더욱 잘 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 어찌 반드시 주효를 풍족하게 마련하는 것만이 즐거운 일이겠는가?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이 질서 있게 모여 화락하게 웃고 의논하며 조상의 유업을 극진하게 지켜내고, 지친간에 돈독함을 다하여 고치는 것이 없고, 일족의 구성원들이 화기애애하게 지낸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특별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니, 조상의 유덕은 저절로 숭상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우리 자손된 사람들이 선조들을 받드는 도리는 성실함과 공경함을 위주로 하여 계속하여 유업을 이어 나가는 것에 있는데, 처음에는 매양 부지런히 행하게 마련이나 종내 태만하여지기 쉬운 일이니 각자 근면함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에 말하지 않았던가? “잡스런 생각에 빠져들지 말고 조상을 받들어 그 덕을 따라서 닦으라.” --- 전에 재사를 처음 지었을 때에 대한 증거할 만한 기록이 없는 것은 한스러운 일이다. 여기 나는 먼 훗날 후손들이 기록이 없는 것 때문에 소홀해 하지나 않을까 하여 전말을 간략히 적어 재사 가운데 두고자 한다. 8대손 규도(奎度)는 삼가 쓰다.
‘말산재사중수기’
부(안동부)의 서쪽, 천등산 북쪽 말산 가운데 유좌(서쪽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는)의 산자락은 고 성균생원 언동권공과 배위인 의인 신천강씨가 같이 묻힌 곳이다. 그 아래에 재실이 있는데 수십여칸에 이른다. 따뜻하게 방을 들이고, 시원하게 마루를 만들고, 동쪽에는 누각을 날개로 두고, 남쪽에는 행랑을 세우고, 주사와 곳간을 지어 사방으로 둘러 세웠다. 기울어지고 가시나무가 뒤덮인 적이 언제 있었던지는 알 수 없다. 그 창건기사를 알수 없다는 것은 어찌 재사 중에 옛 기록을 보관하였던 곳이 사라진 탓이라 하지 않겠는가? 대수가 오래 지나, 옛집의 기초가 무너지고 집이 넘어지려고 하여 8대손 계서공(溪西公)과 족손인 송고옹(松皐翁)이 이것을 걱정해서 썩어 나간 것은 보수하고 닳아 없어진 것은 새로 단장하여, 옛날 모습을 바꾸어서 새로운 규모를 갖추었다. 그런 후 1백년이 지나, 최근에 이르러 역시 비바람에 씻기고 쥐와 새가 쪼아서 퇴락해진 곳이 생기에 되었다. --- 이루어진 것은 무너지고, 무너진 것이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은 모면할 수 없는 천리의 순환 모습이다. 인사에는 민속하게 할 일과 느릿하게 해도 되는 일이 있다. 선조의 꿈을 극진하게 받들고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것으로 지켜내서 무너진 실마리를 이어서 백세 뒤까지 전해지게 하는 자는 총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어찌 그 덕을 이어나가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것을 보태나가지 않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먼 데 샘물에서 발원하는 강은 오래 흘러가게 마련이고, 둥치가 실한 나무는 그 잎이 무성한 법이다. 조상들의 그늘 속에서 후손들은 번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매년 서리와 이슬을 밟으며 이 재사에 와서 존경하는 마음을 다하여 추모하고, 이 언덕을 개척하여 공경하는 태도로 소나무 삼나무를 심을 일이다. 훗날 오늘을 살펴 본다면 오늘 여기에서 옛날을 돌아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 재사가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선조를 받들어서 후손을 윤택하게 하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니, 그 도리를 영원히 바꾸지 말아야 할 터이다. 공사가 이미 끝나서 나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는 일을 맡기니, 늙어 정신이 혼미하고 변변히 아는 것이 없는 처지에 어찌 감히 붓을 들어 사실을 윤색할 것이겠는가? 상세한 기술은 앞 사람이 이미 해 놓았으니, 어찌 쓸데없는 문장을 덧붙일 일이겠는가? 갑인년 봄 문중 후손 정일(正鎰) 삼가 적는다.
마루영역은 방 영역 보다 마룻바닥이 조금 낮게 가설되어 있다. 양쪽 방은 반칸 정도 앞에 마루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중앙의 마루보다 반 뼘 정도 높다. 좌우의 방은 정면 1칸 측면 1칸 반 규모이다. 방의 마루쪽 벽면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북쪽 반칸, 남쪽 1칸 정도의 비례인데, 북쪽 반칸 영역에는 큰 문이, 남쪽 1칸 부분에는 작은 문이 달려 있다.
말산재사 주인 권심행의 묘소
말산재사는 남향을 하고 서 있다. 말산재사의 시선방향에는 그 주인인 권심행의 묘소가 있다. 재사에서 50여 걸음을 걸어가면 이를 수 있는 거리이다. 묘소가 자리 잡고 있는 산줄기는 좁고, 낮고, 길다. 지렁이가 길게 몸을 눕히고 있는 형상이다. 그 끝에 묘소는 있다.
묘소는 봉분영역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모습이다. 봉분이 아주 크며, 명당영역은 협소하다. 묘비에는 ‘성균생원권공지묘, 의인 신천강씨지묘’라는 글자가 전면에 새겨져 있다. 묘비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의 이름은 심행, 자는 가립(可立), 본관은 안동이다. 고려 태사 행은 그 시조이다. 그 공훈이 전해지고 덕이 계속 끼쳐서 대대로 고관들이 이어졌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 계경(啓經)은 횡성현감에 이르렀고 증직 아조참판인데, 공의 고조이다. 증조는 곤(琨)으로 부호군이고 증직 이조판서이다. 조부는 사빈(士彬)으로 성균생원이고 증직 의정부 영의정이다. 부친은 의(?)인데 성균진사이고 음직으로 의흥현감에 보임되었은며 비는 밀양손씨 승문원 판교 번(蕃)의 따님이다. 공은 정덕 정축년 5월 6일 출생하였다. 6세에 모친을 잃었는데, 끌어안고 애통하여 울며 경모하는 모습을 다하였으며, 고기를 3년 동안이나 먹지 않았으니, 그 천성의 발로였다. 취학할 나이가 되어서는 중부의 문하에 들어 노닐며 먹고 쉬는 것에 있어서 조차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행하였으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머리로 받드는 것이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중부는 벌(?)이니, 의정부 우찬성 벼슬을 하였고, 거듭 증직되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정공이다. 그 충의와 절조높은 풍모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으나 비석에는 구구하게 적지 않으니 모독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까닭이다. 공은 가정 임자년에 사마시에 붙었으나, 마침내 과거공부를 폐기하고, 날마다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로 보냈다. 와서 묻는 자에게는 매양 반복하여 가르침을 베풀었다. 일찍이 소학의 ‘형우제공’(兄友弟恭)이라는 말을 벽에 써놓고 가르치며 매양 ‘이는 너희들이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유학자가 스스로 힘써야할 곳이 있으니 과거 공부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스스로 검소함을 지켜서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현자를 숭상하고 선을 즐겨 하였으며, ‘애인제물’(愛人濟物)에 심력을 쏟았다. 후조당 김부필(金富弼), 월천 조목(趙穆), 이계(伊溪) 권대기(權大器), 공 등과권심행의 묘소 벗으로 사귀면서 노닐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면서 40년 동안이나 여가를 즐겼다. 당시 안동에 강상을 어지럽힌 죄인이 있어서 부에서 현으로 강등되고, 고을 수령이 탐학이 심하고 맹호같이 출입을 막아 들고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었는데 두려워 떨면서도 잘 살펴서 병사가 된 김부인(金富仁)을 찾아 갔으니, 바로 후조당의 종형이다. 여름이 되어 병사는 수령의 탐학을 방백에게 고하였는데, 방백은 수령이 나이는 어려도 재주가 있다하여 백성들에게 잘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사실을 수령에게 알렸다. 아첨하는 사람이 공이 원래 후조당공과 아주 가까운 사이이고 병사에게 왕래한다고 하면서 병사의 말은 공이 알린 탓이라고 아뢰었다. 수령은 그 이치가 아닌 것을 헤아려 바로잡지는 않고 원망을 뼈에 새겨 두었다가 조정의 유력자를 만났을 때 지역의 힘께나 쓰는 인사들을 징치할 의논을 하였다. 어사가 명을 받아 남하하니 수령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마음을 드러내 악독하게 행위하였다. 아첨하는 자들도 덩달아 원풀이를 하려고 어사에게 사실을 부풀려 비방과 험담을 늘어놓아서 어사가 조정에 알리게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원망삼지 않을 수 없는 정도였다. 공은 이 때 중풍을 맞았는데 여독을 입을 것을 무릅쓰고 서울에 놀라가 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명을 하여 물려날 만한 때가 되었을 때 병이 도져 열이 들끓어 객가에서 타계하였으니, 이때가 만력 기묘년 5월 27일이었고, 향년 63세였다. 병이 들었을 때 승지 정탁, 유성룡, 사인 김성일이 조석으로 왕래하며 문병하였고, 타계하였을 때에는 염할 때와 장례할 때에 와서 곡하고, 에에 부족한 점이 없도록 감독하였다. 6월 16일에 발인하고 배를 이용해 단양에 이르러서 25일에 죽령을 넘었다. 옛날 충정공의 관이 돌아올 때에도 역시 이 날짜에 이곳을 넘었었다. 운수가 움직인 탓이 아니겠는가? 이 해 10월에 말산 가운데 산록에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장례하였다. ----통정대부 병조참의 김용(金涌)이 찬술하고, 진성 후인 이용순(李容純)이 글씨를 썼다. 14대 후손 오기(五?)가 개립하였다. 단기 4307년 갑인년.”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