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탈춤페스티벌 최고령 자원봉사자 김용우 할아버지(글/백소애)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는 형광 녹색조끼를 입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니 유창한 일본어와 영어로 외국관광객을 맞고 있는 김용우 할아버지(83)이다.1925년생인 할아버지는 6살 되던 해 일본으로 건너가 대동아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후면 대두서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어린 시절 떠났던 고향에 정착했다.
고령화시대, 60세면 한창일 요즘에 은퇴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83세의 나이에도 스포츠댄스에 자원봉사에 자식들이 극구 말려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본지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04년 2월에 발행된 90호 이웃이야기에 ‘김용우 할아버지의 살맛나는 세상이야기’로 소개가 되었던 분이다. 그때에도 물구나무서기를 거뜬 없이 하셨던 김용우 할아버지는 지금도 활동량이 많고 여러 모임에 거푸 참석할 정도로 열정이 넘쳐나는 분이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습니까? 안동에서는 나이나 횟수로나 제일 오래되지 않았나 싶어요. 자원봉사자 1기였으니까. 한 6년 됐어요. 내가 나가 많으니 남사스러서 이번에는 안 나올라카다가 일어나 영어 통역할 사람이 넉넉지 않을 거 같아 나왔어요. 동기라 카면, 연령적으루다가 동네서 동장도 했고 전에는 서후면에 면서기도 했었고 마침 영어, 일어가 되노니 이런 내가 보탬이 되면 좋겠지 싶어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또 이런 축제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납니까?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십니까? 나는 축제장 동문에 배치되어서 주로 외국인들 통역을 하지만 다른 분들은 위치 안내, 프로그램 안내를 하지요.
몇시에 나와서 몇시에 들어가세요? 보통 9시에 나와서 8시에 끝나는데 집이 학가산 있는 서후 대두서에 있는터라, 양해를 구하고 30분~1시간정도 일찍 가요. 대신 아침에는 일찍 나섭니다. 5시에 일어나서 오토바이 타고 교도소 앞에 내려서 버스타고 옵니다. 시내 나와서는 안동교회 앞에 내려서 축제장까지 걸어옵니다. 그 시간이면 아직 문은 안 열었을 때지만 살방살방 주위를 거닐며 좀 있다가 보면 하나둘 도착합니다.
혹 따로 보수를 받습니까? 말 그대로 봉사니까 보수가 나오지 않지만 내 같은 경우는 집이 멀어 그런동 오천 원에서 만 원 정도 차비조로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도 마이나습니다. 행여 친구라도 와보세요, 탁주라도 한잔 받아줘야죠. 그래도 기분이 좋으이 신경 안 씁니다. 초장에 돈 벌라꼬 하는 일도 아이고.
일본에 사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때 얘길 들려주세요. 일본서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홋카이도에서 졸업하고 도쿄에서 체육학교를 다녔지요. 2학년 때 대동아전쟁이 끝났어요. 학창시절에는 일본 애들한테 꿀리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는 학생이었어요. 악기도 잘 다루고 운동도 잘하고.
일어 잘하시는 건 알겠는데, 영어는 또 어떻게 배우셨어요? 일본서 체육전문학교까지 다녔으이 언어는 어느 정도 됐는데 전쟁 끝나고 올 때 미군함정을 타고 왔다가 얼결에 영어통역을 하게 됐어요. 생존의 방법으로 터득하게 된 언어가 쉽사리 잊혀지지 않지 싶어요. 독학으로 공부도 했고요.
한국에 와서는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전쟁 끝나고 그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하도 어릴 적에 일본에 갔으니 언어가 안 되는기라. 한 이태 놀다가 가족이 정미소를 운영하는데 같이 도왔죠. 그다가 서후면서기를 한 2년 정도 했는데 그때 월급을 2,750원 받았어요. 정미소서 오후에 작업을 하면 백미 대두 닷말 정도 벌었는데 그 가격이 5,000원이었는데 당시로 치면 두 달 월급이었죠. 당장 치웠뿌랬어요. 고지서를 일일이 쓰다 보니 손목이 퉁퉁 부을 정도로 일은 고되고, 사실 일은 내한테 잘 맞았는데 월급이 너무 적어뿌이 일할 의욕이 안 생기는거라. 그러다가 사방관리소에 취직해서 내무도 보고 산에 가서 십장질도 했어요.
옛날 생각하면 요즘은 참 살기 좋아졌죠? 그렇죠, 그렇죠. 옛날엔 술 한 잔 해도 건강을 위해서만 건배했는데 요즘에사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건배하고 파이팅을 하니, 얼마나 여유 있어 졌습니까. 딴 나라 사람이랑 비교해서 의복도 훨씬 잘 갖춰 입고 교육열도 세계적으로 높은데 질서정신은 좀 아수워요. 내가 학교 댕길 때만 해도 머슴아들도 학교 못 보내는 게 숱했으이 ‘기집아 남우 집에 보내는데 학교 시겨 뭐해.’ 하는 소리 많았어요. 끼니 챙기는 가정에서야 학교 보냈던 시절이만 그기 어디 흔했나요. 그리 생각하면 부모님께 참 감사하죠. 학교공부 하는데 지원을 안 아끼셨어요.
매년 참가하신 탈춤축제에서 좋은 점은 어떤 게 있고 아쉬운 점은 또 무엇입니까? 안동시민도 타지 사람도 모두 즐길 수 있으니 그 점이 참 좋고요, 내 나이 많은 게 아쉽지 원캉 젊은 사람들이 장하이 별다른 아쉬운 점은 없어요.
다만, 본인들도 세월 지나면 늙는 것이니, 젊은이들이 겉으로나 속으로나 나 많은 사람을 괄시 말고 예를 갖췄으면 좋겠어요.
자원봉사하는 젊은 친구들이 대견해 보일 때가 있지요? 그기 참 젊음이 좋습디다. 생글생글 웃어가며 친절한 마인드로 안내하고 봉사하는 게 얼마나 이쁩니까? 그런 거 보면 참 부럽고 또래들 축제 즐길 때 옆에서 궂은 일 하는 거 보면 많이 대견스럽죠. 숫자가 많진 않아도 나이 구애받지 않고 나처럼 나 많은 사람도 있지만, 열세 살짜리가 즈그 아부지랑 같이 자원봉사를 한다니 그것도 또 얼마나 대견합니까?
자원봉사 말고도 하시는 일이 많으시죠? 네, 노인대학에도 나가고 안동교회도 열심히 댕기고 스포츠댄스 회장도 맡고 있고 농사도 지었죠.
축제 끝나고 고맙다고 연락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연락하니가 더러 있어요. 얼마 전에도 터키 사람이 6.25참전용사인데 사진도 같이 찍고 고맙다고 연락도 오고 그럽니다. 일본이나 카나다에서도 연락이 오곤 해요.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체육학교 중퇴라서 운동은 항상 즐깁니다. 마라톤대회 고령자부문에서 1등도 했어요. 5킬로 뛰었는데 수상도 많이 했어요. 근데 사무 마라톤을 하다가 올 봄에 그만뒀어요. 마당에 철봉도 설치해서 운동했는데 애들이 무리하지 말라꼬 해서 그만뒀어요. 나이 대에 맞게 해야 한다꼬 걱정이 이만저만 아이래요. 그래도 평생 해온 게 있으니 건강하다는 소리는 제법 들어요.
농사짓기는 힘들지 않으세요? 것도 애들이 관두라 케서 마라톤도 농사도 올봄에 관뒀어요. 오토바이도 위험타고 그만 타라고 말리는데 그기 쉽지가 않네요. 농사는, 농지를 베릴 수도 없고 남줄 수도 없고 해서 벼농사 고추농사 짓다가 관뒀는데 텃밭정도는 묵히면 안되이 애들이랑 내 먹을 거 생각해서 작게 가꿔요.
서후에서 혼자 사세요? 예, 혼자 살지요. 형제가 6남맨데 내가 그중 장남이고요. 자식은 1남 1녀 뒀는데 다 결혼해서 다른 지역에 삽니다. 바로 밑에 여동생이 옥동에 살고 남동생이 이웃에 사니 자주 왕래합니다.
통역 시 가장 자랑스럽게 안내해주는 곳은 어디입니까? 도산서원이 모든 유교정신이 깃든 곳이라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줍니다.
고령화 사회에 할아버지 연령대의 분들이 할아버지처럼 ‘봉사’든 뭐든 열심히 하고는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참여는 하고 싶은데 선뜻 못나서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65세 이상은 학교 마당에 가본 사람이 드물어요. 내사 부모 덕택에 외국까지 가서 학교공부를 했지만 그기 흔한 일도 아이고, 옆에서 뭔가를 권한다고 받아들이기 좀 에려와요. 평생 그키 살아왔으이. 사실 우리 연령대 할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으이 쉽지가 않아요. 사실 우리 동네 노인정도 있고 하지만 나는 매일 시내에 나갑니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 먹고도 내가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합니다. 우리 마을에서 안 놀고 딴 동네 가서 논다꼬 좀 저어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배울 수 있는 거나 문화생활을 좀 더 누릴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가끔씩 동네 노인정 들러 술도 몇병 받아주고 급한 일 있음 협조도 잘 해주고, 그케 카바를 좀 합니다. 글타고 평생 살아왔다고 변하지 못 하냐 그것도 아이래요. 본인이 맘먹기 달렸으이 적극적으로 하면 돼요. 아침에 일어나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만 자꾸 활동하고 운동하면 몸도 안 아플뿐더러 정신건강에도 좋아요. 요즘 젊은 사람도 사고방식이 많이 열렸어요. 내가 축제장에서 젊은 사람 뿌듯하게 보듯이 그네들도 날 그렇게 볼 거라 생각돼요.
할아버지, 꿈이 있으셨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체육에 소질이 많았습니다. 수영은 프로쯤 됩니다. 유도도 검은 띠, 스케이트도 잘 탔고, 예체능계열로는 소질이 있었습니다. 체육 쪽으로 꿈을 펼쳤으면 했었죠.
자원봉사자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실 예정이세요? 예. 내사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기도 하고 또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이제는 그저 내 건강이나 잘 챙기고 아이들한테 폐 안 끼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든이 넘어서도 긍정의 힘, 평생 함께 할 것
김용우 할아버지의 올해 나이 여든 셋. 약관(弱冠)을 네 번 거듭 났으니 세상일에 미련 없고 긍정의 힘을 갖게 되었다. 몇 년째 교제해오고 있는 여자 친구도 있다. 그러나 두 분 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고 부담되어 결혼하거나 살림을 합치거나 하진 않았다. 연애하는 사람 모냥 자주자주 얼굴 보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같은 종교를 가져 믿음도 돈독해졌다.
교회에 나가지만 유교사상에 대한 미더움도 한결같다는 할아버지. 요즘 세상에 유교사상을 접목해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젊은 사람들의 노력이 가상타고 하신다.
자신과 공통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생활하되, 마을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도 퍽이나 괜찮다는 김용우 할아버지. 그와 헤어지고 탈춤축제장을 나서면서 소음 속의 침묵과 분주함 속의 여유를 생각해본다. 축제가 끝나고 조금은 허전하겠지만, 10월 말에 있을 스포츠댄스 공연을 준비하랴 역시나 바쁘게 움직일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몇 년 후 할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또 한 번 열심히 지내시는 소식을 전할 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