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루, 신승박 시인의 시비를 찾아가다(글/한경희-안동대 국문학과 강사)
길을 나설 것도 없는 길
안동의 현대문학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사람, 신승박 시인을 찾아나서는 일은 일도 아니다. 안동 신시장 일대와 시장 건너편 옛 안동여고 자리(현재 영호초등학교) 부근이 그의 생전 터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고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던 길 나서기와는 아주 다르게 따로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공간 이동이 짧거나 거의 없다는 편이 맞는 이번 길은 길이랄 것도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때 길이랄 것도 없는 길이란 안동시내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너무 짧은 생애와 아들과 부인이 한국에 없다는 이야기를 꺼내드는 일은 역시 어려운 길이 아닐 수 없다.
길 위에서 떠오르는 단상과 지나는 길마다 새로운 물상이 막연한대로 던져주는 생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빼곡히 상점이 줄 서 있고 그 가게의 간판이 어떤 기준도 없이 무작위로 서 있는 길을 지나는 건 어설프고 복잡한 우리 삶을 닮았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인도가 있더라도 굳이 걷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길이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소음의 문제보다 시각적인 문제가 더욱 직접적이다. 가게마다 그 개성 없고 멋없는 겉모습하며 행인을 배려않는 소음에 가까운 음악소리는 자동차 소리보다 더 불편하다. 대로보다 좁은 골목안의 가게가 소박한대로 정겹다.
아픈 몸으로 부인, 아들과는 생이별을 한 그가 남겨놓은 시에는 아들과 부인이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리움도 깊으면 병이 된다는데 몸의 병에다 마음의 병까지 얹혀졌을 시인을 생각하니 걷는 길이 아예 아련해지고 만다. 독일 베를린에 가 있는 아들이 보고프면 하늘을 쳐다보고, 아내와의 약속한 만남을 기다리지만 그 시간은 너무 길고 멀기만 했던 것이다. 신승박 시인과 부인의 절절한 이별과 그간에 나누었을 말이야 어찌 짐작할까만 어쨌든 시인에게는 어떤 충격보다 심각한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작가들 가운데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사람이 많다. 당시는 시대의 우울이라 부를 절대억압의 상황이 예술적 심성을 지닌 사람을 근원적으로 세상과 차단을 시켰던 시대이고, 경제적으로도 끼니 해결이 급했던 시절이니,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아파 죽음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언제나 가난과 질병은 함께 있는 것인데, 국가 자체가 가난하기 짝이 없던 시대, 그 사람들의 아픈 몸은 누구 하나 도울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은 수고로운데 먹는 일이 시원치 않았던 시대의 사람들, 그 가운데 신승박 시인도 있었지 않았을까. 영호루 경내에 낙동강을 지켜보며 서 있는 시비와 신시장 일대와 옛 안동여고 사택 주변을 돌아보며 1960-70년대 안동을 빛나게 만들었을 시인을 찾아나선다.
영호루에 있는 시비를 찾아서
신승박 시인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길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영호루에 있는 시인의 시비이다. 당시, 글밭 동인으로 활동하다 돌아가셨고, 이를 늘 아쉬워하던 동인들이 20여년이 지난 1993년에 낙동강이 흐르는 언덕에다 시비를 세웠던 것이다. 들은 바에 따르면 임병호 시인이 앞서서 신승박 시인이 시비건립을 위해 일을 했다고 한다. 그때 추억과 동정은 글밭 문학동인홈페이지(http://donginji.arko.or.kr)에 가면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정리가 되어 있다. 시비 세울 자리를 정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두드리다, 결국 영호루의 공터에다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의 영호루는 밤이 되면 조명이 들어와 건물의 실루엣이 훤하게 드러나 자태가 우아하다. 이곳은 낙동강 다리와 도로를 따라 켜진 가로등 불빛과 어울려 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또 무더운 여름날 영호루 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강물과 주변 숲의 바람과 그늘은 더위를 식혀주기에 넉넉한 품새를 지니고 있다. 옛 선비들이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인 자리인 만큼 풍취가 남다른 곳이다. 아마도 글밭 동인들은 이런 주변풍경을 감안해서 시비를 세웠을 것이다. 영호루로 오르기 전 넓은 공터에서 강변 쪽으로 그리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왜소해 보이지도 않는 시비가 바로 신승박 시인을 기리며 서 있다. 아주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더욱 알려지기 힘들었던 시인, 1960년대부터 안동문단에 드나들던 사람이 아니라면 신.승.박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미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수십 년이 지났으니, 시인을 알고 지낸 문인들도 여럿 돌아가셨고, 혹은 안동 땅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도 오래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백승초 시인에게 신승박 시인의 첫 시집을 빌려 본 적이 있었으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여쭤보지 못했고, 임병호 시인을 여러 번 뵈었으나 역시 자세하고 정확하게 따로 질문을 드린 적이 별로 없다. 생각이 부족하고 매사 부주의한 모습을 그대로 다 보이는 꼴이 되고 있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시비에는 <강>이라는 시를 새겼고, 뒷면에는 연혁이랄 것도 없고 생애랄 것도 없이 간략하게 태어나고 돌아가신 날과 훌륭한 시인이었음을 알리는 몇 마디 글귀가 박혀 있다. “신승박 시인의 시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세운 빗돌에는 유고시집 <하늘의 시>를 소개한다. <하늘의 시>는 “초연과 숭고의 시/무한한 포용의 시”로 시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세계를 담은 작품이다. “시인의 삶과 글을 존경해 온 이곳의 문학동호인들이 그의 20주기를 맞이하여 작은 돌 하나를 놓아 고인의 글과 일을 삼가 기린다.”라고 시비에 붙인 설명을 보면 당시 문청들이 따르고 존경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누나네 여관에서 살았던 시인
신승박 시인의 삶과 시를 더듬을 요량이나 신승박 시인과 더불어 어울린 문인들이 여럿 작고하셨다. 안동에서 주로 거주하셨고 고교동창이거나 동인활동을 함께한 동년배의 사람들에게 좀더 많은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두었어야 했는데 아쉬운 감이 크다. 백승초, 임병호 이런 분들이 살아계실 때 많은 이야기를 들어두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
아쉬우나마 글밭 창단 회원인 혜봉스님의 아련한 기억을 따라 얻은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1968년 글밭 동인이 결성될 때 선배 작가 가운데 인품이나 작품이나 훌륭하다고 평가받았던 신승박 시인을 동인멤버 안에서 선배로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글밭 문학동인의 연혁에 따르면 1972년에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아마도 안동문인협회지부가 결성될 때 글밭 회원들이 동인의 울타리를 넘어 안동문학이란 큰 틀을 그리게 되었고, 이 성과로 문협지부가 창립 결성된다. 그 후 글밭 회원들은 문학동인으로 전환하는데 이때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신승박 시인은 결혼하기 전에는 누나가 경영하는 여관에 거처하였다 한다. 현재 신시장 주변의 여관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하게는 여인숙이 맞을 것이다. 동네 어른들께 여쭤보니 현재 신시장 입구의 옥야수퍼 뒤편으로 여인숙이 여러 채 모여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중 어느 하나였지 싶다. 당시만 해도 여관은 귀했고 여인숙이 많았던 모양이다. 거의 80년대 후반까지 여인숙이 여관보다 많았던 모양이다. 시인의 누나네 여인숙의 방은 10여개 넘었다고 하니 규모가 꽤 컸던 것 같다. 이 여관에 부인이 된 분이 안동의 보건소 간호사로 발령을 받아왔고, 임시 거처로 이곳에 투숙하였다. 이때부터 친하게 지내면서 결혼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혜봉스님은 봉화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고 방학이 되면 자주 신승박 시인을 찾아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문학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시인은 택시회사 사무원으로 직장 생활을 했으나 골수염이란 병으로 다니질 못했으니 경제적으로 넉넉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두었으니 살림살이가 꽤나 팍팍했을 것이다. 한번은 혜봉스님에게 세계문학대사전을 줘서 얼마의 돈을 드린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생활도 짧게 종지부를 찍게 된다. 부인이 독일파견 간호사로 자청하는 바람에 이들은 헤어지게 된다. 아마 부인에게도 어떤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병든 남편과의 생활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정확히 이혼을 한 것은 아니나 부인이 하나 있던 아들까지 데리고 독일로 떠나게 되면서 신승박 시인은 병든 몸으로 혼자 남게 된다. 부인이 떠나고 방을 얻어 노모와 함께 살다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노모와 얻은 방은 현재 영호초등학교 자리 부근이었다. 이곳이 당시는 안동여고였는데 교장사택 부근에 방을 얻었다고 한다.
신승박 시인의 외모는 상당히 남자답게 생겼고 눈도 반짝반짝 빛나는 미남이었다고 한다. 별밤에 시집에 실린 사진으로 봐도 그 멋있는 얼굴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아주 재기도 넘쳤고 말솜씨도 뛰어났으며 사람을 대하는 예의도 깍듯하였다. 특히 와병 중에도, 간간히 외출할 때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선글라스도 끼고 출입을 한 멋쟁이였다. 시내의 다방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인사도 예의 바르게 하며 말재간이 돋보인 모던한 신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학을 주제로 두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매우 예리하고 날카로웠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문학에 대한 시인의 진정성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일 정도로 매섭게 스스로를 자책하는 작가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판정신과 작가정신이 다른 것이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면모이기도 하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진지한 개인의 세계관이 잘 비치는 대목이다. 시인은 생전에 자필로 시집을 묶어두고 있었는데, 이 시집이 노모의 손을 떠나 하늘의 시라는 유고집으로 묶였던 것이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출판한 시인
신승박 시인은 경안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에 별밤에(1962)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었으니 안동에서 명성이 자자했을 것은 당연하다. 1960년대에 개인이 시집을 내는 일을 상상해 보시라. 지금이야 책이 넘쳐나는 시대요, 며칠 안에 책 만들기는 일도 아니지만, 당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시인에 대한 특별한 존경과 동경심이 있었고, 시에 대한 낭만과 기대감이 있었던 시대였으니. 안동의 문청들은 신승박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문학공부를 함께 하는 일이 자랑스러웠을 거란 추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어디로 길을 나서야 신승박 시인의 정서를 찾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의 누나가 운영했던 여관은 신시장통이었고, 시인이 노모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동네는 이 시장 건너편 동네로 당시는 안동여고 주변이었다. 이 동네는 도로 하나를 두고 시장과 주택가로 구분이 된다. 시장 쪽으로는 여인숙이 모여 있었던 것으로 봐도 사람들의 왕래가 비교적 많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길 하나 건너 학교가 있고 주택가가 형성된 동네이니 시장 한복판에서만 살았다고도 할 수 없다. 아마도 이 동네에서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살았을 것이다.
신승박 시인이 어떻게 한하운 시인과 인연이 닿아서 그가 경영하는 무하출판사에서 시집을 내게 된 지는 아직 잘 모르나 청년시인의 문재에 한하운 시인이 감동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시집 서문을 한하운 시인이 직접 쓴 것에도 신승박 시인의 시에 대한 감탄과 기대가 듬뿍 담겨 있다. “우리 시단의 전통적인 운율을 이 시집에서 재확인할 수 있고 그의 <리리시즘>은 우리 풍토와 눈물과 슬픔을 솜씨 좋게 노래 부르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 문학청년을 두고 한국의 전통서정성을 잇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렸으니 말이다. 신승박 시인의 첫 시집을 읽노라면 짧은 생을 살다간 소월 김정식 시인이 살아오는 거 같다. 그 절절한 언어에 담긴 깊은 한이며, 율격이 살아있는 언어며, 호흡이며 비슷한 것이 너무 많다. 혹시 김소월 시인을 못내 그리워하여 시의 세계가 닮았던 것일까. 그저 추측해 볼 수밖에 다른 길도 없다. 아니면 전쟁과 가난,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부모세대의 정서를 그대로 물려받은 당시 한국 십대들의 평범한 정서였을까. 그 평균의 분위기와 시대 정서를 잘 담아냈던 것인가. 혹시, 김소월 시인처럼 아버지의 상징이 절단난 사람이었을까. 십대 후반의 정서가 얼마나 깊은지 드리운 그늘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작품경향을 두고 한하운이 한국서정성을 운운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 한하운과는 얼마나 내면적으로 긴밀했던 것인가. 천형을 앓은 나병환자의 몸과 골수염을 앓는 몸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한하운도 북경 유학시절 젊은 나이에 나병이 발병했으니 신승박의 앓는 몸이 자신의 몸과 그리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두 사람은 반드시 만나야만 했던 인연이었을까. 어디까지나 그려보는 그림 같은 상상에 불과하다. 1960년대에 스물도 되지 않은 청년이 안동에서 시집을 낸 일은 분명 특별한 뉴스임에 분명하다.
밥 먹는 일 자체가 어려웠던 시대에 책이라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요즘처럼 밥 먹는 일 그것 자체가 놀랍지 않은 시대에 “책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건 또 뭣인가. 참, 역설적으로 밥을 굶을 일도 없이 여유로워지자 세상의 진지한 모든 것들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문명화의 진행속도만큼 사람들은 성스러운 것도 심각한 것도 진지해야 할 것도 놓치고 있는 것은 또 무슨 역설일까. 어쨌든 현재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의 결이 아닌가. 책을 귀하여 여기는 마음이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은 그만큼 책 보기가 어려웠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고, 책이 사람의 인격과 품위를 키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 가운데 문학은 사람의 인성과 바른 됨됨이, 혹은 멋스러운 정서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특히, 시에 대해서건 시인에 대해서건 그리 존경스런 마음을 담고 있었다니 당시 사람들의 마음자리가 너무도 곱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운 아내와 아들을 두고
신승박 시인의 삶은 그리움이 자라서 그 그리움에 갇힌 나날이었을 것이다. 다가올 자신의 인생을 알기나 하는 사람처럼 첫 시집에서도 그 서러움과 그리움을 얼마나 애잔하게 담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절절했던지 김소월의 정서를 그대로 닮아 있을 정도다. 그는 유년과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특별한 체험이 없지 않았을 것도 같다. 그는 결혼했으나 가족이 단란하게 함께 살지 못했다. 자신의 병든 몸도 몸이려니와 아내와 아들과는 생이별을 하고 살았다.
유고시집 작품 가운데 그 그리움을 직접 담아낸 시가 몇 편이 있다. 아내가 다녀가서 더욱 쓸쓸해진 병상의 시인은 고독이란 시에서 아내가 보고 가서 더욱 그립고, 자식이 보고 가서 더욱 그립다고 쓰고 있다. 한창 투병 중일 때이거나, 아니면 죽음이 멀지 않았을 어느 때에 아들과 아내가 다녀갔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혼자 남아야 하는 그 서러움과 외로움을 헤아릴 수 있겠다. 그에게 아내는 전쟁도 가난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인 아주 포용력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픈 몸의 남편이 담배를 줄이기를 바랐지만 술까지 마시고 늦은 귀가를 해도 아이 젖이나 물리며 말 대신 눈물을 흘렸던 사람이라고 썼다.
이런 고운 아내를 어찌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된장찌개가 탈까 죽지도 못했던 여인”이라고 쓴 그의 시 아내, 억새-베를린의 아내에게 등의 시를 보니 자식과 아내를 그리다 죽은 화가 이중섭이 생각난다. 단지 가난이 이들 가족을 갈라놓았을까. 단지, 가난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일일까. 충분히 가난은 혹은 생활은 사랑을 넘어설 위력이 있는 것일까. 가난이 신승박 시인의 가족을 한국과 독일로 흩어지게 했고, 이중섭 화가의 가족을 한국과 일본으로 나눠놓았을까. 이중섭은 제주도 체류 시 먹을 것이 없어 게를 잡아먹고 게에게 미안하여 게 그림을 담배종이에다 그리지 않았는가.
시인은 자신을 그려놓은 시에다 목발을 짚어 어둔 밤길의 정적을 깨며 행차가 유난스러운 자신을 이미 “반나마 죽은 몸”이라 실토하고 있다. 먼 이국땅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할수록 병색은 짙어졌을 것이고 삶에의 의지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훗날 흙이 되길 바랐던 그에게 몸의 병은 마음의 병보다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홀로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을 기다리며 외롭고 쓸쓸하게 깊은 그리움의 나날을 살다 갔을 것이다. 나설 길이랄 것도 없는 짧은 길이었지만 이번 길만큼 쓸쓸한 길도 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그를 아름답게 자랑스럽게 추억하는 몇몇의 후배 작가들은 안동의 현대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그 맨 앞자리에 신승박 시인을 여전히 꼽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