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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목의 할머니의 풍진 세월 이야기(글/이미홍-객원기자)

청목의 혹은 아오키 요시 할머니 청목의는 아오키 요시 할머니의 한국식 이름이다. 1925년생으로 일본 북해도 출신이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던 해, 남편 김구한씨를 따라 한국으로 와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할머니 방 안 창가 쪽에는 조그마한 불단이 차려져 있고 그 위에 영정 사진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하나는 이십 년도 더 된 저 너머 언제쯤에 군대에 갔다가 두 달도 채 안되어 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막내의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난 3월에 먼저 간 할아버지의 영정이다. 속은 무던히도 썩였지만 목의 할머니에 대한 정 하나는 한결같았던, 목의 할머니가 평생을 바라보고 살았던 할아버지는 몇 년 동안 암으로 병치레를 하다가 지난 3월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 앞 작은 연단에 향불과 과일 그리고 작은 화분과 꽃이 놓여 있다. “올해로 이십 삼 년째라. 아침저녁으로 이래 들여다보면서 마음으로 빌어요. 일본에서는 다들 이렇게 집안에 위패 모셔놓고 지내거든요. 영감님도 간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렇게라도 매일 들여다보니 좋아요. 돌아가시고 얼마 동안은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같이 살고 있는 일곱째가 같이 잤는데 이제는 이 방에서 막내하고 영감님 사진 보며 마음 속 이야기도 하면서 혼자 자요.” 어느새 할머니 눈에 눈물이 비친다.

해방되던 해, 첫째를 업고 현해탄 건너와
1945년 10월 남편 김구한을 따라 한국행 배에 오른 그때 아오키의 등에는 5개월 된 첫째 딸아이가 업혀 있었다.
남편은 안동 김씨로 병곡이 고향이었다. 붙잡는 친정 가족들을 뒤로하고 기어이 고국으로 가야한다며 찾아온 남편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는 건 시댁의 지독한 가난과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일본 여자에 대한 무시와 냉대였다. 해방 직후라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라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그때부터 목의 할머니는 일본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본 이름 아오키 요시를 버리고 한국 이름 청목의로 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국말은 아직 모르고 일본말을 했다가는 돌팔매를 맞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목의 할머니는 그때 거의 벙어리로 살다시피 했다.
당시 시댁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밭 한 뙈기 없이 시아주버니가 남의 머슴을 살아 받는 돈으로 시부모를 비롯하여 형님네 가족들이 먹고 살았는데, 거기에다 목의 할머니네 세 식구가 더 얹혀살게 되었으니 사정이야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기대려야 기댈 언덕이 없었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문제였다. 10월 달에 한국에 들어와서 겪었던 그해 첫 겨울이 목의 할머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날은 춥고 배는 고프고, 눈물을 머금고 당장 밥을 얻으러 구걸을 다녀야 했던 날들이었다.
“친정에서는 배고픈 줄 모르고 살았는데, 여기 와서는 밥을 얻으러 다녀야 했어요. 한국말도 잘 못하는데 애들 밥은 먹여야겠고 해서 저녁때쯤 그 집 밥 먹을 때 가서는 뭐라고 말은 못하고 밥 좀 달라는 시늉을 했어요. 밥 달라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서 있다가 밥을 주면 받아 오고 안주면 한참을 그냥 앉아 있다가 오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형님네랑 한 집서 살았지만 결혼을 한 몸으로 언제까지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어서 동네 문간방을 얻어서 따로 살림을 났다. 따로 살림은 나면서 남편도 딴에는 한다고 열심히 남의 집 일도 하고 산 개골 밭도 개간해서 부쳤지만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둘째를 낳았다. 누구 하나 살뜰하게 신경 써 주는 이가 없어 어쩌다보니 시댁 마당에서 짚을 깔고 애를 낳았다. 친정붙이 하나 없는 타국에서의 시집살이는 그렇게 서러웠더랬다. 시어머니가 일본여자 갖다 버리고 시내 참한 처자하고 새장가 가라고 할 정도였으니 시집살이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아이 둘 데리고 먹을거리가 없어서 친정에서 시집올 때 가져왔던 비단으로 깁은 기모노며 옷가지들을 팔아 양식거리를 사오라고 남편 손에 쥐어 보냈다. 그런데 남편은 이틀이 지나서야 차비가 없어 도리어 쓰고 갔던 모자를 팔아 택시를 타고 빈손으로 들어왔다. 한량 기질이 농후했던 철없던 남편은 목의 할머니가 일본서 나올 때 친정어머니가 챙겨준 패물이며 제법 되는 돈을 논밭이라도 사라고 내놓았더니 친구들 꾐에 빠져 사업 한답시고 날리고, 술과 노름으로 다 날린 것도 모자라 마지막 남은 옷가지를 판 돈마저 그렇게 하룻밤 놀이에 날려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시댁 그늘에 하늘같은 남편이라 말 한 마디 대들어 보지 못했다.
그래도 시아주버니가 남편하나 보고 먼 타국으로 시집 온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며 사는 내내 신경을 많이 써주어서 쫓겨나지 않고 살았다. 안동에 나와 살면서도 시아주버니 도움을 많이 받았다. 목의 할머니한테는 평생 참 고마우신 어른이었다.

친정 북해도 하숙집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청목의 할머니는 한국으로 시집와서 할아버지와의 사이에 9남매를 두었다. 친정 엄마도 11남매를 두었는데, 다산은 아마도 친정 쪽 내력이 아닌가 한다. 목의 할머니는 11남매 중 셋째였다. 넷째 동생도 목의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하고 결혼을 하고 몇 달 뒤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 집에서 자매가 한국 사람하고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한 것이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다.
목의 할머니네 친정은 일본 북해도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광산이 유명해서 해방 전인 당시만 해도 그곳 광산으로 돈 벌러 온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친정 부모님이 돈 벌러 온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하숙을 한 것이었다. 남편도, 동생의 신랑이 된 제부도 그때 친정집에 하숙을 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한창 젊은 남녀가 한 집에서 지내다보니 자연 연애를 하게 되었고, 그러던 와중에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 그제야 사실을 안 친정어머니는 울면서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면 되지 죽기는 왜 죽냐며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던 아버지를 설득시켜 결혼식을 올려 주셨다.
남편에게 한국으로 가지 않고 결혼해서 일본에서 살기로 약속을 받고 올린 결혼이었다. 해방되기 바로 전 해였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동생도 하숙하던 제부와 눈이 맞아 결혼을 시켜 달라고 했다. 딸을 둘이나 한국 사람과 결혼 시킬 수 없다고 하는 부모님께 동생과 큰언니가 셋째는 되고 넷째는 안 되느냐고, 남자여자 만나서 결혼해 사는 데 한국사람, 일본 사람이 무슨 상관이냐고 설득을 해서 넷째도 몇 달 뒤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일본천황의 항복이 있었고, 그동안 일본에서 숨죽이며 살았던 한국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들 앞 다투어 고국으로 가는 귀국선에 올랐다. 그러자 일본에서 살겠노라 철석같이 약속했던 남편은 한국으로 가자며 아내의 손을 한사코 잡아끌었다. 못 간다고 안 간다고 몇날며칠을 울었지만 결국은 가지고 있던 것을 팔아서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렇게 21살 아오키 요시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와서 60년 넘는 세월을 청목의로 살았다.

6.25 난리통에 안동에 정착, 고생은 말도못해요
고향에서 몇 년 있다가 6.25가 터졌다. 전쟁이 났다고 다들 피난을 가고 그야말로 난리였지만 뱃속에 셋째를 가진 목의 할머니는 피난을 가지 않았다. 피난을 갈 힘도 없었지만 싸 가지고 갈 먹을 것 하나 변변치 않은 데다 애들 데리고 여기서 죽으나 피난 가다가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숨어 있다가 난리를 피했다. 남편은 난리 통에 살 길을 찾다가 고향을 떠나 안동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때도 수중에는 돈 한 푼이 변변히 없었다. 아주버님이 월세방 얻을 돈을 해 주셨다. 그렇게 해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신안동 구시청 앞이었다. 음력 11월 달에 이사를 들었는데 방에 불도 떼지 않아 냉방인 그곳에서 셋째를 가져 만삭이던 목의 할머니는 혼자 밤중에 몸을 풀었다. 만삭의 몸으로 먼 길을 걸어온 데다 그날 머리까지 감았던 그네는 온몸이 언 상태로 혼자서 아이를 낳았다. 남편이 장작을 가져와 그날 밤 늦게 아궁이에 불을 뗐다. 남편이 나무 장사를 하고 있던 때라 다행히 장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달리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언 산모가 걱정되어 장작을 너무 많이 지펴서 아기 엉덩이가 뜨거운 방바닥에 데었다. 그래도 그 덕에 목의 할머니는 몸이 녹아 그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물론 없는 살림에 몸조리는 사치여서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야 했다. 그렇게 셋째의 출산과 함께 목의 할머니의 안동살이가 시작되었다.

“그 시절 어려웠던 거는 말도 못해요. 신안동 북문시장 있는데 있다가 그 안 개골로 들어가서도 살다가 천리동 하꼬방에서도 살다가 평화동에서도 살고, 이사를 일곱 번 다녔어요. 그 사이에도 애들은 쑥쑥 잘도 태어나서 9남매가 되었고요. 북문시장 있는데 살 때 근처에 술도가가 있었는데 술막찌를 한 사람당 한 줌씩 줬어요. 그걸 얻어오라고 큰 아들을 자는 걸 깨워서 밑바닥이 다 떨어진 고무신을 신겨서 데리고 가서 바가지에 얻어 가지고 와서 거기에 싸래기를 조금 섞어서 죽을 쒀서 먹고, 사카리를 타서 아이들 주고 그랬어요. 소주도가에서 나오는 술찌개미도 얻어서 그래 먹여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그걸 먹고 학교에 가니까 애들이 술이 취해서 눈 속에 엎어지고 그러면서 학교엘 갔나 봐요. 그걸 보고 술 먹고 학교 왔다고 선생한테 맞았다 그러더라고요.”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공부는 꼭 시키고 싶었죠
“육성회비를 못 내서 애들이 초등학교도 다 못 다녔어요. 첫째, 둘째, 셋째가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육성회비를 몇 달 못 내고 하니까 애들이 학교를 안 가고 시청 나무 밑에서 놀다가 학교 마칠 때쯤 해서 집으로 오고했대요. 나는 그걸 한참 동안이나 몰랐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형편이 안 되니까 학교를 계속 시킬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크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딸이 이웃의 일도 거들고 아이 놓은 젊은 산모의 뒷바라지도 하고 하면서 조금씩 벌어오는 돈하고 할머니가 장사해서 모은 돈을 모아서 남의 집을 살다가 처음으로 집을 샀을 때를 목의 할머니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곳 작은 아파트를 사서 이사 온 지 어느새 십이 년이 되었다.

목의 할머니는 오랫동안 시장 난전에서 장사를 했다. 북문동에 살 때부터 장사를 했는데, 용상에 있는 과수원에 가서 솎아서 버리는 새파란 사과를 사다가 파는 걸로 시작해서 구시청 앞에서 들마루를 놓고 껌이며 과자며 주전부리를 놓고 팔기도 했고, 버스정류장 앞 난전에서 장사하다가 목성동에 살 때는 목성동 길가 난전에서 과일 장사를 했다. 할아버지가 벌기는 해도 9남매하고 살기에는 늘 벅찼기에 할머니는 장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돈을 벌기는 잘 벌었지만 젊어서부터 한량이었던 터라 그 돈을 술에 노름에 여자에 쓰느라 집안 식구들을 고생시켰다. 거기에다 옛날 사고방식을 가진 할아버지는 애들 교육 시키는 데는 태무심했다. 하지만 목의 할머니 생각은 달랐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감은 자신이 달리 공부를 안 배워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고 아이들을 굳이 학교에 안보내도 된다고 안 시킬라고 했어요. 그래도 나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형편 되는 데로 애들 뒷바라지를 해 주고 싶었어요. 위로 셋은 워낙 어려운 시절에 커서 학교를 못 보냈지만 지금 미국 가 있는 여섯째는 중학교까지 보냈고 여덟째인 막내아들은 고등학교까지 했어요. 내 생각으로는 군대 갔다 와서라도 대학교까지 꼭 시키고 싶었지요. 막내딸은 전문대까지 마쳤고요.”

그 진저리쳐지던 가난한 시절을 지나 그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때 태어난 밑에 동생들이 그 덕을 본 셈이었다. 할아버지는 자식 욕심이 많았다. 덕분에 목의 할머니는 21살부터 43살까지 아홉 명의 아이를 낳아서 길러야 했다. 낳아놓고 맘껏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던 목의 할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옛날에는 피임이라는 걸 몰랐다. 그리고 산부인과에 가도 수술을 해 주지 않았고 애가 많아 더 낳을 형편이 안돼도 보호자인 남편의 도장이 없으면 안 되었다. 할아버지는 지 먹을 복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주의였고 절대 아이를 없애지 못하게 했다. 혹여 아이를 없앨까봐 병원에 못가도록 지키고 섰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흔 셋에 막내를 낳고 그 밑으로 애가 또 들어섰을 때는 목의 할머니도 마음을 독하게 먹고 할아버지 몰래 담배 잎을 달여서 먹고 애를 떼었다. 있는 아이들이라도 잘 먹이고 조금이라도 더 공부시키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 시킨 일이었다.

30년만의 친정나들이, 어머니는 오열하셨지
목의 할머니 나이 오십일 때 삼십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 친정에 다니러 갔다. 서울에 있는 동생이랑 같이 기모노를 해 입고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했다. 편지 몇 통 보낸 게 전부인 딸이었다. 삼십년 만에 겨우 얼굴을 보여주러 왔는데, 그 딸이 미워 친정어머니는 처음에 외면을 했었다. 얼마나 야속하셨으며 그러셨을까?

“삼십 년 동안 일본말을 한 마디도 안 하고 살아서 친정 부모님을 만났는데 인사말이 생각이 안 나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이렇게 되었냐고 우셨어요. 거기서 삼 개월을 지내다가 왔는데, 부모 형제와 지내면서 친척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조금씩 일본말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그렇게 일본말만 하면서 석 달을 있다가 집에를 왔더니 이번에는 한국말이 처음에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제가 왔다고 친척 어르신이 오셨는데 인사말이 얼른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첫 친정나들이 후로 몇 년에 한 번씩 일본 친정에 가서 석 달씩 있다 오곤 했는데, 목의 할머니는 그 석 달 동안도 친정에서 맘껏 노는 대신에 온천에서 일을 했다. 온천도 하고 돈도 벌어서 왕복 비행기 값을 제하고도 손에 용돈이라도 들고 오려고. 몇 년 전 두 분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친정 동생들에게는 인사만 하고 석 달을 꼬박 온천에서 지내다 오기도 한다고 했다.

부용회 멤버들, 같은 처지끼리 서로 위로해요
서울에 있는 동생을 통해 한국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는 일본인 할머니들의 모임인 부용회를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부용회(婦容會)는 한국 남자들과 결혼한 일본인 부인들의 모임으로 1960년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회원은 4천명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 전국에 천 명 정도가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한다. 비단 목의 할머니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 단지 한국 남성을 사랑했다는 죄로 한국에서의 삶은 쉽지 않은 지난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사는 많은 할머니들이 목의 할머니처럼 한국인으로 귀화해 한국 이름을 가지고 한국 사람으로 살고 있다. 부용회를 알고 반갑기는 했지만 목의 할머니는 그때는 그 모임에도 자주 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때 한 달 회비가 삼천 원이었는데 돈도 돈이었지만 서울까지 한 달에 한 번씩 나들이할 여유가 없던 때였다. 지금은 회비가 한 달에 5천원이다. 요즘은 건강만 괜찮으면 한 번씩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어릴 적 일본서 지내던 이야기들로 밤을 새기도 한다. 그래도 한 번씩 갔다 오자면 힘이 들어 자주는 가지 못한다. 목의 할머니를 보러 그중 친한 친구들이 가끔씩 안동으로 놀러 오기도 한다.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한 번씩 서울에 치료를 받으러 가게 되면 동생 집에서 한두 달씩 지내며 병원에도 다니고 모임에도 가고 한다. 목의 할머니 동생은 다행히 잘 사는 남자와 결혼을 해서 경제적으로는 고생을 덜했지만 자식 놓고 살다가 남편이 술 먹고 폭력을 휘둘러서 이혼을 하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아이들 키우고 살면서 목의 할머니는 일본사람이라는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았다. 행여 엄마가 일본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더 조심했다. 집에서조차 일본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살다보니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엄마가 일본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일본사람은 나쁜 놈들이라고 듣고 와서 목의 할머니 앞에서 일본사람 욕을 했다. 나중에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불러 앉혀 놓고 엄마가 일본사람이니까 그런 욕은 하지 말라고 해서야 아이들도 알았을 정도였다. 그때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가르친 대로 말하는 걸 그냥 두라고 말렸다. 세상이 그러했고 한참 민감할 시기였으니까. 목의 할머니는 한국에 온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오로지 할아버지와 자식들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한국 사람이라 생각하고 한국인으로 살아 왔다. 밥 굶지 않고 살아나가기에도 바쁜 시절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며 살아가야 했다.

비록 먼저 어미 곁을 떠난 막내아들이 눈에 밟히지만 이제는 영감이 그 곁에 있을 테니 걱정이 덜하다. 여섯째는 멀리 미국에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잘 살고 있고, 첫째 딸하고 아들은 서울에, 둘째딸은 강원도 정선에, 냉장고며 세탁기며 텔레비전이며 사 주는 막내딸에, 그리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내가 장가 가면 우리 엄마 누가 돌보냐며 독신으로 끝까지 엄마 모시고 살겠다는 일곱째를 포함해서 가까이에 안동에 자식 셋이 있으니 목의 할머니는 이제 부러운 게 없다.

“여보. 고생 많았으이 90까지만 살다오소. 내 여서 막내랑 기다릴게.”
봄가을로는 오전에 강변에 나가 낚시도 하고 오후로는 운동 삼아 동네 산책을 한다. 무릎이 안 좋아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러 병원에 가고, 물리치료도 다닌다. 노인정에도 나가 봤지만 할아버지 살았을 적에 할아버지하고만 지내 버릇해서인지 왠지 편하지가 않아 자주 나가지는 않는다. 목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평생 정이 좋았다. 할아버지가 60이 다 되도록 여자 문제로 속을 썩였지만 할머니는 가서 머리끄덩이를 잡기는커녕 할아버지한테 큰소리 한 번 내보지 않았다. 목의 할머니 성정이 본래 그랬다. 딱 한 번 할아버지가 죽은 아들 앞으로 나오는 연금을 좋아지내는 여인숙 여자한테 갔다 줬을 때는 눈에 불이 나서 새벽에 그 여자를 찾아가서 그 돈이 어떤 돈이냐고 내 놓으라고 했다. 그이도 자식 키우는 어미여서였던지 다음 날 그 돈을 돌려보냈다. 그 뒤로는 할아버지도 다른 여자를 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해 빠지면 아들이고 딸이고 밖에 나다니지 못하도록 엄하게 호통을 치면, 할머니는 큰 소리 내는 일 없이 그걸 조용히 다독이며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할머니를 애틋해 했다. 말년에 아프고부터는 멀리 데려와서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하다고 말하곤 했다. 고생 많이 했으니 90살까지만 살다 오라고 하시더니 먼저 가셨다.
“영감 죽고는 나가기도 싫대요. 영감하고 둘이서 강아지를 예뻐해서 10년을 키웠는데, 영감 죽은 지 삼일 만에 그만 따라 죽고 말았어요. 처음에는 영감 산소에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안 갔는데, 이제는 보고 싶으면 산소까지 혼자 갔다 오기도 하고 그래요. 처음 영감 죽고는 눈물이 안 나요. 그런데 이제는 영감 산소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 앞에서 울기도 하고 그래요.”

취재를 마칠 즈음 할머니의 눈은 서러운 이야기 따라 흘린 눈물로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 오랜 세월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고 저 깊은 가슴 속에 꼭꼭 묻어놓았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꺼내 펴 보일 때마다 할머니의 눈은 젖어 갔었다. 그래도 한국 와서 자식 놓고 살았던 그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식들이 있어 좋다고 했다. 여기서 자식 손주 보면서 이렇게 살다가 할아버지 곁으로 가겠노라 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