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개량악기에 평생을 바친 천익창씨(글/천남희-하남사는 안동사람, 박영대-동아일보 기자)
전통 개량악기 연구가이자 연주자 천익창씨
그는 피아노 연주자였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진 날 종로 세기학원에 가서 피아노를 그의 표현대로 작살나게 두들기고 있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마침 그 모습을 지켜본 미 8군 클럽매니저에게 스카우트되면서 미8군 클럽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 했었다. 그것이 35년 전인 1973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가야금 개량 작업은 물론 23현과 25현 두 대의 가야금을 열손가락으로 연주하는 개량국악기 연주자이며 신석기 현악기, 철기 시대 현악기, 신라시대의 신라금, 뼈피리 등을 복원하는 등 우리나라 전통악기 개량과 복원은 물론 새로운 국악이론연구에 일생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를 만나기 전에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그의 연주동영상이며 여러 가지 기사들을 보고 그처럼 유명 인사를 만나는 일에 내심 많은 부담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것이 기우였음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지 못한 상태였다면, 사투리를 전혀 버리지 못한 안동촌놈 그 자체로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그가 보였을 것이다. 원고를 쓰고 있는 이 순간 그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참으로 어렵고 어둡고 힘든 길을 외롭게 걸어온 그의 삶의 자취를 감히 내 짧은 글 솜씨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내 손을 잡고 늘어진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그의 얘기를 들은 그대로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순수하고 위대한 발걸음에 감히 내 주관적인 견해를 보탤 용기가 나지 않아서이다.
빌어먹는 재주? 이젠 아버지 모르게 해야겠다!
천익창(본명 천해녕 1951년생)씨는 8남매 중 막내로 예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진학할 무렵에 안동 신세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그의 말대로 그는 안동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거나 만들기를 좋아 했지요. 하모니카나 피리 등 소리 나는 것을 부는 것도 좋아했고. 근데 자전거포 하시는 우리 부친은 음악이나 만들기를 잘하면 빌어먹는다고 못하게 했지요. 도내 백일장도 나가고 했는데 화구들을 다 아궁이에 집어넣어 불태우곤 해서 갈등이 심했어요. 학교에서는 잘 한다고 시키는데 아버지가 못하게 하니 헷갈리더라고요. 그다음부터 어떤 일들 할 때에는 아버지 모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형제들 눈치도 많이 봐서 아무도 모르게 음악을 했어요. 3학년 때 선생님이 그림 잘 그린다고 맨날 붙잡아 놓고 교실을 꾸미게 했어요. 뭐 모자이크같이 찢어서 붙이기도 하고 모양을 만들어 매다는 환경미화 같은 거였는데 온 교실을 다 꾸민 것 같애요. 그때 내 별명이 공작박사였으이께네. 그러다가 날짜가 임박하이 선생님이 친구 3명과 함께 교실을 꾸미라고 하는 거라요. 그르이 이 친구들이 선생님보고 할 필요 없다고 해녕이 집에 만들어 놓은 거 별거별거 엄청 많다고 고자질을 해서 집에 있던 만들어 놓은 작품을 학교에 다 냈지 뭐. 당시 동부국민학교 본관건물이 단층 목조 건물이었는데 자료실에 내 공예품으로 다 채워져 있더라고요. 어차피 부모님께 들키면 아궁이에 다 넣어 버릴 건데 다행이다 했는데 어느 날 학교에 불이 나서 내가 만든 작품들이 다 타버려서 얼마나 아쉬웠는데……. 그때 당시 풍금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선생님에게 그림 그리고 만들기만 시키지 말고 풍금 좀 가르쳐 달라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학교 파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가르쳐 준다고 해서 풍금 옆에 아무리 기다려도 선생이 안 나타나 결국 못 배웠지 뭐.”
공작박사 소년, 음악과 만나다
음악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목소리가 점점커지며 간간히 쓰던 안동사투리도 점점 완벽해졌다.
“내가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입니다. 안동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성소병원 맞은편 신시장 입구에 바이올린 가게가 들어온 거라요. 학교 가는 길목이라 오가며 그 소리를 듣고 문 밖을 서성거렸는데 날마다 문에 매달려 있으이께네 주인이 내 보고 들어오라 그래. 들어갔더니 배우고 싶냐고 묻더라고, 글타꼬 대답하이 도레미 켜는 법을 알려주고 내보고 해보라 카데. 내 그대로 했지. 그르이 재주 있다며 학교 파하고 와라 그래. 그래 학교에 가니 수업이 되겠나 맘이 설레어서. 마치고 얼른 또 갔지 뭐. 내가 이걸(바이올린) 너 줄 테니까 가지고 집에 가서 연습하고 오가며 배워보라고. 거저는 줄 수 없고 용돈을 주면 모아서 갚으라대. 그때 그 바이올린 값이 6천원이었는데 다 갚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갚은 기억이 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집에서 소리 나는 것들 부는 거 싫어하니까 들킬까봐 시멘트 겉 포대에 싸서 가지고 다니면서 연습했지. 연습할 장소가 있어야지 그래가지고 영호루 가는 다리를 건너 아래로 내려가면 백사장이 있는데 거기 숲속에서 나무로 보면대 만들어서 연습했지요.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넓어서 연습하기 참 좋았지. 그때 신시장 대안극장 주변에 소금 파는 가게 옆에 얼굴이 얽은 분에게 피아노도 배웠어요. 기타는 조동욱 선생님에게, 바이올린은 황병창 선생님에게 배우고 피아노는 여러 선생님에게서 배웠는데 유명하다는 선생님 있으면 찾아가서 가르쳐 줄때까지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배웠어요. 그때 내 별명이 ‘땡삐’였으이께네. 아직도 그 바이올린이 저어 있어.”
그가 장롱 위를 가리켰다. 장롱 위 바이올린, 집이 곧 작업실 겸 연습실
잠시 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천익창 음악연구소’는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있다. 그의 집이 곧 그의 연구소이다. 우리는 그의 안방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연주나 볼일이 없는 날 그가 하루 종일 기거한다는 16평 아파트의 안방의 한쪽 벽면에 장롱이 놓여 있고 그 옆 벽면을 따라 컴퓨터, 피아노가 있다. 같은 벽면에 작은 장식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그가 지금까지 연구한 서류들과 만들어 놓은 여러 소품과 모형 토우, 라디오 백 등의 작품이 들어있다. 그 옆 벽면엔 텔레비전과 아들이 받은 여러 상장들 관련기사들이 정리되어 있다. 장롱과 컴퓨터 사이 옆 빈 공간에 가야금과 아쟁, 신라금 그가 만든 창금 등 여러 악기 20여개가 오밀조밀하게 서로 살을 맞대고 서 있다. 그 남은 공간이 그의 작업실 겸 연습실이다. 그 방에 23현 25현가야금 두 대를 놓고 아들이 앉으면 방안은 빈틈없이 꽉 차 버린다. 그래서 아들이 연습을 할 때 그는 악기를 들고 그의 차로 가서 연습을 한다. 그러니 바이올린이 있을 자리가 장롱 위 밖에는 없을 듯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동영상들이 거의 그곳이나 차 안에서 촬영된 것이다.
내친 김에 아들 이야기도 하고 넘어 가야겠다. 사실 요즘 인터넷과 방송에 뜨고 있는 것은 그의 아들 새빛이다. 그의 연주법을 유일하게 전수받은 올해로 20세인 새빛이 23줄과 25줄 두 대의 가야금을 열손가락으로 연주한 파헬벨의 ‘캐논’동영상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회 수 수십만 건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SBS방송 스타킹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신세동 우리 집에 그때 방이 5개 있었는데 모친이 방세를 받으면 그것을 달라 해서 이곳저곳 레슨비를 냈지요. 학교 다닐 때 여러 가지 구실로 레슨비를 받아냈는데 별난 막내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모친이 고생이 많으셨지. 작년에 95세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중학교 때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내가 음악 하는 것도 모르고 가셨어요. 1971년 경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내가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특허를 내면 돈을 많이 벌수 있다는 생각에 ‘라디오 부착 핸드백’을 만들었지요. 특허는 못 내었지만 그것도 아직 저어 있어”
그가 이번엔 작은 장식장 안을 가리키며 그 핸드백을 보여준다. 지금의 MP3가 그의 라디오 부착 핸드백의 발전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졸업하고 안동 봉정사에 40일 정도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핸드백 만들어 특허 내려고 작정하고 들어갔어요. 그때 당시 봉정사가 공사 중이라 스님이 큰 절에 가 있으라는데 그 옆 개울을 돌아 한참 가파른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있는 영선암에 머무르겠다고 했더니 그곳이 땅기운이 세서 안 된다 하는 거를 행자스님 한 분을 붙여 달래서 그곳에 머물렀어요.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은 겁니다. 꿈속에서 바이올린을 켜는데 사람은 아무도 안보이고 큰 무대 중앙에서 나 혼자 연주를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소리가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여서 내가 ‘이건 바이올린 소리가 아니야’ 하고 소리치며 꿈에서 깨어났어요. 그 꿈을 꾼 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나 다른 소리들이 모두 건성으로 들리는 거라. 그날 이후 절 에서 내려와 꿈속의 소리를 찾아 헤맸어요. 도대체 그 소리가 뭔지 찾을 수가 없더라고. 그러다가 안동중학교 주변을 지나가는데 그 비슷한 소리가 어데서 들려와 따라갔더니 천막 속에서 약장수 들이 창극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 한 사람이 웃통을 벗은 채로 뭘 자꾸 문지르고 있대요. 땀 뻘뻘 흘리며 연주 하는데 급한 맘에 등을 두들기며 악기 이름이 뭐요 하고 물으니 ‘아쟁, 아쟁’ 그러는 거라. 그래 어데서 그걸 배울 수 있냐고 또 물었더니 ‘서울, 서울’ 하는 거라 그래 그길로 바로 서울 올라왔지. 참 얼마 전에 봉정사에 갔더니 너무 많이 훼손되어 졌더라고요. 영선암으로 가는 계곡을 막아서 우거진 숲과 개울이 없어져서 모든 건물이 한마당 안에 들어와 있던데 그때 그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어요. 원형대로 복구해 놔야지 문화재를 그렇게 맘대로 훼손시키면 어째요.”
나는 음악하는 사람, 동서양 없이 음악은 하나
그의 이야기는 한번 시작하면 숨도 안 쉬고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 얘기를 시작 할 때 아들 새빛이 함께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가 자리를 뜨고 없다. 그들 부자는 서로 인터뷰 할 때 함께 있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귀띔해 준다. 또 아내 역시 기자들이 찾아와서 인터뷰하고 사진 찍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한다. 돈도 안 되고 득도 안 되는 일을 날마다 한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라고 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없자 그는 다행이라며 웃는다.
“그해에 서울 올라와서 종로2가에 있는 세기 음악학원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을 진학할라꼬 영남대 교수에게 레슨을 받았는데 하루는 교수가 서울대 음대교수에게 인사를 다녀오라고 하대요. 그래서 인사를 갔지요. 말 그대로 인사를 간 거라. 내가 뭐 알았나. 그냥 얼굴 보여 주고 하는 인산줄 알고 빈손으로 가서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그 교수가 내 뒤통수에 대고 ‘야 임마! 너 떨어져’ 하는거라. 나는 음악에 목숨을 걸었고 음대 못 들어가면 죽을 거라고 거기서 막 울고 떼를 썼는데 그래도 하여간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그러고 시험 보니 시험지가 눈에 들어오나 뭐 벌써 들은 소리가 있는데.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 둘째 딸도 함께 시험 봤는데 하여간 난 떨어졌어요. 그래 그날 시험 끝나고 학원 와서 홧김에 피아노 작살나게 치다가 스카우트 된 거지. 미군 부대에 들어가 음악 하니 누구 눈치 볼 것 없어서 좋기는 하데. 그때 청량리에서 광화문까지 길 익히려고 걸어 다니고 그랬어요. 그 무렵에 전통악기 가르치는데 가서 아쟁 배우고 싶다 그르이 가야금을 먼저 배우라 그래. 거기서 가야금 배우면서 아쟁은 다른 학원에 가서 배웠는데 그래도 꿈에서 들은 그 소리는 아니더라고요. 그때 배운 가야금실력이 가야금 개량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한 건지도 모르지. 미8군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데 가끔 가수들이 국악을 하면 내가 가야금으로 반주를 하곤 했는데 서양 악기와 조화를 맞추려고 손을 시작하면서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지 하는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떤 숫자 관념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필요에 따라 만들고 새로운 소리 찾고 또 거기에 맞추고 하다 보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 되요. 연구를 하다 보이 가야금이 중심에 와 있는 거지.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야. 서양음악, 국악 할 것 없이 하나로 생각하고 하고 있어요.”
그가 전통 악기를 개량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악기의 저음부나 고음부를 보강하고 악기 소리를 키우며 서구적 주법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0현 개량 아쟁도 전통 아쟁(1옥타브)에 비교해 3옥타브로 개량, 전조(轉調)가 가능해 연주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가야금 역시 명주 현을 금속 현으로 바꾸고 전자장치를 넣어 동서양 어떤 곡도 야외에서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가 1973년부터 개량하기 시작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창금(고음 창금, 명주 창금, 저음 창금)으로 그는 우리 악기의 새로운 잠재력과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또 앉아서 연주하던 기존 가야금과 다르게 그의 창금은 무릎에 올려놓고 연주 할 수도 있고 서서도 연주하며 바이올린처럼 활로 연주도 가능하다. 본래 가야금 특유의 음색은 유지하되 음계를 확장시켜 현대적인 감각에 의해 새로운 각도에서의 연주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자식 낳아 가르쳐 보니까 선천적으로 광기(狂氣)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인 것 같아요. 남들은 좋은 말로 천재니 뭐니 하지만 내 아내조차도 미친 짓이라고 표현하는데요 뭐. 그 말에 수긍이 가요. 평범하지 않으니까 표준이 아니니까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요. 그런데 이일이 아니면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어요. 세상 얘기는 들어도 뭔 소린지 못 알아들어요. 사고가 여기 밖에는 없어 다른 분야는 완전 암흑세계야. 일반 무대에서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여 돈도 많이 벌었어요. 이래도 그 당시는 인기 있는 연주자였다고. 몇 개월 돈 모이면 연구하고 배우는 레슨비로 다 쓰고 또 돈 떨어지면 다시 업소로 나가고 그랬어요. 연구는 목숨 걸고 했는데 돈 버는 일은 돈이 없을 때 어쩔 수없이 나가서 했어요. 악기와 살면서 선보는 시간도 아까워 선을 보고는 어떠냐는 형제들 말에 모르겠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됐다며 바로 날을 잡는 바람에 선보고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그 때가 내가 서른일곱일 때입니다. 결혼식 날짜가 1987년 12월 13일이었는데 그날 KBS관현악단과 한국 최초의 ‘국악과 양악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연주회가 있었어요. 내가 공연 주인공이라 지금도 그날 결혼을 했는지 공연을 했는지 생각이 안나요.”
그는 일반 무대에서 활동을 1987년까지 했다. “아이 생각해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무대 활동을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업소 일 그만두고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일에 더 매달렸죠. 아내가 챙겨 주니까 미친 짓 하기가 더 쉬웠어요. 이래도 나는 마누라 속은 안 썩여요. 아내는 먹고 사는 일에만 신경 쓰면 되니까…….”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같았다. 요즈음에야 맞벌이 부부도 많고 간혹 남편이 살림하고 아내가 직장 생활 한다지만 그 때만 해도 남편이 생계를 책임진 시대가 아닌가? 결혼해서 당연히 책임져야할 생계문제를 아내에게 맡기고서는 마누라 속은 안 썩인다는 말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내에게 미룸에 대한 미안함인지 잠시 말끝을 흐리며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아내는 쉬는 날에는 그를 밖으로 내 몬다. 천하없어도 그날은 아내에게 집을 비워줘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사람을 너무 힘들게 한다며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죽는다면 이 일에서 스스로 해방 될 수 있을 거라며 그 고생의 끝을 죽음에서 찾으려고 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아들 새빛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전통음악 본질훼손 논란, 그러나 진정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처음 유치원 때 아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어요. 그랬더니 일곱 살 되던 해 어느 날 아들이 이제 아빠에게 배우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내가 가르쳤어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평범하지 않다 보니 그 과정도 쉽지 만은 않았어요. 전수하는 과정에서 몰입하다 보면 환청도 들리고 내 광기가 되 살아 나더라구요. 꿈에서 본 것을 재현하려고 하니 다시 광기가 발동하는 거죠. 어떨 때 생각하면 아들이 불쌍하죠. 그래서 이제는 아들 스스로가 욕구가 생길 때까지 내가 참아요. 그래도 안 되면 내가 차라리 자리를 피해버려요. 아들이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고 대학을 가겠다고 해서 지난해에 가야금 두 대를 들고 시험을 쳤지만 떨어졌어요. 그것을 이해해 주는 곳도 없고 가르쳐줄 교수도 없고, 우리는 설 공간이 없어요. 스스로 설 땅을 만들어 가야 하는 거죠. 아들이 2003년 ‘제1회 서울 가야금 경연대회’에서 창작부분 대상을 받는 등 창작무대에서 수십 차례 상을 받았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분들은 관심이 없어요.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거죠. 정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내가 만든 악기나 연주법이 법률적으로 인정이 안 되고 있어요. 가끔은 내가 한국 사람이 맞는지, 나는 왜 안 되는지 궁금해요. 내가 지금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그것밖에 모르기 때문에 중독되어서 나방이 불빛을 보고 날아들듯이 직감으로 음악이 좋아서 미친 듯이 자석에 끌리듯이 쫒아 다니고 있는 겁니다. 우리사회가 언제부터인가 학벌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어 버렸어요. 똑똑한 사람이 인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 하여간 학력신분제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요. 내가 하는 일이나 아들이 하는 일이 전통음악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만 있을 뿐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그늘의 주름들이 잠시 얼굴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아들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있는 그대로 평가를 받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바램이다. 다행히 국립국악원에서 지난해에 국악기의 복원과 개발 연구를 위한 국악기 연구소를 설립했다. 국악기 표준화(2008)와 인증제(2009)를 실시할 예정으로 있어 그는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지문대신 가야금 현 줄이 나 있는 손, 외로운 길이지만 아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그는 악기를 개량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맞추어 1986년 ‘천익창 3선보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양의 오선 악보와 한자 악보인 정감보의 장점을 살린 ㅏ,ㅕ,ㅜ (1단 3도)의 삼선보 이론으로 그의 개량 악기들이 모든 분야의 음악에 제한을 받지 않고 연주가 가능하게 된것이다. 2004년 신라금 복원, 2005년 신석기 한반도 현악기 복원, 2006년 철기시대 현악기 복원, 원시 인류 뼈피리 복원 등 그의 전통악기 개량과 복원의 발걸음은 쉬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삼선보 이론 및 창금’ 연구사업 지원 요청과 함께 연구 내용을 전수를 위한 교습소 설치 요청을 문화공보부와 국립국악원, 대통령 비서실 등에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 말도 그에게는 아직은 맞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은 아들 덕을 보고 있어요. 방송에 나가서 출연료도 좀 받기도 하고, 얼마 전 SBS 방송 스타킹에 출연해 상금 받으면 아버지 이 해드리고 싶다고 말해서 어떤 시청자가 임플란트 무료시술도 해 주어서 지금 받고 있습니다. 우리 창작국악계의 새빛이 되라고 지은 이름인데 인터넷 같은데 보면 아들 연주가 국민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준다며 칭찬도 많이 받습니다.”
그가 다시 활짝 웃었다. 그의 개량 가야금 연주는 400가지 이상의 연주 기술이 습득 되어야만 연주가 가능하다고 한다. 유일한 전수자인 아들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며 아버지를 따라가기엔 아직 한참은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의 손엔 지문이 없다 그 대신 가야금 현을 따라 생긴 가로줄이 열 손가락에 선명하게 나있다. 앞에서 그의 삶이 어둡고 외로운 길이라는 표현을 썼다.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도 제대로 얻지 못한 속상함에서 온 필자의 주관적인 시각일 뿐이다. 국악계에서 전혀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온 그의 삶을 내 식대로 표현한 것이다. 돈도 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음에 대한 안타까움 맘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는 국악기 개량의 선구자로서 그 자신의 숙명적인 길을 행복해 하며 희망을 꿈꾸고 있다. 그의 표정이 그렇다. 그로 인해 주변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안타까워 할 뿐 그의 세계에서 그 삶 자체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으로 그의 아들도 그 길로 인도해서 함께 걸어가고 있는지도. 그가 아직 찾지 못한 그 ‘꿈속의 소리’가 우리나라 국악계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창작국악인으로 인정을 받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