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안동이 그립다(글/정영준)인구 18만의 중소도시 안동에 살다가 갑자기 천 만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서울로 이사를 왔다. 전에 학교 다닐 때 서울에서 수년을 살았지만 한 달이 넘은 지금도 아직 대도시에 사는 것이 낯설기만 하다.
사람사는 곳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안동에서 사는 것과 서울에서 사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가령 20평 아파트 전세금이 안동 2천500만원에 서울 8천500만원, 오뎅값이 안동 250원에 서울 1천원 등 실제 피부로 느낄 수 밖에 없는 물가의 차이가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 '속도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는 시간은 최대한 아껴야 하고, 밥은 다섯 숟가락 이상 떠서는 안되며, 신문은 헤드라인 읽기도 벅차다. 그리고, 지하철 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면 가파른 계단을 냅다 뛰어야 하고, 만원 지하철의 진동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뱃속에서 아침먹은 것들이 세상 구경하고 싶다고 아우성을 칠 때 쯤 되어서야 겨우 햇빛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햇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식당ㆍ은행ㆍ서점ㆍ이발소ㆍ약국 등 모든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거대 빌딩에 갇혀 하루 종일 시간에 쫓기며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집에 도착하면 쓰러져 잔다. 이건 아마 나 뿐만 아니라 서울공화국에 사는 대부분의 셀러리맨들의 고달픈 일상일 것이다.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은 진부한 것이 되었고, '시테크'라는 국적불명의 용어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시테크'는 시간의 주체가 개개인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지만, 지금 서울 사람들은 이를 넘어 시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안동에서의 3년 반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내가 시간의 주체였고, 시간은 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뭐 그렇다고 언제나 시간을 느긋하게 부려먹은 건 아니었지만, 분명 나는 시간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사무실 창 너머 갈라산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어도 쫓긴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고, 점심은 직원들과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퇴근후엔 지역 사람들과 한 통에 2,000원하는 커피내기 바둑을 두면서 귀가 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군다나 주말이면 와룡으로, 도산으로, 임동으로 문화재를 찾아 나들이를 떠나곤 했다.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살아도 시간은 내 편이었다.
빠름의 서울과 느림의 안동.
분명 느리게, 풍요롭게, 여유롭게, 이웃들을 돌아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지금 빠름이 지배하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무엇 때문에 서울에서 안동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지금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언젠가는 느림의 도시 안동으로, 아니 그보다 더 느림의 땅 고향 영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서울에 사는 동안은 느림의 안동이 늘 그리울 것 같다.[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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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준씨는 98년 4월에 안동에 와서 3년 8개월동안 안동시청 문화관광과와 시의회를 거쳐 안동시 법상동 동장으로 일하다 파견근무차 행정자치부로 옮긴 지 이제 한달 정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