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 10도는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글/이해영-안동대 교수)
우리는 흔히 퇴계선생을 이야기할 때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성학십도에 대해 물으면 그저 퇴계 성리학의 핵심내용을 압축해놓은 10장의 도형 정도의 사전적 설명에 그치고 만다.(순전히 편집자의 수준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선 성학십도의 얼개라도 이해해 볼 요량으로 어렵게 이해영 교수께 승낙을 얻어 이번 호부터 여섯 번에 나누어 성학십도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성학의 이해
공자가 처음으로 틀을 만들었다고 하는 유학의 본뜻은 내 안에 있는 ‘참나’를 발견하고 깨달아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능동적으로 실천하여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데 있다. 그것을 흔히 수기치인〔修己治人: 스스로를 수양하고 다른 이들을 일깨워 이끌어간다〕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내성외왕〔內聖外王 : 안으로는 거룩한 인격이 되고 밖으로는 올바른 정치를 행한다〕이라고도 하였다. ‘참나’를 완전하게 이룬 사람을 성인이라 하고 ‘참나’를 바탕으로 훌륭한 정치를 하여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사람을 성왕이라 하였다. 성학(聖學)은 성인의 학문〔聖人之學〕이자 성왕의 학문〔聖王之學〕이다. 유학이 수기치인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성학은 성왕의 학문이라는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자 이전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임금, 문왕, 무왕, 주공 등은 모두 임금이오 정치가였다. 아름다운 세상은 군주봉건의 시대에는 군주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들 성왕들은 스스로 거룩한 인격을 지니고 백성들에게 인간이 마땅히 걸어가야 하는 길을 가르쳐준 스승이었으며 백성들의 삶을 알뜰하게 꾸려주고 보살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룬 정치가로 받들어졌다.
공자는 모든 사람 안에는 거룩한 본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내용은 인간에 대한 하염없는 사랑이다.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한 공자는 분명 성인이었다. 그는 그러한 사랑을 마음속에 지니고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어진사람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그러한 정신을 이어 모든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착하므로 누구나 그 본성대로만 실천한다면 온 세상이 바르고 아름다워지리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비록 왕 노릇 한 일은 없지만 모든 사람 안에 거룩한 사랑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한 공자를 성인으로 받들었다. 그것은 유학의 도가 전해진 계보〔유학에서는 이를 道統系譜라고 하는데 내용적으로는 성인의 계보이다〕가 성왕계보를 벗어나 성인 계보로 바뀌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송대의 사대부들은 실천윤리의 성격이 강했던 유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유학의 정신세계를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철학적 깊이를 갖춘 새로운 유학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성리학, 주자학, 정주학, 리학, 신유학 등으로 불리는데 조선왕조의 정치이념이 바로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기존의 유학과 구별하여 도학, 의리의 학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다른 말로 말하면 바로 성학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누구나 배움을 통하여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공자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맹자의 성선설로부터 이어온 인간의 거룩한 본질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기도 하였다.
성학십도의 탄생
이황은 조선조의 성리학자로서 조선 성리학의 틀을 짜고 깊이를 더 한 사람이다. 그의 학문은 공자와 맹자, 송대의 성리학자들로 이어진 유학적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받고 그 깊이를 더하여 조선조 성리학의 특색을 펼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 그런데 그가 이룬 학문의 성과는 분량이 매우 많고 깊은 뜻을 지니고 있어서 성리학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는 함부로 무엇이다 어떻다 말하기 어렵다. 다만 성리학을 전공하는 여러 분들이 연구해 놓은 성과를 빌리면 이황의 학문의 내용과 깊이를 잘 드러내는 것 중의 하나는 그가 선조에게 올린 성학에 관한 10 가지 그림〔성학십도 : 聖學十圖〕과 그 그림을 올린 동기, 목적과 그림의 핵심내용을 집약하여 쓴 글 〔진성학십도차자 : 進聖學十圖箚子〕이다.
〈성학십도〉는 1568년 12월 69세를 눈앞에 둔 이황이 새로이 등극한 어린 임금 선조에게 성인의 학문을 설명하기 위하여 올린 그림과 그 해설이다. 먼저 이황이 이 10 가지의 그림을 임금에게 올리게 된 동기와 배경을 좀 살펴보자. 조선조 13대 임금 명종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1567년 명종이 돌아가자 왕실에서는 명종의 동생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서 당시 16세이던 하성군으로 명종의 대를 잇게 하였다. 그가 바로 선조였다. 선조가 명종의 대를 잇게 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들이 일찍 죽어 대를 이을 사람이 없던 명종은 동생인 덕흥군의 세 아들을 퍽이나 귀여워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명종은 세 아이를 불러놓고 임금만이 쓸 수 있는 익선관을 가리키며 "머리의 크고 작음을 알기 위함이니 차례로 한번 씩 써보라"고 하였다. 위의 두 형들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막내만이 "이것이 어찌 보통 사람이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하며 공손하게 받들어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그 뒤 명종은 막내 아이를 특히 아꼈고 마음속으로 자신의 대를 잇도록 작정하였다고 한다. 이는 물론 선조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지어진 이야기일 것이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적는 것은 이 이야기가 이황이 〈성학십도〉를 올리게 된 아주 먼 배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학십도〉를 올리던 1568년 여름,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던 이황은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새 임금의 거듭된 부름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판중추부사로 임명되어 서울에 올라왔다. 그는 경연관을 맡아 임금에게 학문을 가르치면서 나라의 현실문제에도 자문을 하였는데, 나이도 어린데다가 방계로서 왕통을 이은 선조로서는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이황의 도움이 절실하기도 한 터였다. 〈성학십도〉를 올리기 몇 달 전 그해 8월, 이황은 6개 항목으로 된 상소를 올린다. 그것이 유명한 〈무진육조소 :戊辰六條疏〉인데, 그 내용은 모두 훌륭한 임금이 되기 위해서 지녀야 할 근본 마음과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이황은 〈무진육조소〉를 올린 뒤에도 11월까지 9차례에 걸쳐 어린 임금을 모시고 임금으로서의 마음가짐, 태도, 현실의 문제 등에 관하여 강론하였다. 그 뒤를 이어 12월에 상소의 형태로 올린 것이 바로〈성학십도〉이다. 〈성학십도〉는 성왕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거룩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유학의 기본 입장에 따라 성인이 되기 위한 학문과 마음가짐에 대하여 이황 자신이 평생 동안 공부하며 쌓아온 학문 내용을 정리하여 임금에게 올린 것이다. 이황이 〈성학십도〉를 올린 이유는 선조가 지녔던 캐릭터와 관련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앞서 익선관 이야기를 통하여 선조가 어려서부터 명민한 부분이 있었다고 암시했다. 이황이 보기에도 선조는 바탕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런데 자질이 뛰어난 만큼 스스로를 너무 자신하여 모든 것을 제멋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히 신하의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애타게 불러들인 이황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이황은 〈성학십도〉를 올리는 글에서 비록 표현은 은근하게 하였으나 앞서 말씀 드린 내용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황은 선조의 그러한 성격을 감안하여 훌륭한 임금이 되려면 먼저 거룩한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성학십도〉를 지어 올린 것은 아닌가 한다.
사실〈성학십도〉의 그림과 그 해설은 성리학의 핵심내용인데다가 또 이황 자신의 깨달음이 보태진 것이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부족하고 깨달음이 없는 필자가 그 내용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없으면 용감해진다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또한 잡지의 편집자에게서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어 쓰라는 주문도 있었다. 잘 모르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라니 이 두 가지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여 거절을 하였는데, 모질지 못한 성격에다가 김복영 편집장의 고단수에 결국 걸려들어 써보기로 하였으니 필자로서는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널리 헤아리시기를 바란다.
성학십도의 구성
어쨌든 우선 〈성학십도〉의 전체 틀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학십도〉를 만들어 올린 배경과 동기 그리고 그 전체 성격 및 내용을 집약하여 담고 있는 〈진성학십도차자 : 進聖學十圖箚子〉를 살펴보자. 〈진성학십도차자: 이하 차자〉는 요즘 말로 말하면 성학십도의 서론과 결론을 함께 적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은 〈차자〉에서 〈성학십도〉10가지의 그림 중 7개의 그림은 모두 옛 현인 군자들의 성학에 관한 실마리와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그림과 설명을 뽑고, 여섯 번째 그림 심통성정도의 가운데 그림과 아래 그림 그리고 다른 3개의 그림은 다른 선현들의 학설에 따라 스스로 지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른 선현들의 그림 7개 또한 이황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각각의 그림에 이황 스스로가 보충설명을 붙이고 있으므로 결국 10 가지의 그림 모두는 이황의 성학에 대한, 나아가 유학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황의 세계관 우주관 인간관 가치관을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성인의 학문에 관한 10 가지 그림 모두를 꿰뚫는 공부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차자〉에서 성인의 학문을 밝히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이 밝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마음의 밝게 생각하는 작용은 마음의 본질이 신령스럽기 때문인데, 내 마음의 신령스러움을 공경스럽게 움직여서 밝게 생각하면 바깥 사물의 결이 밝게 내 마음에 비추어져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황은 공경스럽게 마음을 갈고 닦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져서 나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물의 결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갈고 닦으려면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자의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하다고 한 말’을 인용하여 생각함(思)과 더불어 배움(學)을 강조하였다. 배운다는 것은 ‘그 일을 익히어 참으로 실천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이황이 보는 마음, 이황이 ‘생각함’이라고 보는 마음의 작용은 무엇인가?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사고하기인가? 아니면 가슴으로 느끼기일까? 사물의 결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면 합리적 사고일 것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가슴으로 느끼고 보듬는 일일 것이다. 그러면 배움은 무엇인가? 배움이 ‘그 일을 익히어 참으로 실천하는 것’이라면 그 일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익히고 실천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학문적으로 익힌 어떤 일〔유학의 입장에서는 주로 인륜도덕〕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느끼고 몸으로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전에 어떤 글에서 이성과 감성, 이론과 실천의 관계를 “사람의 머리와 가슴은 아득히 멀고 가슴과 손발은 한없이 멀다”는 말로 비유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황은 생각함과 배움은 서로 북돋아 주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친절한 해답은 분명 10 가지의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아야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내가 ‘참나’를 깨닫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여 ‘참나가 되는 것’, ‘나와 사물이 밝은 만남을 이루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이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어 잘 어울리는 것’, ‘나와 우주가 존재의 아우름 속에서 하나가 되는 것’ 이다. 이것들은 모두 ‘거룩한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천인합일〕’이기도 하였다. 이는 〈성학십도〉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이 성인의 학문을 하는 방법으로서 배움과 생각함을 하나로 꿰뚫고 있는 것은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야말로 생각함과 배움을 함께 지니며,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모두 통하며, 안과 밖을 하나로 합하며, 겉으로 드러남과 안에 숨겨진 은밀함을 하나로 잇는 길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학문을 이루어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이황은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니고서, ‘옛 성인은 어떤 사람이던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겨야 한다. 그러고 나서 배울 때에도, 생각할 때에도 공경스럽게 마음을 조용히 집중하여야 한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고요한 물처럼 가라앉혀라. 그러면 모든 사물이 밝게 비치리라. 마음이 움직일 때는 선한 쪽으로 움직이도록 잘 살펴야 한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널리 퍼지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성인이 되려면 이렇게 매일 매일 끊임없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참나’를 이루는 순간순간이 쌓이고 쌓이면 자연스레 내 마음과 사물의 결이 하나가 되고 저절로 나와 다른 사람이 사랑의 마음으로 만나게 되고, 마침내 내가 하늘의 거룩함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것이다.
성학십도의 내용
성인의 학문에 관한 10 가지 그림의 첫째 그림은 태극도(太極圖) 둘째 그림은 서명도(西銘圖), 셋째 그림은 소학도(小學圖), 넷째 그림은 대학도(大學圖), 다섯째 그림은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여섯째 그림은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일곱 번째 그림은 인설도(仁說圖), 여덟 번 째 그림은 심학도(心學圖), 아홉 번 째 그림은 경재잠도(敬齋箴圖), 열 번 째 그림은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이다. 이황은 이 10 가지 그림의 구성과 배열의 의미를 〈차자〉와 각 그림을 설명하는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이황은 〈차자〉에서 10 가지 그림의 구성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본다. 그는 첫 번째 그림 태극도에서 다섯 번째 그림 백록동규도 까지를 한 단락으로 보고, 여섯 번째 그림 심통성정도에서 열번째 그림 숙흥야매잠도까지를 한 단락으로 본다. 그는 다섯 번째 그림 백록동규도에 대한 자신의 설명에서 ‘이상의 다섯 그림은 하늘의 법칙에 근본을 둔 것인데 그 목적은 모두 인륜의 도리를 밝히고 덕을 쌓는 일에 힘쓰는 데 있다’고 하였다. 즉 앞의 다섯 그림의 목적은 인간의 도덕원리와 선을 행하는 일이 하늘의 거룩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열 번째 그림 숙흥야매잠도의 보충 설명에서는, 여섯 번째 그림 심통성정도에서 열번째 그림 숙흥야매잠도의 다섯 그림은 마음과 본성에 근원을 둔 것으로 그 요점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과 본성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밝히고 그 마음과 본성을 공경스럽게 가다듬어 일상생활에 있어서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다음으로는 내용상의 구분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그는 대학도의 설명에서 ‘10 가지 그림 모두 경(敬)으로써 주장을 삼는다’고 하였다. 10 가지 그림 모두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핵심내용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 번째 그림 소학도와 네 번째 그림 대학도가 10 가지 그림의 주축을 이룬다고 보았다. 원래 《소학》과 《대학》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배울 것인가, 또 공부하고 배운 내용을 어떻게 노력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논한 책이다. 그리하여 한 개인으로서 거룩한 인격을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족, 이웃, 국가, 온 세계에 미쳐가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소학》과 《대학》의 목표였다. 이황은 이러한 목표를 위하여 10 가지의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는 세 번째 그림 소학도에 관한 설명에서 소학은 마음의 근본자리를 기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흐트러지는 마음을 거두어들여 안정시키고 도덕성을 기르는 것이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도덕성을 기르려면 청소하기, 인사하고 응대하기, 나아가고 물러남과 같은 일상생활의 절차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 또한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육예〔예악사어서수; 禮樂射御書數; 옛날에는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씨쓰기, 셈하기였으나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예절, 예능, 운동, 자동차 운전, 컴퓨터 활용능력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와 같은 기본 교양을 제대로 습득하여야 한다. 소학의 공부를 바탕으로 마음의 근본자리가 잘 길러지면 이를 바탕으로 대학의 내안의 밝은 도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일깨우고 지극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마음의 근본자리를 기르는 일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도 모두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녀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세 번째 그림 소학도와 네 번째 그림 대학도에 관해 설명하면서 소학과 대학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이므로 두 설을 서로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해하여야 하며, ‘위 아래의 여덟 그림 모두 이 두 그림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 결국 10 가지 그림 모두가 소학과 대학의 목표를 이루는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며 그 내용은 거룩한 인격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황이 바라는 참된 학문은 성인이 되는 학문이었다. 10 가지 그림은 임금 선조에게 올린 것이어서 성왕이 되는 학문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실제 내용은 바로 성인이 되는 학문이었고, 바로 인간 누구나가 거룩하게 되기 위한 학문이었다. 〈차자〉와 그림을 설명하는 가운데 이황은 사람 누구나가 ‘참나’가 되고 성인이 되려면 먼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마음을 잘 다스리려면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녀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마음을 잘 다스리고 가꾸면 누구나 ‘참나’가 된다. 참됨을 이룬 나는 그것을 모든 만남 속에서 실천해간다. 왜냐하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바로 모든 것을 서로 통하게 하여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 통일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참나가 되면 어느덧 자연스레 사물의 결은 내 마음에 밝고 맑게 비치고, 참나가 펼쳐지는 사랑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아름답게 한다. 인간 사회의 모든 만남이 아름다워지고 인간이 모여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결 따라 흐르는 참나의 사랑은 인간사회에만 머물지 않는다. 채 녹지 못한 얼음 아래를 숨죽여 흐르는 냇물에도, 이른 햇살이 비껴드는 매화 꽃잎 하나하나에도, 처마를 사납게 울리는 소나기에도, 짙은 어둠을 머금어 더욱 빛나는 별빛에도 그 사랑은 흐른다. 세상이 존재하고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법칙과 깨달아 참나가 된 마음이 담고 있는 사랑의 원리가 모두 거룩한 하늘의 존재원리와 운행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인의 학문을 통하여 이루려는 궁극적 경지일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