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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확 피면 저도 달릴거예요!˝ 스무 살 대현이(글/피재현-나섬학교 교사)

나는 안동지와 같이 1988년에 태어난 스무 살 대현이입니다. 현재는 가톨릭상지대 메이크업아트과를 다니고 있어요, 멋진 뷰티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권위적인 사람을 싫어합니다. 피어싱에 염색한 머리를 보고 비행청소년이라 오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난 나만의 개성을 마음껏 뽐낼 겁니다. 안동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나와 같은 동갑이라니 기쁩니다. 나도 안동지도 앞으로 멋지게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20년 전 나의 스무 살
스무 살, 나의 청춘은 황량했다. 을씨년스러웠던 명륜동 골목길과 피다 말다를 반복하며 사그라져가던 개나리꽃을 나는 아직도 시시때때로 기억한다. 실패한 것만 같았던 인생이 담배연기에 말려 높이를 다 하도록 하늘로만 올라가던 아지랑이.......전두환 정권의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나의 대학생활은 서울로 간 친구들이 물어오는 흉흉한 소문과 금방이라도 세상을 갈아엎을 것 같은 기개가 짬뽕국물처럼 뒤섞여 묘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87년 6월항쟁, 노태우의 집권과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가 끝없이 푸른 잔디밭을 굴러가던 아슴한 기억의 쌍팔년 올림픽.
그때쯤 사랑방 안동지가 태어났다. 내가 놀던 물로만 본다면 다소 생뚱맞은 출생이었으나 지역 문화계로서는 가문의 대를 이어 줄 귀한 옥동자의 탄생이었으리라. 그가 벌써 나이 스무 살이 되었다니 축하할 일이다.
사람과 한 매체의 역사를 비교한다는 것이 그리 딱 들어맞는 비교는 아닐테지만 나에게 주어진 숙제가 그러니 그때쯤 태어난 한 아이를 만나 보기로 한다. 이제는 아이가 아닌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스무 살의 의미를 물어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스무 살이 어때야 하는지 스물한 살 스물두 살은 또 어때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보기 위해서다.

재현, 대현을 만나다
대현이는 1988년생이다. 생물학적 나이로는 사랑방 안동과 동갑이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 세상과 만나는 잡지와 하루하루를 먹고 자고 싸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20년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안동이라고 하는 한 시공간에서 20년 세월을 함께 숨 쉬며 살았다는 것은 예사 인연은 아니다. 안동지가 어찌 살았는지, 안동지의 스무 살이 뭔지는 다른 사람이 물어 볼 일이고 나는 한 아이의 스무 살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뭐 먹을까?
▷오랜만인데 찜닭 사줘용용용
▶그, 그러지 뭐.......

▶잘 살고 있어?
▷옙, 밴드 모집 한다 길래 갔다가 떨어졌어요. 헤헤! 애들이 노래를 다 잘하네?........나도 쫌 하는 편인데.......

대현이는 안동에서 참 힘들게 청소년기를 살았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만 개성과 끼가 넘치는 내면세계와 제도권 학교와의 부조화 때문에 맘 고생이 많았다. 물론 그 시기를 함께 한 선생님들과 동료들의 맘 고생도 그 못지않았으리라. 그는 피어싱을 좋아해서 일찍이 귀와 입술을 뚫었고 찢어진 청바지와 노랑머리를 유난히 좋아했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왜?
▷글쎄요.......스무 살이라고 해서 뭐가 막 달라져야 하나요?
▶....... 아하! 알았다. 넌 해 볼 거 다 해 봤잖아?!
▷그런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빼물고 걸어봐야지. 파마를 할거야.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아줌마 여기 쏘주 한 병! 하고 외쳐봐야지. 미팅과 나이트클럽.......스무 살의 경계에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던 온갖 제재와 금기에서 벗어나 양지에서 놀 수 있는 나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

우리나라에서 스무 살은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나이다. 성인식을 치르는 나이야 세계적으로 비슷비슷하지만 장유유서 잘 따지는 우리나라에서 스무 살은 광복절 특사보다 더 짜릿한 나이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만난 대현이는 그걸 못 기다리고 영화 광복절특사처럼 성질 급한 몇몇 친구들과 땅굴을 파고 바깥 세상에 나가 던킨도너츠를 배터지게 사먹고 다녔으니 지금 확 뭐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다.

▷철은 좀 들었어요. 등록금 아까워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주말에는 미용실에서 알바 뛰어요. 용돈 달라고 하기도 힘들고....... 나이가 몇 갠데!
▶알바하면 얼마나 받어?
▷주말에만 하고 한 달에 20만원 받아요. 담배값하고 쏘주 한 잔? 뭐 그 정도 빠듯해요. 좀 더 주는 데 없을까요? 아 소개 좀 해줘봐봐요. 샘 발 넓잖아요!
▶있으면 내가 하지 나도 요즘 힘들다.ㅠㅠ

대현이의 십대는 내가 본 일부분이 있고 그 나머지 부분이 또 달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너의 십대는 어땠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리라. 그의 말을 들어보자.

▷재미없었어요. 한계 투성이, 틀 투성이.......좁고 제한된 틀 말이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입장 그 자체가 힘들었어요. 뭘 배우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강요받는 공부, 주입식 교육, 그러고 나면 그 가르친 걸로 줄 세우고 편 가르고 나눠놓는 교육이었으니깐.......대학은 자발적 학습이 조금은 가능한 것 같아요. 실기 위주의 수업도 재미가 있고요. 뭐 그렇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불타서 대학을 온 건 아니고, 일종의 홀로서기? 독립하는 것이 목표였지 구체적이고 계획적으로 뭐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스무 살 된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말하는 것이 좀 다르다. 그래서 스무 살인가? (아니야, 말은 저렇게 해도 여전히 어린 애일거야!)그는 또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인생이 이제 누구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는 없겠다 싶고, 졸업하고 돈 벌고 이런 일들이 목전에 와 있으니 겁도 난다고 했다. 그러나 당분간 그는 밴드 주변을 얼쩡거리며 노래 부르고 헤어 디자인 배우며 살아갈 것이다.

스무 살 대현이, 스무 살 안동
안동지가 창간될 때 나는 스물두 살 어린 나이로 서울에 있었다. 출판사에 취직을 해서 교보문고며 종로서적, 서울대 앞 고시서점 등에 책을 실어 나르며 88서울올림픽 구경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사표를 던지고 안동으로 컴백했다. 대현이가 아직 오줌똥을 못 가릴 때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많이 늙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사회인으로 안동에 적응해서 살아가던 1991년 무렵이던가? 안동지에 글 부조를 하기도 하고 편집실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살았다. 갓난아이였던 안동지가 약관의 나이로 커오는 모습을 보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현이는 “안동”지를 모른다고 했다.

▷그게 뭐예요? 왜 사진을 찍고 그래요! 저 나름 초상권 있어요오오!
▶음. 그게 향토문화...사랑방이라고.......사무실이 목성교에 있거든? 안동문화 소식도 알려주고 안동사람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하는데 마침 너랑 나이가 같다네?
▷좋은 거네.......난 몰랐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20년을 안동에서 산 대현이를 사람들이 더 많이 알까? 20년 동안 발간된 “안동”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까? “안동”이겠지? 그런데 스무 살 혹은 스물다섯 살 이하로만 한정하고 본다면 대현이가 앞서지 않을까?스무 살 대현이는 젊은 나이,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할 나이지만, 스무 살 “안동”은 자칫 늙어가는 나이가 아닐까? 속단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한번 쯤 물어 볼 이야기다.

스무 살, 새로 시작하는 나이
나는 직업상 비교적 스무 살짜리를 많이 알고 있다. 요즘도 간간히 스무 살짜리 인간들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똥꼬는 대구 동성로에 가서 피어싱을 하고 왔다고 한다. 파마도 하고 밴드에서 드럼을 배운단다. 그리고 예쁜 서영이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소주 세 병을 먹고는 자신의 주량에 스스로 대견해하면서 아빠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고.......에구에구 신입생 환영회 문화는 좀 달라졌으면 좋으련만, 오정이는 지긋지긋한 안동을 떠나서 너무 좋아하고 있고 수겸이는 군 입대를 앞두고 여전히 잠만 자고 있다고.
다들 다른 스무 살을 살고 있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그들의 스무 살이 또 다른 시작이며 모두들 그 출발선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안동”도 그랬으면 좋겠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시대는 그보다 더 많이 바뀌었으니 “안동”지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문화는 전통과 현대를 떠나 그것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며 삶의 내용일 때 더 빛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안동에서 유일한 문화매체인 안동지의 스무 살은 각별히 소중한 것이 아닐까?

▷이제 시작해야죠! 곡 쓰는 것도 배우고 있고.......창작의 기쁨이 의외로 크더군요!! 어른이 되었으니까 꾀부리면 안 되겠죠? 걱정 마세요 샘! 봄꽃 확 피면 저도 달릴거예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