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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물의 생성원리와 인간의 본성 -제1태극도와 제2서명도-(글/이해영-안동대 교수)

제 1 태극도 - 우주만물의 생성변화, 그리고 인간-

성학십도의 첫 번째 그림 〈태극도>는 중국 송대의 도학자인 주돈이(周惇頤 ; 1017~1073) 가 우주 만물의 생성 변화 과정과 인간의 도덕 문제를 논한 태극도설을 짓고, 그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주돈이의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이다. 그는 도가의 사상과 《주역》을 바탕으로 하고 전통의 음양 오행관념을 받아들여 유교사상을 새롭게 구성하였다. 주돈이의 사상을 잘 보여주는 글은 〈태극도설〉과 〈통서(通書)〉이다. 이황은 태극도의 보충설명에서 섭중규의 “〈태극도설〉은 《주역》〈계사(繫辭)〉 '역(易)에 태극이 있었다. 태극이 양의(兩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았다'고 한 뜻을 미루어 밝힌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주돈이는 장재(張載; 橫渠), 정호(程顥; 明道), 정이(程頤; 伊川), 소옹(邵雍; 康節) 등과 함께 성리학의 바탕을 만든 이른바 북송의 다섯선생⦗北宋五子⦘으로 불린다. 송대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희는 주돈이의 학설을 자신의 이기론적 세계관에 맞추어 해석하였다. 즉 그는 태극을 이치로 해석하고 주돈이를 도학(道學)의 시조라고 평가하였다.

주돈이는 인품이 매우 고아했다고 전해지는데, 같은 시대의 시인 황정견(黃庭 ; 1045~1105)은 그의 인품을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고 평하였다. 광풍제월이란 ‘비 개인 뒤의 바람과 달’이라는 뜻으로 맑고 고아한 인품을 기리는 말이다. 우리 선인들은 맑고 고운 인격을 갖추고자 다짐하는 마음으로 당호나 정자 이름에 광풍과 제월을 많이 썼고, 바위에도 광풍제월이라는 글씨를 많이 새겼다. 안동시 서후면 경당 장흥효 유적에도 광풍정과 제월대가 있다.
주돈이는 〈태극도설〉에서 우주의 원리와 생성과정을 설명함과 동시에 인간의 도덕 원리와 표준을 제시하였다. 그의 학설은 우주적 존재원리와 소우주인 인간의 존재원리가 같은 것이므로 인간은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천인합일론의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은 배움과 노력으로 자신이 지닌 우주적 존재원리로서의 본성을 각성 발휘해야 하고 그러면 우주의 존재원리와 만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태극도설〉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우주의 존재원리와 인간의 도덕원리가 같은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송대 성리학의 전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학설이 되었다.

태극은 무극이다.
이황 또한 그러한 입장에서 〈태극도〉를 《성학십도》의 첫머리에 둔 것이다. 이황은 〈태극도〉도의 보충설명에서 주자가 ‘〈태극도〉는 최고의 도리이며 영원한 학문의 연원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고 “성인의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태극도설〉에서 실마리를 찾아 《소학》과 《대학》에 힘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태극도설〉에서 학문의 목표와 방향, 즉 올바른 세계관을 찾아야만 바른 학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우선 〈태극도설〉의 내용을 원문번역의 형태로 옮겨 놓고 그 의미를 이황의 뜻을 짐작하여 풀어보기로 한다. 그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움직이면(動) 양(陽)이 생긴다. 움직임이 극한에 이르면 고요하고(靜), 고요하면 음(陰)이 생긴다. 고요함이 극한에 이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되어 음으로 나뉘고 양으로 나뉘어 [음양의]두 모습이 성립하게 된다.
양(陽)이 변화하고 음(陰)이 합해져서 수(水), 화(火), 목(木), 금(金), 토(土)의 [오행(五行)]이 생겨나며 [오행]의 이 다섯 가지 기운(五氣)이 순조롭게 펼쳐져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四時)이 순환하여 운행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 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 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 이다. 오행이 생겨날 적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가진다.
무극의 참된 본체[眞]와 이[二 : 음양] 오[五 : 오행]의 속알갱이[精]가 신묘하게 결합하여 응결되면 건도(乾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도(坤道)는 여성을 이룬다. 음양의 두가지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낳는다. 만물이 나고 나니 그 변화는 끝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그 중의 빼어난 기운을 얻어 가장 신령스럽고 밝다. 형체[形]가 생기자 정신[神]이 지각[知]을 발휘하고, 오성(五性: 仁義禮智信)이 감응하여 움직여서 선악(善惡)이 나뉘고 온갖 일이 나타나게 된다.
성인은 중정(中正)과 인의(仁義)로써 인간 만사를 규정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함(靜)을 주로 하여 인극(人極)을 세웠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천지와 그 덕이 합치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이 합치하며, 사계절과 그 차례가 합치하고, 귀신과 그 길흉이 합치한다. 군자는 이러한 도리를 닦으므로 길하고, 소인은 이러한 도리를 어기므로 흉하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하늘의 도를 세워 음과 양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과 의라 한다고 하며, 또 이르기를 시작에 근원하여 끝으로 돌아간다(原始反終) 그러므로 사생(死生)의 설을 안다고 한 것이니, 위대하도다 '역(易)'이여! 이것이야말로 그 지극한 것이로다.

태극은 음양이다.
우주(宇宙)의 우(宇)는 위 아래 동서남북의 끝 간 데 없음(공간의 무한성)을 말한다. 주(宙)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 영원함(시간의 영원성)이다. 〈태극도설〉은 이 영원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모든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태극의 전개과정으로 설명하고, 이어 인간은 그 속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한다.

우주 속에 놓인 모든 것들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그 자체로 각기 하나하나 있다. 하나하나 있으면서 전체로서 어울려 있다. 우주의 큰 아우름 속에 있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 있는 것’들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없는 데(無)’서 나올 수는 없는 것이므로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그것을 ‘있음(有)’이라고 하자. 있는 것이로되 하나하나 있는 모든 것들이 나오는 궁극적 근원이므로 그것을 태극이라 하였다. 태극은 ‘있음’이지만 구체적으로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태극은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근원이고 달리 말하면 우주 자체이지만 우리가 ‘있음’을 규정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규정되지 않으므로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는 뜻으로 무극이라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무극이면서 태극이라 한 것이리라. 이황이 〈진성학십도차자〉의 첫머리에서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道無形象天無言語〕”라고 한 표현 또한 그런 의미일 것이다.

‘있음’으로서 태극의 움직임으로부터 천지만물은 비롯한다. 그 움직임 [動]을 양이라 하고 움직임의 상대인 고요함 [靜]을 음이라 한다. 이 음과 양은 만물이 생겨나는 실마리이며 모든 변화의 기본요소이다. 음과 양은 서로 견주고 겨루면서 같이 있다. 양 속에 음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으며 서로 뿌리가 되어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시작되고 음이 극한에 이르면 양의 싹이 튼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 음과 양의 다양한 결합으로 수화목금토 오행(五行)의 다섯 가지 성질이 생겨난다. 전통적으로는 음양을 기(氣)로, 수화목금토 오행의 다섯 가지 성질을 질(質)로 보아 기질이라고 하는데, 이 기질을 바탕으로 하나하나의 사물이 각기 나름의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음양의 성질은 햇볕은 양, 그늘은 음, 하늘은 양, 땅은 음, 남성은 양, 여성은 음, 강한 것은 양, 부드러운 것은 음과 같이 서로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오행의 다섯 가지 성질은 서로 낳기도 하고 [相生] 서로 배척하기도 [相克]하는데 방위, 인간의 장기, 맛, 소리, 빛깔, 인간의 도덕 등에 배당되어 전통적으로 다양하게 세계와 사물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를 간단히 도표로 나타내면 <표1>과 같다.

물론 어떤 한 사물의 드러난 특성도 음양 두 가지 기운의 다양한 결합의 한 결과이고, 오행의 다섯 가지 성질 또한 음양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모든 사물에는 음양의 측면이 있고 오행의 성질이 다 들어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사물이 양의 성질을 지녔다든가 음의 성질을 지녔다든가 하는 것은 실은 어떤 사물에 있어서 음 혹은 양의 측면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 음양의 두 측면이 다 있는 것이고, 수의 성질, 화의 성질 목의 성질을 지녔다고 하는 것도 다섯 성질 중의 한 성질이 더 특별히 겉으로 드러나 보일 뿐 오행의 다섯 성질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행은 음양에서 음양은 태극에서 나온 것이므로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그리고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우주적 근원으로서의 태극이 전개된 결과물이다. 주돈이는 무극의 참된 본체와 음양 오행의 속 알갱이가 신기하고 묘하게 결합하여 하늘의 도는 남성을 이루고 땅의 도는 여성을 이루어 천지의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의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낳고 낳아 그 변화가 끝이 없다고 하였다.

태극은 이치이고 본성이다.
성리학자들은 이 구절을 우주의 근원으로서 태극이 음양오행의 결합과 함께 만물을 이루는 과정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태극은 하나하나의 사물에 그 사물의 이치로 존재하면서 그 사물의 본성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 이치가 사물의 결이다. 이치는 음양오행의 기질로 이루어진 사물에 함께 있으면서 그 성격을 규정한다. 모든 사물은 그 기질의 성격과 결에 따라 스스로 낳고 낳으며 변화해간다.

요즘 온 산하에 햇잎들이 정신없이 돋아난다. 정신없다는 표현은 인간의 지나친 욕망으로 우주적 질서와 조화가 흐트러져서 기온이 시절에 맞지 않게 초여름처럼 올라갔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찍 돋을 녀석은 일찍 돋고 늦게 돋을 녀석은 제 알아서 늦게 돋는다. 기질과 결을 따르기 때문이다. 햇볕이 드는 양지쪽에 자리한 녀석은 양지의 환경에 맞추어, 그늘이 지는 음지쪽에 자리한 녀석은 음지의 환경에 맞추어 자연스레 움직인다. 각기 자신 안에 있는 음양오행의 기질과 밖의 음양오행의 움직임을 맞추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결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여하튼 우리 인간도 어떤 사물을 이해하고 느끼고 만나려면 그 기질의 성격도 알아야하고 그 결 또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천지 음양의 두 기가 서로 얽혀서 만물이 생겨나는 중에 가장 빼어난 기를 받아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기가 맑고 순수하여 그 안의 결 [태극이며 이치이고 본성이다]이 밝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됨으로써 우주만물과 인간의 존재원리를 이해하고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이루어지면 동시에 신묘한 지각능력이 발휘되게 된다. 인간의 결인 본성은 인 ․ 의 ․ 예 ․ 지 ․ 신이다. 인간의 지각능력이 결 따라 감응하면 선함을 이루고 결을 거슬러서 움직이면 악에 빠지게 된다.

성인은 결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성인은 인간의 결인 본성에 따라 알맞음과 바름(中正), 인의의 도덕을 정한다. 성인은 마음을 고요히 하여 무욕의 상태에 이르러 사람이 행해야 할 도리의 표준(人極)을 세운다. 성인은 결대로 행하므로 행하는 일마다 자연스럽고 도리에 맞는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이치와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경지이다. 인간이 우주의 이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인간이 바로 우주 만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천지의 덕과 하나가 되며, 해와 달처럼 밝으며,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레 순환에 맞추어 사물과 만나는 것이다.

태극은 결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인이 아니다. 비록 성인의 경지가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그런 경지라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하고 성실한 수양의 결과인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이치와 그 이치를 같이하는 존재이므로 우주와 만나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한다. 우주를 만나고 우주의 이치와 하나가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바로 군자이다. 군자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므로 길한 것이다. 소인은 반대로 결을 거슬러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므로 흉한 것이다.
목재 다듬는 것으로 비유를 해보자. 모든 목재에는 각기 나름대로의 결이 있다. 목재를 다룰 때 결 따라 다루면 순조롭고 힘도 덜 든다. 반대로 결을 거슬러서 다루려 하면 힘은 힘대로 들고 목재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는다. 결의 반대방향을 엇결이라고 하는데 엇결 방향으로 목재 다루는 칼이나 끌을 들이밀면 견디지 못한 목재는 뭉텅 뭉텅 뜯어지거나 찢어지고 만다. 목재가 다듬어지기는커녕 망가지는 것이다.

결과 엇결을 구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느껴보고 실천해보아야만 자연스레 알게 된다. 결 따라 가거나 결대로 행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나의 결과 만나는 대상의 결이 근원적으로는 같은 것이지만, 음양과 오행이라는 기질의 바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만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나무 다루는 일로 비유를 해보자. 목재를 다룰 때, 목재 다듬는 목공 끌이 탄소강처럼 강한 성질만을 지니면 나무의 결이 끌을 튕기거나 아니면 끌이 미끄러진다고 한다. 목재가 강한 성질을 지니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목공 끌은 한 면은 연한 쇠, 한 면은 강한 쇠를 붙여 만든다고 한다. 연한 쇠의 부드러움으로 다독거리면서 강한 쇠의 단단함으로 결을 파고들어 원하는 모양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즉 음과 양으로 대상의 음양의 측면을 만나면서 결을 찾아 가는 것이다. 나무를 쪼개 지붕을 덮는 너와집을 지을 적에 톱으로 나무를 켜서 지붕을 덮으면 그 나무가 빨리 썪는다고 한다. 나무의 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도끼나 자귀를 써서 나무를 쪼개 덮어야만 지붕이 오래간다. 도끼나 자귀는 나무의 결을 따라 쪼개므로 결을 적게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결대로 살아가려면 마음이 결을 따라야 한다. 그러려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하고 억지로 하려는 마음은 욕망의 노예가 된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서는 나의 결도, 상대방의 결도, 사물의 결도 결코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수 없다. 만날 수 없을 뿐 아니라 망가뜨리기 십상이다. 나도 망가지고 상대도 망가뜨리고 사물도 부수고 천지자연의 질서도 해친다. 공경스러운 마음만이 욕망의 노예상태를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이를 사랑으로 만나고 사물과 밝게 만나 나와 사물사이의 간격이 없어지고 우주의 아우름과 하나가 되는 성인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우주적 질서와 조화가 흐트러졌다. 인간이 결을 거슬러 가며 파괴했기 때문이다. 산에 물길을 억지로 만들고 배를 끌고 올라가려 하면 안 된다. 엇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우주인이 탄생했다고 환호하기에 앞서 우선 내 안의 우주적 존재원리 사랑의 원리를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살펴 볼 일이다.

제 2 서명도 - 나는 누구인가?-

성학십도의 두 번째 그림 〈서명도>는 북송시대 장재(張載; 1020~1077)가 지은 〈서명>을 원나라 때의 정복심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장재의 자는 자후(子厚)요, 호는 횡거(橫渠)이다. 주돈이와 마찬가지로 북송의 다섯 선생 중 한사람이다. 기철학을 다룬《정몽(正蒙)》이라는 저서가 있고 <서명(西銘)>이라는 유명한 글이 있다. 장재는 기일원론을 주장한 기철학자이다. 서명은 앉는 자리의 오른 쪽 벽에 붙여 놓은 글이라는 뜻으로 일종의 좌우명이다. 서명은 원래는 정완(訂頑: 고집스럽고 어리석음을 바로잡음)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역시 북송 다섯 선생의 하나인 정호가 이를 보고 크게 칭찬하고서 서쪽 벽에 붙여 놓고 〈서명>이라 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이름을 〈서명>으로 고쳤다고 한다. 정호와 정이는 “〈서명>은 지극히 순수한 글로서 역사상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학자는 없었다.”고 극찬하였다. 정이는 〈서명>을 이일분수(理一分殊 : 우주의 보편적 이치는 하나이지만 개별 사물에 있어서는 그 이치가 달리 나타난다.)의 의미로 해석하였다. 〈서명>에 보이는 도덕적 실천의식을 ‘사랑의 원리는 하나이지만 그 대상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일분수설은 주희에 의해 성리학 이기론의 기본명제가 되었다. 또한 장재의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은 성리학 심성론의 기본명제가 되었다. 성리학 이기심성론의 기본명제 두 가지가 모두 장재의 학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철학자인 장재의 사상이 리 중심의 철학인 성리학의 기본명제가 되었다는 사실은 좀 야릇하기도 하다.

천지만물의 이치가 하나이다.
이황은 《성학십도》를 임금에게 올리기 한 달 전 임금 선조 앞에서 〈서명>에 대하여 강의하면서, “횡거의 〈서명>은 나의 이치와 천지만물의 이치가 본래 하나라는 것을 거듭 미루어 밝힌 것입니다. 인의 모습〔體〕을 그려내어 ‘나만’이라는 사사로움을 벗어나 ‘더불어 함께하는 나’라는 우주적 아우름의 경지를 엽니다. 돌과 같은 완고한 마음을 잘 녹여 환히 트이게 하고 남과 나 사이에 간격이 없게 해서, 조그만 사사로움도 그 사이에 용납되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이 한 집안이 되고 온 나라가 한사람이 되어 남의 괴로움과 아픔이 내 몸에 절실히 느껴져서 사랑의 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완이라 이름하였으니 그 고집스럽고 어리석음을 고쳐서 착하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라 하였다.
그러면 앞의 태극도와 마찬가지로 장재의 〈서명>을 원문번역의 형태로 옮겨 놓고 그 의미를 이황의 뜻을 참작하여 풀어보기로 한다. 그 번역문은 다음과 같다.

건(乾)을 아버지라 일컫고, 곤(坤)을 어머니라 일컫는다. 나〔予〕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서 혼연히 그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에 가득 찬 것〔氣〕이 나의 몸을 이루고, 천지를 이끄는 원리〔理〕는 나의 본성이다. 사람들은 나의 형제이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사는 무리이다. 천자는 나의 부모〔乾坤=天地〕의 맏아들이고, 그 대신들은 맏아들의 가신들이다.
나이든 이를 높이는 것은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는 것이고 외롭고 약한 사람을 자애롭게 대하는 것은 어린 아이를 어린 아이로 대하는 것이다. 성인은 그 덕이 천지의 덕과 합치하는 사람이고, 현인은 그 덕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빼어난 사람이다. 무릇 천하의 노쇠하고 지친 사람이나 병들고 상한 사람, 형제가 없이 독신인 사람과 늙어서 자식이 없어 외로운 사람, 아내가 없는 홀아비와 남편이 없는 과부는 모두 나의 형제 가운데 어렵고 괴로운 처지에 놓여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들을 잘 보양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로서 부모를 공경함이오, 즐기면서 근심하지 않는 것은 효성에 순수한 것이다. 천명을 어기는 것을 패덕이라 하고 인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한다. 악한 행위를 이루는 자는 못난 자이며, 천성에 따라 행하는 사람은 부모를 닮은 것이다. 천지의 조화를 알면 그 일을 잘 따를 수 있고 그 신묘함을 궁구하면 그 뜻을 잘 이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도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음이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르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데 게으르지 않음이다.
맛있는 술을 싫어하는 것은 우(禹)가 어버이를 돌보기 위함이었고, 뛰어난 인재를 기르는 것은 영고숙(穎顧叔) 같은 무리가 길이 이어 나기를 바라서다. 고통을 받아도 효성의 마음을 게을리 하지 않아 마침내 부모를 기쁘게 한 것은 순(舜)임금의 공이며, 도망가지 않고 죽음을 기다린 것은 신생(申生)의 공경이다. 부모가 주신 몸을 온전하게 가지고 살다가 죽은 사람은 증참(曾參)이며, 부모의 말씀을 용감히 따라 명령에 순종한 사람은 백기(伯奇)다.
부귀와 행복은 장차 나의 삶을 두터이 할 것이며, 빈천과 근심 걱정은 인간을 완전하게 이루려 하는 것이다. 나를 잘 보존하고 일을 순리대로 하여 편안히 죽으려 한다.

나와 만물 사이에 차별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같다. 나는 혼자인 개별적 존재이며, 어울림의 사회적 존재이고, 아우름의 우주적 존재이다. 나는 사회적 우주적 관계망 속의 나이다. 나는 나 홀로이나 나의 관계망을 떠날 수는 없다. 나는 나와 사회와 우주와의 만남을 통하여 나를 인식하고 규정한다. 그리고 그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같은 문제일 수 있다. 장재의 서명 또한 이 물음에 대한 그의 진지한 대답이다. 서명의 서술에서 주어는 ‘나’이다. 그리고 짧은 그 글 속에 ‘나’라는 말이 아홉 번이나 나온다.

건곤(乾坤=천지; 우주)는 ‘나’의 부모, 곧 ‘나’의 생명의 근원이다. ‘나’는 천지의 아들로 그로부터 생명을 받은 존재이다. 만물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천지에서 생명을 받은 것처럼 만물 역시 천지에서 생명을 받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만물과 더불어 천지 가운데 혼연히 존재하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혼연히 있으므로 나는 독자성 개별성으로 만물과 구별되지 않는다. 같이 천지에서 생명을 받았으므로 나와 만물 사이에 차별은 없다. 만물은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무리〔物與吾也〕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만물을 사랑〔愛物〕해야 한다.

나의 몸을 이루는 것은 천지에 가득 차 있는 기(氣)이며, 나의 본성은 천지를 이끄는 원리이다. 나는 형체와 본성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이는 인간은 육체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견해를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와 만물은 형체가 다르다. 형체가 다르다는 것은 인간과 사물이 천지 가운데 혼연히 같이 있으면서도 구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본성을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도덕적 실천의 근거를 마련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재는 인을 본성으로 삼아 행동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인간과 사물을 구별하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같은 형체와 본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나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의 형제〔民吾同胞〕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다른 사람을 사랑〔仁民〕해야 한다.

나의 본성은 사랑이다.
나는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나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관계 속의 나이다. 나와 사회적 관계 가운데 첫 번째는 천지의 맏아들인 임금과 그 신하인 대신과 나와의 관계이다. 즉 군신관계 속의 나이다. 두 번째는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적은 사람과 나와의 관계이다. 즉 장유관계 속의 나이다. 세 번째는 성인, 현인과 나와의 관계이다. 네 번째는 늙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불행하거나 소외된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와 나와의 관계이다.
나는 임금과 대신에 대해서는 충성을 해야 하며 어른과 어린아이와의 관계에서는 차례를 잘 지켜야 하고, 성현과의 관계에서는 성현을 존중해야 하며, 사회적 약자와의 관계에서는 그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배려해야 한다. 위와 같은 충성, 차례의 준수, 성현의 존중,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꿰뚫고 있는 것은 천지의 존재원리이자 나의 본성인 사랑〔仁〕이다.

그런데 장재는 사랑의 원리를 부모에 대한 사랑인 효로 묶어 내고 있다. 이는 유학적 전통과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천지와 사회를 크나큰 가족의 틀로 이해한 데서 나온 생각이다. 그러나 효란 부모와 자식이라는 혈연사이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 어찌 보면 원초적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는 덕목이다. 그러므로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실천의 영역에서 보자면 효는 자연스러운 친애의 감정으로 어버이를 어버이로서 섬기는〔親親〕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덕목이다.

나의 본성이자 사랑의 원리인 인은 내가 만물을 사랑함에도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도 부모를 사랑함에도 모두 원리로서 작용한다. 그러나 만물을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모두 실천 영역의 속성이 다를 뿐 아니라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는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랑의 원리는 천지만물을 꿰뚫어 흐르고 있는 것이므로 사랑의 실천도 천지만물을 꿰뚫어 널리 실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구체적으로 맺어진 폭 좁은 관계 속에서만 사랑이 실천되기 마련이다. 사랑의 보편적 실천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다 보면 구체성이 없어 공허해지고, 현실적 관계 속에서의 실천에만 매달리면 사랑이 가까운 주변만 맴돌아 사사로워진다. 그래서 장재는 실천의 단계를 두고 있는데, 그 단계는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는 것〔親親〕에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仁民〕에 이르고 궁극적으로는 천지만물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데〔愛物〕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는 《맹자》에 나오는 말을 빌린 것인데 맹자적 사고로 말하면 “작은 샘물에서 시작하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르는 것”과 같다.

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는 언제나 ‘나’이다. 사랑은 나의 본성이자 천지만물의 존재 원리이며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덕이다. 사랑이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실천되는 사랑의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 내 마음이 천지만물의 마음이 되면 사랑의 실천은 ‘나만’이나 ‘사사로운 관계 만’에 머물지 않는다. 사사로운 마음의 나에서 우주의 마음을 지닌 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황은 성인의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우주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우주의 마음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욕망이다. 물론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므로 욕망이 없을 수는 없다. 배고픔과 같이 내가 나의 욕망을 느끼는 가장 단순한 순간은 동시에 가장 엄숙한 삶의 몸짓을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마음이 빚어내는 삶의 몸짓을 벗어나는 욕망이다. 욕망이 지나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 내가 욕망의 노예가 되는 순간 모든 관계에서 사랑의 원리와 실천, 더불어 함께함은 사라진다. 인간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그 결과 인간사회는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힘든 약자로 구성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는 모든 일들이 그렇고, 전 세계의 국가 사이에서 빚어지는 일들이 또한 모두 그렇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그런 현상이 드러나고 있지만, 앞으로 반드시 우리 삶의 바탕인 환경, 즉 천지만물의 질서는 파괴된다.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면 돌아올 것은 천지만물과 인류의 동반파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황이 마음을 경건하게 지니고 사사로운 욕망을 벗어나 우주의 마음이 되는, 성인이 되는 학문에 나아가기를 강조한 뜻을 되새겨 보아야 할 일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