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커우와 리시마을(글/임세권-안동대 교수)
처음 황산시에 있을 곳을 정한 후 아직 방학이라 황산시에 머물고 있던 안휘대학 휘학연구중심의 류보산 교수는 나를 데리고 시디마을로 갔다. 그는 가는 도중 이현 현정부부터 찾았다. 차를 세워 놓고 혼자서 현정부 건물로 들어간 류 교수는 한참 뒤에 나와서 “이제 일 년간은 이현을 돌아다니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임 교수가 이곳을 다닐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허가를 받아 놓았어요” 라고 했다. 이 지역을 다니는데 행정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되는 것인지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이현 뿐 아니라 셔현(歙縣)이나 또는 그 밖의 여러 곳을 다니는데 특별히 이와 같은 허가를 얻을 필요는 없었지만 아마도 정식으로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행정적 절차를 거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인 듯 했다.
그런데 외국인이 여행 허가를 받을 수 없는 곳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치먼현(기문현,祁門縣)이었다. 그 이유는 치먼현에 군사기지가 있어서 외국인들에게는 아직도 개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치먼현을 제쳐놓고 일단 쉽게 갈 수 있는 지역부터 다녀보고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치먼현 답사를 하기로 했다.
그 후 황산시 지방지편찬을 맡고 있는 자이툰지앤 선생도 여러 차례 치먼현은 내가 혼자 갈 수 없으니 자신이 그쪽으로 출장갈 때 함께 가도록 연락을 취해주기로 했고 그래서 나는 치먼현은 아예 가는 것을 맨 뒤로 보류해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황산에 온 뒤 봄과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도 무르익은 10월이 다 지나갈 무렵, 나는 더 늦기 전에 치먼현을 답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류 교수는 허페이의 안휘대학에서 근무 중이고 자이선생도 치먼현을 가자는 내 부탁에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나는 마침 대구 동구청에서 황산시로 장기파견을 나와 있던 김종호 선생에게 치먼현에 갈 수 있는 통행증을 황산시정부에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김 선생은 뜻밖의 소리를 전했다.
“교수님. 치먼현의 외국인 통행제한은 이미 작년에 해제되었답니다. 이제는 아무나 갈 수 있대요. 저도 가보고 싶은데 가실 때 저랑 함께 가시죠.”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바로 황산시 정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자이선생도 통행증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벌써 작년에 해제가 되었다니? 아마 중국인은 외국인 통행 제한과 관계가 없고 또 황산시를 찾은 외국인들이 치먼현을 안내해달라는 사람도 없었을테니 비록 공무원이라 한들 직접 담당하지 않은 업무라면 통행제한이 해제되었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좀 허탈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제라도 가보면 되는 것이라 그로 인해 크게 손해 본 것도 없으니 당장 주말에 가기로 마음먹고 김 선생과 약속을 했다. 자료 몇 권을 살펴보고 답사 지역을 정한 곳은 주커우(渚口)와 리시(歷溪)이다.
이 두 마을은 하루에 다녀왔으나 일단 따로 따로 나누어 소개하려 한다.
육지 속의 섬 주커우 마을
주커우 마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황산시의 툰시 버스터미널에서 치먼의 현성(縣城) 즉 현정부 소재지까지 약 70킬로미터로 한시간 반 정도를 가야하고 치먼의 현성에서 다시 주커우까지가 약 30킬로미터이다. 주커우까지는 버스가 자주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치먼 현성에서 주커우로 가는 길은 큰 산고개를 꼬불꼬불 넘어야 하는 험로였는데 길의 좌우는 차밭으로 개간되어 있고 산은 험해보였다. 치먼현은 차로 유명한 휘저우 지역에서도 홍차의 산지로 유명하다. 휘저우 지역의 양대 명차는 황산마오펑(黃山毛峰)과 타이핑허우퀴(太平猴魁)로 알려져 있다. 이 둘은 중국 팔대명차에 들어간다고 하니 이미 그 명성이 중국 전역에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치먼 사람들은 이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치먼 홍차야말로 이 양대 명차보다 오히려 더 뛰어난 명차임을 그들의 자존심을 걸고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치먼홍차는 향기가 뛰어나서 세계 삼대 고향명차(高香名茶)로 사랑받는다고 하며 일반적으로는 치홍(祁紅)으로 줄여서 더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전하는 말로는 영국여왕이 매일 아침마다 이 치먼홍차를 마신다고도 하니 그들이 이 홍차를 자랑하는 내력을 이해할 만 하다.
주커우 마을은 지금까지 가 보았던 관광지화된 여느 마을처럼 입장료도 없었고 도로도 지저분하고 집들은 모두 무너지기 직전의 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중국의 피폐한 농촌 모습 그대로였다. 이현(이현,黟縣)과 셔현(흡현,歙縣), 슈닝현(休寧縣)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깨끗하게 정돈된 마을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휘저우 지역의 모든 마을들이 관광개발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여기서는 먼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택시기사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정일당이라는 집을 찾으려고 여기 저기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 몇 번을 물어서 겨우 좁은 골목길을 돌아 돌아 우리를 안내했다. 큰 길에도 골목길에도 마을을 대표하는 고건축이고 이 마을의 큰 사당인 정일당을 안내하는 푯말은 볼 수 없었다.
“이곳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이현이나 셔현과는 매우 다르군요. 마을도 낡았고 안내판도 없구요.”
내 물음 아닌 물음에 운전기사는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나도 이곳에는 처음 차를 세웠어요. 현성에서는 주로 관광객을 태우게 되는데 이곳을 목적지로 찾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래도 치먼을 소개하는 안내서에는 주커우와 리시 두 마을을 가장 먼저 소개하던데.....”
“치먼은 군사기지 때문에 오랫동안 관광개발이 되지 못했어요. 이현이나 셔현이 관광개발로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이곳은 여전히 낙후된 농촌이지요. 사람들의 삶이 아주 힘듭니다.”
지금까지 이곳으로 오고자 하는 나를 훼방놓던 그 군사기지는 내 발목을 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이곳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곳 주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주커우는 삼면이 물로 둘러쌓여 있다. 그래서 “계곡물이 휘돌아 나가고 물그림자가 둘러친 것이 비단과 같고 마을 뒤에 산봉우리가 막아선 것이 성과 같다”고 했다. 이런 지형상 특징 때문에 마을은 “진청(금성,錦城)” 즉 비단마을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마을 뒷산은 라이롱산(來龍山)이라 하고 마을 앞을 흐르는 내는 다베이허(大北河)라고 한다. 다베이허의 물은 동에서 마을로 들어와 마을앞을 둥글게 돌아서 서쪽으로 빠지는데 이러한 지형 때문에 마을은 마치 섬과 같이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의 주요 성씨는 니(예,倪)씨, 우(오,吳)씨, 후(호,胡)씨 등 세 성씨이다. 마을 안의 200여호 가운데 니씨가 가장 많아 약 85퍼센트를 차지한다. 역사상, 주커우 니씨(渚口倪氏)는 무과 1명 진사 3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이는 니씨가 휘저우의 공인된 명문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치먼門)의 니씨 시조는 당나라 희종(僖宗) 건부(乾符,874~879)년간의 대사마 병부상서였던 니캉민(倪康民)이다. 니캉민은 향민들을 모아 황소의군(黃巢義軍)을 격퇴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 등의 높은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국이 어수선하여 니캉민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집안을 이끌고 셔저우(흡주,歙州)의 황둔(황돈,黃墩)에서 치먼의 서쪽 이추안(伊川)으로 옮겼다. 그 후 니씨의 칠대조 니이셩(예일승,倪一升)이 이곳에서 다시 주커우 마을로 이주하여 지금의 주커우 니씨가 자리잡은 것이다. 니이셩은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였고 또 의술과 점술에도 정통했다. 조정에서 간신들이 정권을 잡는 것을 보고 종신토록 벼슬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허산(화산,禾山) 언덕에서 은거하면서 스스로 무심거사(無心居士)라고 호를 지었다.
자본주의 체제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겠지만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황소의 난과 같은 농민 반란은 당연히 역사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런 농민 반란을 평정한 니캉민은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리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에 온 후 몇 군데의 마을을 다니며 느낀 것은 과거의 봉건시대에 황제에 충성하고 높은 벼슬을 한 봉건관료들의 선조를 둔 것은 지금 그들의 후손인 마을 사람들에게 커다란 긍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어서인가? 아니면 조상을 기리고 예찬하는데는 이데올로기가 작용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황소의 난은 당나라 휘종을 쓰촨성으로 쫓아내고 장안을 손에 넣은 후 황소는 황제가 되었고 국호를 대제(大齊)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하여 소위 “대체정권(大齊政權)”을 성립시켰다. 그들은 부패한 황권에 저항하여 난을 일으켰으나 그들 역시 황제가 되어 이전의 전제적 정권과 다를 바 없는 봉건전제적 정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황소의 난으로 탄생한 대제정권은 지금 중국에서도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했다. 황소의 난을 평정한 병부상서 니캉민은 과연 마을의 후손들에게 자랑거리인가? 아닌가? 잠깐 부질없는 생각이 스쳤다.
니씨 문중의 사당 정일당(貞一堂)
골목을 몇 번 꺾어져 들어간 곳에 넓은 광장이 있고 광장의 북쪽에 남향으로 앉은 낡고 고풍스러운 사당이 햇볕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대문이 달린 남쪽 회랑 밖으로 “상서(尙書)”라는 현판이 걸렸다. 현판은 붉은 바탕에 검은 먹으로 글씨를 썼는데 명나라 때 니쓰휘(倪思輝) 진사가 난징(南京)의 호부상서(戶部尙書)와 여러 벼슬을 한 것을 기념하여 나라에서 내려준 현판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판은 없어지고 현재의 현판은 2001년 8월에 새로 만든 것이다. 이 집이 이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정일당이다.
정일당은 니씨 문중의 사당이다. 남향을 한 이 집은 1267평방미터의 터를 잡았다. 지붕을 받친 기둥이 모두 108개이고 이는 36개의 천강성(天剛星)과 72개의 지살성(地煞星)을 의미하며 가문이 대대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사당 대문 옆에는 “이현청(黟縣靑)” 즉 이현에서 나오는 청석으로 만들어진 포고석(抱鼓石)이 한 쌍 세워져 있다. 포고석에는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용과 봉황의 그림(용봉증상,龍鳳呈祥)이나 아들을 낳게 해주는 기린(기린송자,麒麟送子) 등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사당이 보이며 좌우에는 양쪽으로 상방(廂房)이라고 부르는 곁채가 있고 가운데로 통로가 있다.
중앙의 정청(正廳)은 이 건물의 주체부에 해당된다. 10개의 나무기둥은 두 사람이 팔을 맞잡을 만큼 굵고 컸다. 정청은 넓을 뿐 아니라 높은 천정으로 인해 들어선 사람들에게 웅장한 느낌을 준다. 여기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와 축제가 거행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사자춤 등 연희가 행해진다고 한다. 그 때 쓰는 것인지 사당 건물의 아래 쪽 회랑 구석에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문 사자 모형 한쌍이 놓여 있었다. 정청의 위쪽 높이 정일당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정청을 돌아 뒷편으로 들어가면 먼저 물이 고여 있는 장방형의 석조 연못이 있는데 한 가운데 돌다리가 있어서 연못을 둘로 나누고 있다. 동쪽과 서쪽의 천지(天池)라고 부르는 연못은 난간으로 둘려져 있는데 각각 돌기둥 10개와 난간 하부를 막아 놓은 석판인 난판(欄板) 10개로 이루어졌다. 어떤 석주 위에는 사자가 올려져 있는데 어떤 것은 어린 사자를 어루만지고 있고 또 어떤 것은 수놓은 공(繡球)을 가지고 논다. 동서천지의 북측에는 각각 3개씩의 안판이 있다. 양쪽의 중간에 있는 하나씩의 난판에는 거액을 들여 이 건물을 중건한 상영공(尙榮公)과 그 부실(副室) 김씨(金氏)를 기리는 글을 새겼다. 그 글의 양쪽에는 “해를 향해 뛰어 오르는 잉어(鯉魚噴日)”, “연못에 내려 앉는 기러기(雁落荷池)”, “오래토록 장수하는 소나무와 학(松鶴延年)” 그리고 “언제나 푸르게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松柏長靑)”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천지를 지나 삼단의 계단을 오르면 침당(寢堂)이다. 이는 선조의 신위를 모시며 또 조상에게 바치는 물품을 진설하는 곳이다. 침당 양쪽에는 각 한 칸씩의 상방이 있는데 위에 오르면 멀리까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니씨는 문중 사람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매년 정월 초하루 전 문중이 모여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서로 세배한다고 하는데 세배 후에는 족장 즉 문중의 어른이 떡을 돌린다. 떡은 수재(秀才:과거응시자), 거인(擧人:향시에 합격한 사람), 진사(進士:궁중에서 보는 과거에 합격한 사람) 등에 따라 등급을 정하여 분배하는 숫자가 달랐다고 한다. 가장 높은 등급은 떡으로 탑을 쌓았다고 한다. 만일 공부를 하고 무예를 익혀 출세를 하게 되면 니씨 가족은 아주 융숭한 표창을 하고 기를 꽂는 돌 받침대를 한쌍 만들어 그 측면에 이름을 새겨서 사당 문 입구의 양쪽에 두었다. 그리고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거기에 붉은 기를 꽂았다. 현재 정일당 문 앞에는 모두 18쌍의 돌받침대가 열을 지어 있어서 이 문중이 과거에 얼마나 크게 위세를 떨치고 있었는지를 말해준다.
명청대의 중국 역시 우리 한국에서처럼 과거의 합격이 문중의 명예를 높이고 그를 외부에 드러내기 위해 큰 사당을 짓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에서 지역을 지배하는 권력을 누렸음을 이런 사당 건축물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일당처럼 이제 과거의 영화가 그냥 지나간 영화였을 뿐 지금 그 후손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짐으로만 남게 된 것을 우리는 대부분의 마을들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몇 몇 관광지화한 마을들에서만 적지않은 관광수입으로 조상덕을 볼 뿐이었다.
그러한 사당이나 서원이 과거의 영화를 말해주고 그래서 지금 살아남은 후손들에게 그들의 가문을 외부에 내세우는 물적 증거가 되기는 하지만 이제 중국에서 새로 돈을 벌었다고 해서 이런 사당건물이나 서원건물을 새로 짓는 일은 없다. 그것은 그 건물들이 지금와서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안동일대를 다니다 보면 한국에서는 지금도 돈 좀 번 후손들이 과거에는 없었던 사당과 서원을 어마어마하게 건축하고 새삼 문중의 위세를 내세우는 일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는데 이야말로 이 건물들이 얼마나 현 시대에 적합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첩실의 신위까지 모시는 서모사(庶母祠)
사실 정일당은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수난을 많이 당한 사당건축이다. 이 건물은 명초에 건립되었는데 청병이 들어와 불을 질러 많은 부분 소실되었다. 청 강희(康熙) 12년(1673) 문중사람 니종웨이(倪宗維)가 정일당을 중수할 것을 발기하여 강희 14년(1675) 정일당이 중건되었다. 선통(宣統) 2년(1910) 정월 16일 문중사람들이 사당안에 크고 화려한 등불을 설치하고 폭죽을 터뜨렸는데 그로 인해 정일당에 화재가 일어났고 그래서 정일당을 중건하는 중책이 또 다시 니씨 문중에 떨어졌다. 그래서 문중사람 니샹롱(倪尙榮)이 나서서 출연하여 다시 중건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은 관리가 되지 않아 보기에는 엄청 오래된 듯 해도 이제 100년이 채 안된 셈이다. 그러나 주춧돌이나 석재로 된 부분은 옛 그대로 남은 부분이 많이 있어 명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마을에는 정일당 이외에 본래 여성을 위해 세운 사당 서모사(庶母祠)가 있다. 전에 소개한 바 있는 셔현(歙縣) 탕위에 마을의 여사(女祠)를 소개한 적이 있지만 여성을 위한 사당은 휘주 지역에서 매우 드물게 보이는 것이다. 서모사는 청말에 세워졌으며 전체 면적이 400평방미터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편이다. 사당 대문을 열면 위로 서모사라는 큰 글씨가 붙어 있고 사당안에는 조용한 분위기가 풍기는 정원이 있고 정원 안에 동서 양쪽에는 버드나무와 잣나무가 심어져 있다. 잣나무는 잣나무를 뜻하는 백(栢)자가 백(百)과 발음이 같아 백년동안 화목하게 지낸다는 의미에서 심은 것이며(百年和好), 버드나무는 버드나무를 뜻하는 류(柳)자가 흐를 류(流)와 발음이 같아서 훌륭한 명성을 천고에 남긴다(流芳千古)는 뜻에서 심은 것이다. 중국인들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건축과 조경 등에 응용하는 솜씨는 참으로 놀랄만하다.
건물의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는 대당(大堂)은 넓고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동서 양쪽에는 곁채가 한칸씩 있다. 대당의 복도 양쪽 벽은 나무 판자로 막혀 있으며 나무판자는 움직일 수 있어서 판자 안에 여러 명의 첩실들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처럼 첩실의 위패까지 모시고 있는 것은 명청대 이 지역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상업이 주업인 집안의 남자들은 결혼하면 바로 집을 떠나 장삿길에 나서기 때문에 집안의 힘든 일은 물론 부모를 모시는 일 그리고 자녀를 키우고 농사를 짓는 일까지 모두 여성의 몫이었으니 이들을 위한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주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마을의 민가를 대표하는 “신옥리(新屋里)”
정일당과 서모사를 나와 좁은 골목 안으로 돌아가면 골목 안쪽으로 아름다운 벽돌조각예술품을 이고 있는 큰 대문을 보게 된다. 정일당이 사당건축으로 그 위용을 자랑한다면 이 집은 민가 살림집으로서의 위용을 뽐낸다. 주커우에서는 정일당만큼 유명한 고건축으로 “일부육현(一府六縣)”이라 부르는 건물이다. 주커우 사람들은 이 집을 “신옥리(新屋里)”라고도 부르는데 청나라 동치(同治)년간 갑술과(甲戌科)에 합격한 진사 니왕중(倪望重)의 집이다. 니왕중(倪望重)은 유년시절 잡안이 몹시 가난하여 그 어머니가 구걸을 해서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신옥리는 1884년 전후에 건립되었다. 은 일만냥을 써서 대지 1600평방미터에 세운 집이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화려하고 웅대한 집이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신옥리라는 이름은 새집과 본래 있던 옛 집을 대비하여 부른 것이라고 한다. “일부육현(一府六縣)”이라는 이름은 정청(正廳) 외에 여섯 개의 현청(縣廳)이 있기 때문이다. 정청은 소위 부청(府廳)이라고 하는데 관청을 모방해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 관청 건물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일부육현이라 한 것은 휘저우부 아래 여섯 개의 현이 있음을 상징한 것이다. 부청 즉 현청은 휘저우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듯이 모두 천정(天井:건물 내부에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광선을 받고 그를 통해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는 곳)을 통해서 통풍과 채광을 하고 처마에서 떨어진 물을 받는다. 휘저우에서 통상적으로 건물을 만드는 법으로 중간을 향해서 물이 모이도록 하여 용수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네 군데의 지붕에서 빗물이 한 곳으로 모이게 하였기 때문에 사수귀당(四水歸堂)이라 한다. 이 뜻은 모든 재물이 한 곳으로 모인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신옥리의 안에는 모두 9개의 청(廳)과 18개의 방이 있고 매 부분마다 설계나 장원 또는 조화 또는 어둡고 밝은 것 또는 화려하고 소박한 것 또는 이어지고 나뉘는 것 고요한 중에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 등이 풍부한 역사를 포함하고 선명한 민속적 의미를 교묘하게 짜넣어 함께 있도록 하였다. 유교사상과 자연을 서로 교합하여 융화시킴으로서 옛 휘저우의 대표적인 민가로 꼽힌다.
신옥리의 이 방 저 방을 돌아보고 남쪽으로 난 대문으로 빠져나오는데 이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대청안에 벌여놓은 몇 가지 물건을 구경시킨다. 기념이 될 만하니 사가라는 뜻인 것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살 물건이 없다. 이 후손에게 돈 많고 힘 좋았던 조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이따금 찾는 관광객이 잔돈이라도 써준다면 고맙겠는데 그마저도 거미줄 얼기설기 쳐진 진열대에서는 가당치 않을 듯 했다.
금성기략(錦城記略)이라는 책에 주커우 14경이라는 것이 있다. 일일이 다 들 수 없기도 하지만 지금은 모두 없어져 버려서 하나하나 써본다 한들 이미 찾아볼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 주커우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14경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옛 주커우의 아름다운 풍경이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으로만 남은 풍경이 마음속엔들 얼마나 더 오래 가겠는가? 나는 주커우 마을을 떠나면서 이미 그 의미도 풍경도 모두 없어져가고 있는 안동팔경 선어대가 생각났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