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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노미 할머니의 ˝나의 옛날 이야기˝(글/백소애-편집기자, 구술/장필노미 할머니)

안동시내의 새 명소 웅부공원에는 연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날씨면 음료수 하나씩 들고 앉아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부터,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주부, 계모임 후 산책을 즐기는 중년 아주머니들까지 다양하지만 그 누구보다 웅부공원은 빈 유모차를 끌고 나온 할머니와, 지팡이에 중절모를 눌러 쓴 할아버지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입니다. 서울의 탑골공원처럼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어르신들이 혹 무료할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핑계 삼아, 말을 걸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살아온 지난날들이 궁금해서이기도 합니다. 녹록치 않은 세월 건너온, 주름 가득한 그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다 잊아뿌랬어. 기억도 안나. 어예 살았는동”
내 살아온 거는 다 잊아뿌렀어. 아 낳고 키운 것도 실지 다 잊아뿌렀어. 기억이 안나. 금방 뭘 생각해도 금방 잊아뿌지......내 고향은 봉화 춘양 서백(벽)이래. 우리 친정 아부지가 스물일곱인가 서른쯤에 열세 살인 우리 엄마를 만났어.

동네 처녀 여럿이래도 우리 아부지가 열세살 엄마만 보더래. 한 동네도 아이랬는데 그리 반했는 모양이래. 우리 외할무이가 엄마를 키울 때 얼굴이 몽실몽실하다꼬 이름을 ‘몽돌이’라고 져놨거든. 첨엔 반대를 했는데 나중엔 그냥 혼인을 시켰어. 우리 엄마는 성이 ‘정’가래. 나가 열일곱이나 차이가 나니까.......왜 부부가 결혼을 하면 잠을 자야카잖아, 글쎄 우리 엄마가 아부지가 어딜 가면 좋아갖고 춤을 췄다네. 우리 엄마는 열세 살에 시집와서 우리 형님(언니)을 열아홉에 낳았어. 둘째로 날 낳았는데 이전에는 아들이 최고 아이라, 딸만 둘을 낳고 아부지는 연세가 많으이 출생신고도 안했어. 그리 요새는 동장이라카지만 예전에는 구장이라 안했나, 구장이 와가지고 ‘왜 출생신고를 안하노’카이 그때 우리 고모가 혼자 집에 있었는데 볼일 따로 보러가기 글코하이 고모가 지집아라꼬 이름을 덜컥 지줬어. 내가 ‘장’가거든. 장필노미~라꼬. 성 하나하고 이름이 석자, 장필노미. 이렇게 져놨어. 내가 커가지고 시집을 와 살다보이 우리 애들도 날 놀려. 엄마 이름이 그기 뭐냐꼬. 놈자가 들어야 후번에 아들 놓는다꼬 그렇게 지어놨지. 글코 예전에는 아를 낳아도 잘 씻기지도 않았어. 한 사흘만에 씻기고 그랬는데, 우리 형님 났을 때도 그랬거덩. 우리 형님은 9월달에 났는데 파리가 귀에 쉬를 찌려놓은거야. 그래서 이름이 장쉬노미! 아하하하!

“남동생들이 있었는데 전부 먼데로 갔어.”
내 밑으로 엄마가 아들을 낳았어. 지금은 가들이 마카 없어. 그 밑으로 여동생은 내가 이름을 져줬어. ‘장순조’라꼬. 지금 서울 가서 잘 살고 있어. 남동생 둘은 홍역을 앓다가 죽었어. 이즌(예전)에는 홍역으로 죽기도 많이 죽었어. 내가 열세 살 먹어서 홍역을 하고나니 내 동생들도 고마 차례로 앓았어. 우리 친정서 개를 먹였는데 검둥개가 이만한 게 있어. 이눔의 개가 음력으로 시월 달에 집을 나갔어. 그고는 안 들어오이 잃어부랬다 생각했지. 근데 그 개가 정월달에 들어오더라꼬. 2월 지내고 3월 지나이 나는 홍역을 앓고 막 일났을 때였고, 내 동생들이 홍역을 한참 앓을 때였어. 우리 아부지가 그 개가 또 도망가불까봐 저어기 영양에 수비 신암이라는 데가 있거든. 거서 술도가 하 니가 있는데 거 델꼬가서 검둥개를 고만에 잡아 잡솼어. 개가 목을 홀쳐 죽잖아. 우리 동생들이 홍역을 앓고는 그 행세를 해. 개 모간지 묶인 것처럼 헥헥거리더니 괴로워하면서 죽었어. 그렇게 되더라고. 참말로 옛말 틀린 거 없다더라니, 그키 애지중지 한 아들인데, 둘다 가뿌랬지. 아부지도 괴로워하고 말도 아이랬지. 우리 엄마도 힘들어하고.

막내이 남동생은 인민군이 와서 산에다가 지뢰를 구불려놨는기라. 근데 또 이웃에 할마이들이 좀 징구스러워. 그걸 줘다가 산 두툼한데 어디 갔다놘거야. 그고는 동네 아들(애들)한테 산디배기에 뭐 그런게 있다 그카이 동네 머슴아 일곱이가, 우리 남동생 일곱 살 먹은 거, 동네 열두살 먹은 아, 열다섯 먹은 아, 전부 고만고만한 일곱이서 산엘 간거야. 지뢰를 앞에 놓고 빽 돌아앉아 나사를 건드린거야. 그게 탁 튀니까 맨짜도 없이 아 일곱이 그냥 간거야. 일곱이 그 자리에서 다 죽은거지. 나무 한다꼬 산에 간 게 지게만 덩그마니 있고. 찢어 날려온 옷이 소낭개(소나무 가지)에 걸려있어.......전부 옷을 보고 죽은 줄 알았지. 옷이 조각조각 나 있으이. 어데 시신 수습을 해내나. 그래갖고 다 잃어뿌랬지. 동리 밑에 있는 집 문이 흔들거릴 정도였어. 고게 막내랬는데 일곱 살 먹고 그키 아깝게 잃었어. 우리 엄마가 만날 눈물을 그리 흘리고 살았어.

나는 봉화 춘양에서 여 안동으로 시집왔어.”
나는 시집을 열일곱인가 열아홉인가 그때 갔어. 큰아들은 가가 잔나비띤데 그때 스물몇 먹었을 땐가 서른 다되었을 때 죽었어. 가가 3남매를 낳고 죽었어. 그래서 내가 애들이랑 손주들이랑 같이 키웠어. 그리 살다가 지금은 5형제래. 딸은 낳았는데 다 죽었어. 딸 가진 이가, 더러 애교도 있고 딸 자랑 할 때면 불부기도 해. 애들은 서울에, 인도네시아에, 중국에도 둘이 가 있고 여서는 내 혼자 살아. 영감님은 내 오십여덟에 가뿌랬어. 내 혼자 애들 학교 시키고 커서는 마구 저대로 나갔어. 애들이 오라캐도 나는 불편해. 혼자 사는 게 편해. 중국에 가 있는 넷째아들이 제일 살갑게 대해. 용돈도 주고 전화도 자주 하고 아주 효자래.

와룡 가면 오리원이라꼬 있는데 거기 중학교가 하나 있어. 그 너머에 장싯골이 있는데 거가 영감 고향이래. 내가 글로 시집왔지. 시부모님이 있었는데 같이는 안 살았어. 영감이 맏이긴 했는데 시부모님이 시동생들 데리고 가까운데 떨어져 살았어. 이전에 시집살이가 그키 힘들었다 그카더만 난 그런 건 별로 없었어. 얘기 들어보면, 밥을 다 퍼서 드가면 다 들머치고 그랬다는데 그런 건 없었어. 대신에 영감님이 말썽이랬어. 농사를 열심히 지을때사 잘됐지만 노름에 빠졌어. 그래서 고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래. 애들 밥을 못해줄 지경이랬어. 벼농사를 짓는데 이전에는 장내라꼬 있었어. 쌀을 꿔서 먹는 건데, 한말 가져가면 반말 달아 주는거야. 그래 내어먹고 살았는데, 아주 몸써리 났어. 영감님 죽고는 농사를 안졌어. 애들도 커서 나가고 했으니까. 내보다 여섯 살 더 먹었으니 영감님이 예순넷에 갔어. 그리 가도 적적하고 근것도 이제는 몰겄어. 하도 속을 쎅여 그런동, 세월이 이래 지나니 그런동, 이제 다 잊어뿌랬어.

6.25사변 때는 신대라는 데에 있었는데 생각해보믄 참 어리석었어. 살림살이 다 놔두고 먹을 것도 없는 산에는 왜 들어갔을꼬. 며칠 피난 댕긴 적은 있어. 기억이 가물가물해. 결혼해서 남매 델꼬 고생 많을 때였지.
일제시대 때, 그때는 영감이 아이고 신랑이지. 하하하. 그때는 위안부 끌려가니도 있었잖아. 그 시절에, 우리 영감도 끌려갔다 왔었어. 가서 노역을 하고 왔지. 그땐 나물 뜯어가 먹고 죽쒀갖고 먹고 그것도 없어 못 먹고 그랬지. 요새 같으면사 먹는 게 흔찮아.

“그래그래 살아.
우리때는 부자고 거지고 다 고생이랬지, 뭐”
적적한데 낮으로는 친구들이랑 이래 웅부공원에 나와서 윷도 놀고 요 뒤에 밥해주는데 있어(무료급식소 ‘요셉의 집’) 거서 점심 얻어먹고 밤에는 집에 가서 자고 그카지 뭐. 겨울에는 추워놓이 방 하나 얻어놓은 집에 가서 여럿이 연탄 땐 방서 놀지. 당뇨에 혈압에 뭐 안좋은데 많아도 병원에 한번 갔다가 약 한 달치씩 받아먹으면서 그래그래 살아. 아침, 저녁은 쌀 요만큼 압력밥솥에 낄이갖고 식으면 냉장고에 넣어놓고 한 덩어리씩 쪄먹어. 된장 찌지고 상추 뜯어서 먹으면 돼. 이제사 소원은 내 건강보담도 자식들이나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별다른 소원이 있겠나? 애들이 한 번씩 올 때마다 짠지도 해오고 더덕도 무쳐오고 잘해와. 내가 농사를 안지으이 싸줄것도 없어. 깨나 받아서 기름이나 짜주곤 했어. 이제는 아들, 며느리도 환갑 지나고 나이가 꽤 돼.

옛날엔 천군데도 더 댕기며 살았어. 강원도에서도 살고 이리저리 이사도 숱하게 갔어. 영감이 저지래를 많이 해서 글치. 돈 벌어놓으면 노름해서 다 없애서 이리저리 애를 먹였어. 나가 많고 돈도 없고 그럴 때는 노름도 못했어. 죽을 때는 자기도 고생 많이 했어. 그때는 그래 영감이 고생시켜도 가는 거라곤 몰랐어. 요새는 아 낳아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가부대. 그런 거는 생각도 안하고 살았어.
근데 내사 기억이 진짜로 하나도 안 나는데 이게 얘기꺼리가 되겄나? <안동>

장필노미 할머니

1923년 10월 9일 봉화 춘양 출생. 6남매 중 둘째. 밑으로 남동생 셋을 잃음. 열일곱인가 열아홉 살쯤 안동 와룡 장싯골로 시집 옴. 쉰여덟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슬하에 5형제가 있음. 현재는 혼자 생활하고 계시나 웅부공원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것이 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