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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백록동규도와 제6심통성정도(글/이해영(안동대 교수))

제5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사람됨의 집짓기 교육과정-

성학십도의 제5도는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이다. 백록동규는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세우고 이 서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제정한 배움에 관한 규정〔學規〕이다. 주희는 이 규정에서 수기치인이라는 유학의 이상을 실현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서원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을 집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황 또한 이 뜻을 이어받아 이 백록동규를 그림으로 표시하고 성학십도의 제5도로 둔 것이다. 이는 이황이 이 규정을 성인의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중요한 과정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황은 주희가 그랬던 것처럼 서원을 설립하여 유학적 이상을 실현할 인재들을 기르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 도에는 이황의 서원교육관과 학문방법을 이해하는 실마리도 담겨있다 할 것이다.

이황은 백록동규의 뜻을 주희의 ‘백록동규 후서’를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주희는 백록동규의 후서에서 “옛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뜻은 의리를 강설하여 밝혀서 그 자신을 수양하고〔수기〕그것을 바탕으로 미루어 나가 사람들에게 미치게 함〔급인=치인〕이 아닌 것이 없었다. 글을 많이 읽고 외워서 문장이나 잘 지어서 이름나기를 바라고 이익이나 벼슬자리를 취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의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와는 반대이다. 그러나 성현께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모두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뜻 있는 선비들은 실로 마땅히 익히 읽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외우는 공부는 아무리 많이 해도 깨달음의 공부가 아니고 겉보기 공부이다. 성현의 가르침은 내 안에서 깨우쳐져 몸으로 얻어지고 행동으로 바르게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경전 등에 있는 훌륭한 글귀들을 좋아하고 인용하기도 한다. 글귀를 외우면서 또는 인용하면서 마치 자신의 인격의 품위가 높아진 것처럼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우고 좋아하기만 하고 그것의 깊은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되새겨 깨우치지 못하고, 글귀를 따르면서도 내 행동을 돌이켜보아 새로운 의미로 밝히지 못하면 그것은 수박 겉핥기요, 원숭이 흉내 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황은 백록동규의 연원을 “남강군 북쪽 광려산 남쪽에 있는 백록동은 당나라의 이발(李渤)이 이곳에 은거하며 흰 사슴을 기르던 곳으로 남당 때 서원을 세우고 국상(國庠)이라 하였는데 항상 수백 명의 학도가 있었다. 송나라 태종이 서적을 하사하고 동주(洞主)에게 관직을 내려 학풍을 장려하였으나 도중에 황폐해졌다. 주희가 남강군(南康軍) 지사로 있을 때 중건할 것을 청하고 학도를 모으고 학규를 만들어 도학을 창명하였다. 서원의 가르침이 이에 이르니 마침내 천하에 성행하게 되었다.”고 자세히 소개하였다. 이는 그가 활발하게 전개하였던 서원창설운동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다짐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서원 설립의 취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바깥으로만 치달리는 마음 대신 진리와 도의를 배우고 실천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끊임없이 서로 절차탁마해 나간다면 안으로는 집안을 바르게 하고 세상의 푯대가 될 것이오, 밖으로는 사회를 바로잡고 시대를 제도하리니, 이것이 곧 서원 설립의 본 뜻이다.”라 하였다.

그런데 이황이 성균관 사학 향교 등의 국가 교육기관이 있음에도 굳이 서원을 세우고자 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당시의 국가 교육기관의 학문풍토가 순전히 입신출세의 방편으로만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황은 유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이상에 대한 교육이 공적 교육기관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고, ‘뜻있는 선비가 부귀의 이익과 권력의 욕망에 찌들어 어지러운 세상을 멀리하고 한적하고 깊숙한 산속이나 못가에 숨어들어 서로 그 들은 바를 강론함으로써 도를 밝히며 자신을 성취하고 남을 성취하게 하는’ 교육의 현장으로서 서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인재의 양성이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일 원래 유학에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상은 수기치인이다. 개인의 도덕적 각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이러한 이상이 현실 속에서 좌절을 겪었을 때 공자 이래의 유학자들은 그 이상실현의 희망을 진리의 탐구와 전수, 즉 학문을 연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통하여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황은 그러한 희망을 이룰 교육 현장을 서원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 학문이 바로 성인의 학문, 사람됨의 학문이었으며 인재의 양성이란 바로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었다. 사람됨은 내 스스로 나의 아름다운 본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참나’가 되는 것이지만 나는 늘 나와 너라고 하는 관계 속에서 나를 실천하게 된다. 그 관계가 바로 사람됨의 질서인 인륜이다.

사람됨이란 사람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오, 사람의 질서(人倫)를 갖추는 일이다. 그래서 이황은 백록동규도의 보충설명에서 태극도, 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를 “이상의 다섯 그림은 천도에 근본을 둔 것인데 공은 인륜을 밝히고 덕업에 힘쓰는 데 있다”고 한 것이다. 사람됨의 질서는 하늘의 도리여서 자연의 원리에 따른 것이오, 동시에 내 마음이 담고 있는 사랑의 원리가 펼쳐진 것이다. 오륜은 사랑의 원리라는 날줄과 사람 사이의 기본 관계라는 씨줄로 사람됨의 질서라는 그물을 짜서 온 세상에 드리운 것이다. 하늘의 원리와 하나가 된 성인이 사람됨의 원리를 다섯 가지 관계의 질서로 나누어 가르침의 내용을 삼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황은 요임금, 순임금의 가르침이 오륜에 있고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3대의 학문이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라 하였다. 맹자는 서경의 순전을 빌려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옷을 따뜻하게 입으며 편안히 거처하고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와 가깝게 된다. 성인께서 이를 근심하시어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으니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으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으며,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오륜을 설명한 바가 있다.

나무를 다듬고 새기는 데는 여러 종류의 칼이 필요하다. 칼날이 생긴 모양에 따라 평평한 칼, 둥근 칼, 각진 칼, 창칼 등이 있다. 각각 쓰임이 다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칼의 날은 항상 예리하게 서 있어야 하고, 나무는 결 따라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오륜의 실천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의 날은 늘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하고, 오륜의 어느 경우에도 그 결 따라 다듬고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됨의 질서인 오륜의 결은 사람됨의 원리인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룬다. 부모와 자식사이의 친애에도,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에도, 부부사이의 분별에도,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례에도, 벗 사이의 믿음에도 사랑의 원리가 그 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그 결이 친애라는 무늬로 나타나고 벗 사이에는 믿음의 무늬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난 무늬만 보고 친함이, 의리가, 분별이, 차례가, 믿음이 사람됨의 질서인 오륜 관계의 모든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 무늬의 밑바탕에 서려 있는 사랑의 원리라는 결을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맑고 고와야 하고 마음이 맑고 고우려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그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결 따라 실천하면 친애, 의리, 분별, 차례, 믿음의 무늬가 밝고 아름답게 빛나게 될 것이다.

수기치인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순서 소학과 대학이 사람됨의 터 닦기와 집짓기라면 백록동규는 터 닦기 집짓기의 구체적 과정 및 배우고 학문하는 순서를 규정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수기치인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순서이기도 하다. 주희는 백록동규에서 이 다섯 가지 사람됨의 질서를 제시하고 이를 배우고 깨달아 실천하는 과정과 순서를 『중용』 20장의 널리배움〔博學〕, 자세히 물음〔審問〕, 신중히 생각함〔愼思〕, 밝게 분변함〔明辨〕, 독실하게 실천함〔篤行〕으로 설명하였다.

이를 앎과 실천의 관계로 구분하면 널리 배움, 자세히 물음, 신중히 생각함, 밝게 분변함 4가지는 앎의 영역에, 독실히 행함은 실천의 영역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주희는 앞의 4가지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일〔窮理〕의 요령으로 두고 독실히 행함〔篤行〕을 셋으로 나누어 몸을 수양하는 요령, 일에 대처하는 요령, 사물을 대하는 요령으로 나누고 있다. 물론 이 모두 가 사람됨의 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성왕의 학문 또한 이 사람됨의 질서에 대한 학문이라는 일반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임금도 하늘이 부여한 사람됨의 질서에 근거하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또 힘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일도, 힘껏 실천하는 일도 모두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해야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말하자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니고서〔居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窮理〕 독실히 행해야〔篤行=力行〕하는 것이다.

유학의 학문이란 ‘참나’를 위한 학문〔爲己之學〕이다. 나는 홀로 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나를 실현하는 사람이기에 참나를 위한 학문도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려는 데에까지 미친다. 따라서 서원의 교육도 개인의 수양에 그치지 않고 이상사회의 실현까지를 염두에 둔다. 그래서 주희 또한 오륜이라는 인간사회의 기본질서를 교육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성리학 수양론의 두 축인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居敬〕과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窮理〕은 사람됨의 질서를 독실히 행함〔力行〕으로써만 개인적 앎과 개인적 수양의 차원에서 사회적 실천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널리 배움(박학), 자세히 물음(심문), 신중히 생각함(신사), 밝게 분변함(명변)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요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주희가 독실하게 행하는 일을 몸을 수양하는 요점, 일에 대처하는 요점, 사물을 대하는 요점으로 나누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요점과 나란히 제시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실천을 강조하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자신을 수양하는 요점은 말을 진실하고 성실하며 미쁘게 하는 것과 행동을 독실하고 경건하게 하는 일과 분노를 삼가고 욕망을 막는 일이다. 일에 대처하는 요점은 의로움을 따르고 이익을 좇지 않는 일과 도리를 밝히고 그 공적을 계산하지 않는 일이다. 사물을 대하는 요점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과 행위의 결과를 자신에게 돌이켜 반성하는 일이다.

이로써 보면 주희가 생각한 실천이란 결국 개인적 차원의 수양 및 실천에 중점이 두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결국 개인도덕의 완성과 완성된 도덕의 단선적 평면적 확충차원의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유학 내지 성리학의 장점이며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장점의 입장에서 보면 개인의 도덕성이야말로 다른 이에게 설득력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이다. 한계의 측면으로는 개인의 도덕적 삶의 태도나 개인의 도덕적 실천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의식과 사회 구조에 큰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혼란할수록 개인이 지닌 도덕성은 더욱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이는 제6 심통성정도에서 제10 숙흥야매잠도에 이르는 인간주체에 대한 성찰과 개인적 도덕 실천의 방안을 내세운 이황의 뜻이리라 믿는다.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마음의 틀-

우선 성학십도의 구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짚어 보고 심통성정도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황은 제5 백록동규도에 대한 설명에서 ‘태극도에서 백록동규도에 이르는 5도는 인간의 도덕원리는 하늘의 법칙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람이 그 원리에 따라 인륜의 도리를 밝히고 덕을 쌓는 데에 힘쓰는 것은 하늘의 거룩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는 천지만물의 존재원리는 바로 인간의 도덕원리이므로 인간이 도리를 실천하는 일은 바로 우주의 원리를 실현하는 일이며, 인간은 이를 통해 하늘과 하나되는〔천인합일〕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유학적 사유의 틀로 설명한 것이다. 그는 제10숙흥야매잠도의 설명에서는, ‘제6심통성정도에서 제10숙흥야매잠도까지의 5도는 마음과 본성에 근원을 둔 것으로 그 요점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공경스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성인의 학문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과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밝히고, 이어 사람은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참나’를 찾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성리학은 천지만물의 존재에 대한 이론, 인간 주체에 대한 이론의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지자연의 존재양상은 이기론(理氣論)으로 설명되고 인간 주체의 양상과 인간의 도리는 심성론(心性論)으로 풀이되었다. 태극 또는 천리는 존재의 원리와 주체의 원리를 아우른다. 존재의 원리는 ‘그러한 바의 까닭〔所以然之故〕’이라 표현되고 인간 주체의 원리는 ‘마땅히 그러할 바의 법칙(所當然之則)’이라 표현되었다. 존재의 원리와 주체의 원리는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므로 어떤 경우는 천지자연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심성론이 동원되기도 하였으며 주체의 양상을 풀이하는데 이기론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황의 학문이 성리학 이론의 두 축, 존재와 주체에 대한 이론 가운데에서 인간 주체 문제에 보다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학문은 인간의 주체의 학문이며, 따라서 인간의 주체를 어떻게 체득할 것인가, 또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구현할 것인가에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심성론에 관한 그의 핵심 이론이 담겨 있는 심통성정도는 그의 주체에 관한 생각의 틀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제7도 인설도와 제8도 심학도 또한 그 틀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심통성정도는 세 개의 그림으로 되어 있다. 맨 위 그림은 중국 원나라 때 학자인 정복심이 그린 것을 인용하였다. 가운데 그림과 맨 아래 그림은 이황이 스스로 그린 것이다. 여기에는 이황의 유명한 사단칠정론이 들어 있어 그의 인간 심성에 대한 이론과 도덕주체로서 인간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럼 먼저 심통성정도에 관한 그의 설명을 번역하고 거기에 담긴 뜻을 짐작해보기로 한다.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
임은 정씨는 이른바 마음이 본성과 감정을 통괄한다〔心統性情〕는 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사람은 오행(五行) 기운 가운데 빼어난 기운을 받아 태어났다. 그 빼어난 기운 중에서 인의예지신(仁義禮智信)의 오성(五性)이 갖추어지고 그 기운의 움직임에서 희노애구애오욕(喜怒哀懼愛惡欲)의 칠정(七情)이 나온다. 그 성정(性情)을 통회(統會)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한 상태는 본성으로 마음의 본체(本體)요, 사물에 감응하여 통하는 것은 감정이니 마음의 작용이다.

장재는 ‘마음이 성정(性情)을 통괄한다’고 하였는데 이 말이 마땅하다. 마음이 성(性)을 품고 있어 인의예지가 본성이 되고 또 인의의 마음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감정을 이끄는지라 측은과 수오와 사양과 시비의 감정이 있게 되고 또 측은의 마음과 수오와 사양과 시비의 마음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본성을 품지 못하면 곧 미발(未發)의 중(中)에 이를 수가 없어서 본성이 쉽게 훼손되고 마음이 감정을 이끌지 못하면 곧 중절(中節)의 화(和)를 이룰 수가 없어서 감정이 쉽게 방탕해진다.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것을 알아서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바로잡아 그 본성을 기르고 그 감정을 절제한다면 배움의 참된 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 오른쪽 세 그림에서 위에 있는 한 그림은 임은 정씨가 만들고 스스로 그것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와 아래의 두 그림은 신이 성현이 하신 말씀과 가르침을 드리운 그 근본 뜻을 미루어 생각해서 만든 것입니다. 가운데 그림은 인간이 받은 기질의 가운데에 서 본연의 성을 지목해내어 기질에 뒤섞이지 아니한 것을 말한 것이니 자사의 이른바 천명(天命)의 성, 맹자의 이른바 성선(性善)의 성, 정자의 이른바 성즉리(性卽理)의 성, 장자의 이른바 천지(天地)의 성이 이것입니다. 그 성을 말한 것이 이와 같은 까닭에 성이 드러나 정이 된 것도 또한 모두 그 착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자사의 이른바 중절(中節)의 정, 맹자의 이른바 사단(四端)의 정, 정자의 ‘이른바 어찌 불선의 정이라 이름붙일 수 있겠는가〔何得以不善名之〕’의 정, 주자의 이른바 ‘성 가운데에서 흘러 나왔으니 원래 선하지 않음이 없다〔從性中流出元無不善〕’의 정이 이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이(理)와 기(氣)를 합하여 말한 것으로 공자의 이른바 ‘본성은 서로 비슷하다〔性相近〕’의 성, 정자의 이른바 ‘성은 기이고 기는 성이다〔性卽氣氣卽性〕’의 성, 장자의 이른바 기질(氣質)의 성, 주자의 이른바 ‘비록 기 가운데 있어도 기는 기이고 성은 성이어서 서로 뒤섞이지 않는다〔雖在氣中氣自氣性自性不相夾雜〕’의 성이 이것입니다.
그 성을 말한 것이 이와 같은 까닭에 그 드러나 정이 된 것 또한 이와 기가 서로 필요로 하며 혹 서로 방해하는 점으로 말한 것입니다. 예컨대 사단의 정은 이(理)가 발함에 기(氣)가 그것을 따르므로 저절로 완전히 선(善)하여 악(惡)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理)가 제대로 발하지 못하여 기에 가려진 뒤에 불선으로 흐르게 됩니다. 칠정은 기(氣)가 발함에 이(理)가 그것을 타서 또한 착하지 아니함이 없습니다. 만약 기(氣)가 발한 것이 알맞지 아니하여 그 이(理)를 없애버리면 곧 제멋대로 되어 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까닭에 정부자가 말하기를, ‘성을 논함에 기를 논하지 않으면 이론이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아니고 기를 논함에 성을 논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아니하니 성과 기를 둘로 나누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즉 맹자와 자사가 다만 이만 지목하여 말한 것은 구비되지 아니한 것이 아니고 그 기를 함께 말하면 곧 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운데 그림의 뜻입니다. 요약하면, 이기를 겸비하고 성정을 통괄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성이 발하여 정이 되는 즈음은 곧 한 마음의 기미요, 모든 변화의 지도리이며 선악이 여기서부터 나뉘는 것입니다. 배우는 자가 진실로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한결같이 지니고 의리와 욕망을 밝게 분별하고 더욱 이 마음을 삼가서 아직 발(發)하지 아니할 때 존양(存養)의 공부를 깊이하고 발한 뒤에는 성찰을 익숙하게 하여 참을 쌓고 오래도록 힘쓰면 이른바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서 중을 잡는다〔精一執中〕’라는 성인의 학문과 ‘마음의 본체를 잘 보존하고 사물에 잘 대응하여 응용한다〔存體應用〕’라는 심법을 모두 바깥에서 찾을 필요가 없이 여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본성은 인간의 이치이고 사랑의 원리
인간은 천지만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이다. 천지만물의 기질을 규정하는 오행의 기운 가운데 맑고 빼어난 기운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받은 기운이 너무 깨끗하고 정밀하여 그 안에 인의예지신이라고 하는 오상(五常)의 본성이 갖추어진다. 순수하고 빼어난 인간의 기운이 움직이면 희노애구애오욕의 칠정이 나타나게 된다. 마음은 인간의 순수한 기운이 집약된 곳이다. 그래서 마음은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품을 수 있고 그 기운을 움직여 인간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낸다. 마음이 고요하여 발동하지 않고 본성을 잘 보듬고 있는 상태는 본성 그대로인 중(中)의 상태이며, 마음이 사물에 감응할 적에 본성을 잘 이끌어 정이 바른 상태로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감정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려면 본성을 잘 보듬어 품고 있어야 한다.〔存養〕 왜냐하면 마음은 이치와 기운이 합해진 것이므로 기운의 측면은 늘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여 밖으로 정이 드러나면 그것이 제대로 드러난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省察〕 기운의 움직임은 외물의 영향을 받으며 또한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본성을 잘 보듬는 일, 드러난 정을 잘 살펴보는 일 또한 모두 마음의 작용이므로 마음이 반듯해야 제대로 보듬고 살필 수 있다.

마음을 반듯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경의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때는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본성을 잘 보듬고 그 드러난 감정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 이 두 가지 공부가 쌓이고 쌓여 나와 하나가 되면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을 때는 늘 인의예지의 본성이 마음 안에서 아름다운 덕으로 빛나고 마음이 움직였을 때는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의 원리가 온 세상에 두루 펼쳐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게 된다.

본성은 인간의 이치이고 사랑의 원리이다.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므로 함부로 버려둔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수양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정은 이미 밖으로 드러난 상태이므로 살피고 살필 내용일지언정 달리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수양의 대상은 본성이 대상과 만나서 감응할 때 올바른 정으로 드러나도록 매개하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경스러움의 대상은 늘 마음이다. 마음을 경외감으로 바라보고 경건하게 대할 때 본성의 아름다운 덕은 그 속에서 밝게 빛나고 밖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절제되어 조화롭게 되는 것이다.

마음은 이치와 기운이 합해있는 것이며 본성과 감정을 통괄한다. 마음은 이 한 몸을 주재하며 온갖 사물의 변화를 그 안에 담고 있다. 마음은 텅 빈 듯하되 신령스러워 지각작용을 한다. 마음은 본성을 품고 있는데 그 본성은 인의예지의 4덕이다. 원래 본성은 형태가 없다. 그러므로 인의예지라는 본성의 이 4가지의 덕은 측은, 수오, 공경, 시비라는 4가지의 천부적 도덕 감정을 바탕으로 거꾸로 추론하여 밝힌 것이다.

하늘의 이치가 사람의 이치
이황에 있어 마음이란 단지 한 개인의 마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음은 사실은 하늘의 이치와 기운을 받아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모든 인간, 우주에 이르기까지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마음은 모든 사람의 마음이고 모든 사람의 마음은 우주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는〔천인합일〕것이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근거는 이치이다. 하늘의 이치가 바로 사람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하늘과 합일하는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는 이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운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기운은 움직인다. 그 움직임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인간은 이치와 기운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인간의 마음 또한 이치와 기운이 합해져 있는 것이어서 기운을 제외하고 이치만으로 하늘과 하나됨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운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느냐 하는 것은 ‘참나’를 이루고 하늘과 합일하는 성인이 되는 관건이다.
기운이 우주의 이치이자 인간의 이치로서 사랑의 원리인 본성에 따르면 그 본성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 선을 이루나 기운이 이치가 이끄는 대로 따르지 아니하면 그 본성은 욕망에 가려서 본 모습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 이것이 악이다. 악이란 선과 반대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본성이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면 악은 언제나 선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인간의 수양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본성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이황이 그토록 마음의 수양을 강조하고 그 방법으로 공경스러움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황은 심통성정도의 가운데 그림과 아래 그림에서 모두 인간의 마음에는 이치와 기운이 함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가운데 그림에서는 인간이 받은 기질 가운데에서 순수하게 선한 본연지성과 사단의 정, 선한 칠정의 정을 뽑아 말한다고 하였다. 이는 이치와 기질로 이루어져 기질 속에서 삶을 꾸려가는 인간의 현실적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즉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보듬어 안은 본연의 성, 공경스러운 마음을 매개로 하여 본연의 성이 그대로 발현된 사단의 감정, 그리고 기질 속에서도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절제되어 조화롭게 드러나는 칠정의 감정의 경지가 그 나아가야 할 바이었다.

아래 그림에서는 기질 가운데에 있는 본연의 성을 말하였다. 사람됨을 이룬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을 나타내었다. 현실의 인간에 있어서는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이 무엇이냐 보다는 각각이 지닌 개별적 기질 속에서 어떻게 해야만 그 본성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드러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 본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사단과 칠정으로 나누었다. 그는 사단의 감정은 마음속의 이치가 주도적으로 기운을 이끌어 본성이 순수하게 선한 감정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마음을 주재하는 것은 공경스러움이다. 마음을 공경스러움으로 가다듬고 가늠하게 되면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고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면 마음의 신묘한 작용은 이치의 활발한 능동성이 되고 그것이 바로 이치가 주도적으로 기운을 이끄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이치가 주도적으로 기운을 이끌어 가지 못하면 본성의 순수한 선이 선한 감정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망가져 악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칠정의 정은 기운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기운이 움직일 때 이치가 그 나아갈 바를 제시하면 선한 감정으로 드러나고 기운이 지나치게 넘쳐 이치가 그 나아갈 바를 제대로 제시할 수 없으면 악의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황이 이와 기로 이루어진 현실의 인간, 인간의 마음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사단의 도덕감정과 칠정의 일반감정으로 나누고 인간의 본성을 사람됨의 원리로서의 본연지성과 현실의 인간의 기질 속에 있는 기질지성으로 굳이 나눈 것을 성리학적 논리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황은 사람됨을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사람됨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바가 어떤 것인가는 논리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라 의미로서 살피고 경건함으로서 체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을 해칠 수 있는 기질의 얽매임을 벗어나 순선한 본성의 상태를 각성하고 실천하여 ‘참나’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와 너의 관계 속에서 너를 받아들이고 너와 어울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천지만물의 질서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됨의 도리이며 성인의 길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