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섭 할아버지의 ˝나의 옛날 이야기˝(글/백소애(편집기자), 구술/황무섭 할아버지)
“서울서 방직회사 댕기는데 전쟁이 났어”
내 고향은 저짜 월곡면이래. 내가 1924년생이래. 스무살 때쯤 해서 서울도 가고 만주도 가고 객지생활로 많이 돌아댕겼어. 늦게 군에 가서 3년 8개월 동안 숱한 고생도 많았어. 내사 뭐 아는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무학이래. 우리 나이 때사 다 그러기 여사지만.
남매는 5남맨데 형님 한분은 일찌그이 돌아가시고, 바로 위로 형님이 또 하나 있어. 아부지는 마흔에 돌아가겠어. 내가 일곱 살 때이깐 어무이가 고생 많았지.
결혼은 내가 스물셋에 했어. 그땐 노총각이랬지. 우리 때는 연애가 뭐 있었나. 중매결혼이지. 그때 내가 서울 살았는데 제일방직이라꼬 큰 방직회사에 4년 동안 다녔어. 근데 어른들이 약혼 다 해놨다고 결혼식 하러 내려오라카대. 어른들 명령을 안 들을 수가 있나. 서울에사 처녀가 버글버글거리지만 그런 관심은 본대 없었어.
처가가 길안인데 신행 뒤에 사흘 만에 나는 서울로 올라갔어. 한동안은 떨어져 지냈지. 그때는 보고 싶은 것도 모르고 부끄럽기만 했지 뭐. 요새사 차로 금방 가겠지만 10월 초여흘에 결혼해서는 정월 보름에 한번 왔다갔었어.
1남 5녀, 딸 셋 놓고 아들 놨지. 마누라도 살아있어. 이제는 애들 객지로 다 나가고 영감 할마이 둘이서 살지 뭐.
“서울로 만주로 젊을땐 안댕겨본데가 없어”
만주는 일거리 없으이 벌어먹으러 가느라 갔어. 농장에서 죽어라 일했지. 요새 같으면사 내 벌면 내가 무져놓고 살겠는데 옛날에는 모다갖고 토지도 사고 먹고 살아야 되지 않겠나. 우리 집도 벼농사, 밭농사 지을 때라 한 푼이라도 벌면 집에 보태야지. 우리 동네가 한 70호 됐는데 먹고 산다는 집에서도 잘 보내봐야 하나이 학교 보내면 잘 보냈지.
6.26사변이 일났을 때가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집식구를 데려다가 살림을 살 때였거든, 그때 전쟁이 터졌지. 고향으로 피난을 내려갔지. 주위에서 사람 죽는 건 여사로 보고말고지. 근데 집식구를 일가사람들한테 먼저 보냈는데 고만에 내하고 갈리뿌랬어. 일가집에 피난 보내 놓으이 거긴 인민군이 들어와뿌랬고 나는 한국 군인들한테 있었지. 거가 용인, 경기도 용인이래. 인민군이 강나루로 배를 타고 와서 점령해뿌랬지. 나중에 다행히 안동서 만났어.
식구랑 헤어졌다가 열엿새 만에 집에 겨우겨우 내려왔어. 하루 십리도 가고 삼십 리도 가고, 가정집에 가서 사정해서 얻어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겨우겨우 내려왔지. 목숨만 부지해서 살아갈 때였지. 전쟁 때는 우선 입고 먹을 게 없으니 그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할로. 문경새재 넘어왔을 때 전쟁을 얼매나 해놨는동 신작로에 탄피가 콩 뒤집어놓은 것처럼 쫙 깔렸어. 말도 못해. 사람 죽은 거 그냥 마카 끌어묻어놓고 가부고.......참말로 그래 어예 살았남았나 몰래.
“나이 서른 되갖고 군에 갔으니 답답치 뭐”
안동에 정착한 건 군에 갔다와서야. 그때 군이 징집, 소집이 있었는데 난 소집으로 갔어. 늦게 갔거든. 나이 30이 다 되갖고 3년 8개월을 군에 있었어. 결혼도 했고 아도 셋 낳고 갔으이 돈을 벌수가 있나 답답했지. 그래 어야노. 집식구는 우리 형님집에 한태 있었어.
여 안동선 형님하고 농사짓고 살았지. 그다가 75년에 안동댐이 덜 됐을 땐데 그때는 댐 때문에 나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내사 그전에 나왔어. 아-들도 다 크고 하는데 형님 집에 복잡시레 사는 것도 글코.
시내 나와서는 노가다도 댕기고 이일 저일 많이 해봤지. 그러다가 나중에는 맹 농사를 졌어. 그때 방을 얻어 살았는데 열두 달치가 만이천원이랬어. 그래 살다가 3년 뒤에 조그마한 집 하나 마련했어. 나올 때 집에서 내 몫으로 나온 거 조금 갖고 있었는데 좀 보태갖고 마련했어.
남의 집 사니까 아-들이 한태 있으이 싸워 안돼. 주인집에 아-들이 둘이고 우리 아-들이 서일 땐데 누가 때리고 누가 맞아도 곤란치. 이래저래 걱정, 에이 못살아. 살게 못돼.
나는 술도 별로 안 즐기고 담배도 안 펴. 속 쎅이고 근건 별로 없었는데.......몰래, 마누라는 어예 생각할동. 인지는 뭐 취미는 없고, 살따나 밥 잘 챙겨먹고 자다가 편케 죽으면 좋겠어. 뭐 영감쟁이들 하는 바둑이나 오락 취미도 없고, 이케 말하이 내가 재미없는 사람처럼 되뿌네.
“지금 생각하이 신혼 때가 제일 좋았어”
내 살면서 제일 좋았던 때가, 요새 생각해보이 결혼해서 서울서 신혼생활 할 때가 제일 좋았어. 거서 살았던 집을 전쟁 때 다 내비리고 왔는데 집이 다 허물어졌어. 집이 적산(敵産)집이라꼬 있어. 일본사람들 집. 동네를 이뤄갖고 회사 앞에 쭉 있는 적산집이랬거든. 그기 살 때 6.25사변이 났어. 달랑 옷만 입고 나왔지. 그때 돈으로 돈 3만원에 권리가 오갔는 집이래. 그래도 전쟁통에 다 깨지고........아깝고 마고지 뭐.
젊을 때는, 해방되고 회사 들어가서 지내보이 기술도 있고 월급도 괜찮았고, 그래 살면 안 되겠나 하는 포부도 가져봤어. 그때 상공부장관이 누구라카면 임영신이라꼬 이승만 수양딸인가 그랬어. 회사도 꽤 커서 거서 돈 벌어 먹고살려고 했는데 6.25사변이 인생을 바꿔놓고 말았지. 다시 올라갈라카이 폭격을 놔서 집은 다 뻐져부고 고향에 있으이 군대에 딱 걸려부고, 회사엘 다시 드가네나. 다시 갈 여유도 없고 용기도 안 나고 해서 고향서 농사지었지. 에휴, 이래저래 살아온 거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오래 살았는 모양이래.
이전에는 집이 법흥동에 있었어. 법흥동 거 소방도로 나믄서 용상으로 갔지. 거는 낯익은 사람도 없고 나이도 안 맞아 놀기에도 좀 그래. 여까지 자전차 타고 와. 따로 약속 없이 와서 살아가는 이얘기도 하고 그래.
나는 여 나올 때 아주 애초에 집에서 점심 해결하고 천천히 나와. 여 무료급식소 두 번인가 가봤는데 난 딱 싫더라구. 밥 때 되면 집사람 없어도 냉장고에 있는 반찬 꺼내 먹고 밥솥에 있는 밥 꺼내 먹으면 돼. 있을 때사 밥 차려주이까네.
애들이사 직장 때문에 자주 와내나. 명절 때나 일 있을 때나 오지. 손자는 지금 군에 가있고 손녀는 고등학교 다니고 아들 하내이가 혼자 벌어갖고 애 많이 먹지. 내사 용돈 주는 것도 놔둬라 그래.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꼬 우리 걱정일랑 말라 그캐.
“여 자전차 타고 쉬엄쉬엄 와서 놀다 가곤해”
내가 눈이 침침부리한 게 백내장이 와서 수술을 했는데도 왼쪽은 영 시원찮어. 다리도 다쳐갖고 신통찮고. 30년 전에 일하다가 삐끄덕했어. 인지 다 죽어가는 거 돈 주고 고쳐서 더 오래 사는 것도 원치 않고 불편한 거 참고 살지 뭐.
요즘엔 대중없이 일나. 아침 일찍부터 나 많은 이가 갈 데가 있나. 6시정도 일나서 밤에는 9시나 10시쯤 자. 평소엔 텔레비도 잘 안보는데 요즘은 올림픽이라서 재미있으이 텔레비도 많이 봐. 축구 좋아하고 권투, 폭싱이라 뭐 외국사람들 하는 거, 아! 케이원, 그딴 거 좋아해. 축구도 한국아들 뛰는 건 언제든지 봐. 할마이는 반대지. 어떨 땐 열한시고 열두시고 하잖아. 그만 봐라 그카지. 집사람은 내보다 5년 아래래. 팔십이래. 결혼해서 오래 살아도 안 맞는 건 계속 안 맞어. 그래도 사람 사는 게 다 글치 뭐.
오늘은 비가 마이 오네. 난 분잡고 시끄러운 거 원래 싫애 그는데.......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