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가족음악회 꿈꾸는 통기타 가수 김이난(글/이미홍_객원기자)

 

통기타 가수 김이난(김인환, 36)을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답지 않게 당황하고 수줍어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막상 말로 풀어내자니 긴장이 되는지 갑자기 무대 쪽으로 가더니 반주음악을 틀었다. 그러고 나자 조금 안정이 되는 듯,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에 와 앉더니 시작하자고 했다. 질문하는 이도 답변하는 이도 조심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혹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는 말을 많이 아꼈고 그 행간을 읽느라 조금 힘은 들었지만, 음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서 ‘김이난’이 가진 나름의 색깔이 묻어났다.  


사실 나는 김이난을 잘 몰랐다. 이름은 언뜻 들어보았지만 그 공연을 일부러 찾아가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언뜻 탈춤축제 때 잠시 스쳐간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복지시설이나 봉사단체에서 자선공연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은 이야기다. 자선공연 이야기를 물었을 때 그는 쑥스러워했다. 따뜻한 한반도 연탄 나눔 준비 모임에서 노래를 불렀던 걸로 알고 있다고 했더니,


“복지시설에 공연가는 건 제가 무슨 자선이나 봉사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냥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랑 친하다 보니까 하는 거고, 연탄나눔모임은 그건 그때 댐 쪽에 라이브 공연을 할 때라 마침 그쪽에서 행사를 하길래 발대식 할 때 시간이 되서 잠깐 축하공연을 해 준 자리지 제가 뭐 좋은 일을 하려는 훌륭한 취지에서 한 일은 아니에요.” 하고 만다.




무심코 발디딘 안동, 이젠 삶의 터전


6년 전 그는 돌연 안동에 발을 내렸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고향인 강원도에서 하던 라이브 카페를 접고 결혼해서 대구에 살고 있는 형네와 누나네 집에 갔다가 올라가는 길에 문득 안동에 있는 고향후배 녀석 생각이 났다고 한다. 한 번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무심코 내렸다. 한참 후배 녀석들이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쪽방에 근근이 살고 있었다. 가게를 정리한 지 얼마 안 된 때라 교통사고가 난 형 치료비를 주고 마침 남아 있는 돈으로 깨끗한 자취방을 얻어주고 이것저것 돌봐주다 보니 조용한 게 마음이 편해서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도 좋겠다 싶었다. 지방 소도시 치고는 라이브 카페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안동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후배들 말을 듣고 잠시 아르바이트나 하며 지내도 좋겠다 싶었죠. 여자나 남자나 나이 서른 넘어서 낯선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좀 있다가 서울 인천 쪽으로 다시 갈 생각이었죠. 그런데 살다보니 안동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렇게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내면서 안동에 제대로 터를 잡아야겠다 생각한 건 2년쯤 되었을 때였어요. 자신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열여덟 첫 무대, 이 길이 내 길이다


그의 무대 인생은 중 ․ 고등학교부터 시작됐다. 노래를 잘했던 그는 중 ․ 고등학생들이 참여하는 문화제나 각종 대회에 학교대표로 나가느라 성악을 연습해야 했다. 시골이라 제대로 된 교습 시설조차 없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간단한 지도를 받는 게 다였다. 고등학교 때는 합창단장을 맡았는데 명목상 정해져 있는 담당 선생님을 대신해 학생들을 연습 시키는 건 그의 몫이었다. 시골 학교라 선생님의 손이 미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가 그 일을 무척 잘 해냈기 때문에 나중에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친구 몇 놈하고 중창단, 합창단 연습에 지휘까지, 그가 알아서 합창단을 이끌어가다시피 했다. 결국 그것이 그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게 되는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시골학교의 열악한 음악환경이 그에게 실력 발휘를 해야 할 기회를 줬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사정은 그로 하여금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부였는데 탄광에서 일을 하다 일찍 돌아가셨고 그는 어려서부터 신문배달 같은 일을 하면서 커야 했고 자기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 했다. 그래서 경제에 일찍 눈을 떴다.


“제가 노래로 처음 돈을 번 것이 고등학생이던 18세일 때예요. 당시 웨이터가 한 달 꼬박 일하고 30만원을 받았는데, 무대 위에서 잠깐 일하고 20만원을 받았으니까 대단한 거였죠. 어쩌다 한 번 무대에 선 건데 어린 나이에 그런 큰돈을 받게 되니까 계속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그쪽으로 점점 빠져들어 음악 쪽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결심을 한 거죠. 그리고 저는 정말 한 우물만 팠어요. 어릴 때는 기분으로 폼으로 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이 길만 보고 왔어요.” 




나의 청춘, 성공과 방황을 모두 접고 안동으로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가서 무대와 관련된 일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했다. 무대 뒷정리부터 시작해서 손님들 시중도 들면서 잘하는 선배들이 있으면 찾아가 무대에 세워 달라 사정도 하고 뒷시중도 들어주면서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그걸 배웠다. 그렇게 실력을 쌓아가면서 서울과 인천 일대 밤무대를 누비며 디제이도 보고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불렀다. 만능 엔터테이너를 꿈꾸며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좋은 추억거리가 참 많아요. 너무 싫은 기억도 있긴 하지만.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거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가며 쌓은 거라 애착이 더 컸죠. 그만큼 열심히 했고요. 사실 음반 작업도 좀 했어요. 돈도 많이 벌었고요. 나중에는 실력을 인정받아 기획사를 업고 전국 팔도의 무대를 누볐어요. 사회도 보고 노래도 하고 정신이 없었죠.”


그런데 강원도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아프셔서 그가 강원도로 내려가서 모셔야할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나름대로 쌓은 노하우와 무대 경험을 가지고 강원도로 내려가 라이브 카페를 차렸다. 카페는 다행히도 잘 되었다. 그런데 작은 형이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수술을 하고 몇 달간 병원에 누워 있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형제들 중에 그나마 사정이 나은 건 그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시작할 각오로 가게를 정리했다. 


그러나 그가 서른 살이 되어 다시 서울로 갔을 때, 배고픈 거 참아가며 무대에서 같이 고생했던 친구와 동생들은 음반도 내고 결혼도 하고 다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나 싶고 자존심도 상했죠. 제 자신에 관해 생각을 많이 했죠. 말 안 해도 멤버들끼리는 서로 이해하니까 ‘찾지 마라’ 메모 한 장 써 놓고 내려왔죠.”


그 길 끝에서 만난 게 안동이다. 그가 그전의 모든 것을 접고 새 길을 찾고 있을 때, 삶의 이정표는 그를 안동으로 이끌었던 셈이다.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시작하고 한참 동안은 적응을 못해 애를 먹었죠. 라이브를 하시던 기존 가수 분들이 만들어 놓은 독특한 방식이랄까 분위기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는 이방인 취급을 받았죠. 저는 저만의 방식이나 공연 분위기가 있으니까요. 자신들과 다르니까 사실 배척하는 분위기도 조금은 있었죠. 그래도 마음을 비우고 아무 말 없이 제 방식대로 저는 제 할 일만 했어요.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 팬들이 해 주는 거니까요. 사실 그러면서 느낀 것도 많아요. 그전에는 제 잘난 맛에 살았다고나 할까 젊은 치기에 지방문화를 좀 낮춰보는 부분이 저도 모르게 있었다면,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제 자신이 특별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거절못하는 성격탓에 맺은 인연이 깊은 정으로


서른여섯, 안동에 온 지 어느새 6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러다가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싶은 오기와 악바리 근성으로 버텼고, 지금은 사람들에게 정이 푹 들어서 정 때문에 산다고 했다.


김이난은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라이브 가수로 활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대성병원을 비롯한 각종 복지시설에 자선공연을 다녔고 지역 축제나 문화센터 노래강좌 활동도 부지런히 했다. 사이사이 개인 공연도 했다. 복지시설 공연은 사실 돈보다는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복지 시설에 있는 그를 반기는 사람들 때문에 정이 들어, 이제는 그만둘래야 둘 수 없는 김이난 노래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다. 자신만의 라이브 카페를 열면서 그는 요즘 라이브 가수로서의 활동은 접고 지역문화센터 노래 강좌와 개인 공연 위주로 활동을 한다. 연말이라 안동병원 음악치료 교실을 비롯해 복지시설 공연이 여러 군데 잡혀 있어 그런지 언뜻 건너다 본 12월 달력 일정표가 빼곡하다. 장애인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도 눈에 띈다. 지역 축제가 많은 가을부터 연말연시가 공연이 많이 몰리는 시기인데다 라이브 카페까지 시작해 이래저래 바쁜 연말이 될 거 같다.


그동안 그는 다양한 공연 활동으로 안동 바닥에 ‘김이난’ 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는데 성공을 했다. 그러면서 안동에 정착하기로 작정하면서부터 계획했던 대로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안막동에 한 달 전 라이브 카페를 열었다. 적어도 1, 2년 후에는 옥동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니까 그 전초기지인 셈이다. 그 밑바탕에 이제 안정하고픈 마음이 작용한 건 아닐까, 내친 김에 결혼에 대한 말을 잠깐 비췄더니 영 낯설다는 반응인 걸 보니 아직 김이난에게 결혼은 먼 이야기인 듯도 하다.


“돌이켜보면 참 이상하게도 인연이 안 닿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인연을 놓쳤죠, 제가. 20대 때 참 열심히 사랑했는데 잘 안 됐죠. 결혼에 관심이 없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렇게 흘러왔네요. 우리 하는 일이 주위에 여자도 많고 마음먹기 따라 막 살 수도 있는데 저는 그걸 못해요. 무대 뒤에서 보고 들은 일들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더 경계를 하게 되요. 잠깐 정신을 놓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저는 아니까요. 젊었을 때 그런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저는 딱 까놓고 도박 하고 약 하는 사람들하고는 절대 가까이 안 해요. 자기 자신만 망치는 게 아니라 남까지 망하게 하는 아주 나쁜 거예요. 도박하고 약은.”






 

가족같은 팬, 서로의 경조사까지 챙겨줄 정도


아무 연고도 없던 곳에서 아예 터를 잡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든 건 안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정이다.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한 믿음을 그는 안동에 와서 다시 찾았다. 안동에서의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것의 팔 할은 그를 지지해주는 팬들의 힘이다. 


“저는 가족 같은 팬들이 너무 많아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팬들이 많아요. 그러다보니 서로 유대관계가 깊어져서 서로 경조사 챙기고 무슨 일 있으면 같이 걱정하고 도와주고 그래요. 아는 지인 분들의 부모님 칠순 팔순 같은 때는 돈 안 받고 사회도 봐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그래요.”


그것 때문에 조금 불편한 적도 있었다. 그런 행사를 전문으로 다니시는 선배가 그렇게 돈을 안 받고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한 식구처럼 지내는 지인들 가족행사에서까지 돈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재주로 좋은 사람들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그는 안동에서 만난 지인들을 통해 돈보다 사람을 얻는 법을 배웠다.


그는 솔로보다는 듀엣을 좋아하고 듀엣보다는 트리오를 좋아하고 트리오보다는 중창을 좋아하고 중창보다는 합창을 좋아하고 연주도 오케스트라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서로가 화합을 할 때 공연이 더 빛나는 거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함께하는 공연을 좋아한다는 그다. 때문에 그는 어떤 자리에 가든 어느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가려고 한다. 때론 노래 한 소절로 때로는 기타 하나로 사람들을 잇는다. 그는 공연도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철이 들어가면서 더 팬들이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언제나 무대 앞자리를 채워주는 아이들


이제는 정이 들어 떠나라고 떠밀어도 못 떠나지만, 안동의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선배들한테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은 이난 씨다. 나름대로 다들 자기 색깔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어서 그런지 서로 어우러져 함께하는 공연이 없다는 게 아쉽고 무엇보다 젊은 후배들을 키우지 않는 게 아쉽다.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료들에게 들어보면 어렵고 그래도 다들 후배들을 키우고 있다는데, 후배들을 키우지 않고 그분들이 활동을 그만두면 그 뒤로 안동의 공연계는 그나마의 명성과 색깔을 지켜나가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난 씨는 힘들지만 후배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공연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하지만 후배들의 젊은 끼를 배우기도 한다. 십 년 뒤 이십년 뒤를 생각하면서 더 많은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은 게 솔직한 욕심이다.


“지금 라이브 공연하는 사람들 중에는 제가 막내예요. 안동 전체를 놓고 보면 저 말고 그 아래로는 공연하는 후배가 뚜렷하게 없는 거죠. 저는 밑에 후배들을 데리고 있지만요. 학교도 많고 그래서인지 학연, 지연도 엄청 챙기고 다들 혼자서는 잘하지만 선배들이 후배들을 키워주는 그런 면은 좀 부족한 거 같아요. 물론 그분들로서는 생계가 달린 직업이시기도 하니까 마음은 있어도 못하실 수도 있죠. 또 요즘 후배들이 힘든 과정을 잘 못 참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어려워도 이제는 지역문화 차원에서 양성을 좀 해야 될 때라고 생각을 해요. 가치관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혼자 하는 건 재미가 없거든요. 선배든 후배든 같이 어우러지고 섞여서 하는 게 저는 옛날부터 좋았어요.” 


그는 후배들에게 늘 다른 사람들의 공연을 열심히 보고 배우라고 주문을 한다. 물론 그 자신도 그래서 그 상태에 머물러 고여 있지 않고 늘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공연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그의 공연은 다채롭다. 때로는 사물놀이가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관객층에 따라 때로는 춤과 소리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재미있고 흥이 나는 공연을 추구하다보니 그의 팬 층도 어린이에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공연은 제 값을 내고 봐야 제대로 누릴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시골 문화센터 노래교실 제자들인 할머니들이 꼬박꼬박 공연료 오천 원을 주고 표를 사들고 들어와서 우리 선생님 공연 보러 왔다며 손을 흔들고, 그의 공연에는 언제나 앞자리에 초대되는 병원과 복지촌의 어린 친구들이 피날레에 일어나 춤을 추며 흥겨워할 때 그는 공연하는 보람을 느낀다.  






 

김이난과 김인환


그의 이름 김이난은 사실 김인환에서 나온 이름이다. 서울에서 활동할 때부터 그는 본명인 인환이를 그대로 플레잉 네임으로 썼고 안동에 와서도 한참 동안 인환이라는 이름을 썼었다. 그러다가 요즈음 활동할 때는 ‘김이난’ 이라는 이름을 주로 쓴다. 부르기 쉽게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도 있지만 자연인 김인환과 공연하는 가수 김이난을 분리하고 싶은 마음도 작용을 했다. 처음 안동에 와서 김인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많이 부딪치고 상처를 받아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선을 긋고 살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오기를 부리면서 살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너무 하고 싶은 말을 속에 담아두고만 살았었나 봐요. 저는 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이 그러더라고요. 먼저 벽을 치고 다른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막는 건 형이 아니냐고요. 어떤 면에서는 그 말이 맞기도 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게 지금은 참 후회가 되요. 사람 사이에 미리 막을 치고 경계를 하지 말고 나부터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살 걸 하고요. 저는 돈 없어도 안 힘들고 몸이 힘들어도 안 힘든데 자존심 문제는 참 힘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자존심도 버렸죠. 자존심을 버리면서 오히려 많이 배웠다고 할까요. 김인환도 김이난도 다 저이긴 하지만 앞으로 공연은 김이난 이라는 이름으로 하려고요. 자연인 김인환의 삶도 있으니까요.”


그는 어쩌면 젊은 날 곧 죽어도 고개 숙이기 싫었던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진짜 자존심을 지키는 법을 배운 건지도 모른다.


자존심 강한 김이난은 팬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공연을 제대로 누리려면 공연료를 지불하고 공연을 보라고. 그 사람이 가진 재능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줄 때 최상의 공연을 누릴 수 있다고. 그가 늘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가끔 누구누구 소개라며 대뜸 전화를 해서는 공연 한 번 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잠깐 와서 공연 한 번해 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렵냐고, 공연 요청을 해 주는 것이 오히려 은혜를 베푸는 것인 양 그러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제대로 대우해 주지는 않아요. 저는 내키면 그냥 공짜로 공연해 주기도 하지만 대충 싸게 한 번 써먹으려는 사람들이 부르는 공연은 거절해요. 그런 사람들은 제대로 된 공연 문화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대우도 하지 않고 투자도 하지 않아요. 어느 분야든 간에 문화예술 공연을 제대로 누리려면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누릴 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후배들이 음악 활동에 뜻을 가지고 시작했다가도 계속하지 못하고 안동을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거의 공짜이다시피 한 싼 공연료를 들었다. 무대에 대한 투자든 사람에 대한 투자든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고 수준 높은 공연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우리는 지역축제니 노래자랑이니 하는 행사에서 축하 공연을 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거의 공짜로 본다. 그들의 공연료에는 무관심하다. 어쩌다 한번씩 오는 유명 가수들의 공연료는 비싸더라도 표를 사서 보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의 공연에 표를 사서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현실이 받쳐줘야 음악도 공연도 있는 거라는 걸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김이난의 공연에 오는 사람들은 초대를 받거나 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표를 사서 들어온다. 현재 그의 공연 티켓 값은 오천 원이다. 그리고 그날 차려진 공연을 마음껏 즐기고 간다. 그게 김이난이 말하는 제대로 누리는 공연이다.   


  


어머니 모시고 안동에서 살고픈 막둥이의 꿈


남들은 그를 두고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는 늘 일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일도 경제적인 이해득실 보다는 사람을 보고 했고, 일을 잃을지언정 사람은 잃지 말자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그는 공연을 가더라도 그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에 맞추어 공연을 하려고 애쓴다.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 집을 새로 마련해 강원도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셔와 안동에서 함께  살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며 좋아하는 그다. 늘 새로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김이난. 그가 꿈꾸는 공연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퓨전 ‘가족음악회’다. 연극과 춤과 노래가 어울린 뮤지컬에 국악까지 잘 섞어 버무린 한 판 신명나는 재밌는 퓨전 공연 말이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온 가족이 울고 웃는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는 날을 꿈꾸며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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