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 경재잠도와 제10 숙흥야매잠도(글/이해영_안동대 교수)
2008년 무자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라는 화장을 하고 10여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띄게 불어온 뒤틀린 욕망의 광풍은 거대한 거품을 낳았다. 그 동안 여러 번 거품이 꺼질 뻔한 작은 고비가 있었으나 욕망 때문에 생긴 종기를 욕망을 부추겨서 치료하는 바람에 속으로 곪고 곪아 거품은 전 세계를 덮고 말았다. 그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면서 전 세계를 휩쓸던 뒤틀린 이 미친 바람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워낙 오랫동안 부풀리고 묵힌 거품이라 그 끝이 언제일지는 누구도 짐작하기 어렵다. 빗자루도 오래 묵으면 귀신이 된다든가? 뒤틀린 욕망도, 거대한 거품도 하마 인간의 삶과 영혼을 집어삼키고 귀신이 된 것은 아닐까 저어해서 마음이 답답하다. 전 세계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라도 오직 이 시간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의 위정자들이 거품의 원인을 영혼의 부재, 도덕적 해이라고 성찰하지 않고 뒤틀린 욕망의 거품을 욕망만을 부추겨서 해결하려는 멍청한 짓을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여하튼 이황의 성학십도를 다룬 1년에 걸친 이 연재도 이번으로 끝이다. 우리는 흔히 힘든 일을 마무리 하면서 시원하다고 하는데, 비틀거리며 겨우 겨우 견디어 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데도 영 시원하지 않다. 감당하지 못할 일을 맡아서 제대로 해내지 못한 부끄러움이 진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글에 혹 억지나 틀린 내용이 있더라도 너르게 용서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게다가 진정 부끄러움을 더하는 것은 필자가 몸과 마음 모두 공경스러움과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다. 그저 헤아리시라.
마음속 거룩한 씨앗을 가꾸는 일, 성학
유학에서 생각하는 거룩함〔聖〕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꾸리는 삶의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유학의 이상은 일상생활을 기반으로 하늘의 거룩함과 만나서 그 거룩함과 하나가 되는 성인이 되는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가 하늘의 거룩함을 마음속에 씨앗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의 삶 속에서 그 씨앗을 잘 가꾸어 열매 맺으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그 씨앗은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이다. 그 원리를 마음이 지닌 덕이라 부르기도 하고, 사랑의 원리라 말하기도 한다. 내 마음에 깃든 씨앗을 잘 가꾸고 열매 맺어 성인이 된 후에는 다시 모든 이들이, 모든 사물들이, 온 우주가 거룩함으로 아우러지는 세상을 이루어야 한다. 나, 다른 이, 모든 사물, 온 우주는 하늘의 이치가 펼쳐진 것이어서 사랑의 원리로 거두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을 실현하는 일이오, 수기치인(修己治人)이오, 내성외왕(內聖外王)이오, 천인합일(天人合一)이다. 마음속에 간직한 거룩한 씨앗을 가꾸는 일이 성학이오, 그 가꾸는 자세, 방법이 바로 ‘공경스러움’이다. 《성학십도》〈제 9도 경재잠도〉와 〈제 10도 숙흥야매잠도〉는 일상생활에서 거룩한 씨앗을 가꾸는‘공경스러움’을 말한 것이다. 굳이 나누어 표현하자면 〈경재잠〉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 속에서 ‘공경스러움’을 어떻게 간직하고 실천하느냐 하는 것을 논했다면 〈숙흥야매잠〉은 시간적 상황 속에서 ‘공경스러움’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것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경제잠은 공간적 상황에 따라 ‘공경스러움’의 실천을 그렸다면 숙흥야매잠은 하루라고 하는 시간적 상황을 정하여 ‘공경스러움’을 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경재잠〉과 〈숙흥야매잠〉을 읽으면서 이황의 사무사〔思無邪: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 신기독〔愼其獨 :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무불경〔毋不敬 :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이라는 판각의 탁본글씨를 생각했다. 두 잠의 내용 모두가 이 세 가지 내용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황은 〈숙흥야매잠도〉의 보충 설명에서 “도는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두루 펼쳐져서 어디를 가더라도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치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곳에선들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또 잠깐 사이도 그치지 않으므로 한 순간도 이치가 없는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
까? 그러므로 자사가 가로되,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지 않는데서 마음을 삼가고 듣지 않는 데서도 마음을 두려워한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숨은 곳보다 더 잘 보이는 곳이 없으며 은미한 곳에서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아는 마음의 기미를 삼간다’고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할 때에나, 어느 곳 어느 때에나 본마음을 보존하고 기르며 살피고 살펴서 번갈아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과연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털끝만한 잘못이 없을 것이오, 어느 시간적 상황에서나 잠시의 중단도 없을 것입니다. 두 가지로써 함께 나아가면 성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경재잠〉이 4자 1구, 4구 1절로 하여 총 10절 160자, 〈숙흥야매잠〉이 4자 1구, 4구 1절로 하여 총 13절 208자로 구성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 두 잠이 외우기 쉽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는 잠의 내용을 늘 외워 마음속에 잊지 않으며 몸과 하나가 되어 실천하여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논어 첫머리 학이시습(學而時習)의 습이 새가 나는 방법을 몸에 익히듯 배운 바를 몸으로 익힌다고 풀이되는 것처럼 ‘공경스러움’을 몸과 마음으로 익혀 공경스러움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제 9 경재잠도(敬齋箴圖)〉 -공간적 상황에서의 ‘공경스러움’-
〈경재잠도〉는 주희가 장식(張栻; 1133~1180)의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그 뜻을 취하여 경재(敬齋)라는 서재의 벽에 써 붙이고 스스로를 경계한 〈경재잠〉을 왕백(王柏 ; 1197~1274)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황은 “〈태극도〉는 내가 학문을 하게 된 출발점이며, 〈경재잠〉은 나의 실천의 기반이다.”라 하였는데, 〈경재잠〉은 ‘공경스러움’의 구체적인 실천세목과 그것을 적용한 여러 경우를 제시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오가고, 앉고 서고하는 경우, 안과 밖의 경우 등 각 경우에 있어서 마음 두어야 할 바를 자세하게 말한 것이다. 이황은 공경스러움의 실천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면, 즉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모두 자연스레 ‘공경스러움’을 이
루면 이것이 바로 성인학문의 처음과 끝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황은〈경재잠〉의 틀을 설명하는 데에 오징(吳澄 ; 1249~1333)의 분석을 인용하였다.
- 이 잠(箴)은 모두 10장으로 되어 있는데, 한 장은 4구씩이다. 첫째 장은 고요히 있을 때(靜)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함이고, 둘째 장은 움직일 때(動)에 어김이 없을 것을 말함이다. 셋째 장은 겉모습〔表〕의 바름을, 넷째 장은 속마음〔裏〕의 바름을 말한 것이다. 다섯째 장은 마음을 바로잡아 일에 통달할 것을 말하였으며, 여섯째 장은 일에 집중하되 마음에 근본을 둘 것을 말하였다. 일곱째 장은 앞의 여섯 장을 총괄한 것이다. 여덟째 장은 마음이 흐트러지는 병폐를 말한 것이고, 아홉째 장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폐단을 말한 것이다. 열째 장은 한편을 총괄적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이황의 학맥에서는〈경재잠〉에 관한 공부가 전통으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소퇴계라 불렸던 대산 이상정(李象靖 ; 1711∼1781)은 〈경재잠〉에 관한 방대한 설을 모아 《경재잠집설(敬齋箴集說)》을 편찬하였고 김흥락(金興洛 ; 1827 ~ 1899)은 이를 바탕으로〈경재잠집설도〉를 그렸다. 그러면 이전의 방식대로 경제잠의 원문을 한글로 옮기고 그 뜻을 풀이해보기로 한다.
경재잠(敬齋箴)
의관을 바로하고 바라보는 눈길은 존엄하게 하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상제를 우러르듯 하라.
발걸음은 반드시 신중하게 하고, 손놀림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라. 땅도 가려서 밟아 개미두둑 비켜 돌아서 가듯 하라.
문을 나서 사람을 만날 때는 손님을 대하듯 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제사를 드리듯 하라. 조심조심 경건하게 처신하여 감히 조금도 안이하게 하지 마라.
입지키기를 병마개 막는 것처럼 하고 잡된 생각 막기를 성문 지키듯이 하라. 성실하고 진실하여 감히 조금도 경솔하게 하지 마라.
서로 갈 일을 동으로 가지 말며, 북으로 갈 일을 남으로 가지 말라. 일을 맞아서는 마음을 오로지 거기에 두고 다른 데로 가지 마라.
두 가지 일이라고 마음을 두 갈래로 두지 말고, 세 가지 일이라고 마음을 세 갈래로 두지 마라. 마음을 오롯이 하나로 하여 온갖 변화를 살펴라.
이렇게 하는 것이 ‘공경스러움’을 지니는 것이니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이를 어기지 말고, 겉으로도 속으로도 서로 바르게 하라.
잠시라도 틈이 나면 온갖 사욕의 실마리가 일어나 불길 없이도 뜨거워지고 얼음 없이도 차가와 진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뒤바뀌어 삼강(三綱)이 무너지고 구법(九法)이 허물어진다.
오호라, 배우는 이들이여! 생각하고 조심하라. 먹으로 써서 경계를 삼아 감히 마음에 고하노라.
깨끗하고 반듯하게 차려 입은 옷은 공경스럽게 가다듬은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방법의 하나이다. 반듯한 의관은 정성스러운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 의관은 다시 속내를 가다듬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친다. 우스갯소리로 개구리복을 입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좀 이상해진다고 하든가? 여하튼 의관을 반듯이 갖춘다고 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예모를 갖춘다는 말이다. 《대학》 〈성의장〉에 ‘정성으로 가다듬은 속내가 겉으로 드러난다〔誠於中而形於外〕’라 하였다. 알찬 속내가 멋진 형식을 갖추어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예모가 빛나는 것이며, 이를 《논어》에서는 ‘속내와 겉모양이 잘 어울려 아름답게 빛난〔文質彬彬〕 뒤에 군자라 할 수 있다.’라 하였다. 성실한 속내 없이는 아무리 멋을 부려도 그야말로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람과 만나고 사물과 만나는 기본 형식은 눈맞춤이다. 바라보는 눈길이다. 그 눈길을 통하여 우리는 말보다 더 진한 속내를 전한다. 엄마와 아기의 눈맞춤을 생각해보라. 눈동자로 드러나는 눈길은 속일 수 없다. 눈길은 원초적 반응이다. 그래서《맹자》〈이루장구 상〉에 ‘사람의 속내를 눈동자보다 더 잘 드러내는 것이 없다.’하였다. 눈길이 공경스러운 마음을 담아내면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눈길을 존엄하게 한다는 것은 눈길에 공경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말이다. 눈길을 존엄하게 못하고, 즉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피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고 자신이 없는 탓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은 자칫 공격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똑바른 눈길로 마주 보아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그 눈길은 다정해야 한다.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따뜻하고 진실함을 머금은 다정한 눈길을 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눈길을 존엄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은 물과 같다. 헝클어져 흙탕물 같이 된 마음도 고요히 가라앉히면 아주 작은 파문도 없이 고요한 맑은 물 그 자체가 된다. 고요히 가라앉힘은 섬김이고 우러름이다. 내가 내 마음을 섬기고 우러르는 것이다. 섬김과 우러름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거룩함을 상징하는 상제를 이끌어내었다. 내 마음을 섬기고 내 마음을 우러름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 아니겠는가? 이것을 외경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고요한 마음을 갖는 방법으로 흔히 고요히 앉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정좌(靜坐)가 말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늘 움직일 수밖에 없고 거룩함을 원하지만 세속에 거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고요하려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을 멀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속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세속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 이황도 퍽이나 좋아했다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은 세속에 살면서 세속에 얽매이거나 매몰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심원(心遠: 마음을 멀리함)’이라 하였다. 유가의 이상, 현실 속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방법이 바로 심원이다. 심원하면 세속의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 매몰되거나 구속되지 않으므로 자유롭다.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함이 아니라 같이 있으면서 걸림이 없고자 할 뿐이다. 걸림이 없고 자유로우므로 누구나 어느 것과도 어울리고 아우러진다. 궁극적으로는 우주와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내 마음을 섬겨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도 섬긴다
마음 밭을 갈고 가꾸면 그 효과는 몸짓으로 나타난다. 몸짓이 조리에 맞는 길은 마음 밭에 마구 돋아나는 잡념을 호미질로 꼼꼼하게 뽑아내는 길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은 몸가짐으로 드러나고 몸가짐은 마음가짐에 영향을 미친다. 마음가짐은 몸가짐으로, 몸가짐은 몸짓으로 나타내지는데, 몸짓은 손짓 발짓이 가장 두드러진다. 손놀림하나 발걸음 하나가 모두 마음을 머금는 것이다.
사물과의 만남조차 조심스러워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꼭 붙잡는 것이 조심이다. 조심은 마음을 섬기고 마음을 존중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섬겨야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섬길 수 있고, 내 마음을 우러러야 다른 이의 마음을 우러를 수 있다. 만물이 하나이기에 개미두둑조차 조심의 대상이 된다. 모든 것이 다 태극의 드러남이오,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나서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조심스럽다. 식구들처럼 스스럼없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럼없는 자연스러운 사이는 바람직한 관계를 나타내지만, 스스럼없다 보면 자칫 내 마음이 앞서서 상대를 함부로 대하기 마련이다. 함부로 대하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손상된다. 그래서 아무리 스스럼이 없는 사이라도 예의는 필요하다. 손님 대하듯 예의를 갖춘 바탕 아래에서만 점차로 그 관계가 자연스럽고 도타와지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처리할 때 그 과정은 경건해야 한다. 그것이 ‘제사를 모시듯’이다. 어떤 목공이 작업하는 것을 즐겨 본다. 그가 나무를 다룰 때 보여주는 진지함, 경건함 때문이다. 그는 일에 임하여 연장과 나무를 섬기고 모시듯 한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나무의 결을 진지하게 찾고 몸을 도구에 붙여 나무의 결을 만난다. 목공의 결과 도구의 결이 만나고 목공의 결과 나무의 결이 도구의 결을 매개로 하여 만나게 된다. 마음과 몸과 나무의 결이 하나가 된다. 목공의 혼신이 나무에 멋진 흔적으로 남는다.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길래 전전긍긍하는가? 마음이 흐트러질까 두렵고, 그래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삼가고 단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고요한 호수다. 작은 돌멩이를 던지면 작은 파문이, 큰 돌덩이를 던지면 큰 파문이 인다. 잠시 한눈을 팔면 온갖 돌멩이 돌덩이들이 던져진다. 고요가 흐트러진다. 호수 같은 마음은 온갖 파문에 본래 지닌 품위를 잃는다. 전전긍긍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말처럼 필수적이면서 위험한 것이 있을까? 말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말은 입에서 나오나 그 내용은 속내다. 흐트러진 속내는 흐트러진 말로, 비뚤어진 속마음은 비뚤어진 말로 나온다. 어질고 아름다운 속내는 어질고 아름다운 말로 나온다. 아무리 잘 꾸며 말한들 어찌 속내를 속이랴. 자신부터 속이는 짓인 것을. 그러므로 입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거친 속내가 말이 되어 함부로 흐르지 않도록 잘 막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마개를 열고 내용물을 필요한 만큼 내 놓으면 된다. 마개를 늘 열어두면 자칫 몽땅 흘러버리고 느슨히 막으면 빈틈으로 새어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될 경우에는 닫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속내를 밖으로 내려면 속내가 든든히 마련되어야 한다. 속내가 헛헛하면 그것을 감추려고 흔히 과장하여 겉으로 드러내기 십상이다. 속내가 든든하려면 바깥의 유혹이나 스스로 빚은 잡념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실하게 가꾸고 오롯이 모아 감히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은 그릇에 고여 있는 물과 같다. 기울이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물 받을 그릇을 서쪽에 두고 동쪽으로 기울이면 물은 딴 데로 흘러버리게 된다. 방심하면 늘 있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할 때는 마음을 오로지 그곳에 두어야 한다. 그냥 그곳과 오롯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같이 할 수는 없다. 마음은 이리 저리 갈래는 버릇이 있지만 어떤 일을 실행할 때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온전히 하나로 모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사람도 사실 잘 살펴보면 하나를 집중해서 처리하고, 이어 다른 하나를 처리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지, 동시에 여러 일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가지 한 가지 일마다 마음을 집중하여 기울이는 것, 이것이 바로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마음을 오롯이 하는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되면 온갖 변화의 양상을 환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가꾸고 닦아 맑디맑은 내 마음의 거울에 사물의 변화가 밝게 비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을 지녀야 하지만 잠시라도 마음을 놓아 틈이 생기면, 기회를 엿보던 온갖 사사로운 욕망이 갈래갈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장마철 마당에 풀 돋아나듯 한다. 그 욕망은 내 안에서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것을 채우는 일은 결코 녹녹치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고, 바라는 바가 꺾이다 보면 마음이 얼어붙는다. 이른바 인터넷 농담으로 비유하면, 마음이 가장 뜨거운 바다인 열바다와 차가운 바다인 싸늘해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털끝만한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이 된다’고 하였는데, 사람의 마음은 우주의 마음이므로 내 마음에서 털끝만큼 어긋나도 그 결과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인간사회의 질서는 무너지고 이어 국가의 질서, 심지어 우주의 질서까지 허물어지는 것이다.
<제10 숙흥야매잠도 (夙興夜寐箴圖)> -공경스러움과 선비의 하루-
〈숙흥야매잠〉은 중국 남송 때 학자 진백(陳伯)이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숙흥야매는 《시경》에서 나온 말로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잔다’이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다. 〈숙흥야매잠〉은 하루라는 시간적 상황을 설정하여 ‘공경스러움’을 설명한 글이다. 우선 우리 글로 옮겨 놓고 이황의 뜻을 짐작해가며 풀이해보자.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닭이 울어 깨어나면 생각들이 점차 일어난다. 어찌 이 때 어찌 고요히 마음을 정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때로는 지난 허물을 반성하고 때로는 새로 얻은 것의 실마리를 풀어내어 순서와 조리를 또렷하게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두라.
근본이 확립되었거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차리고 단정히 앉아 자세를 가다듬어라.
이 마음을 다잡아 모으면 떠오르는 해처럼 환하고, 몸을 엄숙하게 가다듬으면 마음이 텅 빈 듯 밝고 고요하여 오롯하리라.
이에 책을 펴고 성현을 마주 대하면, 공자께서 자리에 계시고 안자 증자가 앞뒤에 있다.
거룩한 스승의 말씀을 다소곳이 경건하게 듣고 제자들의 묻고 따지는 말을 반복해서 참고하여 바로 잡아라.
일이 생겨 그에 대응한 것은 행위에서 징험할 수 있도다. 밝은 하늘의 명 환하게 빛나니 항상 그 자리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에 대응이 끝나고 나면 나는 본래로 돌아가니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쉬게 하라.
움직임과 고요함이 순환할 때, 마음만이 이를 살펴, 고요할 때 보존하고 움직일 때 살피어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지 말라.
독서하다가 쉬는 여가에 틈틈이 노닐며, 정신을 편안하게 펼치고 성정을 쉬게 할지어다.
해가 저물어 고달프게 되면 흐린 기운이 쉬이 스며드니 재계하고 장중하게 가다듬어 맑고 바른 정신을 북돋을지어다. 밤이 깊어 잠잘 때는 손발을 가지런히 거두어,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심신을 잠들게 하라.
밤기운을 기를 지어다. 정(貞) 다음에는 원(元)으로 돌아가나니 언제나 이렇게 하기를 생각하여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할 지어다.
새벽닭은 울었으되 사위가 아직은 어둡다. 지난 잠자리를 감돌던 밤기운은 고요하였다. 그 기운을 받아 몸은 편안하고 마음 또한 고요하였다. 깨어나면서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잠잠했던 마음이 꿈틀거린다. 긴 호흡을 한다. 이른 새벽이 주는 맑고 밝은 상쾌한 기운이 들어온다. 꿈틀거리던 생각들이 다시 가라앉는다.《맹자》에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자를 순임금〔聖人〕의 무리”라 했든가?
순간순간 마주하는 상황은 지나가고 나면 묵은 흔적으로 남는다. 흔적을 보며 우리는 지난 상황을 되새김질 한다. 되새김질 하면서 아직도 날 붙들고 있는 흔적의 통증을 치유하기도 한다. 마음속 흔적의 아픔을 살펴서 다독이는 것이다. 공자는 ‘지나간 일은 허물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냥 아프지 않은 척 덮어두려고 하거나 들추어내어 다시 부둥켜안고 고통스러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다. 아픈 흔적도 내 것이다. 스스로 다독이고 포근히 안아주라. 아픈 흔적이 다소곳해지면서 편안하다. 이미 아픔도 고통도 즐거움도 슬픔도 없다. 그저 자유스러움이 주는 평안이 있을 뿐이다. 그래야만 새로이 얻을 수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뜻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맥락이다. 그 맥락을 조리에 따라 차근차근 순서를 정하여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두어야 한다. 비로소 하루를 시작하는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마련된 것이다.
그 사이에 동쪽 하늘이 부옇게 바뀌었다.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갖추고서 반듯이 앉아 몸을 가늠하고 가다듬는다. 몸가짐이 반듯해지자 천지에 가득한 호연한 기운이 반듯하게 세운 몸 가운데를 타고 정수리에서 단전 회음혈을 거쳐 돌고 돌아 온 몸을 채운다. 마음 또한 텅 빈 듯 오롯하여 환하게 빛난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공경스러워져 고요하고 평안하다.
이제 오롯한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성인을 만난다. 공자도 뵙고 안자 증자도 만난다. 간절한 자세로 귀 기울여 성인의 말씀을 들어 마음에 새기고, 공자와 안자 증자의 대화도 거듭 거듭 곱씹는다. 천지에 가득하고 내 몸에 가득한 호연한 기운은 성인의 도리의 말씀을 먹고 배부르다. 마음 또한 한결같고 고요하기 그지없다.
마음이 오롯하고 공경스러우니 천지만물의 결이 결 그대로 환하게 다가든다. 공경스러운 마음을 통하여 손짓 하나하나 발걸음 하나하나가 결대로 흐른다. 결과 결이 만나고 매듭으로 얽혀 하늘의 그물이 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되 결과 매듭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빈틈없이 우주를 아우른다. 내 마음의 결과 사물의 결이 만나 한 매듭을 지었으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야 한다.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사물의 결을 만나는 일에 쏠려간 마음을 조심조심 거두어 모은다. 정신은 하나로 모아지고 생각은 그대로 놓아두어 편안하다.
삶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의 변주다. 때론 들뜨고 때론 잠기며 어느 때는 곧바로 가고 어느 때는 비껴간다. 어느 순간에는 마음이 몸을 이끌고 곧이어 몸 따라 마음이 갈랜다. 너무 집중하여 바짝 긴장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느슨하여 확 풀어지기도 한다. 마음의 결과 몸의 결이 한결같으려면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마음가짐으로 고요할 때 본마음 그대로를 보존하고 움직일 때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펴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이루려면 집중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집중은 긴장을 가져온다. 팽팽히 당겨진 긴장의 끈은 자칫 끊어져 몸과 마음을 다친다. 느슨하기만 하면 풀어져 일을 성취하기가 어렵다. 너무 풀리고 나면 탄성을 되찾을 수 없다. 긴장과 이완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른다면 좋겠지만 우선 알맞게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갈 필요가 있다.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은 집중하고 깨어있기만 한 긴장이 아니다. 느긋이 마음을 가누어 성정을 쉬게 하는 것도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전번 글에서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은 긴장과 이완을 감싸 안으면서 초월하는 어떤 경지일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하루를 지내고 나면 몸도 마음도 저절로 지친다. 부닥치는 일에 비하여 몸을 쉬고 마음을 돌아보고 살필 여유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 틈에 흐리고 어두운 기운이 스며들기 쉽다. 이 때 다시 힘을 내어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밤이 깊어지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손발을 가지런히 거둔다. 잠자리는 쉬는 시간이오, 공간이므로 가지런히 거둔다 하여 너무 반듯하고 뻣뻣하면 안 된다. 좀 느슨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옛 사람은 너무 반듯하고 뻣뻣하게 몸을 가누어 잠자는 것을 시침〔시체처럼 잔다〕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자리에 두면 그 뿐이다. 저절로 맑은 밤기운이 굶주린 몸과 마음을 채워준다. 새벽이 되면 다시 새 기운이 솟아날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새싹이 돋는 것과 같다. 우주의 질서와 인간 삶의 질서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오직 이러함을 알아 자나 깨나 공경스러운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부지런하면 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