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사람 권오춘(글/김영희_경기도 과천 사는 안동사람)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생활하며 한학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안동이라면 어쩌다 있을 수 있겠다 싶지만 그것이 서울 한복판이라면 호기심을 갖고 다시 한 번 쳐다볼 일이다. 전통문화연구회 이사이면서 국어고전문화연구소 이사장인 권오춘(54세, 남후면 검암동 출생) 선생은 한복을 입고 생활한 지 벌써 10여년 가까이 되었다. 개량한복이나 간단한 복장이 아니라 완전히 갖춘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꼭 갖춰 입고 다닌다. 또 들은바에 의하면 경기도 양평에 불국사만한 전통한옥 집을 갖고 있단다.
서울역에서 만나던 날도 흰 모시 한복을 곱게 입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서울역 바로 뒤편에 있는 새로 지은 오피스텔로 안내 했는데 <국어고전문화연구소>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방안에는 몇몇 분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한문책 같아 보였고 책장에 가득 찬 책들도 거의 한문으로 쓰여 있고 두껍기가 이룰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작설차 한 잔을 마시면서 종이를 한 장 받았는데 눈에 익은 반가운 글이었다. ‘세종어제 훈민정음’. 마침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뜻을 새기고 있다고. 학교 다닐 때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본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읽을 줄 알았는데 방점까지 찍혀 있어서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국어고전문화연구소는 어떤 곳입니까?
국어라면 훈민정음인 한글과 우리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써왔던 한문을 말합니다. 우리조상들의 지적 재산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요. 팔만대장경이다, 실록이다, 최치원 선생의 계원필경이다, 정다산 선생의 흠흠신서 등 선조들의 모든 정신사상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요,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한글 전용하는 것만이 애국이고 그것이 오로지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한글과 한문을 병용해서 쓰자는 생각을 가지고 그걸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글과 한문을 병용할 때 언어의 구사력이나 지적 표현이 더 풍부해지고 문화민족의 품위를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고전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새로운 문예부흥운동 같은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옛날에 성균관대학 다도대학원에서 차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 앞에 계시는 윤경혁 원장님이 강의를 하셨어요. 그 강의를 듣고 너무 감동되고 해서 이런 분을 도와 드려야겠다 싶어서, 그전에 종로에서 ‘만시태학당’이라는 곳에서 교육을 하셨는데 그걸 사단법인화 해서 ‘국어고전문화원’이라 하고 여기에 자리를 마련했죠. 이제까지는 종로가 중심이었는데 아무래도 KTX가 생기면 사회적 삶의 질도 바뀌게 될 것이고 서울역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될 거라 생각해서 이곳으로 왔는데 정말 지방에서도 공부하러 옵니다. 서울 사람들은 정말 공부를 안하지만 마산, 창원, 부산, 대구 이런데서 기차를 타고 공부하러 옵니다. 한학을 한다고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원장님 사고가 합리적이고 상당히 미래지향적이지요.
평소에도 한학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제가 고향이 안동이다 보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안동 권씨, 안동 양반 하면서 어딜 가나 돗대 같은 양반으로 생각하고 안동양반, 안동양반 하는데 내가 과연 안동인으로서 그런 말을 들을만한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양반의 덕목을 내가 전수 받아야지 안되겠다 생각했죠. 저는 특히 유교경전, 불교경전, 노장자, 신구약성경 등 경전에 관심을 가졌는데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지적축약이 경전에 있지않나 생각했어요. 경전을 읽다 보니 밤에 잠도 덜 오고 다른 책은 재미도 없어서 경전에 몰입하게 되었어요.
기본 지식 없이 경전 공부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당에서 명심보감을 좀 배웠어요. 그리고 안동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유교적인 토양이 바탕이 된 생활이기 때문에 그런 프리미엄을 갖고 한문 공부를 하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공부를 하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죠. 한국고전번역원의 송백효 선생님이나 조순 박사를 만나면서 공부가 깊어졌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다보니까 고전에 눈을 뜨게 되고 사람들이 많이 안다 카면서 강의도 해 달라 하고 했어요. 내가 갖고 있는 기본 실력보다 더 칭찬하고 치켜세우니까 안할 수도 없고 자꾸 깊이 몰입하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 안동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고 퇴계선생의 성학십도나 이기이원론 등도 깊이 있게 하게 되고 서울 사람들에게 안동관광 안내도 하게 되고, 안동지역 문화안내는 유홍준 씨보다 제가 더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공부에 몰입했다고 하셨는데 어느 정도 공부를 하세요?
좀 과장해서 하루 24시간 전부 고전책을 보며 지낸다고 할 수 있죠. 마음먹고 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나서 우선 술을 끊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보면 허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든요. 그리고 담배도 끊어야 되겠다, 바둑, 고스톱 같은 잡기도 끊어야 되겠다, 골프도 끊어야 되겠다, 잡담하고 노는 거를 끊어야 되겠다, TV와 신문도 끊어야 되겠다, 그렇게 하고나니 시간이 주어지고 공부에 빠지게 되었지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만나서 새로운 문화운동을 해보자 하면서 고전공부 뿐만 아니라 선비춤도 배우고 있고 거문고와 서예도 배우고 있습니다.
한복을 입고 한학에 서예와 거문고,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옛날 선비가 생각납니다.
새로운 문화운동이라고 했는데 바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삶을 오늘날 되살려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가 어머니 세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잘 이어져 왔는데 불과 5-60년 만에 우리문화가 서구문화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다 무너져 버렸어요. 우리의 문화가 서구에 비해서 비교우위가 없다든가 비판받을 것 같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살던 집들도 한옥에서 아파트로 다 바뀌고 옷도 전부 바뀌고 어느 세대 역사 민족이 100년도 안 되어서 이렇게 된 민족이 어디 있느냐 말이죠. 나 하나 만이라도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가 살았던 것처럼 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준다면 또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허리 역할을 내가 해야 되겠다, 우리 집안의 중시조가 되어야 되겠다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제 손자들이 보고 그 중 한 명이라도 우리 할아버지를 본받자 한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지요.
손자들이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미리 준비된 할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들보다 손자에게 전수를 해야 더 오래 전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은 말로 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어릴시절 10월 시사 때 아버지하고 집안 어른들하고 무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들국화가 지천으로 핀 도랑을 건너면서 아버지한테 이 산소는 누구거다 이것은 누구거다 얘기를 듣고, 또 과일도 얻어먹고 떡도 얻어먹었어요. 먹을 것이 귀한 때라 먹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그러한 산천이 머리에 남아 있고 그런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까 나도 우리 아이들 데리고 조상 산소에 가고 할 때 어떤 정신적인 얘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준비하는 할아버지가 되어야 되겠다 했죠. 지금 대부분 사람들은 준비하지 않고 키우다 보니까 인욕에 가려서 손자들에게 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얘기를 못해줘요. 그 위치를 못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한복을 입어도 정통 복장을 입어야 되겠다, 집도 전통한옥을 지켜야 되겠다, 고전 공부도 제대로 해야 되겠다 이렇게 되는 것이죠.
한복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시네요.
나는 한복 속에서 조상을 느끼고 한복이라는 옷이 조상들과 교신하는 교신기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내가 이것을 입었을 때 행동이나 규범을 지키면서 안동권씨 35대로서 역할을 이 옷 속에서 찾고, 함부로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받지요. 나름대로 깊은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거를 가짐으로 행동도 더 근신하고,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가라고 했듯이 옷이라는 의식을 통해서 행동도 조심하고 남에게 모범도 보이고, 한복은 양반의 법도를 지켜야한다는 것을 이 옷에 담고 있다고 생각하죠. 형식이 내용을 알차게 하는 부분이 있듯이 상생과 상보의 삶을 만들고자 하면서 한복을 입어요.
요즘엔 어디에나 안티들이 많아서 한복 입는 것 갖고 말하는 사람은 없는지요?
내가 한복 입는다 하니까 양반 행세 한다 뭐다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관여치 않아요. 우리가 우리 옷을 입는데 내가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느냐 말이지요. 오히려 대통령도 외국에 나갈 때 한복을 입어야 한다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지난 8.15때 대통령이 한복을 입어서 다행이라 생각해요. 내가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해요. 그리고 유행도 돌고 돌듯이 문화에도 반드시 복고풍이 오고 우리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머잖아 오리라 생각해요.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오면 전 국민이 우리문화를 찾는 운동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를 대비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해요. 특히 우리 안동은 조상들이 남긴 집 하나, 담 하나, 도로 하나도 반드시 지켜내야 돼요. 한 번 파괴되고 나면 재생이 안되요. 모형은 모형이지 원형의 맛이 나지 않아요. 지금은 어렵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잘 지키면 우리 안동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도시가 되지 않을까 해요.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우리의 브랜드를 가져야 해요. 한(韓)브랜드가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화려한 대접을 받을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안동도 그것을 인식하고 보존하는데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중국에서 유명한 학자들이 안동을 와보고 이런 지방도시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어요. 안동 사람들이 조상의 것을 잘 지켜온, 어떤 동네보다 조상 것이라면 무모할 정도로 지켜온 점이 있어요. 제가 볼 때는 하드웨어는 좋은데 소프트웨어가 부족해요. 예를 들어 도산서원에도 가보면 집은 잘 보존되어 있는데 거기에 글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도산서원만큼은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동대학교나 지자체, 국학진흥원 등 여러 곳에서 서로 공조를 해서 인적 물적 자원을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더 잘 개발했으면 좋겠어요. 아쉬운 부분은 고쳐서 더 좋은 안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세계 사람들이 감짝 놀랄 안동을 내 세상에서 한 번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양수리에 불국사만한 한옥이 있으시죠?
그건 과장된 표현이고요, 잘 지어진 전통한옥이 한 채 있습니다. 이것도 제가 한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 저에게 오게 된 집입니다. 원래 이 집은 문화재위원이자 명지대 교수인 홍은옥 교수가 박물관으로 쓰려고 지은 집인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2003년에 제가 문화예술인들의 작업장과 모임장소로 쓰기 위해 매입했습니다. 며칠 후에 여기서 큰 굿판이 열립니다. 문화부에서 이 집을 빌려서 전통놀이의 재현으로 굿판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대판이 열릴 것 같습니다. 이 집은 인간문화재 74호 최기영 대목장이 지은 집이고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정수화 선생이 옻칠을 했습니다. 나무는 모두 소나무인데 집에 있는 가구 하나까지도 모두 용도에 맞게 깎아 만들었습니다. 또 그 나무에 전부 옻칠을 여러 번 했어요. 황옻이라 나무 색깔이 좀 다를 겁니다. 마루도 아홉 칸 마루인데 모두 옻칠이 되어 있습니다. 안방의 농을 보고 모두들 감탄을 하는데 문짝의 꽃들도 전부 깎았어요. 벽지는 삼베인데 삼베위에다 옻칠을 하고 창은 명주로 붙였습니다. 공이 엄청 들어간 집이지요. 여기 마루에서 공연도 여러 번 했고, 외국 손님들도 많이 다녀갔는데 모두들 한옥에 감탄을 하고 좋아합니다.
한옥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정말 잘 지어진 집 같습니다. 나무 냄새도 향기롭고, 보통 집이 아니라는 느낌이 막 전해져 옵니다. 문을 열었을 때 북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것도 참 좋습니다. 여기서 늘 지내세요?
집은 잠실인데 여기까지 얼마 안 걸리니까 자주 와서 지냅니다. 저는 사실 안동 구담에 있는 구담정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구담에 광산 김씨 종택인데 그것을 2000년에 사가지고 굴뚝도 놓고 정원도 새로 하고 담도 전부 옛날 담으로 복원했어요. 우리집 정원이 그만한 정원이 없어요. 지난해에는 우리 어머님 생신 잔치를 거기서 했는데 제가 ‘구담무담 - 잃어버린 잔치를 찾아서’라고 이름을 붙여서 큰 잔치를 했지요. 안동MBC에서 창사특집으로 그걸 방송하기도 했어요. 지금은 잔치가 사라진 시대예요. 멍석 펴고, 술 걸고, 떡 치던 그런 잔치가 사라졌어요. 가족 행사를 마을 잔치로 복원하고 손님들을 초대하고 술과 밥을 내고 춤도 추고 그랬지요. 영남 춤꾼 박경랑님, 호남 춤꾼 김운태님, 가야금산조 김무길 명인 등 참 그런 잔치가 없을 정도로 밤새 이어졌지요. 힘이 많이 들었어요.
아까부터 여쭤보고 싶었는데 이런 한옥집을 사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요?
제가 젊어서부터 몸에 밴 생활습관이 있는데요. 어디 가면 북적이는 주말을 피해 조용한 평일에 가요. 식당에 가도 사람들이 몰릴 때를 피해 좀 한산할 때 가고, 휴가도 피크타임을 피해 다니고, 그럼 나도 좋고 상대방도 좋아요. 미국에 9.11이 일어났을 때 모두가 미국에 대한 도전이다 복수해야 한다고 했을 때 미국의 자업자득이다 반성해야 한다는 1%의 지성의 소리가 있었듯이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때에 따라서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죠. 또 배추가 한 포기에 20원 한다고 2천 원 할 때와 맛이 다르거나 한게 아닌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보죠. 저는 돼지고기도 한 근에 만원 하면 안먹고 천오백원 하면 그때 많이 먹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돼지고기는 비쌀 때 맛있다고 쌀 때는 안 먹고 꼭 비쌀 때 먹어요. 이건 돈을 절약한다는 의미보다는 나라도 사줘야 하지 않겠냐 하는 배려의 마음이죠. 감자 값이 폭락했다 하면 다른 음식 덜 먹고 감자를 더 먹고, 수박 값이 폭락했다 하면 수박 사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그런 생활이 몸에 배었죠. 제가 증권회사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97년 IMF때 주식 값이 폭락을 했어요. 모두가 팔자고 내놓으니 내라도 저걸 좀 사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랜 증권회사 생활로 보는 눈도 좀 있고 해서 3억 5천만원을 마련해서 주식을 샀어요. 그런데 그게 6개월 만에 35억이 되었어요. 완전히 바닥에 산 것이죠. 그래 주식을 다 팔아서 30억을 가지고 일산에 땅을 사러 갔어요. 살 사람이 없어서 형편없이 가격이 떨어진 땅을 몇 만평 샀지요. 지나고 보니 또 바닥에 산 게 되었어요. 제 얘기는 기본적으로 남이 관심이 없을 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만하면 밥 굶지는 않겠다 생각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친구분들이 많이 부러워하시겠어요?
부러워한다기 보다는 제 일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 사람들 말이 당신처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해요. 마음은 동참하는데 돈이 없다고 돈 벌면 나도 당신처럼 한다고 해요. 저는 그건 핑계다 마음을 바꿔야 한다고 해요. 돈 벌면 한다고 하는데 돈 안드는 건 왜 못하느냐 하죠. 주변 사람들에게 져주고 양보하고 친절하게 하는 건 돈 안드는데 자기 마음에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이 이기려고 하잖아요. 저는 특정 종교는 없는데 사람은 끊임없이 선행의 씨앗을 뿌려야 해요. 돈 안드는 걸 해야 돈이 벌려요. 기본적인 바탕을 닦지 않고 갑자기 되는 일이 있는가요. 잘 되기 위해서는 정신적 훈련을 해야 되는 거죠. 우주에 복이 있지만 복을 잡는 눈을, 보는 눈을 키워야 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고민을 하고 고뇌를 해야지요. 뭘 하든 자기 나름의 고민과 결단과 용기 이런게 다 보이지 않는 재화고 자기 덕이지요. 누가 잘 되면 잘된 원인이 뭘까 그걸 생각해야 되는데 비난하고 비판하는 마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봅니다.
고향이 남후면 검암동이라고 하셨지요?
예, 남후면 검암동에 무릉 보트장이 있는데, 단촌과 일직 쪽에서 내려오는 물이 미천이에요. 그 물하고 낙동강 물하고 흘러서 소밤다리에서 만나는데 미천과 낙동강 물이 만나는 검암동 대실에서 태어났어요. 여름이면 모래사장에 나가 놀고 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봄에는 검암동 뒷산이 복숭아꽃으로 뒤덮이는데 그야말로 ‘무릉도원, 나의 살던 고향은’이 바로 우리 동네지요. 앞에 강이 있고 이러니까 낙동강 소금배가 강을 따라 마을로 올라왔대요. 또 뒷산에 모은사라는 절이 있어요. 그래서 심청전을 읽어도 우리 동네 같고, 미천에서 목욕하고 놀던 것도 생각나고, 여름에 모래사장에서 찜질하고 수영도 잘 해요. 할아버지가 독자 아버지가 독자예요. 어머니가 딸을 넷 낳고 다섯 번째 나를 임신했는데, 할머니가 새로 장가가서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여자를 알아보고 그랬는데 어머니가 이번에도 딸이면 그렇게 하자고 했는데 어머니가 나를 가졌을 때 태몽이 심상치 않았대요. 그래 나를 낳았는데 아들이어서 그때부터는 집안이 안녕했대요. 그랬으니 남이 먹던 물도 안 먹고 제사 음식도 안 먹고 누나들이 나를 너무 귀엽게 키워서 사람구실 못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조상의 음덕으로 이렇게 살게 되었죠. 남후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오고 경안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왔는데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스물여섯 살에 삼보증권에 취직해서 마흔세 살에 퇴직할 때까지 증권회사에 다녔죠. 30대에 지점장이 될 정도로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퇴직을 할 때는 사표를 수리해 주지 않아서 사표를 내용증명으로 보내고 그랬어요. 내가 삼보증권 신입사원일 때 사람은 똑똑하고 공부만 잘해서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컴퓨터가 안돼서 은행마다 원장이라는 게 따로 있었어요. 저도 막 입사해서 수탁업무를 맡았는데 금고 안에 원장이 계좌번호 순으로 되어있지 않고 맘대로 뒤죽박죽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토요일날 모두 퇴근한 뒤에 남아서 정리를 해야겠다 하고 하루는 일을 하고 있는데 밤 10시 30분쯤에 지점장이 들어왔어요. 뭐 하느냐고 해서 이걸 정리하고 있다 했더니 지점정이 쇼크를 받았어요. 시켜도 안 하는 일을 알아서 하고 있으니 말이죠. 가면서 밥 먹으라고 돈 만원을 주고 갔어요. 그때 제 월급이 4만 원쯤 했는데요. 며칠 후 조회 시간에 그 얘기를 하면서 칭찬을 하고 그 뒤로 인사고과를 계속 특A를 주었어요. 특진을 계속 하고 자기 갈 때마다 나를 데려갔어요. 나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그것이 내가 30대 지점장을 한 원동력이 되었어요. 나를 신뢰하고 믿어주니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저도 열심히 노력하고 일을 했죠. 선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고 보이지 않게 그런 일을 계속 해나가야 되는 거지요. 강의를 가면 가끔 이 얘기를 해요.
강의는 자주 하십니까?
일주일에 두 세 번은 합니다. 주례도 서고 강의도 하고, 그 수입으로 제 용돈 쓸 정도는 됩니다. 강의는 주로 문화단체나 주부대학, 회사, 동문회 등에서 합니다. 지금은 저의 브랜드가치도 상당히 높아졌어요. 일찍 공부를 시작한 것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지금은 늙음이 오히려 더 즐겁습니다. 앞으로 공부가 깊어질수록 더 영향력이 있어질 테니까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