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47년, 신시장 가위손 김옥연(글/이미홍_객원기자)
안동 최초의 여자 이발사 김옥연
분홍색 타이와 검은 스커트 위에 하얀 가운을 입고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 반지로 한껏 멋을 내고 반기는 김옥연 할머니. 신시장 상가 도로변에 있는 시장이발관의 주인이자 안동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이발사이다. 갈색으로 염색한 긴 머리와 금방 캉캉춤을 춰도 될 것 같은 굽 높은 샌들을 신은 모습이 첫눈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구정 뒤끝인데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라 손님이 없을 시간이라며 빈 이발관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를 반긴다 싶더니, 난롯가에 의자를 끌어다 주고 과일이며 사탕이며 마실 것들을 챙겨 그 앞에 갖다 놓고 따뜻하게 앉아서 먹으라고 연신 권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줄곧 서서 웃고 이야기를 했다. 김옥연 할머니는 한마디로 개성이 뚜렷했고 거침이 없었다.
멋쟁이 이발사, 시작은 간호사로
41년생인 김옥연은 안동토박이다. 자식 많은 집의 2남 4녀 중 셋째 딸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 어렸을 때부터 야무지고 똑똑해서, 어렸을 때 잠깐 교회를 다녔을 때는 무용반 선생으로 학생반 아이들을 지도했고, 친구들 사이에서건 모임에서건 언제나 리더를 할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여자도 성공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아버지를 졸라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야간중학교를 졸업했다. 밤에는 야간부 중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안동의료원(당시 안동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했다. 중학교를 다니겠다는 것도 간호사 일을 하면서 학업을 계속 하겠다는 것도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었다.
야간중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생활을 계속했는데, 그 당시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산파자격 시험에 같은 병원 간호사들 10명이 응시를 했다. 서울에서 시험이 치러졌는데 10명 중 다섯 명만 합격을 하고 다섯 명은 고배를 마셨다. 김옥연은 합격한 다섯 명 안에 없었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던 아가씨 김옥연은 그 사실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 길로 8년여를 다녔던 병원을 그만뒀다.
그때 벌써 165㎝의 큰 키에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에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패션으로 시내를 누볐던 김옥연은 나름 인기인이었던지라 주위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던 것이다. 실제로 옥연 씨는 전국 신문에도 이름이 났던 유명인이었는데, 간호사로 근무할 때 응급 상황에서 환자에게 자신의 피를 수혈해 표창장도 받고 신문에도 났다. 풍산면 하리에 사는 이진섭이라는 골 결핵성 환자가 있었는데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병원에 미리 혈액을 비치해 놓지도 않았고, 수혈 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열여섯 살의 어린 간호사인 옥연 씨가 선뜻 수혈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수혈만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라도 할 수 있다면 수혈해 주고 싶더라고. 아무 것도 모르고 용감했지 뭐.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남한테 뭐 해 주는 게 좋았나 봐. 그건 지금 생각해도 내 스스로가 참 기특하고 잘한 일인 거 같애”
옥연 씨의 수혈로 환자는 살아났고,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편지가 쇄도했다. 전국에서 환자들의 편지도 많았지만 연애편지도 많았다. 그때 받은 편지가 라면 박스로 한 박스가 넘었으니 옥연 씨가 남의 눈을 신경 쓰게도 생겼던 셈이다.
이발관 문밖에서 지키셨던 아버지
병원을 그만두고 옥연 씨는 미용을 배웠다. 손톱 정리부터 마사지, 머리 붙이기(일종의 부분 가발), 머리 물들이기(칼라염색), 속눈썹 붙이기, 신부 화장까지 1년간 기를 쓰며 미용 기술을 배웠지만 애만 쓰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조금만 잘못돼도 짜증을 내는 손님들도 그렇고 기술은 안 늘고 옥연 씨 체질에도 맞지 않았던 거다.
그때 옥연 씨가 눈을 돌린 것이 남자 이발이었다. 아무도 안 하니까 내가 처음으로 해보자 하는 옥연 씨다운 오기도 있었던 것 같다.
“남자 이발은 이발만 잘하면 되니까 하면 될 거 같았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거 하다 바람나면 어쩌냐고 반대하셨지만 나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 결국 이발1급 자격증을 땄어요. 그때 1급 이발자격증 가진 여자이발사는 나뿐이라 여기저기 이발관에서 서로 오라고 했어요. 그렇게 남의 이발관에서 이발사 생활을 잠깐 하다가 당시 장터 자리를 불하받아서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장이발관>이라는 간판을 걸고 이발관을 시작했어요. 이발관을 시작하고 처음 한동안은 아버지가 이발관 문밖에서 지키고 계셨어요. 딸내미 걱정은 되고 내가 싫어하니까 들어오지는 못하고. 나중에는 믿고 나 하는 대로 맡기셨지.”
지금 같았으면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일본으로 갔지 여기서 이발 안했을 거라는 옥연 씨는 그러나 당시로서는 젊은 처자 혼자 몸으로 외국으로 나갈 엄두는 못 내고 1급 이발사로 안동에서 이발 인생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발관은 1, 2년이 지나면서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잘됐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남자 이발사 5명, 여자 이발사 2명을 더 두고 옥연 씨까지 8명의 이발사가 이발을 했다. 그때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가지는 이발사협회 모임에서 같은 이발사였던 남편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같은 일을 하니까 모임에서 자주 만나면서 서로 눈이 맞은 거지요. 남편은 시골 변두리에서 이발관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사귀고 결혼을 결정하면서 내가 거기는 접고 와서 같이 일하자고 했어요.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연애하고 결혼하게 된 거지요. 같이 이발하는 사람이니까 서로 이야기도 통하고, 좋으니까 결혼했지요 뭐.”
연애도 결혼도 망설임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했던 옥연 씨는 결혼 후 남편과 서로 존대를 하자고 약속했고 결혼 생활 내내 남편도 그 약속을 지켰다. 딸 셋을 낳은 뒤에는 남편에게 당당히 이제 아이는 그만 놓자고, 피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남편이 둘째 아들이었는데 시어른과 시누이가 아들은 낳아야 한다고 할 때 단호하게 그만 놓겠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줄줄이 딸을 계속 놓거나 또 딸이면 낙태를 하는 게 비일비재했던 당시로 보자면 한참 앞선 결단이었지만, 어떤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데 망설임이 없이 매사에 남달랐던 옥연 씨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1급 이발사 자존심, 단골손님들은 알아주지
그렇게 한 십 년을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그러다가 서서히 이발관에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서서히 미장원, 미용이 뜨기 시작하면서 남자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게 되면서 자연히 이발관은 손님을 빼앗기게 되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여기는 정식으로 남자 이발만 전문으로 하는 데야. 요즘은 남자들도 다들 미용실이나 미장원 같은 곳에 많이 가서 이발을 하는데, 그런 곳에서는 머리만 커트해 주는 거고, 이발관에서 하는 남자 이발은 다르거든. 면도에서부터 이발, 드라이 염색까지 옛날식으로 다해 주거든. 그래서 이발관에서 이발하던 사람들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 깎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고 그러면서 다시 이발관을 찾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전부터 오던 단골들이 주로 많이 오지.”
옥연 씨네 <시장 이발관>도 같이 있던 이발사들을 내보내고 의자도 줄이고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가게 한 쪽을 정리해서 창고로 쓰고 여덟 대였던 이발 의자를 세 대로 줄였다. 손님이 줄었지만 다른 이발관처럼 손님을 잡기 위해 안마 시술을 한다던가 하는 불법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이발 기술만으로 승부를 했다. 그건 안동 유일의 1급 여성이발사 옥연 씨의 자존심이었다.
그리고는 남편과 둘이서 이발관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남편은 첫째가 고등학생일 때 옥연 씨와 세 딸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달리했다. 한창 뒷바라지가 필요하던 세 딸을 데리고 혼자 이발관을 꾸려나왔는데 그때부터 하루도 이발 가위를 놓아본 적이 없다. 이발관에 손님이 줄면서 셋을 다 대학까지 공부시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이발관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서서 이발을 하는 엄마의 노고에 보답하듯 세 딸 모두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잘 자라 주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이루었다. 지금은 세 딸 모두 자녀를 둘씩 두고 둘은 안동에서, 하나는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 엄마를 끔찍이 위하는 딸들이다.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 끄떡없는 체력
용상에 살고 있는 옥연 씨는 매일 이발관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긴 머리를 날리며 용상에서부터 강변을 달려 여덟 시면 어김없이 시장이발관 문을 연다. 일주일에 하루 봉사를 나가는 화요일에는 이발관 문을 여는 대신 강 건너 안동병원으로 곧장 자전거를 달려간다. 봉사를 가는 기쁨에 병원으로 자전거를 달려갈 때면 폐달을 밟는 발에 힘이 절로 난다는 옥연 씨다. 옥연 씨가 병원에서 하는 봉사는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안내하는 일이다. 말은 안했지만 처녀 시절 간호사로 근무했던 경력도 있는지라 옥연씨는 병원에서 안내하는 일이 익숙하고 즐겁다. 하는 일도 온갖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부터 사교성이 뛰어났던 옥연 씨는 늘 깔끔하게 멋을 내고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만난다. 나이가 들었지만 자신을 가꾸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봉사를 가는 날은 더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가서 더 많이 웃으면서 환자들을 대한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옥연 씨는 높은 굽의 부츠를 신고도 봉사를 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앉아 쉬거나 꾀를 부리는 법이 없다. 하루 종일 서서 이발을 하는 게 몸에 배어서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기도 하지만 봉사하는 그 시간만큼이라도 온전히 충실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기쁨이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오는 사람들한테서 늘 웃으며 멋있게 사는 모습이 부럽다고, 즐겁게 봉사하며 사는 걸 보니까 자신도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끼지요. 환자들한테 ‘멋쟁이다’ ‘깔끔하다’ ‘개성 있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봉사를 나가는 날이면 누군가는 꼭 그런 기분 좋은 칭찬이나 인사말을 건네요. 그러면 더 신이 나서 다니지요.”
뒷모습만 보면 아가씨라고 따라 와
하얀 셔츠에 넥타이 차림 때문에 처녀 적부터 ‘멋쟁이’, ‘영국 신사’ 라는 별명이 따라 다니는 ‘여장부’ 옥연 씨는 아가씨일 때부터 와이셔츠는 여성용이 드물어 여러 벌 맞추어 놓고 입고, 몸에 걸치는 액세서리는 한 번씩 서울에 갈 때면 명동이나 남대문에 가서 장만한다.
개성적인 옷차림에서부터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굽 높은 부츠에 긴 머리, 어딜 가나 눈길을 끌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옥연 씨다. 그러나 호기심 어린 첫 순간이 지나고 난 후에도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무엇이 그녀에게는 있다. 상대방에게 건네는 정감 있는 한 마디 말과 정말 즐겁게 웃는 웃음도 웃음이지만, 누가 뭐라든지 당당하고 거침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얽매이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거기에 온통 빠져들어 열과 성을 다한다. 부녀회 일을 맡아서 할 때도 그랬고, 대원사에서 8년간을 사물놀이 상쇠를 맡아 사물놀이를 배워 공연으로 봉사를 다닐 때도 열성으로 매달렸다. 장구, 북, 꽹과리, 소고 중 하나만 익혀도 되건만 시간이 들더라도 네 악기를 고루 다 익혔다. 상쇠로서 사물놀이 팀을 잘 이끌고 싶기도 했겠지만 사물놀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졌기 때문이었다. 장구를 배워서 공연 봉사를 다닐 때는 늦은 밤이라도 행사가 있다고 부르면 이발관 문을 닫고 가서 밤을 새워 공연을 했다.
한창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노인대학을 다닐 때도 안동에 있는 여섯 군데 노인대학을 다 수료했다. 사실 지금 안동병원에서 하는 자원봉사도 안동병원 노인대학 1기생으로 졸업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수료장 욕심이 아니라 노인대학에서 하는 다양한 강좌를 들으러 다니는 재미 때문이었다. 서예 교실, 노래교실, 스포츠 댄스 교실, 수지침 교실 등 참 열심히도 배웠다. 덕분에 수지침 자격증을 따 놓았는데, 안동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의료요원으로 봉사를 나갔을 때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 댄스 스포츠는 높은 힐에, 댄스용 스커트에 활력이 넘치는 스텝까지 옥연 씨 적성에 꼭 맞는 취미 교실이었던 듯, 이곳저곳의 스포츠댄스 교실을 섭렵한 그녀의 댄스 실력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그 또래에서는 여자로서는 큰 키 때문에 파트너가 부족할 때는 남자 역을 할 때도 많아 남자 스텝까지 마스터를 했단다. 그러고 보니 신고 있는 샌들도 스포츠 댄스용인 듯 까만 굽의 샌들이 빤짝거린다.
일주일에 한번 있는 휴일은 봉사 하는 날
신시장에서 산 지 50년이 다 되어간다. 이곳에서 이발을 47년째 하고 있다. 그동안 동네 부녀회장을 10년 넘게 하면서 독거노인들 모시고 식사대접도 하고 나중에는 이발봉사도 하고 했다. 새마을지도자 독거노인들 이발 봉사도 했지만, 동네 노인 분들에게는 당시 5천 원 하던 이발료를 2천 원만 받고 이발을 해 드렸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봉사를 찾아 남모르게 한 일이다. 흰 머리가 싫어도 미용실에서 하는 비싼 염색 값이 아까워 그냥 다니는 할머니가 있으면 할아버지에게 같이 오시라고 해서 염색약값만 받고 염색도 해드리고 매니큐어도 발라드리고 했다. 스스로 좋아서 한 일이다.
“요즘 이발 요금이 7천 원에서 8천 원 정도 하는 데, 나는 돈 없으면 6천 원도 받고 5천 원도 받고 그래요. 손님이 이발관 문 열고 돈이 없는데 덜 받으면 안 되냐고 물으면, 얼마 있냐고 물어보고 5천 원 있다고 하면 5천 원이면 되니까 들어오라고 해요. 많이 모자라면 외상도 하고요. 어쩌다 다음에 갖다 준다고 하고 다시 안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단골들이라 주는 대로 받아요.”
시장이발관에서는 주인과 손님 사이에 간혹 이런 말들이 오고 간다.
“얼마 주면 되니껴?”
“얼마면 되니껴?”
그 속을 보자면, ‘좀 깎아 주소!’ 내지는 ‘받을 만큼 받으소!’ 하는 손님 요구에, ‘돈이 얼마 있는지, 있는 만큼 주세요, 내지는 되는 대로 주세요.’ 하는 흥정 아닌 흥정을 하는 소리다. 주인도 손님도 서로 사람 봐가면서 흥정도 한다고, 믿는 구석이 있고 인정이 있으니 오갈 수 있는 소리다. 40년, 30년 단골손님들이 이 허름한 시장이발관을 찾는 것도 그 인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골손님들하고는 그 세월만큼이나 사연도 많다.
“이제는 이발관을 한 지도 오래되다 보니까 그 많던 단골손님들도 세월 따라 다 왔다가 가고 초창기부터 단골인 사람들은 한 삼십 명쯤 정도 돼요. 다들 이사 가고, 죽고 지금까지 이발하러 오시는 분들이 그 정도 되는데, 너무 고마운 분들이에요. 그분들한테는 어버이날이면 공짜로 이발을 해 드려요. 일 년에 한 번은 작은 선물을 해요. 그냥은 안 넘어가요. 양말 한 켤레라도 꼭 선물하고, 할머니들 드리라고 고무장갑이라도 드려서 보내요.”
단골손님이라고 특별히 챙기는 주인의 인정을 알기에 이제는 단골손님들도 더러 이발 시기를 놓쳐 선물을 못 받으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한 번은 남편이 있을 때부터의 단골이었던 무릉 보트장 부근 동네에 살았던 이철우 씨가 이발을 하러 들렀는데, 마침 옥연 씨가 계모임이 있는 날이라 계원 수에 맞춰 휴지통이며 슬리퍼를 사서 가게 한쪽에 두었는데 슬리퍼가 마음에 든 철우 씨가, 나 한 켤레만 달라고 하는 걸 못 주고 다음에 사 주겠다고 했더니 삐쳐서 갔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슬리퍼 한 켤레를 사 두었다. 다음에 들렀을 때 주었더니 좋아라 들고 갔는데, 그 슬리퍼를 가져 간 지 일 년 후에 병으로 죽었다. 그때 슬리퍼를 다시 사 준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철도 다니던 정말로 점잖은 손님이 있었는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이발을 하고 가서 그 아들도 단골이 된 손님이었다. 부인되는 이가 시장 안에서 포목점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석수암 절에 갔더니 그 분 영정이 있어 찾아 문상을 하니 그 부인되는 이가 이제 어찌 사냐며 통곡을 하기에 위로하고 왔다. 후에 그분의 두 아들도 단골이 되었는데, 둘째 아들이 낳은 아이, 돌아가신 분의 손자가 네다섯 살이 되도록 말문이 안 터져 부인되는 이가 걱정하는 걸 늦게라도 말문이 꼭 터질 거라고, 늦게 되는 이가 크게 되는 법이라고, 걱정 말라고 입버릇 삼아 말해줬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말문이 터져 학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하는 걸 보고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발은 천직, 이렇게 움직이니 건강하고 행복해
옛날에는 새벽 네 시에 이발관 문을 열었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새벽 일찍 멀리 가야 해서 이발을 하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그 시간에 문을 열었다. 그 시간에 이발관을 찾는 손님들이 하루에 한두 명은 꼭 있었다. 그렇다고 요금을 더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도 시장이발관은 이발요금을 항상 다른 곳보다 조금이라도 적게 받았다. 손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받는 일이 허다한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지금은 아침 일곱 시에 문을 열고 다른 이발관보다 조금 이른 저녁 일곱 시에 이발관 문을 닫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무리하지 않게 일을 하고 되도록이면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그리고 봉사를 하면서 몸도 마음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한다. 봉사를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앞으로 내가 이발을 하면 얼마나 더 하노? 그리고 죽으면 다 썩어 없어질 이 두 손 놀리면 또 뭐 하노? 내가 건강할 때까지는 이발을 할 건데, 돈 많이 받지 말고 조금만 받고 그저 손가락이 살아 움직이는 날까지 이발을 하면 되지. 에누리도 해 달라면 해 주고 그냥도 해 주고.”
봉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나누는 그 마음이 봉사가 아닐까?
“혼자니까, 딸만 셋이니까, 남편이 없으니까, 기죽을 거 같고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아니에요. 일도 하고 봉사도 하고, 행복해요. 일 할 때는 이렇게 일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에는 봉사하러 가니. 즐겁고 행복해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