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연탄을 나누는 차명숙씨(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사진/강병두_사진작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연탄나눔운동으로
지금은 그 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부터 9년쯤 전에 경기도 화성의 매향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실 방문이라기보다 ‘볼 일’이 있어서 찾아 갔었는데, 매향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는 표적’이 있는 사격장이었다.
현재는 모든 사격이 중단되었지만 2000년도만 해도 버젓이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미공군 사격장이었단 말이다. 마을 앞바다에 있는 두 개의 섬 중 하나는 전투기 사격 연습으로 자취를 감춰버렸을 정도니 말로만 들으면 다들 ‘거짓말’이라고 할 만큼 믿기 힘든 얘기다.
매일 전투기 소리와 미사일 사격에 대한 공포로 치를 떨던 매향리 사람들을 당시 언론은 외면했고 투쟁을 외치는 학생들과 힘없는 주민들만이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쓸쓸히 외칠 뿐이었다. 사실 나는 9년이 흐른 지금도 막다른 골목으로 우리를 몰아가던 전경들의 군화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내게는 아직도 그것이 공포다. 그때의 나이 스무 살. 가끔 생각해본다. 그때처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스무 살의 어리숙한 용기로 권리의 외침을 내지르기에, 이제는 세월이 너무 흘렀다고 비겁한 변명을 해본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딴지를 거는 사람도 있고 그저 먼발치서 신기한 얘기를 듣는 것처럼 쳐다보는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최근 나의 ‘비겁한 변명’ 을 부끄럽게 하는 한 ‘당찬 여인’ 을 알게 되었다.
바로 차명숙 씨다.
그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던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여전히 1년에도 수차례 광주를 오가며 그 광주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움직이는 그녀는 요즘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는데 바로 연탄나눔운동 이란다.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이란 단체를 통하여 봉사를 솔선수범하는 그녀는 얼마 전 안동지회의 지회장으로 선출됐다.
“나의 옛 이야기가 절대 부끄럽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연탄배달 얘기를 많이 써달라” 는 그녀를 위해 오늘은 세간에 많이 알려진 ‘차명숙’ 보다 차명숙 지회장으로서의 얘기를 먼저 풀어보고자 한다.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안동지회의 차명숙 지회장과 함께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강병두 사무국장 그리고 운영위원이라 불리지만 실상 술상무(?)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으로 보이는 김종규 운영위원장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우리는 배달(?)의 겨레
경북 북부지역에서 연탄을 쓰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무려 67%에 달한다. 게다가 어려운 경기 탓에 올해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증가했다고 한다. 연탄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어려웠던 옛날을 추억하는 물건쯤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연탄 한 장도 절실한 이웃이 많다. 비단 가까운 우리 주변만이 아니라 조금만 멀리 봐도 북한 역시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다. 특히 북한에서 연탄은 주연료로 사용되는 절대적인 생필품이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포가 많다.
이렇듯 연말이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연탄배달이 지자체의 여러 단체나 도움으로 이뤄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차명숙 지회장이 몸담게 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일명 연나운은 서울에 본회를 안동을 포함하여 전국에 걸쳐 지회를 둠으로써 단연 전국구를 자랑한다.
2004년 6월 창립된 연나운은 올해로 6년째를 맞이하여 지금까지 1천7백여만장의 연탄을 남과 북의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했다.
요즘 연탄 값이 올라 장당 350원에 치지만 평균값인 300원으로 계산해도 무려 51억원 어치라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때문에 서울에서는 그 활동이 더욱 활발한데 각기 다른 이름, 다른 성향을 지닌 여러 단체들이 연탄나눔에는 모두 같이 팔을 걷어붙여 바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연나운은 북한의 12.1 조치 이후 민간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방북, 5만장의 연탄을 전달함으로써 계속해 오던 방북 사업도 다시 물꼬를 트게 되었다. 이처럼 사업성이 큰 연나운이 안동에 오게 된 이유는 연나운 대구경북지부장인 한재흥 목사와 김종규 운영위원이 함께 한 자리에서 운을 띠우게 됐단다. 김종규 운영위원은 아마도 그때부터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누님인 차명숙 지회장을 지회장 자리로 미리 점찍고 일을 추진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글로써 인터뷰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게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는데 차명숙 지회장을 만난 날도 그랬다. 왕누님인 차명숙 지회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조신한듯 하지만 할말은 다하는 강병두 사무국장의 예리한 입담, 사람 좋아 보이는 안동의 왕발 김종규 운영위원의 은근한 유머로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오랜 시간 알고지낸 친구로 보일만큼 서로 막역했다. 민증을 깐(?) 뒤로 차명숙 지회장을 누나로 깍듯이 모시게 됐다는 김종규 운영위원의 말에 막역하지만 정이 넘치는 그들의 돈독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연나운 안동지회는 앞으로 잘 될 수밖에 없겠구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절로 생기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각기각색의 따뜻한 사람들이 모인 연나운 안동지회는 지난해 말 기업후원과 안동지회 자체기부액을 합한 256만원으로 총 6400장의 연탄을 안동과 영주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배달함으로써 첫 발을 띠었다. 현재는 14명의 회원뿐이어서 당분간은 회원을 늘리는 데에 더 집중할 생각이라 한다.
이제 겨우 걸음마을 시작한 것이라는 차명숙 지회장의 말대로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은가.
단순한 연탄배달 뿐만 아니라 소외된 계층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발판으로 서겠다는 차명숙 지회장의 모습에서 다부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벌써 10년 후의 연나운 안동지회 모습을 눈앞에 그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는 것도 굴곡이 있어야 살맛이 나지
오십대를 넘어선 그녀는 나이답지 않은 ‘끼’가 있다. 나이답지 않다는 건 그녀의 건강함에 놀랐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사연 많은 그녀의 과거가 살아가는 데에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되지 않을까하는 나의 어리숙한 생각을 단박에 뒤집은, 아직도 20대처럼 당찬 자신감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이요원의 실제 모델로도 많이 알려진 차명숙 지회장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19살의 평범한 아가씨였던 그녀는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을 광주시민들에게 알리고자 거리 방송을 했고, 그것이 죄가 될 수밖에 없는 무지한 현실 탓에 교도소에 복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15년형을 선고받고 그해 10월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풀려는 났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통이었다. 그녀가 복역된 후 딸을 찾으러 나간 아버지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지병이 있던 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광주에 여러 번 발을 붙여보고자 했으나 숱한 감시 속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결국 서울행을 택했다.
“사는 것도 굴곡이 있어야 살맛이 나지. 나는 사건이 많을수록 좋아요.”
이제는 아픔보다 아픈 과거를 시원하게 웃어넘기는 여유로, 그녀는 출소 후 광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당시를 회상했다.
광주를 떠나 서울로 간 그녀가 안동과 연을 맺게 된 이유는 바로 남편이 안동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남편을 만나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그의 고향인 안동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동으로 와 운영하던 축사가 화재를 당해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후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안동의 홍어집으로 유명한 ‘행복한 집’을 새롭게 꾸리게 되었는데 얘기를 듣다보니 그녀는 인복이 타고났다 싶었다.
그 많은 일들을 겪고도 어깨한번 늘어뜨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온 그녀의 지혜와 용기가 어쩌면 인복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안동생활이 어떻냐는 물음에 20년 가까이를 살았지만 아직도 안동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더불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단다. 안동은 그녀에게 있어서 머물러야 하는 종착지 보다 하나의 거점인 것이다.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변화를 위해 가장 앞에 설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그녀가 있는 곳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와 여자로서의 인생
차명숙 지회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집안이 어려울 때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던 두말이 필요 없는 듬직한 효자다. 둘째 아들은 오는 5월 제대를 앞둔 군인이다. 그것도 전투경찰. 둘째 아들이 전경으로 복무 중이라고 하여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경의 ‘전’자만 들어도 치가 떨리지 않을까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통해 전해졌잖아요. 어떤 수단으로든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이야기가 표현됐고, 그들을 달래주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만족해요.”
그녀가 말한 ‘그들’이란 민주화를 외친 광주시민뿐만 아니라 이들에 맞선 전투경찰도 함께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형제인 ‘그들’ 역시 5.18 민주화항쟁의 피해자라고 차명숙 지회장은 말했다. 애써 묻진 않았지만 그녀는 이미 스스로, 용서로써 과거의 아픔을 달래 오고 있었던 것이다.
한창 두 아들 얘기에 쉼이 없기에 딸 욕심은 없냐고 물었더니 후회 없이 키운 두 아들이기에 아직까지 딸이 아쉽지는 않단다. 자식 얘기에 여념이 없는 차명숙 지회장은 여느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버려도 신앙과 자식은 버릴 수 없다는 얘기에 그녀의 깊은 신앙심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얼마만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아 나중에 여유가 되면 도자기를 배워보고 싶다며 소박한 희망을 얘기한다. ‘도자기를 굽는 차명숙’ 은 사실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왠지 그녀는 뭘 해도 다 잘할 것 같다. 모든 일에 의욕이 넘치고 대단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어 욕심이 많다하니 그녀는 대단할 것 하나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욕심이 아니죠. 그건 해야 되는 거죠. 연탄배달 이상의 무엇이 돼야죠.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복지를 더욱더 꼼꼼하게 살피고 또 하나의 이웃인 다문화가정도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몫인데, 우리가 안하면 누가 합니까.”
안동을 떠나고 싶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누구보다 더 이웃을 잘 살피고 보듬고 있는 그녀 차명숙. 그녀의 다부진 얼굴에서 ‘19살 차명숙’의 빛난 눈빛을 발견했다. 안동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차명숙 씨가 오늘도 농익은 홍어처럼 안동에 따뜻한 기운을 전하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