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갈령 아래 구통마을에 서다(글/이동백_시인)
4월의 임하호는 깊고, 호수의 물은 얕았다. 그러나 호숫가에는 봄이 한창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복사꽃, 벚꽃, 개나리가 봄 가운데 피어나고 있다. 복사꽃과 개나리를 생각하는 중인데 방장이 낮은 목소리로, “복사꽃은 몇 가지 색이 어울린 게 희한해서 다른 꽃이 범접치 못할 만큼 참 곱지?” 한다. 꽃을 보는, 아니 세상을 들여다보는 방장 눈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짧은 한 마디였다.
내 눈의 깊이는 얕아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도 별 수 없이 복사꽃의 아름다움에 감복하고 말았다. 복사꽃에 비하여 개나리는 좀 천박한 것 같고, 벚꽃은 화려하지만 단조로워서 보는 사람을 쉽게 질리게 하는 것 같다. 복사꽃은 묘한 색의 조화 때문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의 마음을 저리게 하는 신비가 그 꽃 속에 있는 것 같다. 복사꽃은 뭔가를 잡혀 줄 듯 하다가도 앵돌아서버리는 꽃이다. 그래서 아리송한 꽃이고,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안달 나게 만드는 꽃이다. 남녀 사이에 얽힌 색정(色情)이 왜 하필 ‘桃色’일까. 색정은 인간의 본원적인 사건이라면 도색은 자연의 본원적인 색일진대, 지금 복사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도색일까, 도대체 모를 일이다.
도연명은 무릉도원을 찾아 헤맸고,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꿨고, 플라톤은 아틀란티스를 언급했지만, 모두 그곳을 찾지 못하고 죽어갔다. 나는 어리석어서 이 지구가 유토피아이고 이 봄이 무릉도원이며, 이 임하호가 아틀란티스로 보인다. 복사꽃 흐드러진 봄이여, 영원이 이 지구상에 머무르라!
객담(客談)이 너무 길어서 객쩍게 되었다.
영양 산촌 구통마을을 다시 찾아 가는 길
장갈령 고갯마루에 오르면 영양, 안동, 봉화의 아홉 마을로 이어진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구통마을로 가는 길은 봄을 맞이하느라 한창 분주했다.
영양을 돌아 청기 상청마을에서 구통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십칠 년 전과는 달리 포장이 되어 있고, 길이 새로 나면서 다리도 놓였다. 동학혁명이 일어나던 시절, 청량산에 들어가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하다 영해 앞바다 관어대에 투신 자결한 벽산 김도현 선생의 생가를 잠시 들여다보고 구통마을로 길을 잡았다.
골짜기의 산자락에 복사꽃이 수 놓이듯 피어 있다. 이른바 도요시절(桃夭時節)이다.
십여 리를 올라가자, 구매초등학교 폐교지가 나섰다. 풀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니, 교문의 설주만이 어설픈 풀숲 속에 묻혀 있었다. 교사(校舍)는 뜯겨 없어지고, 그 자리는 쑥대밭이다. 여기에 더하여 안타까운 것은 누군가 버린 건축 폐기물에 밀려 넘어진 교적비-1963년에 세워져 20년간 31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3년 폐교를 알리는-였다. 설상가상, 너절하게 널린 폐타이어가 꼴불견이다. 다만 고목 몇 그루가 없어진 학교의 운치를 그런대로 살려 주고 있었다. 다시 다듬으면 참 아늑한 곳이 될 만한 곳이었다. 1992년에 이곳을 찾았을 때, 청남초등학교 구매분교였던 이 학교는 소로우의 월든 숲 속의 학교처럼 작고 아름답고 소박하였다는데…….
산괴불주머니 노란 꽃이 쓸쓸한 길손의 발길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마을의 숙원인 진입로 포장은 됐건만
구통마을의 초입이다. 왼편 산발치에서 누가 벌통에 코를 박고 있고, 그 위쪽에서는 발채가 얹힌 지게를 받쳐놓고 늙은 부부가 밭을 손질하고 있다. 건너편 산자락에선 소 두 마리가 한창 밭을 가느라 힘을 쏟아내고 있다.
“이랴. 어대, 어대대, 워, 돌아”
사람의 말소리가 골짜기에 차고 넘치는데, 소는 멍에를 쓰고 힘에 겨워한다. 워낭소리도 내지 못한 채. 사람과 소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소는 몸을 풀어 앞으로 나가고, 그 마음들이 어그러질 때, 소의 몸은 그 움직임을 멈추고 깊은 숨만 내쉰다. 밭머리에 올라 밭가는 이를 불러 세웠다. 가던 길 멈추기는 사람보다 소가 일렀다. 소가 내 마음을 읽었을까, 선한 눈으로 나를 이리저리 살피고 든다. 뭐라 곧장 말을 걸어 올 것만 같다. 눈이 깊은 걸 보니 뜻이 깊은 듯도 한데, 그는 결국 말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나는 소의 눈에서, 석가모니가 가섭에게 보여준 연꽃을 보고자 했으나, 마음이 얕아 그걸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경운기로 가시지요?”
“비탈 밭인걸요?”
“몇 살인가요?”
“다섯 살이지요.”
“새끼를 밴가 봐요?”
“산달이 다가오는 걸요.”
“임산부가 힘들겠어요?”
“늙은 거나 임신한 거나 다 운명인걸요.”
“몇 평이나 되오?”
“천오백여 평쯤이지요.”
“그걸 어른과 이 소가 다 갈았소?”
“……. 이랴, 돌아”
늙은 농부는 대답도 아니 하고, 이타리[끈]로 태아가 든 소의 배를 후려쳐서 돌려 세운다.
마을 어귀엔 몇 백 년은 묵음직한 느티나무와 버드나무가 길손을 맞는다. 아직 철이 일러 느티나무는 그 이파리를 피워 올리지 못한 채 안으로 애를 태우는지 가지에 어렴풋한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다. 십칠 년 전 이 나무 아래 누워 쉬던 남정네들의 안위가 궁금하다. 느티나무 옆엔 버드나무도 한 그루 섰는데, 늙어 몸은 기울고 속은 썩어 텅 비었다. 그러나 그 나무 가지에는 벌써 푸른색이 선명하다. 늙은 나무의 치열한 삶이 경외(敬畏)롭다.
일터로 나가는 사람을 잡고 김규원 씨를 물었다. 그는 지금 꿀벌을 돌보러 갔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은 1992년 가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담배 건조실이 몇 채 헐린 것 같고, 새로 지은 집이 몇 채 보이고……, 세월이 변했는데, 어찌 마을이 변하지 아니하겠는가. 당시 마을의 숙원이던 길이 마을 깊숙한 곳까지 말끔하게 포장이 되었고, 광역 상수도까지 마을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마을 남쪽을 타고 내리는 개울에는 날이 가물어 청태가 끼고, 물의 흐름은 영 시원찮았다. 그런데 마을의 쉼터란 팻말을 단 공터 곁에는 푸른 물이 고였다. 꾀 깊은 소(沼)였다.
골목에서 서성이던 우칠윤(60) 씨가 무슨 볼일로 왔느냐고 다그쳐 묻는 바람에 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타성바지라면서 이 마을이 외가 곳이란다. 그의 삽짝거리 아그배나무에는 새집 한 채가 당그랗게 올라 앉아 있어, 무슨 새 집이라니까, 모른단다. 지난해에 꼬리가 긴 새가 날아와 집은 짓고 사는데, 서식력이 매우 강하단다. 까막까치 집도 빼앗아 산다는 새이다. 마을에는 그 이름 모를 새가 날아다니며 짖어댄다.
골목길을 돌아 나오다가 우연찮게 김규원 씨 부인인 강춘자(55) 씨를 만났다. 옛날을 이야기해도 기억에 없단다. 그때 사진을 들이밀어도 기억을 더듬지 못했고, 다만 사진 속의 사람만 알아보았다.
92년 가을 때늦은 점심 기억나니껴?
“92년 가을, 댁에서 쓴맛이 강한 나물 무침을 곁들인 늦은 점심을 잘 얻어먹었지요. 오랜 세월의 일이라 잊을 만도 합니다.”
“들어 가입시다.”
그녀에게 이끌려 들어간 김규원 씨 댁은 조금 개조되어 있었다.
“차나 한 잔 드시지요.”
“물만 한 잔 주세요.”
마당에는 며느리밥풀 꽃이 밥풀만한 꽃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삼산 썩을 물’이라 자랑하던 그 물인지는 몰라도 물맛은 담백하고 시원해서 좋았다. 배가 빨간 작은 새 한 마리가 빨랫줄에 앉아 잠시 울고 가는 것을 바라보며,
“꿀 농사는 잘 됩니까?”
강 씨에게 물으니,
“내가 다쳐 사십여 일 일을 돌보지 못하는 바람에 벌통 수를 줄였습니더.” 한다.
“그때 이 앞집 뒤안에 정안수 한 그릇 올려놓은 통나무에다 ‘어명(御命)이다’라고 쓴 것이 있었는데…….”< 담장을 넘겨다보는데, 강 씨가 나서서 말을 받는다. “군에 간 자식 위해 요를 떠 놓은 것입니더. 자식들 군에 가면 이 마을에서는 다 그랬어요.” 밥이 놓였던 자리 옆에는 오래 묵은 목단의 탐스러운 가지들이 하늘을 겨누고 섰다. 멀지 않은 장래에 요염한 자태를 보여주리라는 듯이. “약초 재배도 하는 건가요?” “약초는 산에 더러 캐러 가기는 해도 재배는 못해요. 잔대, 주치, 백출 같은 걸 겨울에 캡니더.” “골이 깊어 산나물도 흔하지요?” “영양에서 뭐니뭐니 해도 이 골 나물이 최고이지요. 어수리, 고깔 나물, 취나물, 삼베나물, 많이 납니더.” “물 맛 좋았습니다.” “잘 가입시다.” 김규원 씨 댁 골목 어느 집 바람벽엔 자그마한 칠판이 붙었다. 그 칠판에는 4월 월중 행사가 적혔는데, 신행(新行)날, 담배 ․ 고추 심기 예정일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다 ‘한 번 실수는 성공에 어머니곘죠.’라고 얌전하게 써 놓았다.
술힘으로 넘었던 장갈령
마을 회관 앞에서 늦은 오후에 해바라기를 위해 나와 앉은 어른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는 방장을 향해 눈빛이 형형한 할아버지가 ‘저 둔덕에 올라가 찍으면 좋을 걸’ 하며 건너편을 가리킨다. 김무탁(83) 옹이다
“마을에 정자가 넷이나 되네요?”
“각 파에서 세운 걸세.”
“마을에 양근 김씨들이 몇 파가 사는가 보지요?”
“모두 한 파인데, 지파 정자들이지 뭐. 구산정이 젤 오래된 거고.”
구산정은 입향조 김근일(金謹一)의 정자란다. ‘안동’지 22호의 기록에는 김기봉(金起鳳)이 입향조로 되어 있는데, 차이가 난다.
“우리 양근 김씨가 양주에서 예안 싹시골을 거쳐 이곳으로 들어와 우거한 지 벌써 450년이야. 그때 심은 나무가 저 느티나무인데, 군에서 보호수라고 해서 190년 묵은 나무라는 간판을 세운 게야. 말도 안돼”
“종가는 어떻게 지냅니까?”
“종가는 대구 나가 살아. 그런데 그 종가를 몇 해 전에 뜯게 되었지 뭐야. 뜯고 보니 그 상량문에 가정(嘉靖) 18년(1796년)이란 명문이 쓰였어. 검게 그슬린 나무를 물에 불콰 보니 그랬어. 참 오래된 집이었는데…….”
구통마을은 장갈령 아랫마을이다. 장갈령은 예안 동천리와 연결되는 고갯마루인데 지금은 인적이 끊긴지 오래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가 남쪽으로 내닫다가 큰 산, 일월산과 청량산을 영남 깊은 내륙에 부려 놓았고, 그 사이를 뚫고 나온 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개가 장갈령이다. 동란 때에는 빨치산들이 준동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680고지에 뺄갱이 김달산 부대가 설쳐대던 곳이 장갈령이제. 그때 우리는 소개(疏開) 당해 영양으로 갔어.”
김찬용(83) 옹의 회고담이다.
“장갈령을 넘어 보신 적이 많으시겠네요?”
“많고 말고, 옛날에 장갈령을 넘어서 오십여 리 예안 장에 다녔지. 콩 한 말이라도 짊어지고 새벽에 떠나서 밤중에나 장갈령을 넘어 돌아왔어. 장정들 여럿이 넘제. 예안 장 보고 다래[月川] 주막에서 막걸리 거나하게 마시고 나서면 한밤중이 돼서 집에 닿는 거라. 술 힘으로 재를 넘은 걸.”
“그때 예안과 왕래가 잦았던 모양입니다?”
“그랬지, 이 마을 앞으로 부포 진성 이씨들의 말이 지나다니기도 했으이”
“요즘은 예안 장 보러 갈 일은 없겠네요?”
“뭔 그런 소리 하는가. 장갈령이 막힌 지 이미 오래됐어, 이 사람아. 그리고 갈 사람도 없어. 마을에 쉰 또래가 막내야. 학생 하나 없는 마을일세.”
십칠 년 전에 초등학생이 셋이나 있던 마을에 지금은 초․중등 학생은 고사하고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 하나도 없단다.
“영양 장은 안 보셨어요?”
“사십 리 길인 영양 장이야 수도 없이 봤제. 챗거리 장도 본 걸 뭐. 챗거리 장에 가서도 막걸리를 먹어야 대곡 골짜기를 넘어 올 수 있었어. 다 옛날 일이지.”
장갈령 쪽을 바라보는 김 옹의 얼굴에는 회한이 묻어 있었다. 속이 빈 버드나무처럼 그도 마음이 텅 비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흔 넷 먹은 반장은 어느덧 초로의 언저리에
돌아오는 길에 김규원 씨를 만났다. 벌을 돌보던 그는 망을 뒤집어쓴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십칠 년 전, 마흔넷 장정이던 김 씨도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는지 초로(初老)의 언저리를 들어서고 있었다.
“노변에서 만나 음료수 한 잔 건넬 수 없네요.”
그의 겸손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요새 되는 게 뭐 있습니까. 날씨 때문에 꿀 농사도 신통찮습니다. 난 여든 통 정도 가지고 있는데, 소매로 소비시킬 양이지요. 판로 때문에 많이는 못 해요. 분봉을 많이 할 때에는 입춘 무렵에 잠을 깨워 팔아 버립니다.”
“벌이 분봉할 때는 참 바쁘지요?”
“그럼요. 한꺼번에 분봉을 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 때도 많아요. 뒷산 참나무에 새카맣게 붙을 때는 안이 달지만 멍하니 쳐다볼 뿐이지요 뭐. 그때쯤이면 욕심을 버리고 맙니다.”
벌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해는 지구를 돌아 장갈령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김 씨와 재회를 기약하며 차에 올랐다.
차는 어느덧 연당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서석지와 붉은 석벽, 인공과 자연, 내경(內景)과 외경(外景)의 절묘한 조화가 이 아름다운 마을, 연당을 만들어 냈다던가? 아름다운 마을을 차창으로만 바라보고 가는 길손의 마음에 아쉬움이 크다.
돌아오는 길섶에도 복사꽃은 마음의 자락을 잡아끌었다. 돌가루로 지은 임하호 다리 위를 지나면서 나는 구운몽 한 구절을 문득 가슴에 떠올렸다.
‘성진이 복사꽃 한 가지를 석교(石橋) 위에 던지거늘 팔 선녀가 그 꽃을 구경하니, 꽃이 네 쌍의 구슬이 되어 그 빛이 땅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사무치어 그 향기가 천지에 진동하더라.’
나도 복사꽃 한 가지를 던지고 싶다. 선녀가 이 다리를 막아선다면, 만약에!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