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위원장, 故 이동석(글/권석환_안동청년유도회)
3월 4일, 이동석 위원장이 세상을 떠나셨다.
평소 이런저런 일들을 할 때마다 그에게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 “정의롭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대답 했다. 그 말은 정의롭지 않다면 그냥 있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삶은 늘 그랬다. 그래서 혹자는 이동석 위원장을 두고 안동의 마지막 선비라고도 했다. 그런 이동석 위원장이 우리 곁을 홀연히 뜨셨다. 큰 선비를 잃었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아직도 지을 수 없다.
자긍심이자 큰 짐이었던 조상의 무게
고인은 안동시 도산면 하계 출신이다. 70년대 안동댐 건설로 마을은 물에 잠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울로, 대구로 떠나 버렸다. 고조부의 호를 딴 향산고택인 고인의 집도 안막동으로 이건하였다.
고인은 자신의 고향과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문과 급제자 15분, 독립운동으로 서훈 받으신 25분, 문집 내신 32분이라는 하계 한 마을의 내력도 그러하려니와 고조부 대에까지 이르는 직계 선조 3대가 문과 급제를 하셨고, 또 내리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니 아무리 안동이라 하더라도 그럴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고조부인 향산 이만도 선생은 유림의 지도자요, 일제의 침략에 의병장으로 맞서 싸우셨고, 그에 항거하여 24일간의 단식 끝에 순국하셨다.
그것은 자긍심이기에 앞서 너무 큰 짐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늘 조상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굴곡 많은 우리 역사가 한 집안, 한 개인에게 엄청난 짐을 지우고도 아무런 보답이 없었다. 나 역시 그 짐을 함께 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가슴이 메일 뿐이다.
어려서부터 이리 큰 짐을 지고 사셨으니 고인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못했을 것임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반골’ 기질 때문에 고등학교도 왜관에 있는 누님 댁에 가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후 건국대학교 상학과에 입학하고서는 공인회계사도 준비하고, 행정고시에도 도전해 보았으나 몸만 상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선조의 문과급제에 맥을 이어 보고자 한 것이었으리라. 이후 풍산종합고등학교, 경안여자상업고등학교,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7년여를 교사로 생활했다. 교직을 그만두고는 고향에 돌아와 서라벌경리학원을 설립, 경영하였다. 학생뿐만 아니라 안동과 의성 세무서 직원들을 교육 시켜 이들 기관이 전국 최우수 기관으로 표창 받게 했다.
1984년에는 뜻하지 않은 가스 폭발로 전신에 2도화상을 입고 말았다. 대구의 병원에서 한 달여 치료 후에 퇴원은 했으나 온전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상의 음덕인지 간호사 출신이 있는 가족의 보살핌 덕분인지 회복 속도가 무척 빨랐다. 이때부터 남은 인생을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시고 여러 가지 보람 있는 일을 찾으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고인을 이야기 할 때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도 도청유치 운동과 고교평준화해제 운동을 통해서 보여준 추진력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참 묘한 분이라는 생각을 늘 지울 수 없다.
고인은 남들이 쉽게 하는 것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휴대폰 사용이 그러하고, 컴퓨터 이용이 그러하다. 면허증은 어떻게 땄는지 모르지만, 운전 또한 그러하다. 기껏 시내를 다니는데도 옆 자리 사람을 오금 저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들이 못하는 일이나 할 수 없는 것들을 추진하는 데는 그 추진력이 대단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은 쉽게 해도 돈과 사람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일쑤다. 도청유치운동, 고교평준화해제운동이 그렇고, 독립운동기념관 건립과정에서 보여준 열정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 역사의 현장에 대한 기념비 건립, 독립지사 예우에 관한 법률개정 청원, 근대사 중요 인물에 대한 추모강연회, 목판 10만장과 고서 ․ 고문서 모으기 운동, 정부인안동장씨(장계향)현창사업으로 시작된 여성휘호대회 기금마련, 일제의 만행으로 불탄 온계종택 복원 사업 등을 성취시키거나 불을 지폈다. 어느 것 한 가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인은 이 많은 일들을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다.
경북도청이전에 목숨 걸었던 사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고인을 칭할 때 위원장이라고 부른다. 교사도 했고, 학원도 경영했고, 각종 모임의 회장도 거쳤는데 말이다. 물론 가까운 후배들은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아마도 고교평준화해제운동과 도청유치운동 때 각인된 위원장의 직함이 가장 인상 깊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위원장이란 이름에 걸 맞는 신분이 보장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인 스스로가 그 권위와 그에 걸 맞는 일을 만들어 나갔다.
고교 평준화해제운동의 경우를 예로 들면 물론 TV토론, 홍보물 전단 배포 등 안동 시민들에게 그 당위성을 역설하기도 하였지만, 정치권의 결단도 필요했다. 고인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직후 청와대를 방문하여 고교 평준화해제를 민원 제 1호로 접수시켰다. 어떤 대통령이든 민원 1호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착안하여 백분 활용한 것이다.
도청유치운동은 고교 평준화해제운동이 끝난 직후에 바로 추진되었다. 고인에게는 역시 위원장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 경북도청이 경북에 있어야 하며, 그 역사성과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경북 북부지역으로 도청을 옮겨야 하는 당위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안동 시민 절반이 넘는 10만 3천여 명의 서명을 받아 대통령, 국회의장, 야당 총재에게 전달하여 정부나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도록 했다. 이후 역대 대통령에게 총 24회에 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외에도 궐기대회, 단식, 정치인 면담, 청원, 언론 홍보, TV 출연, 표어 제작, 웅변대회, 빼지 달기, 의식 개혁운동, 종합 책자 발간 등 할 수 있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동원했다.
경북도의회가 개원되자 도청유치 청원을 제 1호의 민원으로 접수시키기도 했다. 어느 여당 대표를 면담해서는 상주가 하는 곡을 했다. 의아해 하는 대표에게 경북북부지역이 다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북지사나 지역 국회의원 면담이 필요할 때는 사전 약속이 어려우면 이른 새벽에 관사 앞에서 기다렸다.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고인의 열과 성을 다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동명기술공단의 용역 심사결과 안동이 도청이전 후보지 1순위로 선정되었다. 주민 경축대회에 1만 명 이상의 안동시민이 역 광장에 운집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고인의 감회가 어떠했을지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경북도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도청이전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번에는 2만여 명이 모였다. 실로 안동을 하나로 엮고 뭉치게 한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2006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다시 불붙은 도청이전 문제는 2008년 총선에까지 계속되었다. 도청이전 발표 며칠 전 많은 시민들이 도청유치를 기원하는 뜻에서 예정지인 검무산을 등반했다. 당시 고인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도 겨우 걸었는데 1시간 걸리는 거리를 3시간 이상 가다 쉬다 반복하면서 끝까지 올라갔다. 모두가 무리인줄 알았지만 고인이 뜻을 굽히지 않았고, 도청이전을 추진하듯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서 올라갔다. 그 열정을 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드디어 안동이 도청후보지 1순위로 결정 났다. 고인은 그동안의 자료를 정리하고, 또 활동의 근거였던 경북북부지역 도청유치추진 주민연합을 해체함으로써 조용히 이전과정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노라고 몇 번이나 되뇌이셨다.
불같고 강했으나 배려 깊은 성품
흔히 이동석 위원장하면 성품이 매우 불같고 강한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이서 접해보면 따뜻한 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늘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고자 했다. 1984년 가스사고 후 본인의 몸도 말이 아닌데 중학교 동기생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퇴계선생의 천자문을 영인하고 하회탈을 기증 받아 판매하였다. 또 한 번은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이 어렵게 산다는 소리를 듣고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하여 찾아간 적도 있었다. 신앙을 떠나서 박석희 주교님의 묘소를 매년 참배하셨다. 이런저런 여러 일들에 자신의 처지를 돌보지 않고 온몸을 기꺼이 던졌다. 결코 대가를 바라지 않았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만족해 할 뿐이었다.
병원에 입원하기 얼마 전 몸을 가누지도 못할 형편이면서도 방송국에 불우이웃돕기성금을 내러 가자고 하셨다. 다음에 건강이 회복되면 가자해도 막무가내셨다. 그리고 마지막 대화는 성금을 못낸 다른 방송국에도 성금을 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고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씀을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돌이켜 생각건대 그 말씀이 그리 야박할 수가 없다. 어찌 그리 말씀대로 꼭 그렇게만 사실까? 그 말씀 어긴다고 누가 탓하기라도 할 것인가? 그저 안타깝고, 서운할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인과 함께 했던 시간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충효비를 세우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던 일, 목판이나 고문서 기탁을 권유하러 주말마다 이 고을 저 고을로 다니던 일, 호남 출신 여러 명사와의 교분으로 고봉 선생 종택이나, 필암서원 등을 방문했던 일, 독립운동기념관 후원회원 모으면서 만났던 여러분, 특히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중심이 된 제1회 만주지역 안동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은 잊을 수 없는 동행의 시간이었다. 인생을 남과 비슷하게 사는 것도 어렵지만, 남과 다르게 사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 그루의 나무 아래서 쉬다
3월 5일 밤 12시 20분경 고인의 아들 대용이가 전화를 했다. 받는 순간 한쪽 가슴이 철썩 내려 않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차분해야 했다. 아직은 자녀들이 어리니 여러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되었고 평소 고인의 뜻을 이해하시던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시고 지켜주셨다. 지역의 정치인, 학자, 시민운동 동참자 등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안동병원 강보영 이사장은 가장 넓은 장례식장을 부담 없이 사용하도록 배려 해 주셨다. 안동청년유도회는 영결하는 의식을 맡았다.
고인은 삶의 마지막조차도 새 역사를 만드셨다. 평소 원하던 대로 존경하던 고조부 ‘향산선생청구유허비’ 옆 한 그루의 나무 밑에 묻히셨다. 아마도 안동에서는 수목장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무처럼 꿋꿋하게 서서 평소에 펼쳐놓으신 여러 일들을 지켜보고 계실 요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석 위원장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는 사실이 아직은 믿기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어딘가에 그냥 그러고 계실 것만 같다. 책 가져가라고, 식사 하자고, 어디 좀 가자고 불쑥 전화 하실 것만 같다. 부디 전화 한번 주시기를 꿈에서라도 기다려 본다.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부탁하신 성금 내었다고, 걱정 마시고 편히 쉬시라고.
그런데도 나는 차마 전화를 드릴 수 없다. 아, 이것이 저승과 이승의 이별인가 보다! 홀로 통곡하고 그리워하며 이렇게 추모의 글을 적는다.
-2009년 4월, 봄이 오는 향산고택에서 권석환.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