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우(李命羽), 권성(權姓) 부부의 자결순국(글/강윤정_안동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실장)
이명우와 권성! 그들은 누구인가?
지금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던 이명우(李命羽) 부부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이명우 부부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사실은 안동 출신이며, 1920년 12월 부부가 함께 독을 마시고 자결 순국했다는 정도였다. 이마저도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어 힘주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월 이명우 부부의 유서가 들어있는 [성재옹유고(誠齋翁遺稿)]가 공개되었다.
이명우(1872～1920, 본관 진성, 자 명보明甫, 호 성재誠齋)는 안동 예안면 부포마을에서 퇴계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는 보통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가학(家學)을 통해 유학자로 성장하였다. 14세에 봉화 유곡(닭실) 안동권씨 권성(權姓: 1868～1920, 당시 17세)에게 장가를 들었다. 1894년에는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진사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로 향하는 끝자락에서 조선은 바람 앞에 등불 같았다. 이명우가 사마시에 합격한 바로 이듬해 명성왕후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를 애통하게 여기며 세월을 보내던 이명우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문을 닫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1910년 끝내 나라가 망하자 자결의 뜻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부모님이 살아있어 그 뜻은 잠시 접어두었다.
1912년 봄, 그는 가족을 이끌고 속리산 갈평리(葛坪里: 충북 보은군 마로면)로 이거하였다. 이곳에서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황서리(凰棲里: 충남 대덕군 진잠면 송정동)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이명우는 1918년 10월 모친상에 이어 두 달 만인 12월(음력)에 고종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명우는 황단(皇壇)을 설모(設慕)하고, 아침․저녁으로 망곡(望哭)하였다. 뜻있는 유자로서 피눈물의 세월이었다.
1920년 12월 20일은 고종의 상기(喪期)가 끝나는 날이었다. 이명우는 자결의 결단을 내렸다. 하루 전인 1920년 12월 19일(음력) 저녁, 이명우 부부는 사람들을 물리고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독을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식들이 가서 보니 이미 순절한 상태였고, 부부의 머리맡에는 약 사발이 놓여있었다. 이명우가 가는 길이 ‘충의忠義의 길’이었다면 부인 권성의 길은 충의(忠義)를 받든 지아비에 대한 ‘의부義婦의 길’이었다.
이명우의 ｢비통사(悲痛辭)｣
이명우는 자결 전에 ｢비통사(悲痛辭)｣와 ｢경고(警告)｣ ․ ｢유계(遺戒)｣ ․ ｢분사(憤辭)｣를 남겼다. 이 가운데 ｢비통사(悲痛辭)｣에는 죽음을 결심하기까지의 분통함과 비장함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망국과 부모의 부재를 슬퍼하며, 불충과 불효를 한탄하였다. 그리고 “나라를 잃고 10여 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그 신념을 실천에 옮겼다.
비통사 悲痛辭
나라는 망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시니
슬프다 이 몸이여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상황의 황단과 어머니의 빈소를 모시고, 신혼(晨昏)에 통곡하네.
들어가서는 재최장기(齊衰杖朞), 나갈 때는 참최장기(斬衰杖朞)
신하는 신하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불충불효면 어찌 신하라 하며 자식이라 할까?
십여 년을 분통을 머금고 부끄러움을 참았네.
무엇으로 설분할까 천명을 기다릴 뿐
십세(十世)의 천은(天恩)을 만분의 일이라도 갚고자 하네.
서산도 오를 수 있고, 동해도 건널만하나 임금의 은혜는 갚기 어렵도다.
삼년은 장차 다하고 피눈물만 섞여 흐르네.
이 몸이 죽어서 상황을 모시고자 하니 이 밖에 무엇을 더 구하리오.
권성의 한글유서
권성은 자결 전 다섯 통의 한글유서를 남겼다. ｢계삼아(戒三兒)｣(세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 ｢기친가제(寄親家弟)｣(친정 동생들에게), ｢상시숙부(上媤叔父)｣(시숙부님께 올립니다), ｢상시숙(上媤叔)｣(시숙님께 올립니다), ｢두 며느리 보아라.｣로 시작되는 다섯 통의 유서에는 ‘충의의 길’을 가는 남편을 따르는 것이 사람의 떳떳한 도리이자 대의(大義)라고 밝혔다.
｢계삼아 戒三兒｣ (세 아들에게 경계하는 말)
아이들아 삼형제 보아라. 너희에게 유서로 부탁할 말이 많다고 하지마는 정신이 어두워 수습하지 못하고, 짧은 글로 대강 부탁한다. 너의 어르신께서(아버님) 평생에 의리가 많으셔서 이제 뜻과 같이 이루실 듯 하시니 나도 같이 따르려고 한다.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들 간에 살고 죽음이 그 한 몸에 달렸으니 부부의 의리는 군신의 의리와 같으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 이 타향객지 사방을 돌아다보아야 돌봐줄 친척이란 하나도 없는 외로운 처지를 누가 살뜰한 것이 없고 아득 막막할 듯 하여도 남편(네 아버지) 인심 후덕하면 자연 공이 있게 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고, 집안의 규범 화평하게 하고 매일 조심하여 시각을 잊지 말고 정신 차려 살아갈 도리를 생각하고 부디 간수 잘하여 조금도 서러워하지 말고 동섭 삼 숙질 못 잊히나 형들이 데면데면하겠느냐? 부모님이 계실 때보다 조금도 다르지 않게 거두어라. 남자 형제들은 잘 가르쳐 영남으로 정혼하고 손자를 보지 못한 한이 되지마는 설마 얼마 있지 않아 있을 터이고 너의 아내가 아직 부족하니 교훈하여 가르치거라. 네가 살림살이의 주인이니 아침저녁으로 먹던 것이라도 매일 때마다 가르쳐서 보고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들 하나도 뜯기지 말고 다식판･번철은 더 각별히 간수하여라. 모든 일이 출중하여 잘 하면 그게 좋지 않겠느냐? 매일 조심하고 봉제사와 접빈객은 집안의 대사이니 있는 대로 잘 받들고 매일 조심하면 군자와 요조숙녀 될 것이다. 그 좋지 않겠느냐? 동희야. 또 한 말 들어 보아라. 이 액운과 불운을 몇 해 사이에 다 보내고 좋은 바람 다시 불어 태평세상 되거든 자손들의 여러 가지 일들, 부귀영화 되길 한없이 축원한다. 할 말이야 여산여해라도 부족하지만 할 말을 이만 줄인다. 글씨가 고약하고 글씨를 쓰지 못한다. 생각하여 보아라.
두 며느리 보아라
얘들아 너희들을 슬하에 두어 주옥같이 여겨 사랑한 마음 비할 데 없더니, 장래 재미를 보지 못하고 이제 아주 오랜 세월동안 영원히 헤어지니 너의 어린 생각에 원통할 듯하지만 인륜대의(부부간의 큰 뜻을)에 어찌하겠느냐? 남편은 여자에게 하늘이요, 여자는 남편에게 매인 몸이라, 너의 시아버지께서 충성과 절의를 지키셔서 목숨을 다하시니 내 어찌 쫓지 아니 하겠느냐? 인륜대의에 작은 사정을 다 생각하지 못한다.
얘들아, 부모님 없다고 너무 서러워 말고 각별히 정신을 차려 조심조심하여라.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세전지물)은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하였으나 알뜰하게 간수하고 봉제사 접빈객은 있는 대로 정성을 다하여 받들고, 동기간 우애는 지극하게 하여 서로 참을 인자 백번을 생각하면 집안이 내내 화평할 것이다.
동섭(東燮) 삼 숙질 부디 잘 거두어 성취를 잘하게 하여라. 한날같이 내내 잘 거두우면 외인 칭찬 할 뿐 아니라 구천에 돌아간 혼신이라도 오죽 즐겨하랴. 부디 범백사를 조심조심 하여라. 살림이 구차한 것은 우선 고생이지만 재물이란 것은 천지간에 뜬구름과 한가지라서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분수나 본분을 지키고 덕을 닦으면 자연히 천신이 감동하시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고 집안의 도리를 평안하게 하여 장래에 문호를 빛나게 하면 이것이 바로 나의 소원이다. 어둑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대강 적으니 명심하여 보아라.
경신 음력 섣달 십구일 시어미 유서 (안동대학교 강사 안귀남)
세 아들과 며느리에게 남긴 유서에는 대의(大義)를 따르는 의부(義婦)로서의 모습과 자애로운 모성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권성은 “임금과 신하사이에 의리가 있듯이 부부사이에도 의리가 있으니 죽는 것에는 한이 없다”고 하였다. 이는 권성에게 있어서 마땅히 가야할 분명한 인륜(人倫)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자식이 가는 길이 ‘바른길’이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봉제사 접빈객을 비롯한 집안의 자질구레한 대소사에 일일이 신경이 쓰이는 여성의 마음! 이런 마음의 언저리에서 권성은 차마 붓을 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액운과 불운을 몇 해 사이에 다 보내고, 좋은 바람 다시 불어 태평세상 되거든 자손들의 여러 가지 일들, 부귀영화 되길 한없이 축원한다.”는 서러운 마지막 희망을 담아 끝을 맺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권성은 ‘충의忠義의 길’을 가는 지아비를 따라 ‘의부(義婦)의 길’을 갔다.
이명우 부부의 자결순국이 갖는 독립운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 우선은 나라를 잃고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둘째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권성은 일제강점기 자결순국한 유일한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여성이 한글 유서를 남긴 사례 또한 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독립운동사 뿐만 아니라 국문학적 자료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마지막으로 안동은 일제강점기 10명의 자결순국자를 배출하였는데 류도발 ․ 류신영 부자(父子)의 자결순국에 이어 부부가 함께 자결한 사례는 안동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신적 자산일 것이다. <안동>
-권성의 한글유서를 쉽게 풀어준 안귀남(안동대 국문학과 강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