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예 생활예술품 빈 대표 강금성(글/김영희_과천사는 안동사람, 박영대_동아일보 사진기자).jpg)
지난 6월 1일 제주도 컨벤션센터에서 한 ․ 아시아 10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를 기념하는 여러 문화행사가 제주도 곳곳에서 열렸는데 그 중에 멕시코의 세계적인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가 설계한 까사델라구아 호텔 모델하우스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흰색을 주제로 한 <WHITE>전시회에는 우리나라의 전통공예가로서 명장 반열에 오른 한지의 장용훈, 누비의 김해자, 백동의 조성준, 백옥의 엄익평 선생의 작품이 한 달간 전시되고 있는데 여기에 강금성(51세)씨의 모시 ․ 명주 작품인 모시이불과 배냇저고리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모시 이불은 흰색 모시 천에 은사로 꽃을 수놓아 기품 있고 화려한 순백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고 정결한 흰 배냇저고리는 귀한 생명에 대한 경외와 바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쟁쟁한 선생님들과 함께 전시하는 줄 알았으면 사양했을 거예요. 저는 아직 이런 실력이 못되는데 오히려 민망합니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사실 강금성씨의 솜씨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작년에는 공예진흥원과 함께 프랑스에 나가 <메종앤 오브제> 전시회를 열었고 일본의 유명 공예잡지 계간 <은화>를 비롯한 여러 곳에 소개된 바 있으며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매장이 있고, 일본 도쿄 미드타운 가든사이드 갤러리아의 요청으로 작품을 납품하고 있다. 또 다음달 7월 15일부터 3주간 평창동 가나아트 공예갤러리에서 강금성 단독 작품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영화나 잡지에도 협찬 요청이 있기 때문에 전통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곳곳에서 그의 수공예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전시회 때도 베개나 보료, 이불, 옷 등 제가 만드는 것을 거의 다 가져갔는데 그 사람들은 베개를 보고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더라고요. 잘 몰라요. 문화의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우리와 문화가 비슷해서 좋아하죠. 저의 집 물건 대부분은 일본 사람들이 사 가는데 어떤 사람은 제가 만든 것을 수집하기도 한대요. 자기가 수집한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일본에 꼭 한 번 오라고 해서 간 적도 있어요. 예쁘게 잘 쓰고 있다고 고맙다고 편지 보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일본 여행 갔다가 보고 찾아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있구요.”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 작품으로
그가 주로 만드는 생활 공예품은 베개와 이불, 방석 등 종류가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누에고치를 넣은 목베개이다. 명주로 베갯잇을 만들고 그 속에 누에고치를 넣어서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굉장히 아름다운 제품이다. 베갯머리는 색색의 명주 조각을 이어서 바느질한 바람개비 문양인데 다양한 색의 조화로 어느 것 하나 같은 색이 없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일일이 손으로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더 귀하게 느껴진다.
“베개 속으로는 흔히 메밀이나 좁쌀 이런 것을 넣는데 누에고치를 넣은 것은 좀 특이하죠. 제가 이렇게 매일 바느질을 하다 보니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안 아픈 곳이 없어요. 병원에 갔더니 목을 받치고 누우면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이것저것 해봤는데 신통치 않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만들어서 베면 어떨까 해서 목베개를 만들었어요.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베개 속에 누에고치를 넣는 것을 봤거든요. 그게 생각나서 한 번 해봤더니 너무 효과가 좋아요. 주변 사람들이 보더니 예쁘다고 만들어 달라고 해서 목베개를 만들게 되었어요. 베개마다 지퍼를 달아놔서 자기한테 맞게 높이 조절이 가능해요.”
그가 만드는 제품들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보기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점이다. 그것은 본인이 직접 만들고 먼저 사용해 보면서 개선할 점을 꾸준히 고쳐나가기 때문이다. 세탁할 때의 편리함까지 생각하면서 디자인하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가 잘 드러난 제품이 바로 무릎덮개 이불인데 펼쳤을 때는 조각보 이불이지만 접으면 근사한 쿠션이 된다. 만든 사람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리고 원피스형 앞치마와 잠옷도 재미있고 실용적인데, 인견으로 만든 앞치마는 색깔도 곱지만 옷처럼 입을 수 있어서 마치 예쁜 원피스를 입고 파티 준비를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잠옷도 실용성을 최대한 살려서 몸이 편안하게 움직이도록 팔꿈치와 무릎 부분에 트임을 주어 옷이 당기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 밖에도 도시락 보자기, 손가방 등 작은 소품에도 그만의 남다른 생각과 정성이 들어가 있다.
만드는 것에 이렇게 정성을 들이니 재료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다. 제품을 만드는데 드는 명주나 모시의 구입에서부터 누에고치, 솜 등 어느 것 하나 대충 하는 법 없이 여전히 꼼꼼하고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사서 고생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면서도 ‘몸이 힘들고 안 아픈 곳이 없지만 하루도 나오기 싫은 날이 없었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걸 보면 천상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름처럼 비단과 함께 살아요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는 말도 있잖아요. 제 이름 금성에 ‘금’자가 비단 ‘금’자예요. 그래서 이렇게 비단하고 살게 되었나 봐요.”
어릴 때부터도 형제들 하고는 달랐다고 한다. 4남매 중에서 둘째인데 조용하고 조신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바느질하는 외할머니 곁에 늘 붙어 앉아서 외할머니가 만드는 것들을 감탄하고 바라보며 천 조각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무남독녀라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상할머니, 할머니, 외할머니가 한 집에 살았다. 아무래도 사돈댁이 어려운 외할머니는 한복도 만들고 이불도 만들고 무엇인가 만들기를 좋아하셨다. 손주들이 중학교에 다니면서 부터는 옹천에서 안동으로 나왔는데 안흥동에 집을 얻어서 살았다. 교사로 이동이 잦은 부모님을 대신해서 외할머니가 손주들을 돌봐주었기 때문에 바느질을 하는 외할머니를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외할머니의 솜씨와 감각을 자연적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일본 잡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외할머니 얘기를 했더니 잡지 편집장이 어떤 부분이 외할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하느냐 하대요. 외할머니가 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봤고 또 손톱이 외할머니와 똑같다고 했죠. 손톱이 독특하게 생겼는데 이런 손톱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못 있는 대요. 그 얘기를 했더니 막 웃더라고요.”
안동사람, 말투만 듣고도 단박에 알던데요?
함께 자랐지만 언니와 남동생들은 공부에 관심이 많아서 언니는 중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국에 살고 있고 남동생들은 모두 좋은 학교를 나와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는 안동여고를 다녔는데 공부를 안했다고 한다. 당시는 고교선발제였으니 안동여고를 갔으면 공부를 안한 것도 아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얌전해 보여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고. 댐으로 놀러 다니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본인 말로는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잡지에 나올 인물이 못되지만 아버지를 위해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도 안하고 아버지 걱정을 끼쳤던 딸이 이렇게 열심히 살고 또 인정받고 있는 걸 아시면 좋아하실 거라고. 잡지가 나오면 꼭 아버지께 보여드릴 거라고 했다.
“안동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삼청동에 작업실이 있어서 저는 여기에 잘 안 나와요. 부지런히 만들어야 하니까요. 가끔 매장에 나와서 손님들 하고 얘기를 하다보면 제 말투를 듣고 대번 알아봐요. 안동사람이라고 하면 역시 그렇구나 하죠. 안동사람이라서 이런 일을 하는구나 하면서 점수를 후하게 줘요.”
삼청동 작업실에서 만든 수공예품들을 인사동 쌈지길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현재 직원은 모두 여섯 명이다. 적지 않은 규모이다. 바느질을 시작한 지는 20여년이 되었는데 결혼을 하고 첫 아이가 네 살이 될 무렵부터 시작했다. 남편이 별정직 공무원이라 일 년에 육 개월 정도는 해외 출장이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처음에 퀼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퀼트 작품 전시회도 여섯 번 정도 했는데 깊이 하다 보니 퀼트 보다는 한복이나 우리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마침 삼청동에 자그마한 공간이 있어서 일곱 평 정도 되는 가게를 빌려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미생활 정도로 시작한 것이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고 뭘 만들어 놓아도 팔리지도 않았다. 그만 접으려고 하면 한 사람 와서 사가고 또 접으려고 하면 또 한사람 오고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한복을 했었는데 전통적인 것에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개성 있는 작품도 만들고 했다. 그러나 한복의 세계는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고 그 깊이도 깊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것이 이불을 비롯한 침구류이다. 정갈하고 기품이 있는데다 색감도 고와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직원도 한 명 쓸 정도로 규모가 되었다.
나를 믿고 일해 주는 사람 있으니 행복합니다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은 4년 전인데 우연히 인사동 쌈지길의 입점 공고를 보게 되었다. 쌈지길은 3층 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독특한 외양과 다양한 볼거리로 지금은 인사동의 명소가 된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주요 관광코스이다. 입점 신청을 해놓고 때마침 이사를 하는 통에 연락이 닿지 않아 나중에야 입점 소식을 들었다. 몇 달을 그냥 보내버려서 매장을 꾸미는데 굉장히 힘이 들었다고 한다. 인테리어도 해야 하고 전시할 작품도 많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 지금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빈>이라는 이름도 그때 지었는데 세자빈에서 따온 말이다. 세련되고 기품 있는 그의 작품들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이름이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작업실이 작아서 삼청동의 30여 평 한옥을 빌려서 작업실로 쓰고 있고 직원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 지금은 여섯 명이 되었고 부지런히 만들어도 잔업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직원 중에는 손님이었다가 함께 일하게 된 사람도 있고 학교에서 복식이나 의상을 전공한 재원들이 대부분이다.
“다 전문가들이라 나한테 와서 이렇게 일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 함께 나아가니 참 좋죠. 함께 하는 것이 보람 있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서 인정받는 것이 뿌듯하지요. 이 일이 다 손으로 작업하는 것이라 일은 많아도 돈은 별로 안돼요. 그저 우리 직원들과 함께 해 나가는 정도죠.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힘이 없다가도 아침에 즐거운 마음으로 대문을 들어서는 직원들을 보면 ‘내가 무어라고 저 친구들이 나를 믿고 이렇게 와서 열심히 일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새로운 용기가 생겨요.”
삼청동 작업실은 경복궁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한옥인데 작은 마당이지만 나무가 멋지게 심겨진 화단도 있어서 운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집 구경 온 사람들이 돌아가기 싫어할 정도라고. 방 마다 빼곡한 명주와 모시 옷감들의 곱고 은은한 색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한없이 누그러졌다.
“색깔의 조화는 무궁무진하죠. 기분에 따라서 그날그날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기분이 좋을 때는 강렬한 색들의 조합이 나오고, 좀 가라앉았을 때는 은은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이 주로 되더라고요. 색을 맞추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하는 일들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요.”
방바닥에 여러 색의 조각 천을 펼쳐놓고 이리 저리 퍼즐 맞추듯 색깔을 맞춰 나가는 것을 보니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엄마보다 더 잘해보겠다는 아들
가족들이 자랑스러워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저 웃음으로 대신한다.
“남편 덕을 많이 봤죠. 돈도 안 되는 것을 믿고 기다려줘서. 남편 월급으로 이걸 꾸릴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불평 없이 저를 한결같이 믿어 주었어요. 남편 말로는 첩첩산중 안동 골짜기인데다 강씨라서 자기가 이기지를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애들은 아들만 둘인데 큰애는 지금 군대 가 있는데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요. 작은 애는 고3인데 디자인 쪽으로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두고 보래요. 엄마보다 더 잘 해보겠다고 하네요. 마음속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거겠죠.”
가족들이 희생을 많이 했다고 미안해했다. 집에 가면 매일 아프다고 하니까 남편은 전시회 같은 초청이 들어와도 좋아하기보다 걱정부터 한다고 한다. 시어머니도 바느질하는 것을 못마땅해 해서 버리라고도 아니고 처단하라고까지 하셨는데 지금은 대접이 많이 달라졌다고. 당신 아들이 퇴직할 때가 되니까 오히려 고마워하는 거라고 했지만 해외에서까지 인정받고 있는 며느리가 대견하셨으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작업실을 입식으로 바꿔보는 것이라고 한다. 한옥이 운치가 있고 어울리지만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작업하는 공간도 공개해서 여러 사람들이 우리의 멋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보는 즐거움도 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문득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지거나 특별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면 <빈>에 들러 그 고운 빛깔들과 대면해보기를 권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