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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들의 울타리 평강의 집, 그후 10년(글/임종교_문화를 가꾸는 사람들)

얼마 남지 않은 더위도 한풀 꺾일 쯤 그래도 낮으로는 아직 여름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뜨거운 날이다. 피치 못해 아이들을 대동하고 나선 길이다. 취재에 방해가 될까 염려가 되기도 하고, 지체장애인들이 대부분이라 혹여 아이들이 거리끼거나 그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되었는데 잠깐의 서먹함이 있었을 뿐, 나보다도 먼저 저희들끼리 장난을 걸고 히히덕거리며 어울리고 있었다.

열 살 아이부터 여든 노인들의 아빠, 류시무 씨
시골 한가운데 번듯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작은 연못과 정성스런 손길이 오갔을 마당 한쪽에서 할머니 한분이 빨래를 하고 있다. 나를 보자 경쾌하게 인사를 건네며 격의 없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은 1999년 1,2월호에 만났던 이웃이야기의 주인공 ‘지극히 작은 자들의 울타리 평강의 집’ 가족들이 살고 있는 길안 현하리에 있는 보금자리다. 열 살부터 여든이 가까운 노인들까지 ‘아빠’라고 부르는 가장 류시무(61) 씨와 ‘엄마’라고 부르는 박미숙(59) 씨가 현재 40여명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곳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불렀다. 가족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는 아빠가 되어주고, 할머니를 만들어주고, 손자와 손녀를 만들어주고 같이 정을 나누며 사는 행복을 만들어주는 어쩌면 ‘평강의 집 하느님’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을 의지하는 것이 전부이고, 일하기 전부터 나 자신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은 없었어요.”

그런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기도 한 그는 집안 환경도 어려웠지만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로 올라갔고, 법관 공부도 하고 신학도의 꿈도 품어보았지만 늘 현실의 편견과 벽에 부딪혀 좌절해야했다. 죽을 결심도 했었고, 그 끝에서 그는 ‘저를 살려주시면 평생 어렵게 사는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평생의 꿈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와서 ‘평강의 집’이라는 둥지를 만들었다.

함께 나눠주는 삶, 섬기는 삶
고향에 내려와 맞이했던 첫 번째 가족 남옥자 씨, 당시 14살이었던 옥자 씨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녀는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었다. 안내해준 방을 따라 들어가니 깔끔하게 정돈된 방에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그걸 다 놓아두고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어있다. 다리라도 펴고 편안하게 자지하는 짠한 마음이 드는데 해맑게 웃던 10년 전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다. 아쉬움은 그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삼삼오오 모여 내가 누구인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시하더니 덥석 ‘안녕하세요’ 경쾌하게 인사를 하는 ‘인사 잘하는 아줌마’ 윤영희 씨. 누구의 도움 없이는 거실 바닥에서 돌아눕지도 못하는 지체장애 1급의 김진희 씨도 보인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들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언뜻 느껴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살면서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힘든 일이지요. 장애인이나 노인들이다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집에서만 생활하니까 의사소통도 힘들지요.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을 낮추는 거지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힘들 거라 싶어서 늘 그런 질문들을 내게 하는데 스스로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지요. 내 행동 하나가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는데 가족들 눈빛을 보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 싶더군요. 섬겨야지요. 섬기려면 내가 낮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늘 그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밥 먹을 때면 알아서 상 펴주고, 밥 먹여주고, 신발 정리하고, 청소하고 다 역할 분담이 있어요. 그걸 남이 해주려고 하면 굉장히 싫어하지요.”
그러고 보니 들어오면서 연신 시간 간격으로 흐트러진 신발정리를 하고, 우르르 한사람씩 우리 주위를 맴돌며 연신 걸레질과 청소기를 돌린다.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것 같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밥을 먹여주고, 세수를 시켜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표정이 밝기만 하다. 처음에는 자기 머리도 감지 못하는 아이가 자기보다 더 힘든 아이의 세수를 시켜주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들을 나눠가며 살고 있었다.

아빠처럼 살께요
그런 마음을 닮았을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신일(27) 씨는 그 후 안동과학대학 사회복지과를 졸업하고 ‘평강의 집’ 일을 본격적으로 거들기 시작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들이 대뜸 ‘아빠처럼 살겠다’고 했단다. 처음 옥자 씨를 가족으로 들일 때 가장 힘들어했던 아들이 어느새 그 아버지의 따라 살겠다고 하니 그에게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라, 그게 가훈인데 아들도 돈 욕심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우리 부부가 외출이라도 하면 기저귀도 갈아주고 때 되면 라면도 끓여 먹이고 했으니까요”

신일 씨는 작년 11월에 안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심규희(26) 씨를 만나 결혼했고, 백일 된 아기도 있다. 마침 그날은 백일이라 함께 처가에 가고 없었다.
할아버지가 된 그이지만, 초등학생의 학부모이기도 하다. 신영이에 이어 딸 신실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주 예쁘게 생긴 딸들이다. 태어나서 7일 만에, 15일 만에 각각 ‘평강의 집’에 온 류신영(10), 류신실(8)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작은 딸과는 53살 차이가 난다면 웃어 보인다. 늦둥이도 여간 늦둥이가 아니다.

이 분들하고 생애 마칠 때까지 살아야죠
‘평강의 집’에는 현재 여든이 넘는 노인이 두 분이나 있다. 노인시설의 규정상 65세를 넘게 되면 의무노인시설로 가야 한다. 어른들이라 이곳에 와서 적응하는데도 힘들었는데 그 노인들을 다시 다른 곳으로 보내기엔 그의 맘이 허락치를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별도의 조립식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그곳을 노인시설로 만들어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들 신일 씨가 노인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펴 드릴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한 식구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던가.
“평생을 이 분들과 같이 살자고 맘 먹었으니했으니 생애 마칠 때까지 같이 살아야죠.”

작은 나눔 큰 행복
‘평강의 집’은 무료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수급비와 후원으로 운영해간다.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후원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여성회관에서 10년 동안 ‘평강의 집’을 찾아 밑반찬도 만들어주고, 김밥 만들기 등을 해주고 있고, 사랑실은 교통봉사대, 그리고 교회에서도 꾸준히 후원해주고 있다. 그리고 생필품이나 먹을거리로, 그리고 후원회비로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다.
2008년부터 홈페이지를 운영해 일반인들에게 주말농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있다. 그리고 자원봉사 신청도 가능하다.

류시무 씨는 그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평강의 집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나눔을 큰 행복으로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 한마디를 적어본다.“마흔 명의 식구가 한 번은 실컷 먹을 무엇인가가 있을 때 그 때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지요. 저희가 느끼는 이 행복을 베푸는 이들에게도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돌아서는 내내 배웅을 해주던 류시무 씨의 이 따뜻한 말이 내내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