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내용

몸을 나누어 아버지를 구한 효자 김기호(글/이미홍_객원기자)

조선 광해군 때 편찬한 동국신속상감행실도에 효자인 이보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아버지가 중병이 들어 백방으로 치료를 해도 효험이 없어 울고 있는데 꿈에 어떤 중이 산사람의 뼈를 먹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보가 놀라 일어나 손가락을 베어 약을 만들어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즉시 나았다고 했다. 동국신속상감행실도에는 이보를 비롯하여 72명의 충신, 열녀, 효자 효녀 이야기가 나오는데 당시 이런 이야기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어 백성들에게 읽히도록 한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으로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유교적 사회규범을 정착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어떤 이들은 지배층이 백성들에게 유교이념을 주입시키려고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설사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문제와 마찬가지로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는, 혹은 효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거라고 열을 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이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 손가락을 잘랐다는 사실보다는 아버지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이보의 마음이 우리네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스물여덟 기호씨의 당연한 선택
안동 삼성디지털프라자 옥동점에 근무하는 김기호 씨는 그냥 보통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고생하시며 뒷바라지 하신 부모님의 그늘 아래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여자 친구가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스물여덟의 젊은이였다. 자라면서 큰 속을 썩인 적도 없지만 자신이 특별히 효자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밝고 정이 많아 친구 같은 아들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삶을 살기에 바빠 부모님을 잘 챙기지는 못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아버지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결심을 하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처음 수술에 대해 물었을 때, 기호 씨는 그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자식이니까 당연히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술 하는 것에 대해 별로 오래 고민은 안했어요. 자식이 하는 것이 가장 좋고, 다행히 제가 조건이 맞아서 드릴 수 있었던 거죠.”
아버지 김정구(58)씨와 어머니 권현숙(51)씨는 안동 구시장 내에서 옷 수선 가게를 하고 있다. 정구 씨는 나이 서른이 넘었을 때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갔다가 피검사 결과 자신이 선천적 B형간염 보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약을 복용하기도 했지만, 간염보균자라고 해도 특별히 증상이 있는 건 아니어서 술이 안 좋다는 건 알았지만 친구들을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약을 먹고 간수치를 조절을 해도 나이가 들면서 자꾸 간 기능이 약해져 갔다. 그러다가 2005년 서울 삼성병원에서 간경화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술을 끊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약만 잘 먹고 관리만 잘하면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 뒤로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다니고 세 달에 한 번씩 초음파를 찍어 상태를 체크했다. 그런데 지난 설 무렵 갑자기 간성혼수가 왔다. 안동병원에 입원했는데 의사가 이렇게 한 번 간성혼수가 오기 시작하면 앞으로 주기적으로 간성혼수가 올 수 있다고 경고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면담을 신청했더니 간이식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안동에서는 수술이 어렵고 서울이나 대구에 있는 병원 중에서 간 이식 수술로 유명한 병원을 알아보고 수술을 하라고 했다.

여러 병원에 전화 상담을 했다. 아프면 한없이 약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대구가톨릭병원에서 소소한 질문에까지 답해주며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줬다. 상담 후 장기기증센터에 간기증자 신청을 했는데, 기증 신청해 놓은 대기자가 너무 많아서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거기다가 응급을 요하는 정도에 따라 1급에서 13급까지 있는데 기호 씨 아버지 김정구 씨의 경우에는 아직 그렇게 위험한 경우가 아니어서 더 기약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요즘은 간이식의 경우 기약 없이 기증자를 기다리기보다 가족간에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증자 신청만 해 놓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같이 갔던 딸 은선 씨가 동생하고 이야기해서 우리가 결정할 거니까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말라고 했다.

부모 몰래 검사, 금연 금주에 체중 늘리며 관리
누나인 은선(31) 씨가 간호사다 보니 남매는 수술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보고 아버지가 더 악화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수술을 하는 게 더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간의 경우 아직까지 인공심장처럼 간의 기능을 대신할 인공 장기가 없기 때문에 간 기능이 악화된 환자에게 유일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은 간이식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약으로 그 시간을 늦출 수는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간이식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은선 씨와 기호 씨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불러 앉히고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 사이 기호 씨가 부모님 모르게 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원래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이식을 하는 게 더 맞을 확률이 높아서 아들인 기호 씨가 먼저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검사 결과 기호 씨가 아버지와 너무 잘 맞는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그래서 은선 씨는 아예 검사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아마 둘 다 적합 판정이 나와서 누나가 하겠다고 했어도 당연히 제가 할 생각이었어요. 아버지에게 간이식을 하는 데 있어서 딸인 누나보다는 아들인 제가 하는 게 더 안전하고 제가 신체도 더 건강하고요. 수술 후 회복이라든가 수술 자국이라든가 그런 거를 생각해도 여자인 누나보다는 제가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길게 생각할 일도 없었고요.”
어머니 현숙 씨가 아무래도 아들인 기호 씨가 누나인 은선 씨보다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는 거 같고, 그래서 나서서 수술을 하자고 먼저 밀어붙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고 하자 기호 씨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면도 조금은 있었겠죠. 그래도 그런 책임감 때문에 한 건 아니죠. 그냥 제 아버지니까 드린 거죠. 누나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제가 드리고 싶어도 제가 조직이 안 맞았으면 누나에게 차례가 가서 누나가 했을 거니까, 이왕이면 제가 해서 다행이었죠.”
그리고 수술을 결심한 기호 씨는 그때부터 나름대로 몸 관리에 들어갔다. 기증자의 신체가 건강해야 수술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금주 금연은 기본이고 체중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밤에도 먹고 자고 해서 20일 동안 체중을 4㎏이나 늘였다. 기증자의 체중이 기증 받는 사람보다 좀 더 나가는 게 좋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술 하자는 이야기를 듣는 부모 마음은 또 달랐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좀더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하는 게 수술 성공률도 높고 또 둘 다 결혼을 하지 않은 부담이 없고 홀가분한 몸일 때 부모님께 해 드리고 싶다고 두 남매가 밀어붙여 기어이 수술 날짜를 잡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아버지 정구 씨는 말을 못했고, 어머니 현숙 씨는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솔직히 아들이 걱정되었다고 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부모로서 해 준 것도 없이 이렇게 받아도 되는가 싶고 남편이야 본인이 아프니까 다른 생각을 할 계제가 아니지만 저는 엄마 된 입장에서 생각이 많았지요. 아들은 아직 젊은데 혹시라도 수술 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상처가 깊이 남는다는데 그 상처를 평생 가지고 갈 거 생각하니 그것도 마음 아프고. 부모 된 입장에서는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런데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보니까 주위에 우리처럼 부보 자식간에 간이식을 주고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수술 성공률도 높고요. 옆에서 수술하고 경과가 좋은 걸 보고 그때서야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요.”

9시간의 대수술,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시간
4월 21일에 수술을 했다. 검사 결과 기호 씨의 간이 건강하다고 나왔지만 사진 판독 결과와 실제가 다른 경우가 간혹 있어서 간 상태가 깨끗한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기호 씨가 먼저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아버지인 정구 씨가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버지 정구 씨의 간을 제거하고 기호 씨의 간 일부를 떼어서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한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장기 일부를 잘라내어 다시 연결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아들과 남편을 수술실에 들여보낸 현숙 씨에게는 피가 마르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 시간이 살아오면서 제일 길었어요. 막상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 보자 아무 말도 안 나오고 그냥 눈물만 났어요. 아무 것도 해 주지도 하지도 못하고 수술실 불이 꺼지기만을 기다리는 그 순간을 지금도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둘 다 무사히 저 문을 나오기만 바랐어요. 무사하겠지 하다가도 덜컥 겁이 나고.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 결과가 안 좋다면 그래도 아들이 살아야지 하다가도, 남편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고. 그래도 어미 미음에 아들이 더 걱정되더라고요. 그 9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현숙 씨다.

9시간이 걸리는 긴 수술이 끝나고 부자는 중환자실 이쪽과 저쪽 끝에 나란히 누웠다.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호 씨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저쪽 끝에 누워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고 했다.
“사실 그날 아침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의 기억이 없어요.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갔는지도 기억에 없고 깨어날 때까지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그냥 아버지가 저쪽 편에 보이는데 몸에 기계들이 연결돼 있는 게 보였어요. 수술이 잘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에게 뭔가 해 드릴 수 있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던 거 같아요.”

기호 씨는 하루가 지나고 일반실로 옮겨 일주일 후 회복이 되어 퇴원을 했고, 아버지 정구 씨는 3일 후에 무균실로 옮겨 이식받은 간이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병원 무균실에서 지내다가 경과가 좋아서 21일 만인 5월 14일에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해서 집에 온 아버지에게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제 내 간을 가져갔으니까 건강하게 관리를 잘 하세요. 그런데 20대의 건강한 간을 가져갔으니까 이제 더 젊어질 텐데 그런다고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한 눈 팔지 마세요.”라고.
수술을 하고 말은 안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소중함을 몰랐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새삼스럽게 인식했다고 할까?
퇴원을 하고도 기호 씨는 간이 제 크기를 회복할 때까지 집에서 관리를 했다. 한 달여가 지나면서 기호 씨의 간은 다시 제 크기로 자라났다. 아들의 간을 떼어 받은 정구 씨도 젊은 기호 씨만큼 금방 회복이 되진 않았지만 간이 조금씩 커져 가고 있다. 원래 크기로 되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정규사원이 된 기호씨, 가족에겐 더없는 선물
기호 씨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을 해 드리기 위해 부득이하게 직장에 휴직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정을 알게 된 회사에서는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헌혈 지원을 받아 수술에 필요한 수혈을 위해 헌혈증을 모아 주었고 수술비에 보태라고 특별격려금도 받았다. 그리고 기호 씨가 수술실에서 나와 회복실에 누워있을 때 회사에서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기호 씨의 휴직을 병가 처리하기로 했다는 것과 계약직이었던 기호 씨가 정규사원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누구보다 기뻐한 건 아들에게 간 이식을 받고 누워있던 아버지 정구 씨였다. 정구 씨는 앞에 앉은 기호 씨를 슬쩍 건네다 보며 속에 있던 말을 했다.

“수술을 하고 집에 와서도 대놓고는 고맙다는 이야기를 못했어요. 사실 아들이 간을 이식해 준다니까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지요. 그렇지만 저는 조금 더 있다가 이번 가을 지나고 내년쯤에나 해도 하자고 했거든요. 계약직은 계약 기간 동안의 실적에 따라 올 9월에 정규직원 채용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는데 올 가을에 있을 심사를 앞두고 수술 때문에 한 달여 이상을 일을 못하고 쉬게 되면 아무래도 지장이 있지 않겠어요. 딸 아이 하고 아들이 밀어붙여서 수술을 결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아도 정규직 되기가 어려운 데 내 수술 때문에 아들이 정규직이 못되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런데 회복실에 있는데 회사에서 고맙게도 정규직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고요. 그 순간 마음의 짐이 덜어지면서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어요. 그제야 수술을 잘했다 싶었죠.”

표현은 안했지만 그동안 마음을 졸였을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기호 씨가 정규직이 되었다는 소식은 힘든 수술을 끝낸 가족 모두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아들로서 내 아버지에게 당연히 해 드릴 수 있는 걸 한 것뿐인데, 생각 밖에 주위 사람들의 염려와 도움을 받고 큰 선물까지 받은 기호 씨는 이번 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만의 문제라고,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위에 있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려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내가 도움을 받았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도우면서 살아야겠다 다짐도 했다. 정규직 발령이라는 회사의 큰 선물에는 앞으로 몸 바쳐 일하는 것으로 갚아나갈 생각이다.

빨리 일터로 복귀하고 싶은 아버지
엄밀하게 말하면 정구 씨의 간은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간의 일부를 잘라 이식한 거라 조금씩 커지고는 있지만 크기도 어린이의 간 크기 정도이고, 그러다보니 각종 바이러스나 세균에 면역력이 약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익히지 않은 날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밖에 나가는 것은 삼가야 한다. 꼭 나가야 하는 자리나 음식을 먹어야 할 때는 장갑 끼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자신만의 수저를 따로 챙겨서 가야 한다. 날 음식을 제외하고는 먹는 것도 잘 먹어야 하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건강해야 항체 면역력도 커지고 간의 회복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간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지만 정구 씨가 간염보균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늘 따라다니기 때문에 꾸준히 간의 회복 상태를 정기 점검하는 것 외에도 약을 복용하는 것과 정기적인 건강체크는 죽을 때가지 해야 하는 일이다. 현재는 수술 직후라 50만원이 넘는 주사비를 포함해 한 달 치료비만 100만원 정도 들어가고 있다.

이것저것 돈 들어가는 것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일을 하고 싶은 정구 씨지만, 하는 일이 옷 수선이다 보니 먼지를 많이 마시는 일이라 면역력이 약한 정구 씨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 아직 일을 못하고 있다. 마침 여름이 비수이기도 해서 지금은 문을 닫아놓고 있지만, 조금 몸을 더 추슬러서 가을쯤에는 일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부부가 28년을 해 온 일인데다가 정구 씨 수술 경과도 좋아 관리만 잘하면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앞으로도 한참은 더 일을 할 수 있고, 부지런히 돈을 더 벌어 딸도 아들도 짝을 지어 줘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은선 씨도 기호 씨도 만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현숙 씨의 걱정에도 기호 씨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아직은 조금 더 자리를 잡고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하고 싶어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제 힘으로 해야죠.”

막둥이 기호 씨에게 세상보는 눈 넓혀준 계기
기호 씨 가족 모두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족의 소중함도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주위 사람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새삼 느끼면서 이웃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수술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넸고, 대신 기도를 해 주었고, 헌혈증을 모아 주었고, 십시일반 수술비에 보태라고 심적 물적으로 도움을 줬다. 나는 내 살기 바빠서, 우리 식구 챙기기 바빠서 주위 사람들 일에는 ‘아, 그런 일이 있었나? 안됐다.’ 하는 생각에 그치거나, 때로는 지나가는 인사말 한 마디 건네는 걸로 말았던 지난 날 들이 부끄러웠다. 돈이 많아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이제는 작은 도움이나마 내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남도 도와주고 관심을 나누며 살 거라고 했다.

수술이 끝나고 한 달을 쉬고 기호 씨는 직장에 복귀했다. 그런데 간 이식 수술 자체가 수술 자국이 크게 남는 수술이라 동생의 배에 크게 남은 흉터가 마음에 걸린 은선 씨가 저녁이면 기호 씨의 수술 자국을 확인하면서 어떻게 하면 흉터를 줄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자문을 구한 결과 수술 자국을 없애지는 못해도 피부과 시술로 흉터를 엷게 할 수는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은선 씨가 기호 씨를 피부과에 데리고 가서 1차로 수술 자국을 줄이는 시술을 받고 주사도 맞았다. 한 번 시술을 받는 데 20만원이 드는 데 여러 번에 걸쳐 시술을 받으면 흉터가 희미해진다고 한다. 안동에는 시술 기기를 들여놓은 병원이 없어서 대구까지 가서 시술을 받고 있다. 은선 씨가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 쪽으로 잘 챙겨주는 것도 있지만 자신 대신 동생이 수술을 하고 얻은 흉터라 누나인 자신이 흉터나마 작게 남게 해주고픈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 잘해낼 자신 있어요
기호 씨가 삼성디지털프라자 옥동점에 처음 영업직으로 들어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힘든 영업직을 어떻게 하느냐고 말린 주위의 우려와 달리 기호 씨는 영업직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했다. 어머니 현숙 씨도 기호 씨가 한 곳에 진득하니 앉아서 하는 일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서서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해서 잘할 거라고 믿는다. 영업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상대로 하여금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만들고, 그리하여 사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하고, 잘 샀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나서게 하는 그 모든 일들이 고객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힘으로 물건을 팔았을 때의 짜릿한 성취감이야말로 영업의 매력이 아닐까? 이제 영업 2년차, 이제 막 정규직 사원이 된 기호 씨. 지금이야말로 세일즈맨으로서의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선 기호 씨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

“주위에서 사람들 상대하다 보면 스트레스 받지 않느냐고 물어들 보는데 저는 그런 거 잘 모르겠거든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 잘 할 자신도 있고요. 영업은 실적이기 때문에 제가 도움 받은 거 생각하면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죠. 지금까지 한 것 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그것밖에 없는 거 같아요.”
열심히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서 언젠가는 자신의 가게를 가지는 것이 꿈인 기호 씨는 오늘도 열심히 웃으면서 손님을 맞고 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