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걱정(글/편집실)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만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나는 차도 없고 면허도 없다. 내 나이에 차도 없고 면허도 없으면 대부분 한심하게 본다.
어느 날 시골길을 가는데 꼬부랑 할머니 한분이 뙤약볕에 처적처적 걷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에게 어디쯤인지는 몰라도 동네가 한참이니 태워가자고 했다. 친구는 태웠다가 괜히 사고 나면 골치 아프니 관두자고 했다. 그러더니 구체적인 사례까지 얘기해준다. 언제언제 누군가가 길 가던 할머니들이 사정하길래 호의를 베풀어 태웠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자식들이 한몫 단단히 챙기려하는 통에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할머니가 먼저 태워달라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행여나 일어나지도 않을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기부천사인 가수 김장훈 씨는 공황장애가 있다고 고백했다. 공황장애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나 또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나타나는 극심한 불안 상태라고 한다. 밝고 긍정적인 그가 불안증으로 고생한다니 대중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하지만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안과 싸우며 지냈을까. 그는 아마도 많은 기부와 나눔을 통해 공황장애를 치유하는지도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는 ‘욕망을 억제하지 말고 욕망이 부질없음을 깨달으라’고 했다. 나는 현대인들의 공황장애가 내 것에 대한 집착, 또 내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을 하찮게 보지 않고 내 욕심의 집착을 버리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끝내 그 할머니를 태우지 못했다. 일어나지도 않는 일에 휘말리길 꺼려하는 친구는 나의 오지랖 넓은 연민이 세상살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