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간의 유럽일주 ′나의 첫 유럽 자동차 여행′(글/임세권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해외 여행은 많이 했는데 전공과 관련 없는 관광 여행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그러니 결혼한 지 33년이 넘도록 부부 만의 여행도 해본 적이 없었다. 금년 여름의 유럽 여행은 이런 것들을 해소하는 모처럼의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나의 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이렇게 한 두 마디의 글을 끼워 넣는 것으로 밖에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 얘들아, 고맙다.
이 여행기를 쓰게 된 것은 나의 경험담을 들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기 원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앞으로 자동차를 빌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쓸 것이며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소소한 부분까지도 써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뭐 그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쓰느냐고 핀잔하실 분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여행을 할 때 여행기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아 얼마나 생생한 정보를 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 자세한 것을 기대한 분들께는 죄송할 뿐이다.
유럽으로 여행지를 정한 것은 내가 여태껏 유럽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기도 했지만 여행을 주선한 딸아이들이 유럽으로 가도록 옵션을 건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유럽을 여행한 것은 한 7~8년이나 지났을까 프라하, 비엔나, 부다페스트 세 도시를 일주일 만에 다녀 온 것이다. 가고 온 것을 빼면 거의 하루에 한 도시를 스쳐 지나보고 돌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 이번 유럽 여행은 나에게는 첫 여행이나 다름없으며 서유럽으로 치면 실제로 처음이다.
기차여행을 자동차여행으로 바꾸다
처음 여행을 간다고 생각했을 때는 모처럼의 여행이니만큼 편안하게 다녀올 생각으로 패키지여행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인터넷의 여행사 사이트를 통해 유럽여행 상품들을 검색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지를 훑는 열흘 안팎의 상품 가격이 대략 250만원에서 6백만원을 넘는 것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려면 350만원에서 400만원은 넘어야 할 것 같았다. 내용은 대체로 런던, 파리, 밀라노, 베니스, 로마, 융프라우, 인스부르크, 하이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을 돌아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칠백에서 팔백만원을 들여 어느 정도는 뻔한 장소를 휙 돌아온다는 것은 처음 가는 유럽 여행으로서는 좀 만족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가보고 싶은 장소도 몇 군데 보고 또 지나치게 빡빡한 여행 스케줄에 얽매이는 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별 여행을 하기로 하고 유럽을 가본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 기차 여행을 생각했다.
약 3주일 정도의 기차여행을 예정하고 여행지와 경비를 산출해보니 몇 가지 문제가 드러났다. 먼저 기차 값이 생각보다 매우 비쌌다. 4개국을 열흘 사용할 수 있는 2등석 기차표 값이 350유로 정도로 우리 돈으로 63만원 가량 되었다. 두 사람이면 130만원이 들고 20일이면 260만원이 든다. 여기에다 좌석 예약에도 별도의 예약비가 들어가고 야간열차를 탈 때도 별도의 요금이 추가되었다. 또 기차를 탈 때는 항상 2~3일 전에 좌석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는 경비 문제보다도 익숙하지 않은 외국에서 겪어야할 큰 불편임에 틀림없었다. 그 다음에 또 하나의 문제는 도시와 도시의 중간에 꼭 보고 싶은 곳이 기찻길 옆에 있다고 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도 처음 여행길에 많은 것을 보고 싶은 여행자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리 저리 생각을 하던 중 둘째 딸의 남자친구(지금은 이미 남편이 되었다)가 자동차 여행이 좋을 것 같다고 권유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 편이 괜찮을 듯 했다. 자동차 여행은 짐의 많고 적은 것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든지 길만 있으면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계획을 자동차 여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몇 권의 자동차 여행에 관한 책을 사 보니 그냥 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장기 여행에 효과적인 임대 자동차
자동차 여행을 하려면 먼저 자동차를 빌려야 한다. 자동차를 빌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잘 알려진 렌트카다. 미국에서는 렌트카가 매우 일반화되어 있어서 가족끼리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경우는 덩치가 큰 SUV를 빌리는 경우가 많다. SUV란 스포츠 유틸리티 비히클의 약자로 우리나라의 무쏘나 산타페 같은 종류인데 미국의 것은 덩치가 커서 가족여행에 알맞기 때문이다. 렌트카는 이미 사용하던 자동차를 빌려 타는 것으로 1700cc 급을 20일 빌리는 경우 800 유로 안팎이었다. 두 번째는 리스카(임대자동차)다. 이것은 자동차 회사에서 자기 회사의 차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 차를 빌려준다고 하는데 비슷한 급의 자동차가 약 1000유로 정도였다. 그러나 보험이나 여행 중 사고와 관련된 서비스 등에서 리스카가 훨씬 유리하다는 여행안내서의 가르침대로 리스카를 고르기로 했다.
당초 평판이 비교적 좋은 푸조 자동차를 선택하고 차를 예약하려 했으나 여행 한달도 더 남은 시점에서 이미 전 차종 예약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르노로 차종을 바꾸고 겨우 차 하나를 예약할 수 있었다. 여름에 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예약을 해야 원하는 종류의 차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도 처음 오토매틱으로 네비게이터까지 달린 차를 예약했으나 프랑스 본사에서 예약 차종이 없다고 하여 예약차보다 더 작고 수동 기어이며 네비게이터도 없는 차를 배정받았다. 돈은 약간 돌려받았으나 오랜 만에 운전종을 수동기어의 불편함은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리스 비용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의 자동차 운송비 200유로를 포함하여 25일에 1,382유로 한화로 247만원이었는데 차종이 바뀌면서 몇 만원 돌려받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2,405,090원을 지불했다.
여행은 처음 런던에서 출발하려고 했으나 자동차 여행으로 바뀌면서 자동차 운전의 편의를 고려하여 파리에서 출발하여 프랑크푸르트에서 끝나는 것으로 했다. 시발점과 종착점을 그렇게 잡은 이유는 르노 자동차 리스의 경우 파리 공항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할 수 있어서 자동차를 공항에서 인수받아 공항에서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반환하는 경우 파리까지의 운송비 200유로를 더 내야 하므로 그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경제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파리에서 시작해서 파리에서 끝내는 것이 그만큼 유리하다.
호텔에서 잘까? 캠핑을 할까?
여행의 구체적 일정은 초행길이라는 점과 25일이라는 비교적 장기간임을 생각하여 중간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특히 숙박지를 결정하고 또 호텔을 미리 예약해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하여 호텔에서 숙박하기로 정한 11개 도시의 호텔을 이 잡듯이 뒤져야 했다. 호텔을 정하는 기준은 우선 싸야하고 다음은 도심에서 가까워야 한다. 많은 호텔들이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도심에서 가까운 호텔은 찾기가 힘들다. 또 있다고 해도 값이 비싸다. 따라서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소위 자동차호텔이라고 부르는 저가 호텔을 이용한다. 이들은 도시의 입구 고속도로변에 주로 위치하고 있는데 찾기 쉽고 주차도 편리하며 도심에 갈 때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고 가면 되므로 자동차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호텔을 찾는 방법은 먼저 숙박도시를 정한 후 인터넷에서 해당 도시의 사이트를 찾는다. 검색어에서 도시 이름을 치면 대체로 호텔을 찾아보는 사이트가 먼저 뜨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호텔 예약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그 도시의 호텔 리스트가 나오며 호텔의 이름, 사진, 지도상의 위치, 별로 표시되는 등급, 가격, 시설, 방안에 갖추어진 물품들 명세까지 알 수 있다. 호텔 예약 사이트는 국내에서 한글로 제작된 것도 많이 있다. 내가 많이 이용한 것은 accorhotels.com이다. 캠프장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할 수 있으며 캠프장의 위치, 환경, 시설과 가격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다만 캠프장은 인터넷 상에서 바로 예약을 하는 곳을 별로 보지 못했으며 메일을 보내도 답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캠프장을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로는 http://www.caravanandcampsites.eu를 들 수 있다. 캠핑장에는 방갈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 스낵바, 수퍼마켓, 세탁장, 수영장, 냉온수가 가능한 샤워장,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 대여, 캠핑카 대여, 전기공급 등이 가능한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캠핑장마다 가능한 종류를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다.
텐트 하나만 있으면 캠핑은 의외로 편리하다. 값이 저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또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예약도 필요가 없다. 웬만한 캠프장은 언제라도 자리가 있다. 다만 너무 늦게 도착하면 사무실이 문을 닫으므로 곤란할 때가 있는데 그것도 대체로 서비스 요원들이 숙직을 하므로 별로 문제될 것은 없다. 값은 대체로 15유로에서 25유로 사이이므로 비용에 신경쓸 것도 없으며 먹는 것도 직접 해먹으므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해먹는 것이 귀찮으면 캠프장 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해도 된다. 캠프를 위주로 숙박을 한다면 정말 저렴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구글맵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http://maps.google.com 을 치면 구글에서 제공하는 세계지도가 뜬다. 검색창에 원하는 도시의 이름을 치면(유명한 곳은 한글로 입력하는 것도 가능하다) 해당 도시가 지도에 나타난다. 다시 검색창에 ‘호텔’ 또는 ‘hotel’이라고 치면 호텔이 빨간 점으로 표시된다. 이때 빨간 색의 점을 클릭하면 각각의 호텔 정보가 별도의 창에 뜨며 호텔의 인터넷 주소도 나온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려면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여 해당 호텔 인터넷 사이트로 이동한다. 그러나 여러 호텔을 비교하면서 정하려면 호텔 예약 전문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인터넷 검색에서 ‘유럽호텔예약’이라고 입력하면 한국에 개설된 예약 사이트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도시의 중심지부터 검색하고 가급적 싼곳을 찾아보고 없으면 변두리의 자동자 여행자를 위한 호텔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때로는 관광을 위해 도시 중심지로 차를 몰고 올 경우 주차비가 비싸기 때문에 약간 요금을 더 주고라도 중심지의 호텔을 잡는 것이 편리할 때가 많다. 호텔 값은 대체로 50 유로에서 100유로 사이에서 정했으며 가능하면 70유로를 넘지 않도록 했다. 대표적인 자동차 여행자 호텔인 에탑 호텔 값이 대체로 70유로 안팎이므로 그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파리나 밀라노 피렌체 등 규모가 큰 도시의 경우 싼 호텔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모든 것을 걸어서 해결할 수 있는 도심지에 의외로 싼 호텔들이 있었다. 열심히 찾아보면 값싸고 편리한 호텔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다. 호텔을 정하기 적당하지 않은 곳에서는 캠프를 하기로 했다. 유럽의 캠프장은 경험은 없지만 안내서들을 읽어보니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캠프를 위해서 아주 작은 텐트를 하나 샀다.
<일정표>
※ 아래 계획은 물론 몇 군데 수정해야 하는 곳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었다.
6월 25일(목) 서울 2시 출발 - 파리 오후 6시 도착 몽마르뜨리의 호텔 유뜨릴로 숙박
26일 파리 루브르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관람
27일 파리 베르사이유 궁전과 개선문, 에펠탑, 인류학박물관 등 파리시내 관광
28일 파리에서 샤르뜨르 대성당을 거쳐 몽생미셀 수도원까지 약 400킬로미터 숙소 : 캠프장
29일(월) 몽생미셀 - 까르냑 거석유적지, 숙소 : 캠프장
30일 까르냑 - 라로셀 숙소 : 에탑 호텔7월 1일 라로셀 - 보르도 - 사를라 숙소: 캠프장
7월 2일 레이지드타약(폰드곰 구석기 벽화동굴 유적) - 카르카손 숙소 : 에탑호텔
3일 카르카손 - 아비뇽 숙소 : 캠프장
4일 아비뇽 - 님므 - 아를 - 마르세이유 숙소 : 캠프장
5일 마르세이유 - 칸 - 니스 - 모나코 - 망통 숙소 : 캠프장
6일(월) 망통 - 이태리 국경 통과 - 친께테레 전통마을 숙소 : 캠프장
7일 친께테레 - 피사 - 산지미냐노 - 시에나 - 피렌체 숙소 : 호텔 바실리아
8일 피렌체 관광 숙소 : 호텔 바실리아
9일 피렌체 - 밀라노 숙소 : 호텔 모차르트
10일 밀라노 - 발카모니카 암각화 유적 숙소 : 벤투렐리 호텔(브레노)
11일 발카모니카 - 베로나 숙소 : 홀리데이 인 베로나 호텔
12일 베로나 - 베네치아 숙소 : 캠프장
13일(월) 베네치아 - 코르티나(알프스 산 관통) - 오스트리아 국경 통과 - 잘츠부르크 숙소 : 캠핑 또는 에탑호텔
14일 잘츠부르크 관광 숙소 : 에탑 호텔
15일 잘츠부르크 - 독일 국경 통과 - 뮌헨 - 뉘른베르크 - 밤베르크 숙소 : 이비스 호텔
16일 밤베르크 관광 숙소 : 이비스 호텔
17일 밤베르크 - 로텐부르크 - 하이델베르크 숙소 : 캠프장
18일 하이델베르크 - 프랑크푸르트 숙소 : 이비스 호텔
19일 프랑크푸르트 - 서울
방문지역의 정보 찾기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각각의 방문지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이다. 처음 가는 생소한 도시나 유적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이 나와 있는 여행안내서들을 참고하면 좋지만 몇 가지 사 본 결과 의외로 내용이 소략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권의 책에 한 나라의 관광정보를 몽땅 수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따라서 중요한 도시 만을 실었지만 각각의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어떤 도시에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 간단한 리스트만이라도 있으면 큰 도움이 되므로 일차적으로는 안내서에 의존할 밖에 없다. 그래서 안내서는 한 곳의 정보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 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최대한으로 많은 지역을 소개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자동차 여행과 관련한 안내서를 몇 권 사 보았는데 유럽의 도로 사정이나 자동차 운행과 관련한 정보, 호텔이나 캠프장에 대한 정보, 여행 시에 주의할 점 등을 사전에 인지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안내서를 통해서 일단 가고 싶은 곳을 정하면 그 도시의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체로 시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여행안내서에서 볼 수 없는 매우 상세한 자료를 소개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럽의 인터넷 사이트는 당연히 그 나라 말로 되어 있는데 영어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 말의 버전이 함께 제공된다. 홈페이지의 윗부분을 잘 살펴보면 국기가 그려진 곳이 있고 그곳에서 영국 국기를 클릭하면 영어로 된 홈페이지를 볼 수 있다. 영어를 읽는다는 불편함은 있지만 대충이라도 그 지역의 볼거리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또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여행기를 올린 좋은 블로그들이 많으니 이를 잘 검색하면 아주 훌륭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인터넷과 친해야 한다.
이런 방법들을 거쳐 짜본 대강의 일정을 소개하면 위와 같다. 물론 세부적으로는 각 방문지의 구체적인 볼거리가 다 계획되어 들어가 있으나 여기서는 간단히 방문지역과 숙박관계만 기록하였다.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를 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최종적으로 짠 일정을 확정한 후 위에 말한 대로 숙소를 예약하고 캠프 할 곳을 정한 후 드디어 6월 25일 새벽 안동을 출발했다. 비행기 시간이 오후 1시 반이니 11시 반까지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여야 한다. 버스 터미널에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출발하는 인천공항 행 버스가 있었다. 약 네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그걸 타면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도 무난히 적당한 시간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버스 편으로 출발했다. 장기 해외여행이니 가지고 가는 짐도 무게가 만만치 않아 버스를 갈아타지 않는 것이 우선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버스는 인천공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단 동서울터미널에 들려 공항으로 갔으므로 버스를 내렸다 타는 수고만 덜었을 뿐이다.
둘 째 딸 수선이가 회사일을 잠깐 접고 공항까지 나왔다.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수선이가 나온 이유는 처음 하는 부부의 해외여행을 영 못미더워 했기 때문인 듯 이런 저런 코치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어쨌든 몇 가지 수속을 하고 비행기는 한 시 반에 인천을 떴다. 나의 긴 다리와 열세시간의 비행은 무척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내려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걱정들로 그리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나갔다. 비행기가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에 내린 것은 저녁 6시 10분,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을 빠져나오니 6시 40분이었다. 자동차를 인수 받으려면 자동차 회사로 전화를 해야 하고 전화를 하면 직원이 차를 가지고 나와 우리를 회사로 데려가서 계약 서류를 제출하고 차를 인수받으면 된다.
회사 전화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유료로 하는 일반 전화이고 하나는 공중전화에서만 가능한 무료 전화였다. 그런데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려고 하니 거는 방법을 잘 모르겠고 한두 번 시도하다가 결국 휴대폰을 이용하여 일반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그런데 현지 로밍을 해온 휴대폰도 거는 방법이 그리 쉽지 않았다. 매뉴얼을 다시 읽어보면서 몇 번 만에 겨우 전화가 걸렸다. “헬로~, 한국에서 방금 도착했습니다. 자동차를....” 더듬거리며 몇 마디 영어를 말하자 내 말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어 왔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게이트 번호를 대주니 거기 꼼짝 말고 있으란다. 이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찾긴 찾으려나 걱정하고 좀 서있으니 조그마한 청년 하나가 다가와 한국에서 왔는지 물었다. 대답하기가 바쁘게 짐을 함께 끌고 주차장으로 가서 짐을 싣고는 약 2킬로미터 떨어진 르노 차 대여 사무실 앞으로 데려가서 우리를 내려놓고는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그 청년이 와서 무언가 안내를 하겠지 하고 몇 분을 서 있다가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사무원들이 몇 명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른 쪽 구석에 앉아 있던 흑인 직원이 “봉줄” 하고 인사를 했다. 그제서야 ‘아, 여기가 파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받아간 자동차 임대계약서와 여권을 건네주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류를 작성하고는 밖으로 나와 자동차를 몰고 현관에 서있는 내 앞에 나타났다. 어두운 감색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약간 푸른 기가 도는 검은색 소형 르노 자동차가 내 앞에 있었다. 앞으로 25일간 우리와 함께 생사고락을 나눌 친구였다. 이어서 시동 거는 법, 와이퍼를 비롯한 몇 가지 작동법, 후진기어 작동법 등을 알려주고 그 직원은 “오케이? 해브 어 나이스 트립, 바이”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여행가방 둘과 몇몇 살림 보따리를 뒷 짐칸에 집어넣고 한국에서 빌려간 네비게이터를 달고 미리 예약해 둔 몽마르뜨르의 유뜨릴로 호텔 주소를 입력하고는 시동을 걸었다.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처음 운전하는 이 소형차는 기어가 수동으로 되어 있을 뿐 그 외는 모든 것이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되어 있었고 시동도 가볍게 단추 하나만 눌러주면 되었다. 오랜 만에 만져보는 수동 기어의 자동차는 처음 좀 어색하였으니 이내 옛 실력이 살아났다. 큰 길로 들어선 자동차는 네비게이터가 지시하는 대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똑바로 가기를 반복하였다.
자동차를 몰고 파리 시내로 입성
자동차 여행 안내서를 읽어보면 지도 하나만 있으면 유럽 어디를 가나 문제없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 도시의 골목을 찾아다니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네비게이터만 있으면 그리 큰 어려움은 없다. 네비게이터는 한국에서 대여할 수 있다. 네비게이터 대여 업체가 몇 군데 있는데 인터넷으로 “유럽 네비게이터”라고 치면 바로 관련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26일간의 대여료는 17만 2천원인데 처음 빌릴 때 보증금 24만원을 함께 보내야 한다. 입금을 하면 여행을 떠나기 열흘 전쯤 택배로 배달이 되며 돌아온 후 사흘 내에 다시 택배로 보내주면 보증금은 다시 내 통장으로 보내준다. 네비게이터는 영문으로 작동되며 안내 멘트도 영문이다. 그러나 “똑바로 가세요”, “오른쪽으로 도세요”, “전방 로타리에서 두 번째 출구입니다” 같은 간단한 말 뿐이고 발음도 매우 또박또박 해주기 때문에 영어라서 크게 불편한 것은 없다. 다만 도로가 공사 중이서 갑자기 막혀 있거나 어쩐 일인지 근처의 다른 골목으로 데려다 주는 일이 드물게 있어서 불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여행 중 이 정도는 큰 고생이라 볼 수 없으므로 나는 거의 네비게이터에 의존해서 목적지를 잘 찾아다닐 수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파리 외곽의 좁은 도로는 수많은 자동차들로 붐비고 있었고 잔뜩 긴장한 채 앞만 보고 가던 중에 갑자기 네온으로 장식된 커다란 풍차가 눈에 들어왔다. 관광사진으로만 보던 물랭루즈였다. 호텔은 바로 그 근처였는데 도로들이 거의 일방통행이고 네비게이터는 근처까지는 정확하게 데려다 주었는데 호텔 문 앞까지는 쉽게 안내하지 못하였다. 몇 번을 사람들에게 물어본 후 드디어 차 한 대 겨우 드나들만한 좁은 골목길에 있는 유뜨릴로 호텔 앞에 닿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출력한 예약사항을 보여주니 방 열쇠를 주었다. 아내에게 먼저 방에 가있으라 하고 나는 자동차를 주차장에 가져다 놓기로 했다. 이 호텔은 일방통행만 되는 좁은 골목에 위치하므로 당연히 주차장은 없다. 이 호텔 뿐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의 호텔은 전용 주차장이 없다. 따라서 주차는 근처의 공공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는데 이 호텔에서 가까운 주차장은 걸어서 7, 8분이나 걸리는 곳에 있었고 주차료는 하루에 20유로나 했다. 주차를 하고 호텔을 찾아가는데 짧은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비슷비슷한 골목들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제는 방향감각도 잊어버려서 낯선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는데 멀리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가깝다고 했는데 한참이나 오지 않으니 궁금해서 네거리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길을 잃다니 파리가 나에게 건방떨지 말라고 주는 첫 번째 경고인 듯 싶었다.
방은 2층에 있었는데 호텔 종사자들은 불친절하기 짝이 없어서 아내 혼자 큰 가방을 겨우 끌고 2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접수대에 앉아 신문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아내가 가방을 겨우 옮기고 작은 짐을 가지러 왔을 때 갑자기 계단 옆의 좁은 문이 열리고 여자 둘이 나오길래 쳐다보니 그것이 엘리베이터였다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있다는 말도 해주지 않고 가방을 끌고 올라가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또 한 번 사람을 놀라게 했다. 엘리베이터 내부가 사람 둘이 들어서면 몸이 딱 붙을 정도로 좁았다. 이러니 큰 가방을 엘리베이터로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방이 큰 경우 가방만 엘리베이터로 올려 보내고 사람이 걸어 올라가 짐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대부분 100년 이상 된 것들이 많고 오래 된 것은 2, 3백년씩 되니 새로운 시설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건물의 좁은 공간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좁다고 한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은 그런대로 지낼만 해 보였다. 좋든 싫든 이제 여기서 사흘 밤을 묵어야 한다.
서론이 길었다. 다음호에는 파리 구경을 시작하기로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