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2주년 맞은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지붕 없는 박물관 안동의 또 하나의 명물
일본의 사가노에는 시구레덴이라는 산장이 하나 있다. 고전문학의 하나인 백인일수를 활용한 카드게임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인일수란 일본의 고전시조 100편을 모아놓은 것인데 예로부터 일본사람들은 이 100편의 시를 이용한 일종의 카드놀이를 즐겨했다. 외우기도 힘든 100편의 시를 가지고 놀이를 하던 예전에야 그 방식도 괜찮았겠지만 현대인에게는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즐겨하기 쉽지 않은 놀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닌텐도사에서는 이를 이용해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카드게임인 가루타를 만들어 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백인일수가 생겨난 시구레덴을 거대한 가루타 게임룸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시구레덴은 옛 산장이 아니라 백인일수를 체험할 수 있는 거대한 터치형 게임룸이다.
산장에는 70장의 45인치 LCD가 바닥에 깔려있고 모든 방문객들은 닌텐도DS를 휴대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백인일수 카드게임은 물론 각 방마다 다르게 꾸며진 LCD를 통해서 시의 해설 등 백인일수에 대한 콘텐츠가 제공된다.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지루하게 잊혀 질 수 있는 혹은 너무 당연해서 그닥 새롭지 않았던 전통의 것을 현대의 기술로 새롭게 재해석해 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백인일수는 더 이상 교과서를 통해서 읽어야 하는 고전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붕 없는 박물관이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안동은 어떠한가. 또한 선사문화, 민속문화, 불교문화 거기다 유교문화까지 한국의 문화 발전까지 엿볼 수 있는 문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안동은 이렇게 역사 깊은 문화를 안고 있는 곳이지만 말 그대로 지붕이 없는 거대한 박물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를 일일이 보러 다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준비된 경로를 통해 관광을 한다고 해도 문화재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단순히 보러만 다닌다면 도산서원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한들 그저 서점에서 파는 엽서 한 장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문화재를 통한 생생한 현장 경험도 좋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입장료를 내고 도산서원 입구를 드나들려면 적어도 현판이 명필 한석봉이 쓴 것쯤은 알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물론 현재는 도난방지와 오랜 보관을 위해 모각한 것으로 교체됐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친숙해질 수도 있었을 것을 전통문화를 알아가는 방법의 문제 때문에 그것을 배우고 그것의 가치를 아는 것이 그토록 진부하게 느껴져 왔던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웅부공원 옆 문화공원에는 기와지붕의 현대식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다. 자칫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웅부공원 옆에 딸린 부속 건물쯤으로 오인 받을 수 있을 만큼 겉모습은 소담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지하로 안내하는 긴 계단의 끝에 다다르면 소담하기는커녕 화려한 박물관 내부에 순간 이 곳이 뭐하는 곳인가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또 내부의 모습과 다르게 전통문화에 대한 유무형의 문화재가 전시되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곳이 바로 이곳 국내 유일의 전통문화콘텐츠 박물관이다.
유물 없는 박물관, 오감만족 박물관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물이 없는 박물관이다. 지난 2007년 9월에 개관해 올해로 2주년이 되었다. 단층 구조의 60평 남짓한 전시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안동 지역에 있는 유물과 문화재가 있다. 마치 드래곤볼의 만능 캡슐 같다고나 할까. 그 비밀은 박물관에 전시된 총 4000여점의 유, 무형의 문화재가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4D디지털 영상을 통해 탑과 같은 유형의 문화재 체험을 할 수 있고 터치기법과 무선 조작을 통해서 무형 문화재에 대한 여러 가지 콘텐츠 이용이 가능하다. 영상과 컴퓨터를 통한 전통문화체험이기 때문에 사실 내용에 앞서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 이용이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일단 들어서는 곳에서부터 일반 박물관과 달리 카드를 발급받게 된다. 일명 RFID 카드인데 박물관 전반의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에 있어서 관람객의 간단한 신상정보를 입력한 후 사용할 수 있다. RFID는 무선인식기술을 이용하여 각 테마마다 다르게 구성되어 있는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일종의 ‘키(key)’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콘텐츠는 총 17개로 안동의 옛 소리, 안동여행 네비게이션, 가상 유물 체험, 맛 자랑 멋 자랑, 주니어 옛 이야기 톡톡, 월영교 달걀불 놀이, 장원급제 놀이, 퀴즈 코너, 놋다리 연주놀이, 하회탈춤 UCC, 사이버 안동읍성, 봉제사 접빈객 이야기, 장판각과 목판체험, 스카이 안동, 낙동강 700리 안동 70리 그리고 4D 영상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테마에 맞게 ‘낙동강 700리 안동 70리’ 같은 경우는 성인의 키만한 커다란 영상이 4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마치 낙동강 상류 명소를 여행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역사시간에도 이름만 대충 외웠을 뿐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과학, 군사 유물의 사용 방법과 작동 원리를 알아볼 수 있는 곳은 유물이 영상에 나오면 행동을 인식할 수 있는 장치 안에 손을 넣어 가상의 유물을 만져보듯이 조작할 수 있다. 상상력을 보태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가상 세계에 있는 듯하다. 전통문화콘텐츠를 담은 박물관답지 않게 게임을 활용한 체험이 많았는데 ‘장원급제 놀이’라든지 ‘봉정사 7층 전탑에 대한 퀴즈’ 코너는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특히 90년대 후반 청소년 오락실을 강타했던 DDR이 이곳 박물관에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바로 놋다리밟기 놀이가 DDR 형식으로 되어 있다. DDR 과 놋다리밟기가 어떻게 궁합이 맞는지 궁금하다면 꼭 한번 가서 체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안동 지역의 음식, 예법, 복식에 대한 텍스트도 다루고 있다. 또한 안동의 전설과 설화, 민담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다. 동영상 자료와 전자책, 흥미로운 애니메이션 구성으로 콘텐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딱딱한 내용을 지겨워하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일부 콘텐츠에서는 많은 외국인들의 방문을 고려해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 지원이 되고 또한 상시 통역을 위한 근무자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원한다면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박물관의 세심한 운영 취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박물관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일 것 같은 4D 상영관도 이 박물관에서 주목해야할 곳이다. 4D 상영관에서는 안동의 지명을 탄생시킨 배경이 되는 고창전투를 약 15분 남짓한 풀CG 3D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좌우 그리고 중앙의 삼면 스크린이 전면에 있고 바람, 물, 번개, 흔들림 등과 같이 오감을 만족하는 4D 시스템으로 전쟁영화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김재교 관장
“처음엔 맨 땅에 헤딩, 지금은 다른 곳에서 벤치마킹”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누가 했을까. 박물관이란 정형화된 공간에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여 문화재를 전시할 수 있다는 착안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처음부터 많은 반대와 걱정으로 시작됐다는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의 사업초안은 다름 아닌 김휘동 안동시장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현재 2대 박물관장으로 부임한 김재교 관장은 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 예산을 맡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사업의 시작과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현재 많은 지역민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까지 받고 있는 훌륭한 성과가 나와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자리매김했지만 처음에는 이러한 사업을 맡을 부서가 없어 시청 내 공무원에서 TF팀을 별도로 꾸려야 했다. 본 사업의 구상에서 실체를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벽에 부딪쳐야 했던 안동시청의 TF팀이 사실상 모든 실무를 도맡아 한 것이다. 그 동안 개척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토균형발전특별기금계정에 사업안을 올려 예산을 확보하는 등 김휘동 안동시장의 의지 또한 확고했던 터였다. 허심탄회하게 그 때를 회상하는 김재교 관장은 사실 처음에는 이 박물관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던 게 사실이라고 고백한다.
워낙에 사례가 없던 일이라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아 마음고생도 많았다. 지난 해 러시아 표트르대제 박물관장이 안동을 방문하여 일정에 없던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에서 뒷 일정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는 여담을 전하는 김재교 관장은 이미 고생은 모두 잊고 은근한 자부심까지 내비치고 있었다.
사실 김재교 관장은 하회마을관리소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많은 공무원들이 본청을 나와 사업소와 사무소 근무를 하지만 김재교 관장처럼 두 번씩 사업소 근무를 하는 경우는 매우 드믄 일이라 했다. 안동 문화재와 김재교 관장의 인연이 각별해 보였다. 그 만큼 문화재 사업을 위한 그의 수장으로서의 확고한 의지가 그러한 인연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외지에서 오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지역민이 관심을 갖고 찾는다는 것을 보면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이 문화재 관심 부흥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곳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서는 순간 박물관에서 체험했던 문화재를 직접 답사해 보고자 하는 열의 또한 생길 것이다. 이곳이 그만큼 안동에 있는 유무형의 많은 전통문화와 문화재를 위한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시민 모두가 안동전통문화에 대한 자존감을 스스로 높여가야 한다는 김재교 관장의 바람이 이루어질 날이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과거를 여는 새로운 창,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세상이 발 빠르게 변해가도 박물관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좋은 박물관은 그저 많은 유물을 전시하고 보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을 보고 ‘에듀테인먼트 가치가 충분하고 인터랙티브한 체험효과가 있으며 유비쿼터스 시대에 발맞추는 곳’이라 평가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말들로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곳은 꽤나 신기하고 흥미롭다. 평소에 어디에서도 즐겨볼 수 없는 ‘처음’ 의 흥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특별하다. 새로운 IT기술이 나올 때마다 또 다른 문화재를 가지고 계속해서 전시되는 콘텐츠는 개발해야 하고 매번 바꿔야 하기 때문에 상시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도 이곳 박물관의 특별한 점이다.
어쩌면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을 기존의 박물관과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겠다. 시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어떠한 문화재든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문화재라는 옛 것을 IT 기술 이라는 현대인의 방식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이미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새로운 장르의 문화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 1기가 시작된 박물관 대학과 지역민과 함께하는 많은 사업 계획은 박물관이 안에서 밖으로 소통의 자리를 넓히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또 지역 단체와 연계해 열리는 기획전 등을 통해 더 넓게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개하는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안동의 새로운 명소,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은 전통문화소통의 새로운 교두보가 될 것이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