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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움 많은 세상살이 노래로 풀어내는 안마사 김현순 이야기(글/이미홍_객원기자)

양쪽 눈을 실명해서 1급 시각장애인이면서 안동에서 유일한 여자안마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현순씨(50)를 만나러 가면서 나는 무언지 모르게 막연히 걱정이 됐다. 기구할지도 모르는 사연 때문은 아니었다. 사연 없는 이웃을 나는 아직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약간은 어둡고 무거울 지도 모르는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사는 공간이 주는 이미지에 대한 그야말로 막연한 걱정이었다. 흔히 영화에서 시각장애인이 사는 공간이 특별히 밝을 필요가 없다는 듯 약간 그늘지게 그려지는, 멋모르고 가지는 일종의 편견처럼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말이다. 목성교에 위치한 전통안마지압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한 무더기의 말린 국화꽃과 가지 채 꺾어 놓아 둔 탐스런 진홍빛 감과 누런 호박들, 항아리에 담긴 갈대 다발이었다. 그리고 단아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들이는 현순 씨의 맑은 웃음은 내가 무얼 걱정했었는지를 잊게 했다. 날씨가 쌀쌀하다며 익숙한 솜씨로 현순 씨가 타서 건네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그날, 우리는 현순 씨가 풀어 놓은 눈물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배고프면 고추장에 찬물 한 대접, 서러웠던 유년

현순 씨가 두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현순 씨는 어려서 외가에서 살았다. 외할머니 밑에서 살다가 막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에 외삼촌이 결혼을 하면서 외숙모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외숙모가 아기를 낳게 되면서 학교를 안 보내줘서 1학년을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둬야 했다. 갓난아기인 외사촌 동생을 업고 청소며 빨래며 잔심부름을 하면서 구박덩이로 컸다. 넷이나 되는 외사촌들은 일도 안 시키고 손에 물 안 묻히고 곱게 키우면서 엄마 없는 조카인 현순 씨에게는 한겨울에 찬물에 빨래를 시켰던 외숙모는 없는 살림에 조카까지 얹혀서 밥을 축낸다고 외할머니와 외삼촌을 향해 신세타령을 하는 걸로 모자라 어린 현순 씨를 앞에 두고 섭섭한 소리를 대놓고 하곤 했다. 배가 고프면 고추장을 훔쳐 먹고 물 한 대접 먹고, 그러다가 들키면 또 맞고. 그러다가 11살 되던 해 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라고 학교선생님을 하는 집으로 남의집살이를 갔다. 내 가까운 피붙이 밑에서도 눈칫밥을 먹는데 남의집살이야 오죽했을까? 식모살이를 하면서 지내던 중 집에서 키우던 꿩에게 먹이를 주다가 문단속을 잘못했는지 꿩 한 마리가 날아가 버린 일로 죽도록 맞고 그 집에서도 나와야 했다.

외숙모네로 다시 갔지만 외숙모가 넷이나 되는 외사촌들 키우기도 벅찬데 다 큰 조카까지 도저히 같이 못 산다고 해서 친가에 연락을 해서 아버지네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일찍 재혼을 해서 아들 형제들을 낳아 살고 있었는데, 아들만 최고로 알던 아버지와 눈치 주는 새어머니 밑에서 채 일 년도 살지 못하고 다시 외가로 와야 했다.

그리고는 어릴 때 헤어졌던 엄마한테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 사이 재가를 했다가 두 번째 남편과 헤어진 엄마는 삼남매를 낳아 기르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현순 씨는 동생들을 돌보며 살림을 했다. 동생들도 서먹하게 굴고, 동생들한테 끔찍했던 데 비해 어려서 헤어진 현순씨 한테는 데면데면 굴고 정을 주지 않는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 그늘 아래라 현순 씨는 힘들어도 맘은 편했다.

느닷없는 혼인, 무능력한 남편, 끊임없는 노동

그런데 부모하고는 같이 살 팔자가 못되는지 동생들 거둬 먹이며 지내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싶으니까 엄마가 다시 재가를 하게 되었다. 갑자기 같이 살게 된 큰 딸을 이웃들한테는 늦둥이 여동생이라고, 애들 이모라고 했던 엄마는 재가를 하면서 여동생이라고 했던 현순 씨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일곱이었던 현순 씨를 시집을 보내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현순 씨는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 나갔다가 신랑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열일곱 섣달 그믐날에 맞선을 보고 열여덟 정월 초아흐레 날 결혼식을 했다. 스물 네다섯이라던 신랑은 결혼하고 보니 서른하나였다. 밥 한 끼 먹었을까, 변변하게 결혼식도 치르지 못하고 사진 한 장 찍고 혼인신고를 하고 살았다. 신랑의 고향이었던 전라도 영광으로 내려가 보니 홀시어머니에 신랑은 남의 집 일꾼으로 있었는데,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술만 먹고 해서 품삯도 제대로 받아오는 경우가 드물었고, 그때 벌써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어서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둘렀다. 배를 곪기가 예사였고, 신랑이 술 먹고 행패를 부려도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말리기는커녕 한 술 더 떠 아들에게 며느리 못마땅한 흉을 잡아 더 때리라고 아들을 부추겼다. 시집살이가 말도 못했다. 이웃에서 어리고 착한 며느리 그만 잡으라고 해도 마이동풍이었다.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온 날이면 남편이 잠들 때까지 거적때기 밑에 숨어 있기도 하고, 빠져 죽으려고 강에 갔다가 어린 두 아들이 눈에 밟혀 울면서 돌아오기도 했다.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첫 아이가 두 살 때 도망 나와 벽돌공장에 다녔는데 어떻게 알고 와서 빌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해서 잡혀 들어가서 둘째를 낳고 살았다. 그러나 남편은 도박에 알코올중독 상태가 심해져만 갔고 아이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참다못해 아이들이 일곱 살, 네 살 되었을 때 하나는 걸리고 하나는 업고 해서, 두 아이를 데리고 고창 읍내로 나와서 그때부터 장사를 해서 아이들하고 먹고 살았다.

“나무를 해다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길거리서 풀빵도 구워 보고 호떡도 구워 보고 번데기 장사도 해 보고, 여름에는 옥수수도 삶아서 팔고, 나중에는 밭에 가서 양파도 떼어 팔고, 과수원에 사과도 떼서 팔고, 나물도 팔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했지요.”

그때만 해도 아이들 아버지하고 연락을 주고받고 살았는데, 사고가 나고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하면서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되었다. 나중에 연락이 닿았을 때 남편은 알코올중독 상태가 심해 반 식물인간이 되어 요양소에 누워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세상에 혈혈단신 고아도 아니건만 고되고 신산한 삶에 도움 한 자락 주는 이 없이 아이들과 살기 위해 헤쳐 나갔던 시간들이었다. 재가한 엄마가 어쩌다 한번씩 들렀지만 오히려 이편에서 돈 한 푼이라도 쥐어주어야 했다. 평생 딸에게만은 빚 받으러 온 것 마냥 하는 엄마였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뺑소니 사고로 잃어버린 시력

1989년 스물아홉 나이에,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현순 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야말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끔찍한 사고였다. 목격자도 없는 뺑소니 사고였다. 열 한번이나 수술을 했고 그중 각막 수술을 다섯 번 했다. 사고 당시 현순 씨는 시신경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한쪽 눈은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상태였다. 그래서 어떡하든 먹고 살려면 한쪽 눈이라도 고쳐야겠다 싶었던 현순 씨는 그동안 어렵게 장사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둔 돈하고 살고 있던 전세 값까지 빼서 다섯 차례나 눈 수술을 했다. 그러나 현순 씨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시신경마저 죽어버리면서 결국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앞이 캄캄했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면 주저앉을 수 없었다. 어떡하든 털고 일어나 살아야했다.

“내가 어려서 부모님한테 버림받고 엄마 아빠 품에서 못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밑에서 눈칫밥 먹으며 컸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서 각막 수술도 몇 번이나 한 건데……. 그동안 애들 업고 다니며 벌었던 것 수술비로 다 써 버리고, 나중에는 하도 힘들어서 영세민이라도 신청하려고 동사무소에 가서 사정을 했더니 돈을 못 벌고 병이 있어도 남편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먹고 살려고 애들 아빠하고 협의 이혼을 했어요.”

그렇게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나오는 보조금으로 평택에 5만 원짜리 조그만 월세방을 하나 얻어서 이사를 했다. 연탄아궁이 하나에 상을 놓을 자리조차 변변히 없는 한데 부엌에, 셋이 누우면 현순 씨는 다리를 구부리고 자야 하는, 돌아누울 자리가 없는 단칸방이었다.

“그런데서 애들을 키웠는데 그래도 애들이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 주었어요. 그야말로 안 해본 일이 없이 다 해 봤어요.”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했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처음에는 일요일이면 애들을 앞세우고 시장에 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건 애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막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앞이 안보이니 할 수 있는 일도, 일을 시켜주는 데도 잘 없었다. 너무 힘이 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 목을 매고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생각에 눈물을 삼키고 일어나서 이렇게 죽을 힘으로 내가 살아야겠다 싶어 다시 힘을 냈다.

3년을 지팡이로 왕복6시간 다니며 딴 안마자격증

“안마를 한 지는 한 십 년 되었는데 건 안마자격증을 딴 건 2002년이에요. 사고로 눈이 안보이게 되면서 두 애들하고 먹고는 살아야겠고 해서 배운 게 안마예요. 그 때 큰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애들 아버지는 그전부터 알코올중독자로 일할 능력이 안돼서 제가 벌어서 애들을 키우고 있었는데다 덜컥 교통사고가 나버렸으니 처음에는 먹고 살 생각을 하니 그야말로 앞이 막막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안마였어요.”

노래를 좋아해서 라디오 가요프로를 섭렵하던 어느 날 우연히 노래가 나오는 채널을 찾다가 장애인을 위한 ‘사랑의 방송’을 알게 되었고, 안마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현순 씨에게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곳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서울 상계동에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검정고시학원이었다.

“4시에 일어나서 평택에서 6시에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타고 노량진으로 가서 노량진에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창동에 내려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상계동에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마검정고시학원을 다녔어요. 공부라고는 제대로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상태에서 점자로 공부를 해야 했을 때 정말 힘이 들었어요. 죽을힘이 들었지만 힘들어도 배운다는 기쁨에, 이걸 해야지만 안마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어요. 악바리라는 소리를 들을 만치 죽기 살기로 해서 점자로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어요. 합격됐다는 전화 받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해서 애들이 119를 불러서 병원에 갔는데 저는 병원에 실려간 지도 몰랐어요.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가족들이 데려다주고 데려가고 하는데, 3년을 하루같이 혼자 그 먼 거리를 지팡이 하나로 다녔는데 시험을 보러 가기 직전, 검정고시 관리를 하던 70이 다 되신 과장님이 장미 한 송이를 주면서 ‘김현순 씨 파이팅!’을 외쳤어요. 그때부터 다시 안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더 어려운 해부학, 경혈, 안마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애들 챙기고 나면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아침도 안 먹고 통근버스를 타러 갔어요.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지팡이를 짚고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길을 매일 다녀서 3년만에 자격증을 땄어요.”

안마사 자격증을 따고 서울과 평택에서 안마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협회에도 가입해서 복지관 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해 안마 자원봉사도 하고 그동안 혼자서 갈고 닦았던 노래 실력으로 노래자랑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탔다. 안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혼자 힘으로 하루도 안 빠지고 평택과 서울을 오가며 공부를 하면서 현순 씨는 한층 더 단단해졌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힘도 얻었던 것이다. 안마를 하면서 생활도 차츰 나아져 안정을 찾아갔고 두 아들은 어느새 다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게 되었다. 현순 씨하고는 부부의 연이 다했지만 아이들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였다. 그래서 현순 씨는 아들들에게 아버지를 자주 찾아가 뵈라고, 아들의 도리는 하라고 늘 이야기를 하면서 등을 떠밀어서라도 아버지를 찾아가게 했다. 이제 두 아들은 다 커서 어른이 되더니 때가 되면 별 말 하지 않아도 요양소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안동살이 4년째, 전국노래자랑 안동시 최우수상

안마검정고시학원을 다니면서 안마사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할 때 지금의 사장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 종이를 배달해 주던 사장님이 시각장애인이면서도 두 아이를 데리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현순 씨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이리 저리 알아봐 주고 도움을 주곤 했던 것이다. 간혹 맛있는 것이 생기면 챙겨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앞을 못 보는 현순 씨가 안마 출장 일이 생기면 기사 노릇도 해주게 되면서 자연스레 한 팀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같이 안동에 가서 안마 일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안동 쪽에는 아직 정식으로 지압을 하는 안마가 별로 없다고 한 번 해 본지 않겠냐 해서, 그렇게 해서 안동으로 내려온 것이 4년 전이다. 안동 살이 4년째이니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기사가 없으면 맘대로 나다닐 수가 없어 아직 친구를 별로 사귀지 못했다. 같은 시각장애인들인데도 외지인이라서 그런지, 쉬이 마음을 터놓고 지내기가 쉽지가 않다. 협회에 갔다가 서먹해서 그냥 왔다는 현순 씨다. 안동 사람들 특유의 배타적인 조심성이 그곳이라고 없었을까? 서로 터놓고 교류도 하면서 안마 봉사도 하고 싶고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현순 씨. 시간이 나면 사장님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말상대도 돼 주고 의지가 되지만 일을 마치고 혼자 있는 시간이나,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하거나 간혹 외롭고 쓸쓸할 때면 큰 맘 먹고 장만한 노래방 기계를 켜 놓고 노래를 부르곤 한다는 현순 씨다.

한 많은 세월, 노래로 달랬어요

노래는 현순 씨에게 친구이자 동반자와 같은 존재다. 노래가 없었다면 그 서럽고 신산했던 날들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노래에 각별한 재능이 있었던 현순 씨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서러울 때나 노래로 그 마음을 달랬다.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 집 마당에서 동네 할머니들 앞에서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기러기 아빠, 엄마 엄마 돌아와요’ 같은 구성진 노래를 한 자락 부르면 사탕도 얻어먹고 노래 잘한다고 예쁨도 받았다. 어린 것이 부모 사랑이 그리워 구슬픈 노래만 부른다고 할머니들이 애잔해 했다.

현순 씨는 이상하게 구성지고 사연 많은 노래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가슴에 딱 와 닿는 슬픈 노래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배워야 했다. 개구리 잡으러 갔다가 실종되었다가 끝내는 주검으로 돌아왔던 아이들을 노래한 ‘개구리 소년’ 이나 납치되었던 어린이 두영이를 노래한 ‘두영이를 돌려줘요’는 듣자마자 현순 씨 가슴을 울려 부르면서 같이 울었던 노래들이다.

가슴에 설움이 한 가득 차오를 때면 ‘동백 아가씨’나 ‘여자의 일생’을 부르며 마음을 달랬고, 부모 그늘이 그리워 눈물이 날라치면 ‘기러기 아빠’ 나 ‘엄마 엄마 돌아와요’ 같은 노래들을 부르며 서러움을 풀어버렸다. 시집살이가 버거울 때도 노래를 불렀고 사고로 실명을 하고 아이들하고 죽을 동 살동 발버둥을 치며 하소연 할 곳 없어 속이 타오를 때도 노래를 불렀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노라면 어느새 속이 시원하게 뚫리기도 했고 서러움이 녹아내리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신명이 나곤 했다.

그렇게 홀로 노래를 친구 삼아 살아온 나날들 덕에 현순 씨의 노래는 푹 익어 구성진 곡조를 제대로 내게 되었다. 안마사를 시작하면서 혼자만 부르던 숨어있던 현순 씨의 노래 실력도 빛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할머니들 안마를 해 주면서 들려주던 노래 솜씨가 소문이 나서 장애인 노래자랑에 나가 상을 받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이런저런 자리에 불려가 노래도 부르고 노인잔치 같은 행사에도 찬조 출연을 했다. 안동으로 오면서는 그냥 혼자서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울적한 심사를 달래곤 했는데, 전국노래자랑이 안동에 오게 된 것이다. 현순 씨는 노래자랑 참가 신청을 해 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노래 못할까 봐 하는 걱정이 아니라 오래 전에 소식이 끊긴 아버지 생각이었다. 어릴 적 1년 남짓 아버지 집에서 보낸 게 다인, 그다지 끈끈한 부녀지간 정이 깊은 것도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현순 씨는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을 했고, 성년이 된 두 아들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찾아 두 아들을 만나게 해 줄 수 있다면 싶은 마음에 마침내 결심을 했다.

전국노래자랑 덕에 헤어진 아버지 만나

안동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에서 ‘동백아가씨’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은 현순씨는 방송에서 20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TV를 보던 아버지(김영배, 70)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는 아들 여섯 형제를 두고 경기도 성남에서 살고 계셨는데, 실명한 현순 씨를 보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고생을 하며 살았을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에 그동안의 서러움과 원망이 녹아내리며 부녀가 같이 안고 울었다고 한다. 두 아들도 처음으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들을 만났다. 아버지 쪽으로도 친척이 없어 명절이 되어도 갈 친척 집 하나 없이 외로웠던 두 아들에게도 찾아갈 친척이 생겼다. 생전 처음 아버지가 싸 주시던 고기쌈도 받아먹어 봤다.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받은 사랑이라 눈물이 났다. 노래 한 자락이 다시 이어준 핏줄이었다. 그 후로 서로 전화 연락도 하고 생일잔치에도 갔다.

얼마 전 연말 결산 예심을 가볍게 통과한 현순 씨는 곧 있을 연말결산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게 되어 또 한 번 TV 출연을 앞두고 있다. ‘여자의 일생’을 부를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따로 그 노래만 연습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면 늘 하던 대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반주를 틀어놓고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한바탕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연습이다. 옆에서 사장님이 번호를 눌러 줄 때도 있지만 반주가 없어도 현순 씨의 노래는 어김없이 음정 박자 틀리는 일 없이 구성지게 넘어간다. 그야말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불렀던 노래들이라 한 몸과 같은 가사들이요, 가락들이다.

현순 씨가 노래하는 "여자의 일생"

경기가 옛날만큼 좋지 못해 안마 일도 한창 때만은 못하지만 궂은 날이 있으면 개일 날도 있는 게 인생살이라는 걸 현순 씨는 안다. 손님도 없고 이런저런 걱정이 쌓일라 치면 어느새 현순 씨 입에서는 노래 가락이 흘러나온다. 현순 씨가 부르는 구성진 노래 따라 녹록치만은 않은 안동에서의 생활도 익어 그럭저럭 정 붙이며 살아가게 되었다.

“96년에 처음 안동에 와서 자리를 잡은 곳은 신도시라고 하는 옥동이었는데, 옥동에 상권이 많이 들어서면서 번화하게 되니까 시끄럽고 손님들도 불편해하고 가게 세도 오르고 해서 이곳 시내로 옮겨 오게 됐어요. 무엇보다 단골손님들이 시내 쪽에 많이 계셔서 안마 받으러 옥동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불편하시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단골손님들은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지만 요즘은 주부들이나 어린 학생들도 안마 받으러 오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은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되어 있다 보니까 인터넷으로 전화번호를 검색해 회원제로 끊어놓고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30회짜리 회원권을 끊으면 할인도 되고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와서 받을 수 있어 회원권을 이용하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안마시술소에도 인터넷 강국의 흔적이 보인다. 거기에다 안마나 경락 같은 것은 나이 드신 아저씨들이나 노인 분들이 주로 받는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어린 학생들이 많이 받는 것도 달라진 풍속 중의 하나이다. 입시 지옥에 게임에 하루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니 스트레스에, 목, 어깨 결림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운동을 하거나 삐긋 하거나 목이나 허리 디스크가 심한 사람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이제는 삶의 힘든 고비를 굽이굽이 돌아 나와 한숨을 돌리고 눈물 대신 웃으면서 살게 되었지만 현순 씨는 눈물 섞인 밥을 먹으며 살아온 날들을 잊지 못할 듯하다. 구슬픈 노래와 함께 서럽던 지난날들도 현순 씨의 가슴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현순 씨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이제 현순 씨는 웃으며 살려고 한다. 슬펐던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잘 살아왔노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소박한 꿈을 꾼다.

“내 가게가 있고, 돈 많이 벌어서 큰 집 사서 두 아들하고 같이 사는 게 꿈이에요. 애들이 결혼만 하면 저는 걱정을 덜 것 같아요. 결혼하면 자기 부인이 잘 챙겨줄 거니까. 그러면 내 일 하면서 노래도 맘껏 부르면서 여행도 하고 재미나게 살고 싶어요.”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