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안동할매의 구수한 삶 이야기(글/천남희_객원기자, 사진/박영대_동아일보 사진기자)
성북동 청국장 할매 이상주
어린 시절 마실 나갔다가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면 “아침 드셨니껴” 라는 인사말을 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만나서 하는 인사말이 으레 밥을 먹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또 기제사라도 지내면 그 다음날 아침엔 제사 지낸 음식을 골고루 담아 이웃집에 나눠주곤 했다. 그래서 누구네 집 제사가 언제인지 어찌 제사를 지내는지 음식만으로 동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시제를 지낼 때면 이산 저산을 다니며 떡과 과일을 얻어먹고 또 싸서 집을 돌아오곤 했다. 그 분들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도 몰랐었다. 그냥 두루마기 입은 사람들이 산으로 뭘 메고 올라가면 동네 아이들이 죄다 따라 갔었던 것 같다. 아이를 업고 가면 두 몫이었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던 배고픈 시절의 얘기다. 마실에 큰 잔치라도 있으면 온 동네 아낙들이 모여 음식을 하며 정을 나누던 시대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인사말이 ‘안녕하세요.’ 로 바뀌었는지, 제사 지낸 음식을 주고받던 풍습이 사라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시골동네엔 그런 인사말과 풍습이 남아 있었다. 산업화를 거쳐 물질이 풍요로워지면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 같다. 외식 산업이 발전하여 맛난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던 것도 이젠 옛 말이 되어 버렸다. 영양가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자 삶의 질을 따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웰빙’ 이란 말이 매스컴을 타고 우리의 삶속에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먹던 음식에 눈을 돌렸고 유기농이니 자연친화적이니 하는 이름을 단 식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미리 알기라도 했을까? 서울에서 ‘안동 할매 청국장’ 이라는 간판을 걸고 15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 간판 그대로 그는 안동 할매 이상주(71) 씨다.
스물여덟에 혼자 되어 객지에서 부린 짐
서울 생활 40년이 넘었다지만 그를 처음 보는 순간 그냥 동네에서 마주친 옆집 할매 같았다. 말씨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에 외할머니 같은 느낌, 안동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맘씨 넉넉한 모습에 친정 엄마의 따스함도 함께 베어 나왔다. 가게를 가득 채운 청국장 냄새와 함께 식당 한 켠에 마련된 온돌방에 앉아 그의 얘기를 들었다. 문 밖에서는 손님들이 드나드는 소리 주문을 받는 소리들로 시끌벅적 했다. 꼭 시골의 잔칫집분위기랄까.
영양이 고향인 그가 스물둘에 하회로 시집을 갔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혼자되어 서울로 오기까지 여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세 살 된 딸과 유복녀를 임신한 채 혼자 된 그로써는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살길을 모색했고 홍천에 있는 시동생에게서 장사하는 것을 배워 서울에서 일식집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서른 때이다.
“혼자 살기는 아무도 없는 객지가 더 좋아.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이 고생이 많지. 돈도 돈이지만 마음의 고생이 더 커. 여자로서 남편과 지내는 재미도 없이 얘들이 딸려 있어서 재가도 못하고, 또 안동에서 재가 하는 것을 싫어해. 서울에 살았어도 가문이라는 본질은 있잖아. 재가 한다 해도 그쪽에 애들이 있을 테고 젊은이 만나면 애를 낳아야 하고, 그래 혼자 살았지 뭐. 혼자 살아도 마음이 천연덕스러워서 지나고 보니 괜찮아. 이제 늙으이깨네 안동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부부가 다 살아 있어야 내려가면 어른들이고 가족들에게 대우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뭐. 나이 더 들면 집하나 사고 땅 조금 사서 내려가 살까 싶어.”
청국장 재료는 모두 안동에서 가져 와
그는 의지 할 데가 아무 곳도 없었지만 배포 하나는 컸다고 했다. 지금도 돈만 많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데 맨 날 퍼주다 보니까 돈이 안 모인단다.
“이 나이에 돈을 벌어 가주 갈 것도 아이고 또 좋은 재료만 쓰니까 별로 남는 게 없어. 아줌마들도 돈을 많이 줘야 붙어 있지 안 그러면 가버리잖아. 뭐든 넉넉하게 챙겨주고 가족처럼 대해주지. 지금 월급 주는 이가 여덟인데 다 10년 8년 그래 넘은 사람들이야. 그르이깨네 내가 여어 있어도 일은 손색이 없어. 아무리 손님이 많이 와도 저래 손발이 잘 맞지. 청국장은 토속적인 음식이잖아. 할머니 어머니가 해 주던 그 맛을 못 잊어서 내가 일식집 하면서 언젠가는 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었지. 그래 15년 전에 내가 제일 미리 시작 했는데 여기저기서 붐이 일어 나대. 좋은 음식이잖아. 먹으면 속이 부담이 없고 편해. 내가 따로 배운 게 아니고 엄마가 해주던 그 방식대로 하는 거야. 어릴 때 보면 청국장을 띄워서 절구에 쪄어서 김치 냉이 같은 거 넣어 끓여 주대. 그거 생각해서 하는 거지. 콩은 청송에 사는 사촌동생이 농사를 지어서 서울로 하회로 보내 주지. 그럼 하회 사는 동생이 군불 때서 콩 삶고 짚 봉태기에 넣어 3일간 띄워 허옇게 진이 나면 절구에 쪄어서 이리로 보내줘. 청송동생이 메주 띄워 보내면 된장 고추장은 내가 여기서 담궈. 지난해는 메주 열 가마 쒔어. 김치도 하회서 농사지은 거 가져다가 담지. 고춧가루는 길안 사는 언니한테서 가져오고, 다 안동서 가주 오고 사와. 그르이 안동 할매지.
3남 7녀 중 셋째인 그의 형제들이 여기저기서 그의 식당의 재료를 공급해 준다. 성북동 한신대 역 한길에서 15년을 하다가 3개월 전에 골목 안으로 이사를 했는데 실내 인테리어는 건축 일을 하는 남동생이 맡았다. 가게 양쪽 유리창에 메주콩과 서리 태 콩을 넣어 물결장식을 한 것도 동생인가 보다.
“음식을 해서 팔다 보이 내가 나름대로 연구를 많이 해. 내 집에서 먹고 건강하고 탈이 없어야 되잖아. 그래 기쁜 마음으로 진정으로 손님을 사랑하는 맘으로 음식을 하지. 성이 나서 음식을 하면 먹는 사람도 소화가 안 돼. 그래 항상 기쁜 맘으로 내가 해서 손님이 맛있게 먹는 걸 생각하면서 해. 지금은 주방에 다 맡기고 토속적인 음식만 몇 가지 내가 해. 적게 주고 맛깔스럽게 줘도 손님들이 먹다가 남긴 음식을 보면 마음이 제일 아파. 여러 가지 친 환경으로 농사지은 걸로 한 걸 남기면 아깝더라도 버려야 하잖아. 그 중에 난 밥이 제일 아깝지. 쌀 한 톨도 귀중하게 생각되거든. 옛날에는 보리밥에 감자 꿀밤도 섞고 송기 같은걸 뺏겨서 넣기도 했잖아. 밥이 제일 아까워서 덜어 먹은 것은 내가 모았다가 누른 밥을 만들어 끓여먹지. 저 사람들은 안 먹어. 나나 먹지. 지금 둘째 딸하고 사위가 이 가게 일을 배우고 있어. 가들도 나 맨치러 나눠 주는 걸 좋아해서 잘 되었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손맛
그의 손맛은 그의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것이다. 동네에서 불려 다닐 정도로 음식을 맛깔스럽게 잘 하던 엄마였다. 특히 김치, 젓갈을 잘 담갔다고 한다.
“김치 할 때 큰 방어 고기를 뚝뚝 잘라서 김칫독에 넣고 그 위에 배추를 고칫가루에 버무려 넣기도 하고, 생태나 갈치를 넣어서 해 먹기도 했는데 큰 도가지에 너어서 땅에 묻어 놓고 겨울에 꺼내 먹으면 그게 그리 맛있더라고. 생선종류가 몸에 좋잖아. 냄새 하나도 안 나지. 난 지금도 그렇게 김치를 담어. 또 보리 매례치를 긁은 소금 뿌려서 단지에 넣고 짚으로 덮고 싸서 그늘에 두면 푹 삭아서 맛있더라고. 봄에 정구지 처음 올라올 때 누렇게 익은 거 꺼내 묻혀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어. 그게 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먹던 거고 옛날 어머니가 하던 거 보고 지금 내가 하는 거지. 안동 간고등어도 찜해서 나가고 고추 찜도 하고 두부도 안동에서 온 콩으로 만들어. 그런 반찬 때문에 단골이 돼서 오는 사람도 있어. 그르이 자기들 좋은 음식 얻어먹을라고 들며 날며 날 찾고 나 보고 오래 살아야 된다고 그래. 그래서 잠시도 여길 못 비워.”
그의 아버지가 음식이 까다로우셨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썼고 열 살부터 부엌일을 했다는 그가 그것을 그대로 배운 것 같다. 한번 담았던 반찬을 그냥 내주는 것을 제일 싫어 하셔서 늘 새로운 반찬을 담아내듯 신경을 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손님이 반찬을 추가 시키면 항상 새로운 그릇에 담아주도록 직원들에게 일러둔다. 또 그릇을 모두 하얀 도자기로 바꾸어서 맛깔스러워 보이도록 했다. 도자기가 잘 깨져서 일 년에 들어가는 그릇 값도 만만찮다며 그러니 남는 것이 뭐가 있겠냐 그런다.
주부로 살아가면서 제일 힘든 것이 밑반찬 만드는 것이라 한 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해 봤다. 가끔 손님으로 온 아가씨들이 시집가기 전에 가게 와서 좀 배우게 해 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하길래 내친김에 물어 본 것이다.
“우리 아부지가 여자는 김치 하나로 열두 가지 음식을 할 수 있어야 사랑받고 산다고 말씀하셨어. 못생겨도 음식 잘하면 소박맞지 않는 다는 말도 있잖아. 음식은 눈으로 하는 거야. 뭐 있어. 재료를 보고 일단 눈대중을 잡고 생각을 하지. 머리와 마음으로. 그리고 손으로 맛을 내는 거야.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 맛이 나는 거지.”
어떤 재료를 얼마만큼 아니 정확히 몇 숟갈 넣는지가 궁금한 일반 주부에게는 뜬 구름 같은 얘기지만 정말 우리네 어머니들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넣고 주무르고 해서 음식의 맛을 내었다. 이른 바 손맛이다. 어머니만의 손맛. 음식을 해서 내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던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음식을 통해 전해진 것일 게다. 엄마가 해 준 음식은 무엇이든지 맛 나는 건 그런 마음이 음식에 가득 담겨있어서 일거다. 그러니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나 보다. 그 마음을 어찌 말로 설명이 되겠는가? 그런 마음 하나로 안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몇 십 년을 음식사랑을 베풀고 있는 이상주 씨다.
계산대 검둥콩 한줌처럼 구수한 인심
그의 가게는 일본 잡지에도 소개되어 일본 관광객들도 자주 오기도 하고 청국장이 몸에 좋다는 것을 들은 외국인들도 심심찮게 드나든다. 콩이 좋아서 그런지 냄새도 덜나고 외국 사람들도 청국장을 정말 잘 먹는단다. 점심때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은 이 식당을 하루 350명에서 500여명 정도 이용을 한다. 그 만큼의 인원이 매일 안동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 말대로 청국장 가격도 6천원으로 착하다. 많은 손님들이 이용하지만 남는 거 없다는 그의 말이 이젠 수긍이 간다. 연말에는 성북동에 어려운 이웃을 불러 식사대접도 한다하니 정말 남는 것이 없겠다.
그는 인심이 후하기로 안동과 영양을 따라갈 데가 없다고 말하며 이웃이 놀러 오면 아랫목을 내 주듯 내가 뭐든지 먼저 베풀어야 한다며 나눠주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 한다. 저녁시간이 되어 손님들이 자꾸 몰려들자 방도 내줘야 하고 그도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그는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손님상을 돌며 뭐 필요한 것은 없는지 장이 식지는 않았는지 엄마처럼 할머니처럼 일일이 살핀다. 그리고 그는 계산대에 앉아 손님들과 얘기를 주고받는다. 계산대 옆에는 볶은 검둥콩이 한 바가지 담겨 있다. 들며 날며 손님들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콩을 한줌씩 쥐어 간다. 콩 바가지가 비자 또 항아리에서 한 바가지를 퍼다 놓는다. 옛날 어린 시절 겨울이면 주머니에 볶은 콩을 넣어 다니며 간식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음식이 토속적이라 그럴까. 손님들 얘기도 옛날 얘기에 빠진다.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 하다가 몰래 먹은 얘기며, 밴또(도시락) 얘기, 자반고등어 만드는 얘기 등 옛 향수를 불러낸다. 음식만 옛것을 찾을 게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던 그 마음들도 다시 되살아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밖을 내다보니 첫눈이 바람에 이리 저리 어설프게 흩날린다.
안동 간고등어를 언니에게서 배달 받아 냉동실에 넣어 뒀는데 그에게서 배운 고등어 찜이나 해서 가족들의 입맛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시끌벅적한 잔칫집을 빠져나왔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