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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윈도 글라스에 눈물이 어렸다....(글/권두현)

소주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열정을 가졌던 나이에 시작한 그 무엇인가에는 깊은 내면에 잠재한 순수가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단원들이 시작한 그룹사운드도 그랬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들이 생각한 음악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그들은 업소를 전전하면서 생활을 해야 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다.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면 진한 갈증이 돌아오고 술로 채운 갈증 뒤에는 볏짚이 타듯 불이 확 붙은 뒤 다시 재가되고 마는 것이다. 잔치판, 지역의 작은 행사를 뛰어다니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음악에 대한 열정! 글쎄 이제는 사람들의 대우도 시원찮다. 이판 저판을 돌아다니다 차가 잠시 쉬는 휴게소마다 괴로움을 안고 떠나는 단원들!

쓸쓸한 밴드를 매고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 수안보에 자리잡은 성우일행에게 삶의 진저리는 여전히 반복된다. 밴드 음악에서 나오는 생생함은 없고 일상의 피로함이 업소의 뒷그림자와 어울려 반복된다. 모처럼만에 여자를 만난 강수와 그 여자를 중간에서 낚아채는 정석, 도박판에서 잃어버린 돈과 이를 이유로 드럼을 배우겠다는 업소의 종업원,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일상에서 쳇바퀴 돌 듯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만난 성우의 옛 동창들인 그들은 이미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존재위에서 친구들과 만나 다투고 갈등한다. 환경운동가와 건축업체 회사원, 보증을 서야하고 돈을 빌려야 하는 그들에게는 이제 예전의 만남을 지속할 수 없는 사회관계가 존재한다. 그들이 이 갈등을 푸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한잔의 술과 노래방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외면"과 "방관" 혹은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마음 뿐이다. 그들에게 선택은 별로 없다. 그들이 이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훈련된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릴때의 순수를 가장한 만남을 통해 자기 길을 호소하며 동참을 요구하지만 결국 그들은 친구가 어떤 일을 하는가와는 별도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배신당한다. 그리고 그 배신은 결국 선택한 길에 대한 단절로 이어진다. 어릴 때 순수한(?) 아니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우긴다. 우리네는 타인의 삶의 단절에 대하여 누군가가 책임지기를 기대하지만 그 원인이 자신에게 파생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며 강변한다.

업소생활에 나약해지고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긴 강수는 마약을 하고 그 힘으로 연주된 과도한 열연은 마침내 업소 공연을 망친다. 자학하던 강수는 새벽 기차를 타고 그들의 곁을 떠난다. 그 자리를 메꾸고자 성우가 데리고 온 사람은 과거 성우에게 밴드를 가르쳤던 스승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삶에 지칠대로 지친 나약한 인간이다. 소주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것은 육체적 고통을 안겨주긴 하지만 최소한 삶에 괴로움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밴드 생활을 오래하였지만, 그가 부르는 곡은 오직 한곡이다. "봄비를 맞으면서 충무로 걸어갈 때…" 처량한 봄비를 맞으면서 세월을 걸어왔고,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 자신은 쇼윈도의 바깥에서 늘 소외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그가 바라보는 것은 유리창 안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가 본 것은 단지 쇼윈도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그 순간 자신의 삶에 눈물을 흘린다. "쇼윈도 글라스에 눈물이 어렸다…"

밴드는 한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룹이 있어야만 연주가 가능하다. 함께 뭔가를 꾸미기 위한 진지함을 가진 성우, 그러나 주변 상황은 언제나 여의치 않다. 사회에서 무엇을 추구할 때 그것은 언제나 곧게 가지만은 않는다. 같은 일을 하여도 참여한 개개인 모두가 고민하고 그 고민이 한결같이 않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방황은 파장을 일으키고 그 여진의 진동을 타인이 느끼게 되며, 타인은 또한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 감정과 진지함에 섣부른 동의를 할 수 없다. 또 다른 막막함이 공유되는 것이다.

여자를 밝히고 비교적 바질었던 정석은 성우 몰래 지배인과 합의가 이루어져 한때 텔레비전에 나왔던 가수와 합작을 하고 성우는 밀려난다. 밴드선생과 다시 잔치상이나 작은 행사를 전전하던 성우와 밴드선생. 어느날 밴드선생은 한잔을 술을 마시고 그가 즐겨부르던 [서울야곡]의 가사 "이 거리에 버린 담배"처럼 떠난다. 밴드 선생이 떠난 자리에 아침햇살이 들어오지만 가지런히 정리된 이불과 베게만 놓여있다. 인생도 정리될 수 있는 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떠났다. 일행이 모두 떠난 후 성우는 홀로 밤업소를 전전한다.

너 행복하냐?

성우에게도 어릴 시절의 사랑이 있었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이웃 여고에 다녔던 여고생 밴드의 리드싱어였던 인희다. 괄괄한 그녀에게 자신이 작곡한 사랑의 곡도 전해주지만 첫사랑의 풋풋함은 더 이상 익어가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난 성우. 남편을 잃고, 아들을 시댁에 맡긴 인희는 1톤짜리 봉고에 잡화와 나물을 싣고 다니는 장사꾼이 되어있다. 남편이 없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한 사회적 벽을 넘지 못한 그녀는 그래서 가끔 홀로 노래방에 와서 그녀만의 벽을 제거한다. 지역사회의 생리를 잘 알고 처세하는 그녀지만 삶은 지쳐있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쓸쓸함에 그녀는 사회가 쳐놓은 또 다른 사면의 벽을 가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런 인희와의 만남은 성우에게 잔잔함을 던져주지만 그것에 성우는 큰 기대를 가지지 못한다.

영악하고 촐랑거렸던 정석은 사귀던 여자의 정부에게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성우를 찾아온다. 그는 아픈 팔을 뒤로 한 채 소주를 걸친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하여 밴드를 떠났다고 믿는 드럼주자 강수에게 전화한다. 드럼주자였던 강수는 밴드를 떠나 마을버스 기사로 취직되어 생활하고 있다.

정석의 전화를 받으면서 몰아가는 마을버스 길에는 전봇대와 건물들로 인하여 굴곡도 많고 언덕도 많다. 세상의 모진이가 타고 내리는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그에게 걸려온 정석의 회한어린 전화는 그와 그가 가진 순수함 곧 밴드에 서린 열정을 연결하는 안타까운 끈이다. 그의 전화 목소리는 눈물로 여울진다. 그리고 외친다 "너 이자식아, 너 왜 그렇게 사니!". 절규하듯 울면서 버스를 몰아가지만 그것은 위태위태하다. 열정을 버리고 떠난 세상살이에도 여전한 한스러움이 있기 때문일까. 버스에 탄 엄마가 걱정을 하고 업혀있던 아기가 울음을 터뜨린다. 이 아이도 사회적 존재로서 이 위태로움을 비켜가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울음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존재,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서러움인 것이다.

밤업소를 전전하는 성우에게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회적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한인간, 학교 동창에게 마저 자신의 입장을 강변한 그 친구는 결국 사회적 압박구조에 의하여 선택한 사회생활-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 믿은 - 그것에 의하여 버림받았고 그로 의하여 스스로 자신의 삶을 단절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 친구가 가기 전날 친구는 성우에게 묻는다. "너 행복하냐?, 니가 하고 싶은 연주를 하고 사는 너는 행복하냐고!"

문상을 하고 돌아온 밤업소에서 그는 묵묵히 기타를 연주한다. 벌거벗은 여자접대부와 함께 옷을 모두 벗고 광란하는 사장님들에 대하여 그는 무심하다. 아니 무심할 수밖 에 없다. 그런 그에게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사장님은 같이 벗기를 요구한다. 성우에게 갈등의 소지는 많지 않다.

모두 벗겨진 그는 그래도 기타를 친다. 모두 벗겨진 사회의 모습은 아프다. 테이블 위에는 술집아가씨들이 모든 치부를 드러내고 춤을 추고 양주와 술잔을 양손에 들고 머리에 넥타이를 두른 채 여기저기 술을 붓는 우리 시대의 사장님.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광기만 있을 뿐이다. 무엇을 위해 연주하는지도 모르는 성우는, 그러나 그의 음악으로 인하여 술자리는 더욱 광란으로 간다. 이것이 우리가 모두 벗은 모습이다. 이것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우리들의 감동적인 지금 모습인 것이다.

한때 드럼을 배우고자 했던 와이키키의 종업원 기태는 재능과 노력의 부족으로 연주 기량을 연마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드럼도, 전자오르간도 모르지만 컴퓨터 음악에 의존하여 와이키키 밤무대를 장악한다. 인간적인 음악이 없어도 이제 와이키키는 충분히 놀 수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춤을 추는 쌍쌍들은 인간이 연주하건 컴퓨터가 연주하건 중요하지 않다.

성우는 자신이 좋아했던 인희를 만나 수안보를 떠나겠다는 의중을 밝힌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한 곳은 여수이다. 여수 업소에서 노래할 때는 한 명 아니 세 명이다. 칼 맞은 전자오르간 주자와 성우의 첫사랑이자 고등학교때 밴드리드싱어를 했던 인희가 함께 무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그들 세 사람은 자신들이 처음 원했던 그 열정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무대에서 세사람은 서로를 흐믓하게 바라보지만 인희의 부르는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처럼 어쩐지 그들의 현실은 불안하다. 그들이 선택한 여수는 남도의 땅끝으로 이제 더 이상 그들이 물러날 곳은 없기 때문이다.

순수한 열정은 선과 악의 개념도 아니며 비단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사람만의 몫도 아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추구한 그들은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만은 속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바닥이라 믿었던 그곳에서도 성우는 삶의 연속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우일행이 여수에서조차 수안보에서의 박정함이 반복된다면 그들은 삶의 끈을 찾아 이제 막막한 바다를 건너야 한다. 그들에게 과연 그러한 항해가 가능한지? 그러나 이 질문은 나에게 하여야 한다. 그것은 성우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예술적 감응? 문화적 애정? 글세 명칭에 매이지 않은 삶의 바닥에서 뭉클하게 불뚝거리는 그것을…… 말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