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없는 미술관, 성진골 미술길(글/백소애_편집기자)
안동의 새로운 명소 성진골 길섶미술로
안동시내에 산책하기 맞춤한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신세동 동부초등학교 입구에서 성진골 일대 약 350미터에 벽화와 입체 조형물, 소품 등으로 꾸며놓은 골목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하여 ‘길섶미술로’. 안동대 미술학과 강사 이강준 씨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길섶미술로 꾸미기 사업’에 경상권에서 유일하게 당선되어 사업을 진행했더랬다. 지난 9월말 완료하여 10월엔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한 제막식이 있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주민들에겐 공공미술의 활성화를, 예술가에겐 창작활동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조성된 사업이다.
성진길 골목기행은 지난 121호에서 이미 한번 다루었으나 길섶미술로가 가꾸어진 성진길이 아닌 성진2길 위주로 소개되었었기에 이참에 350미터 짧은 구간이지만, 개발이 비켜간 동네 성진길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소개하기로 한다.
웅부공원과 문화공원은 어느덧 안동시내 중심의 쉼터가 되었다. 웅부공원 뒷길로 안동시립도서관을 지나 동부초등학교 담벽에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 안내판이 보인다. 담장 위에는 스텐으로 만든 인물판 26점이 걸려있는데 마을 주민과 동부초등학교 학생들, 그리고 작업에 참여한 작가의 얼굴이다. 담장을 왼편에 두고 진행방향으로 걷다보면 맞은편 성진슈퍼건물에 김화순 할머니와 손자 상현이, 마을에 사는 민서 얼굴이 그려져 있다. 성진슈퍼 아줌마에게 할머니의 소재지를 파악한 후 길을 올랐다.
성진슈퍼에서 왼쪽으로 틀어 성진길에 접어들면 바로 오른쪽 담장에 짜장면 배달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업팀이 내내 시켜먹었던 ‘청반점’ 아저씨라고 한다. 배달 온 아저씨를 붙잡고 모델을 시켰더랬다. 그 위로는 참꽃이 피는 어느 집 담장을 지나 맞은편 동부초등학교 담벼락에는 5학년 1반 아이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타일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오른쪽 언덕받이에는 음표 조형물이 있고 오르막길 윗집에는 오케스트라 그림이 벽면에 그려져 있다. 까칠한 강마에가 서 있으면 제법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에는 얼핏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은 아저씨 얼굴이 그려진 담장이 나오는데 그 집에 그 얼굴의 주인아저씨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근처 집 앞에 세워진 트럭에는 ‘까칠한 장인어른이 타고 있다’는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트럭주인은 알길 없지만 사위의 애교가 무척 귀엽다.
공터의 희망근로 할아버지들
연세 든 어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집을 비우고 떠난 이도 있고 혹은 세상을 등지시면 자연 집은 비게 된다고 한다. 집 한 채의 빈 공간에는 텃밭이 가꾸어져 있고 그 앞 공터에는 할아버지 대여섯명이 모여 자갈을 깔고 있었다. 골목이 조성되고 오가는 이들이 많아 주차공간을 만들려고 모인 희망근로 할아버지들이었다. 그간 간혹 골목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원하는 사진을 못 찍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짧은 구간 포시랍게 차 갖고 오르지 말고 아래에 일찌감치 세워두고 올라오면 좋을 것이고 피치못해 끌고 올라온다면 중간쯤 올라와 왼쪽편 자갈이 깔린 공터에 세워두면 될 일이다.
해바라기가 그려진 담장 앞에 세워진 자전거, 난간에 기대어 안동전경을 보는 개, 전봇대 옆에서 볼일 보는 개, 담벼락에 매달린 고양이까지, 성진골 길섶미술로는 기존에 있던 마을의 모습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어느 것이 조형물이고 어느 것이 마을에 원래 있었던 것인지 모를 정도로. 예쁘게 간판이 바뀐 우리동네 슈퍼를 지나 다람쥐와 자작나무, 가족 수를 알려주는 빨래들이 설치물처럼 널려 있다. 빨래는 골목 한켠을 멋지게 정렬되어 다른 설치물보다 더 재미나게 보여주었다.
추위에 할아버지들은 불을 피워놓고 모여 있었다. 자갈을 실은 트럭이 오기까지 잠시 담소가 이어졌다. 불을 쬐는 할아버지들 틈에 잠시 끼여 그 곁을 어정거렸다. 공터에서 돼지감자가 발견됐다. 마치 생강처럼 생긴 돼지감자는 할아버지들이 어렸을 때만 해도 없어 못 먹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중 한분이 “이걸 생강이라 속이고 팔아도 몰따”하신다. 당뇨에 좋다는 얘길 들었다며 한분이 비닐에 챙겨 넣으신다. 할아버지 한분이 내게 “사진작가신감?”묻는다.
한 할아버지가 본인은 장애가 심함에도 불구, 성진길에서 옥동까지 걸아가노라 말씀하셨다. 모두들 작은 탄식을 지었는데 관절이 성치 않은 분들이 내는 부러움의 탄식이었다.
“어지간하면 나는 옥동가도 걸어가. 여서 옥동까지 한시간 10분, 내가 안그면 장애를 극복을 모해. 집에 들앉았으면 방법이 없어. 첨에 걸음 배울 때는 서른몇살에 다쳐서 병원에 3년 6개월 있었어. 몸써리 난다. 주사기만 봐도 학을 뗀다. 그때만 해도 보험이 되나. 아주 큰 사고가 있었어. 직원들하고 너이 일욜날 점심 한 그릇 먹으러 나섰다가 서이는 즉사하고 내만 살았지. 3년 동안 서울대 병원서 대수술만 세 번했어. 그 통에 집구석 다 말아먹었어. 정미소, 양조장, 논 팔았지. 내가 8개월간 말을 못했어. 그래서 손으로 썼어. 말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지 진짜 말도 못한다.”
그러자 불쏘시개로 무심히 땅을 긁던 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든다. “말 못하면 귀도 먹어야 돼.”
“귀는 먹어야 되는데 귀는 훤하고 말은 모하고”
“간호사끼리 쑥덕쑥덕그면 내 욕하나 싶어서 몰래 한대 콕 쥐박고 그랬어. 보리밥을 먹어도 건강한게 최고예요. 아프면 부자살림 하나 떨어먹는 건 금방이래.”
성진길의 말끔한 그림과 시설물이 할아버지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너나없이 별 감흥 없는 얼굴로 으레 ‘좋다’고만 한다. 노동으로 오른 성진길과 산책으로 오른 성진길은 다를 터, 얼른 자갈을 마저 깔고 아랫목에 허리나 지졌으면 하는 표정들이시다. 동네할머니 한분이 ‘추위에 욕 보니더’ 인사말을 건네니 ‘그마 여 와서 거들어 주든동’하며 농을 치신다.
할아버지들 틈에 끼여있자니 중구동 25통 주진도 통장이 자갈을 싣고 올라왔다. 당북동 전화국에서 명예퇴직한 그는 길섶미술로를 성진길에 만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한 사람이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보니 안동의 새로운 명소가 되어 제일 신명나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내에 위치해 있지만 안동시내서 소외된 곳 이곳 성진골이 발전하는 데는 두발 벗고 나설 참이란다.
“중구동이면 말 그대로 중앙인데 좀 낙후됐죠. 옛날에는 택시도 여 안 올라왔어요. 이제는 여 이래 꾸며 놓이 카메라 둘러매고 마구 촬영하러 오고 그래요. 연세 높으신 어른들은 상상외로 사람들도 많이 오르고 그르이 반응이 좋아요. 아쉬운 점은 예산에 맞춰서 하다보이 그림이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쉽죠.“
길섶미술로의 유명인, 복덩이 할머니
성진슈퍼 벽에 크게 얼굴이 그려진 김화순 할머니의 집 마당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동네분들 여럿과 하하호호 막 김장을 끝낸 터였다. 이곳 성진길에서 1남 1녀를 키워낸 할머니는 직장생활에 바쁜 아들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 상호, 상현이를 키워내고 있다. 이제 갓 예순을 넘겼으니 사실 할머니라 부르기에는 너무 젊다. 벽에 크게 얼굴이 걸린 기분이 어떠냐 물으니 솔직하게 말하신다.
“옷을 좀 갖차입었을낀데. 근데 내가 그리 말하이 화가 선생이 일부러 갖차 입으면 안 뽑는대. 여 동네 사람 사진을 한 70장인가 보내서 거서 내가 뽑힌 거래.” 턱에 살집도 더 많은 거 같고 너무 ‘할매’처럼 보인다고 아쉬워하는 그니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아유 말도 마, 시장에 가면 아지매, 아지매 그림 보이 희한하다. 모델 값 얼마 받았노. 한턱 내라 그캐. 첨엔 아시바매로 작게 그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크게 그릴 줄은 진짜 몰랐어. 첨에 이웃에서 상호할매 얼굴을 그려 넣고 있다고 해, 그래서 내가 가보이 차츰차츰 그리는 거 보이 진짜 내래. 그래서 내가 뭐라 글카니까 그림 그리는 양반들이 그거도 어르신요, 아무나 해주는 거 아니고요, 어르신이 자연스러워서 뽑혀서 그려 넣는 거라서 아무나 그리는 거 아니니까 섭섭해마소 그카대. 우리 아들이 농협 다니는데 퇴근해서 들어와서는 ‘엄마 내가 참 기분이 좋다. 동네 들어오는 입구에 엄마랑 아들이 씩 웃으며 반겨주이 너무 기분이 좋다’ 이래. 또 우리 며늘애는 우체국 댕기거든. 가는 ‘어머니 들어올 때매돔요 어머니 이래 찡긋 웃으면서 입구에 계시니 기분이 얼마나 좋은동 몰래요’ 그캐“
그 말에 기분이 탁 풀어지면서 좋아지기 시작했단다. 거기다 사람들이 오면서 인사 한마디씩 하이 기분도 좋고 복 많은 복덩이 할머니라 불러주니 더 좋단다.
“사실 동네가 전에는 좀 추접웠어. 근데 이제 동네가 진짜 깨끗해졌어. 얼마나 좋은동 몰래. 통장님도 원체 부지런해쌌고.”
더러는 시샘하는 분도 계실텐데 여쭤보니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가 ‘어쩌다 저래 글랬는공’ 하는 소리도 들었다고. “뭐, 내사 근거 아나. 나는 우리 손자 데리고 왔다갔다 이러면서 지나 댕기다 사진 찍힌 거 밖에 없어.” 막 김장 마무리를 하는 할머니의 표정은 추운 날씨에도 밝아보였다.
발걸음을 위로 옮겨갔다. 지난 10월에 올랐을 때는 곶감이 창 아래 매달려 있더니 이제는 무말랭이가 널려 있다. 계절의 변화는 창 아래 널어놓은 부식거리로도 알 수가 있다. 오른쪽 담장 아래에는 빨래가 한가득 널려있다. 다른 어떤 설치물보다도 더 멋있게 걸려있다.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야물딱지게 삶았음이 분명해 보이는 뽀얀 빨래가 담 아래서 바람 한 점 없이 차분히 걸려있다.
낡고 오래된 동네의 미술 산책로
할머니 두 분이 무를 들고 성진1길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 골목길 바뀌고 나서 더 좋으세요?” “무어?” “골목길 바뀌고 좋으시냐구요.”
“뭐. 좋다면 좋고, 그렇지 뭐.”
할머니의 일상과는 크게 무관한 골목길의 변화인듯 두 분은 굽은 등을 하고 길을 올랐다. 미술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정자가 하나 놓여있다. 깔끔하게 마감된 정자에는 ‘신라시대 성지도사가 기거하시던 곳’이라는 명판이 걸려있다. 여름이면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 역할을 제대로 할 것처럼 아늑해보이는 정자였다. 정자 아래를 보니 자전거와 지게가 있는 집이 보인다. 묘한 조합이다. 건너편 빨랫줄에는 속옷과 양말이 널려있다. 혼자 사는 노인의 빨래임에 틀림없는데 무척 정갈하다. 성진길의 모든 사물들이 길섶미술로 이전에도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일까, 그 낡은 아름다움이 미술작품과 조화를 이뤄 낸 풍경은 안동의 명소로 부족함이 없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