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 앨범 ′밤기차′발표한 시노래패 징검다리 위대권, 강미영 부부(글/이희수_프리랜서 작가)
그들의 첫 만남
스무 살의 미영 씨는 안동이라는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낯선 집, 낯선 길,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낯선 남자. 일을 마치고 구경삼아 안동댐 근처를 산책 중이던 미영 씨의 뒤를 쫓는 한 낯선 남자. 미영 씨는 뒤에서 그녀를 쫓는 발자국 소리에 걸음을 재촉했다. 투박한 신발소리, 두 명이다. 미영 씨의 걸음이 빨라진다. 뒤에서 들려오는 걸음걸이가 그녀의 뒤를 바짝 쫓는다. 미영 씨는 급한 마음으로 한적한 길을 벗어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겁이 나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가려던 찰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저기요.
순간 뒤를 돌아본 미영 씨는 그 낯선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친구와 안동댐을 산책 중이던 스물 네 살의 대권 씨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발견하게 된다. 혼자 온 것 같은데 말을 걸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가슴이 쿵쾅거린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낯선 여자에게 말 걸기. 대권 씨는 용기를 내어 그녀를 불렀다.
- 저기요.
시노래를 부르는 부부
낯선 길은 아니지만 초행길이기도 했다. 강변을 마주한 태화동에 있는 연습실로 향하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길을 잃은 탓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금세 차를 가지고 큰 길까지 마중을 나왔다. 차림이 허술했다. 호인이라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삐딱한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은연히 예술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괴짜의 모습이 그에게서도 풍겼다. 우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너자 수줍은 노총각처럼 해맑은 얼굴을 한 낯선 남자, 위대권(41) 씨가 거기 서 있었다.
그의 길안내를 받아 연습실로 들어선 때는 늦은 오후였다. 추웠다, 따뜻했다를 반복하는 넉살 좋은 겨울 날씨 덕에 늦은 오후에도 태화동 2층 건물에 자리한 시노래패 징검다리의 연습실에는 겨울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익숙하고 익숙하지 않은 악기들, 나이테가 겹겹이 둘러져 있는 제법 굵고 오래되어 보이는 낮은 탁자, 위에 도란도란 앉아있는 다기들. 강변도로를 줄기차게 달리는 창 밖 도시와는 단절된 여유로운 풍경이었다. 서른 초반, 많아봐야 중반으로 보이는 쾌활한 그녀가 우리를 맞았다. 강미영(36) 씨였다. 단정하고 산뜻한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다부져 보였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위대권 씨와 강미영 씨는 서로 닮았다. 결혼 16년차에 접어든 부부답지 않게 둘은 상당한 동안이었다. 불혹을 넘어선 남자 같아 보이지 않는 위대권 씨와 아이 셋을 낳은 아주머니 같아 보이지 않는 강미영 씨는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하는 시노래패 징검다리로 활동하고 있는, 1집 앨범까지 낸 가수 부부이다.
어깨 너머 배운 통기타, 이젠 작곡까지 척척
어린 시절부터 형이 통기타 연주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배웠다는 위대권 씨에게 통기타 연주는 평생의 취미이자 일이다. 물론 생업을 위한 일은 아니다. 그의 직업은 안동교도소 교도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통기타를 어깨에 짊어지고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마치 그의 본연의 모습인 것 마냥 그에게서 교도관으로서의 직장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그와 통기타의 인연은 뗄래야 뗄 수가 없어 보인다.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만져오던 것이 통기타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잠시나마 통기타 라이브 가수로서 일탈을 꿈꾸게 했다. 사실 강미영 씨에게 음악을 전도한 것도 위대권 씨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게 된 것도 참 운이 좋은 경우다. 첫 눈에 봐도 적극적이고 소탈한 성격임을 알 수 있는 강미영 씨가 남편 위대권 씨를 따라 통기타와 노래에 맛을 들이게 됐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통기타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한시도 음악을 놓지 않았던 탓일까. 위대권 씨는 작곡에도 소질이 있다. 시노래패 활동을 하기 훨씬 전부터 틈틈이 작곡을 해왔다는 데, 작곡이 잘되는 날이면 하루에 몇 곡씩도 나온다니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사실 통기타와 시노래는 좀 올드한 느낌을 준다. 물론 통기타 세대에게 통기타는 대중적인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대중에게 통기타란 어떤 것일까. 아버지, 어머니가 장롱 위에서 꺼내올 법한, 왠지 먼지 한번 닦아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의외성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게 아닐까. 부부가 통기타를 안고 노래하는 걸 들으면 세련된 기성가요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찬사가 나온다. 가수와 노래, 듣는 이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시노래의 매력이기도 하다.
1집 앨범 ‘밤기차’
안동에서 시노래패가 창단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상학 시인의 시를 노래로 엮은 시노래 콘서트가 안동의 이하역에서 열린 것이 2006년 10월 어느 가을 밤이었다. 그때는 안동에 시노래패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온 시노래패가 공연을 했다. 기왕이면 우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노래패가 그 자리에 함께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안상학 시인의 권유로 안동에서 첫 시노래패가 만들어지게 되었단다. 처음엔 예닐곱 명이 활동했는데 그 때는 팀 이름도 딱히 없어 ‘포크 앤 섹스폰’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것도 통기타 연주를 하니 포크고 팀원 중에 섹스폰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어 섹스폰을 붙였다니 사람들 참 털털하다. 창단 초기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무대에도 몇 번 섰는데 이런 저런 대외적인 행사에 소소히 참여하면서 지금의 ‘징검다리’라는 정식 명칭이 만들어 졌다. 통기타도 좋아하고 시노래도 좋아하고 이런저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 시노래패 징검다리는 딱히 정해진 인원도 창립멤버랄 것도 없다. 물론 시노래패 징검다리의 주축은 아무래도 위대권, 강미영 부부다. 지난 몇 년을 지나오면서 회원정리(?)가 된 탓에 현재는 부부를 포함한 4명이 활동하고 있다. 다들 생업이 있고 음악활동은 취미로 하는 일이라 계속해서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월에는 안동시민회관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는데 그 때 함께한 멤버로 조병선 씨와 김용현 씨가 있다.
시노래패 징검다리에게 2009년은 많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네 멤버가 함께 한 콘서트를 열었고 부부가 함께 작업한 앨범을 냈기 때문이다. 앨범 작업에는 서로간의 뜻이 달라 부부만 참여하게 되었는데 위대권 씨의 통기타와 시노래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첫 앨범이기에 부부에게 앨범을 만드는 작업에 많은 시행착오가 따랐다고 한다. 비용절감 차원에서 처음엔 조병선 씨가 프로듀서 겸 녹음 작업에 손수 참여했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각자의 일이 있는 지라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에 전문가의 손을 거쳐 위대권과 강미영 이라는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위대권 시노래 작곡집 밤기차’ 라는 앨범이 탄생되었다. 위대권 씨는 통기타 연주와 노래뿐만 아니라 시도 쓰고 작곡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녹음 외에 앨범 자켓 사진, 작사, 작곡은 모두 위대권 씨의 역량으로 만들어 졌다. 앨범에는 총 9곡이 수록되어있는데 전곡 모두 위대권 씨가 작곡했고 그 중 3곡은 작사도 했다. 정말 다재다능하다. 특히 김소월 시인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 곡을 붙인 시노래는 끝내준다. 기성곡 저리가라 할 만큼, 귀에 착 붙는 것이 시노래패 징검다리가 사랑받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는 곡이다.
스승이자 선배, 그리고 남편
위대권 씨의 이러한 능력(?) 때문에 가끔은 난감한 부탁도 받는다고 한다. 직접 쓴 시를 가져와 자신의 시에 곡을 붙여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일도 종종 있는데 거절해야할 경우는 일부러 피해 다닌다고 하니 곤욕스러울 것 같다. 전달이 쉽고 운율이 있는, 시노래가 될 만한 적합한 시가 있기 때문에 부부는 시노래를 부르기 좋은 시로 안상학 시인과 김소월 시인의 시를 손 안에 꼽았다.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도 어렵지만 좋은 가사가 될 수 있는 시를 고르는 일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위대권 씨는 가수이기 이전에 문학인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시를 읽고 부르는 그 이기에 종종 시를 쓰기도 하고 곡을 붙여 노래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여하튼간에 부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부러운 능력을 소유한 위대권 씨가 남편과 아빠로서는 어떨까 싶었다. 역시나 빵점에 가까웠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위하는 만큼 가족에게는 조금 소홀했다는 강미영 씨는 그래도 자신이 열정을 가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무언가를 이뤄내는 남편의 모습이 존경스럽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통기타 스승이자 가수 선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부에게는 사실 자녀가 셋이나 있다. 셋이나 되는 자녀를 두고 어떻게 부부만의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참으로 기특한 아이들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삼남매는 엄마, 아빠가 행사를 간다든가 밤늦게 까지 연습을 할 때면 큰 아이가 동생들을 알아서 챙기고 동생들도 큰 아이의 말을 따라 저들끼리 알아서 잘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 자식 간에 철이 반대로 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만큼이나 자녀교육에 더 좋은 게 없을 듯싶다. 같은 취미로 같은 즐거움을 공유하는 위대권 씨와 강미영 씨의 모습은 많은 부부들이 바라는 부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꿈을 향해 서로가 징검다리 되는 부부
언뜻 보면 위대권 씨는 특유의 유머와 천진함이 있는 대신 융통성이 없다. 반면 강미영 씨는 침착하고 다부져서 남편이 놓치고 가는 부분이나 때로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부문에서 확실히 야무진 면을 보였다. 위대권 씨가 한 때 라이브 카페 활동을 오래 하지 못한 것에는 위대권 씨가 인정하지 못하는 라이브 가수의 애로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강미영 씨는 5년을 넘게 라이브 카페에서 활동했고 오히려 남편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시노래패 활동에 전념하고 라이브 까페의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강미영 씨의 싹싹함과 어디를 가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친화력 때문에 사실 행사를 다니게 되면 위대권 씨가 강미영 씨 덕을 더 많이 본다고 하니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워서 더욱 천생연분이 아닌가 싶다.
앨범 재킷 9면 ‘위하여’ 라는 곡의 배경 사진은 위대권 씨의 파릇파릇한 모습이다. 아마도 부부의 첫 만남 때 즈음이지 싶다. 사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강미영 씨가 첫 눈에 반할만한 꽃미남 외모라 인정한다. 꽤 미남이다. 물론 지금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세월이 지나지 않았는가. 그 세월이 흐르면서 대권 씨도 미영 씨도 조금씩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통기타와 노래에 대한 열정으로 대권 씨는 미영 씨를 노래하게 했고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 앨범을 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시노래라는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부는 어느 새 통기타와 시노래를 알아가면서 같은 즐거움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거다.
어쨌든 대권 씨는 행복한 남자다. 그가 사랑하는 것을 알아주는 미영 씨가 있고 그것에 함께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영 씨에게 첫눈에 마음을 빼앗겨 말을 건 대권씨, 그런 대권 씨에게 첫 눈에 반한 미영 씨. 이 부부 참 재미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시노래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그래서 그들이 들려주는 시노래가 고즈넉한 이 밤을 촉촉하게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