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예안 부포의 역사(글/이원정)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청량산과 건지산의 두 틈새를 뚫고 흘러 내리면서 구곡(九曲)을 이루었는데 이곳이야말로 천하의 절경이었다. 구곡은 청량(淸凉), 고산(孤山), 단사(丹砂), 천사(川砂), 탁영(濯 ), 분천(汾川), 오담(鰲潭), 월천(月川), 운암(雲巖)이다. 구곡 가운데 부포 앞이 바로 월천이다. 굽이치던 강은 빠른 물살로 역동 앞을 지나 한숨을 돌리면서 다시 조용해져 넓고 조용한 호수를 이루니 아름다운 산영(山影)이 거울에 비치는 듯 했다.
역동서원이 있었던 부포
예안면 부포리의 역사는 참으로 자랑스럽다. 부포에는 역동서원(易東-禹倬의 호)이 있었던 곳이다. 퇴계선생이 역동선생을 제향(祭享)히기 위하여 서원 건립을 발기하여 1570년(선조3)에 낙성되었다고 한다.(1901년에 훼철되었다가 1972년 안동 송천에 복원).
역동서원이 안동에서는 제일 처음 세워진 서원이라고 한다. 역동선생은 1263년(고려 원종4)에 단산현(丹山縣-지금의 단양)에서 태어나서 회헌(晦軒) 안향(安珦)의 제자로 정주학(程朱學)을 깊이 연구하여 보급하기에 힘쓴 우리나라 이학(理學)의 선구적인 학자이며 교육가였다.
퇴계선생은 역동서원기(易東書院記)에서 [선생의 충의(忠義) 대절(大節)은 이미 천지를 움직여 산악을 흔들 만 하고 경학(經學)의 밝음과 처신의 정당함이 크게 뛰어났으니 후학(後學)이 사범(師範)으로 길이 받들어 제사할만한 이가 선생이 아니고 누구겠는가?]라고 하여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여기에서 경학의 밝음이란 정주학을 밝힌 학문적 업적을 일컬음일 것이라 짐작하고 충의의 대절이란 1308년(고려 충선왕1)에 있었던 충의로운 상소를 두고 하셨던 것일까? 그때 역동선생이 상소를 하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충렬왕(忠烈王)이 승하하자 원나라에 있다가 돌아와 왕위에 오른 충선왕(忠宣王)은 그 부왕의 후비인 숙비(淑昌元妃)를 간음했다. 충선왕은 숙비의 교태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고 숙비는 왕의 총애를 믿고 그 방자하고 사치함이 이를 데 없어 벼슬아치들이 다투어 뇌물을 받쳐 그 환심을 사기에 급급한 판이었다. 역동선생은 왕의 불륜과 숙비의 방자함을 직간(直諫)하는 과감한 소(疏)를 올렸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역동선생은 예안으로 은퇴하여 학문탐구와 후진을 양성하며 천석(泉石)을 벗하여 만년을 지냈다고 하는데 이 마을 이름을 지삼의(知三宜)라고 하였다. 지삼의는 역동의 충성, 역동의 도학, 역동의 절조를 일컬어 뒷사람들이 지은 이름이다.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흘러갔지만 훌륭한 역동선생을 제향하고 학문의 도장이 펼쳐진 역동서원이 부포에 세워졌다는 것은 부포의 큰 자랑이 아니겠는가?
500년 인연
부포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던 성씨로는 호군(護軍)으로 있던 안동권씨 경력(經歷) 권간(權簡)의 상세(上世)로부터 살았다고 하는데 어느 때부터 언제까지였는지 잘 모르나 금숙(琴淑)이 권경력의 사위가 되어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그 후 오래잖아 우리 진성이씨(眞城李氏)들도 이 곳에 터를 잡았으니 그 후로는 봉화금씨(奉化琴氏)와 우리 진성이씨(眞城李氏) 두 집의 역사가 자랑스런 마을이 되었다. 퇴계 문도인 성재 금난수(惺齋 琴蘭秀) 의 고조되시는 경상도 관찰사(觀察使) 숙(淑)이 부포에 시거(始居)했을 때가 우리 진성이씨로 보면 부정공 할아버지(副正公 諱 云侯)께서 두루(周村)에 입향 했을 때와 비슷한 무렵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숙(淑)의 자제가 7형제인데 그 중에 5형제가 등과(登科)를 하여 부포를 오자등과기(五子登科基)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손에 성재가 나서 퇴계문도가 되었으니 500년을 빛나는 문호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었다.
우리도 판서할아버지(號 老松亭 諱 繼陽)가 두루에서 부포로 살림을 났으니 처가(英陽金氏-禮安 서쪽) 가까운 데로 이사했다고 전하기도 하나‘오자등과기’라고 알려진 좋은 터를 택하셨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판서할아버지는 그 후에 온혜로 이사 하셨는데 그 때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아무튼 이 때부터 500년을 우리와 금씨는 남 같지 않게 서로 혼인하며 살았을 것이다.
월천의 시 한수에 나오는 부포의 산하
산세(山勢)도 청량산 남쪽 자락에 주일봉(主一峯-호소골)이 높이 솟아 주봉(主峰)이 되고 동쪽의 묵봉(墨峯)과 서쪽의 부용봉(芙蓉峯)이 양팔을 벌린 듯 한 산세에 포근하게 안긴 듯한 마을이 바로 부포 동네다. 옛날에는 이 산세의 아름다운 터를 잡아 반곡암(盤谷庵), 고탄사(高呑寺), 보림사(寶林寺), 동림사(東林寺) 등 절이나 암자도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터도 없고 모두 잊혀지고 말았다.
수백두락의 넓은 들이 기름졌고 초가와 기와집이 조화를 이루며 잘 어우러진 100여 대촌의 큰 마을이었다. 산천이 아름답고 들이 넓어 비교적 생계가 좋아서인지 부포에는 예부터 수(壽)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 수향(壽鄕)이라고 하였다 하고, 실지로 호군(護軍) 권겸(權謙)은 93세, 동지(同知) 권수익(權受益)은 93세, 월천 조목(趙穆)은 82세, 만호(萬戶) 금치소(琴致韶)는 89세, 둔와공(遯窩公) 이만손(李晩孫)은 81세, 첨지(僉知) 금희련(琴希 )은 88세, 유학(幼學) 이중연(李中淵)은 85세, 금헌(琴憲)은 83세, 첨지(僉知) 금응각(琴應角)는 86세, 유학(幼學) 권기(權沂)는 87세, 첨지(僉知) 금응우(琴應羽)는 98세, 이 밖에도 많은 분들이 80이상의 향수를 누렸다고 하니 그때 시대에 놀라울 일이 아닌가?
고려 중기에 세워졌다는 고색 창연한 부라원루(浮羅院樓-경북유형문화재 제39호)가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었다. 옆에는 금희연(琴希 )이 심었다고 전하는 느티나무가 있어 시원함을 더했다.〈浮羅院樓〉라는 현판은 석봉(石峯 韓濩)의 글씨이다.
나는 이 부라원루에서 지었다는 월천의 시 한 수로 부포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자 한다.
물은 산을 감싸안아 흘러가고
펼쳐진 들판은 하늘 끝에 닿았구나!
풍월의 흥은 어김이 없으니
우리들은 곧 신선일레라
옛날에 부라원 앞 낙동강 강변에는 성재가 장예원 사평(掌禮院 司評)으로 있다가 물러와 솔을 심었다고 하는데 솔밭의 둘레가 4∼5리나 되었다고 한다. 월천은 이 솔밭을 사평송이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때 원(院)에 올라 강을 바라보는 경치는 어떠했을까? 소나무 숲 사이로는 멀리 월천서당이 어렴풋이 보이고 소나무 가지에는 고매한 학이 앉아 운치를 더했을 것이다.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 강 따라 불어오는 바람소리, 급히 여울을 지내는 물소리,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매미소리 여기에서 월천이 이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다면 얼마나 그럴듯한 모습이었을까?
금성재의 배위가 바로 조월천의 누님이었다고 하니 그 때 부포 광경이 참으로 좋았을 것이다.
퇴계 선조는 길흉사를 서로 돕기 위하여 온계(溫溪) 동족계를 만드셨는데 성재가 이것을 본받아 부포의 동계(洞契)를 만들어 향토 자치와 교화에 힘썼다고 한다. 요즘의 지방자치의 효시라고 보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 때 만들어졌다는 부포 동계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지? 성재 종택도 사변 겪고 화재 당하고 수몰 당하고 했으니 말이다.
월천(月川-趙穆)은 15세 때 퇴계선생의 문하가 되어 학문을 깊이 이루고 행실이 독실하였다. [월천의 아름다운 자질은 퇴계의 영향으로 성취되었고 퇴계의 도학은 월천을 얻어 빛이 있었다」고들 일컬을 정도로 일세의 거유(巨儒)였다.
월천의 부친 대춘(大春)은 예천에서 살다가 부포의 동지(同知) 권수익(權受益)의 딸에게 장가듦으로 부포에 정착했다고 하니 이 때 부포 살던 안동권씨들이 횡성조씨, 봉화금씨 등 좋은 사위를 맞았던 모양이다. 월천(月川)은 이곳에 정사(精舍)를 짓고 부용정사라고 이름지었다. 또 삼대(三臺)가 있는데 왼쪽은 청원대(淸遠臺), 오른쪽은 미고대(彌高臺), 그리고 동쪽에 광제대(光霽臺)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 어디쯤을 일컬음인지 알 길이 없다. 월천 자손과는 같은 부포라도 강을 사이에 두고 살았고 자손이 영성해서인지 후손끼리는 잘 어울려 지냈던 것 같지 않다. 격강천리(隔江千里)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나는 이야기다.
유학이 꽃피고 학자와 선비들로 가득했던 마을
하였던 간에 한마을에 퇴계 문도가 월천, 성재 두분이나 계셨고 도산서원을 중심한 유향(儒鄕)의 영향으로 부포는 계속 학문이 이어져서 향내에 널리 알려진 학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청동(淸洞-眞城李氏)집과 매촌(梅村-奉化琴氏)집에서 두드러진 인물이 쏟아졌다. 청동집은 후계공(後溪公 淳) 형제와 그 자손들로서 소계공(素溪公 彙炳), 고계공(古溪公 彙寧)을 비롯해서 둔와공(遯窩公 晩孫), 가간공(可澗公 晩翊), 혜산공(惠山公 晩綏)에 이르기까지 가학이 이어졌다.
고계와 지하(芝下 晩憙) 종숙질분이 상계 종가의 대를 이어 상계 종가의 종통(宗統)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계 종가는 상계를 떠나 두 차례에 걸쳐 80년 좌우간을 부포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부포에 여러 파(派)가 섞여 살게된 연유가 늘 궁금했었는데 아마도 상계종가가 부포에 있을 시기에 의인, 원촌, 섬촌 등 여러 마을에서 종가 가까이서 살고싶어 모였던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포가 동네도 크지만 상계 종가가 부포에 있을 무렵 온 세상에서 퇴계선생 가묘(家廟)가 계시는 종택이 부포에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겠는가?
1791년 신해사옥(辛亥邪獄-교도 尹持忠 등을 처형하고 西洋書의 家藏을 禁함) 다음해인 정조 16년(1972) 3월 24일에 국왕이 제문을 지어 신하 검교(檢校)인 이만수(李晩秀)를 보내 도산서원에서 치제(致祭)하였는데 이 때 제문의 일부는 「……이단(異端)이 서로 속일지라도 영남지방의 70 고을은 한곳도 방향을 잃지 않았도다. 이를 두고 추로(鄒魯)의 고을이라고 하니 누구의 공인가? 보는 물건마다 미루어 생각하니 고상한 품격을 지닌 그대를 마주하고 있는 듯 하다. 책상과 지팡이, 수풀과 골짜기는 그림 가운데 있지만 육조와 십도로써 그대를 스승으로 모시리라」고 하였다. 이 때 후계공( 淳)은 영남이 정학(正學)을 지키고 있음을 밝히고 사학탄(邪學歎)을 지어 천주교의 전파를 탄식하였다.
후계공의 아들 소계공(彙炳)이 1855년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의 추존(追尊)을 위하여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의 소수(疏首)가 되었고 주지하는 바와 같이 1880년 김홍집이 황준헌의 조선책략〈예수교가 孔子의 道보다 훌륭하다〉을 일본에서 가지고 와서 고종에게 바친 사실이 유포되고 영의정(李最應)이 이를 지지하자 재야의 유생들은 병인양요이래 잠재해 있던 척사의식이 표출되었는데 영남에서는 신사년(1881)에 다시 만인소가 일어났다. 이 때 소수로 앞섰던 분이 바로 소계공의 아들 둔와공(晩孫)이다. 소계공 둔와공 양대 소수가 있었으니 그 당시 부포가 바로 영남유림의 심장이었고 표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때 만인소의 소수를 정함에 있어서는 문벌, 인물, 학문, 덕행 등을 참고하여 선출하였다고 소행일록(疏行日錄-流水齋 遺稿)에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원촌의 대유(大儒)인 용산공(龍山公 晩寅)의 문도인 봉강공(鳳岡公 晩輿)이 크게 문호를 열었는데 그 영향은 갈암(葛 中濯), 매당(梅堂 晩佐), 우정(宇靖 晩商)에까지 이어졌다.
성재집(奉化琴氏)도 성재의 아들 월담(月潭 憬-壬亂功臣)과 만수재(晩修齋) 형제를 비롯 매촌(梅村 詩述), 소무헌(素無軒 書述), 매포(梅圃 翼祥), 형서(衡捿 翼明)등의 학문이 가학으로 이어져서 우뚝하였고 학산(鶴山 鏞夏)은 경술합방 후에 죄인을 자처하고 평량자(平凉子-패랭이)를 쓰고 근신하며 일생을 살았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렇게 두 문중의 충렬과 학풍이 계속 이어지면서 유학이 꽃피고 학자와 선비들로 가득했던 마을이 우리 동네였다.[안동]
애국의 혼이 살아숨쉬는 부포
근대사에도 우리 부포는 애국 혼이 살아 숨쉬는 충렬의 마을이었다. 앞에 평량자 학산공 이야기도 있었지만 일찍이 보문의숙을 상계 종가와 같이 설립하여 개화사상을 보급하고 중국 동삼성에서도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백농(白農 李東廈)이 있었고 장진홍, 이원기, 이원록 등과 같이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등지를 폭파하였던 이경식(李京植)이 바로 백농의 아우이다. 또 경식의 딸 이병희(李丙禧)는 종연방적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1940년에는 북경으로 망명 육사와 같이 의열단원으로 활약하다가 처녀의 몸으로 북경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던 자랑스러운 부포 딸도 있었다.
그리고 신간회 중앙본부의 혜전(慧田 李源赫)공은 김병로, 조병옥 등과 같이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실상을 조사하여 민중대회를 개최코자 하다가 옥고를 치렀던 분이다.
또 서울에 유학 중앙고보에 다니던 심천(深泉 李先鎬)공은 1925년에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창립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에는 6·10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추진하였을 뿐 아니라 인산당일에 종로3가 단성사 앞에서 제1성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였다.(지금 그 자리에 서울시가 6·10만세 선창 터 표석을 세웠음). 수년의 옥고를 치르고는 1929년 일본으로 망명하여 재일본 조선인 항일운동에 참여하여 계속 투쟁하였다.
이보다 앞서 1919년 3·1운동 때는 3월 17일에 예안장터에서 만세운동이 크게 일어났는데 온 동네가 적극 참여하였다. 그 중에서도 조수인(趙修仁). 금용문(琴鏞文) 두 분의 역할은 역사에 이름이 남아있다. 또 신간회운동에 깊이 간여하였던 이성호(李成鎬), 이 밖에도 안동 콤 사건, 물산장려운동 등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던 마을이었다.
불행하게도 혼돈했던 해방정국에서는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면서 이데올로기의 갈등 때문에 많은 희생을 치렀다.
다른 청년들에 휩쓸려서 산으로 나갔던 자식이 같은 또래의 청년들에게 싸늘한 시체로 떠 메여 돌아오기도 했다. 3일이 멀다하고 이 집 저 집에서 처절한 곡성이 일어났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절손이 된 집도 많았다. 호상댁, 사곡댁도 모두 그런 집이다.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나쁜 소문을 들으면 어린 자식을 들쳐업고 울며불며 이산저산 시체나마 찾아보겠다고 헤매다가 정신 잃은 사람같이 돌아오곤 했다. 이런 비극이 결국은 온 동네가 불바다가 되는 비운을 당했다. 30칸, 40칸 되는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여기 저기 불기둥이 치솟고 온 동네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다. 열을 받은 기와가 산산조각으로 파편이 되어 날아다니니 참혹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때 사람들은 이제 우리 동네는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다. 한숨과 분노와 원망으로 비탄에 빠져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한방씩 모여도 아비 있는 자식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혼란하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고생고생 살았던 그 때 철없던 아이들이 지금 60 좌우의 나이가 되었다.
1970년대 안동댐으로 슬펐던 사연, 자랑스러웠던 역사, 빛나는 풍속과 전통, 아름다웠던 산하가 호소골, 가름골 몇 집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기는 비운을 맞았다.
이향즉천(離鄕卽賤)이라고 여겨 세상 밖을 모르고 옹기종기 이웃해 살던 우리는 산지사방 객지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객지에 살면서도 어려움과 가난을 극복하고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향은 가난에 힘들었고 전란에 슬펐던 추억만 남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 같은데 십여년 전부터 서울에서는 진향회(眞鄕會)를 만들어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주 모이는 것을 보면 불행했던 과거는 접어두고 자랑스럽고 빛났던 역사와 전통만을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나보다.
어려서 고아가 되고 젊어서 실향민이 되었지만 산도 물도 선 객지에서 언 땅을 녹여 뿌리를 내리더니 이제는 각계에서 두드러지게 활동을 하는 이가 많다. 기업을 일으켜 뜻을 이룬 사람도 많지만, 학문을 하여 명문대학의 교수로 있는 분만해도 허다하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본적을 없애고 동성동본 혼인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러다가는 고향이 어딘지? 조상이 누군지? 알 필요도 없는 세상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 세상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쯤 가서 멎을 것인가? 그래도 누군가가 물에 잠긴 부포의 역사를 건져서 더 자세하게 정리해서 남겨야 할 것 같다. 세월이 더 멀어지기 전에 이런 역사(歷史)를 밝혀두는 또 하나의 역사(役事)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