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인 안동장씨의 한시(글/이원걸)정부인 장씨의 부덕
조선조 여성들의 삶은 남성 편향주의에 의해 가리워진 삶이었다. 당대 유교적 이데올로기였던 충·효·열의 사회 통념은 여성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제약과 구속을 강제하였다. 이 규제에 의해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 의지는 당연히 남성주의적 사유 체제 아래 종속을 강요당하였으며, 이에 대한 순복이 미덕으로 강조되었다. 이를테면, 사대부가 남성들의 축첩제 허용에 반해 과부녀의 개가 금지 및 그 자손의 과거 응시 제한·열녀의 선양·여성의 공교육 기회 미부여 등은 그러한 사회의 복합적 양상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조 여성의 역할에 대해 매우 소극적으로 평가해 온 것이 종래의 관점이다.
그렇지만 당시 여성들의 삶은 남성들 못지 않게 훌륭한 값어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당대 여성들은 일반 사대부 계층의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육아, 자녀 교육, 잡다한 가사 노동을 몸소 수행해야 했으므로 가정에서 남성에 비해 역할 부담이 매우 컸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묵묵히 현실을 인고하며 남성을 내조하고 그들로 하여금 제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도록 헌신했다. 인고하는 한국의 어머니 형상이 이들에게서 발견된다. 그런 배경 하에 조선조 문화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그 성과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당대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정부인 안동 장씨(1598-1680)가 남긴 한시 10수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녀의 부친 경당 장흥효는 퇴계에서 학봉으로 연결되는 퇴계 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았으며, 그는 서애 유성룡과 한강 정구에게 수학하여 영남학파의 핵심적 위치를 점하였다. 주목되는 것은 정부인 안동 장씨의 자손들에 의해 영남학맥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경당의 종지(宗旨)가 그녀의 아들인 존재·갈암에게 전수되었으며, 이를 이어 손자인 밀암에게 이어졌던 것이다. 이어 밀암은 그 학맥을 외손자인 대산 이상정과 소산 이광정에게 전수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퇴계 학통과 학맥의 전수 과정상 장씨 부인의 학덕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렇듯 그녀의 부덕이 자손들에게 이어져 영남 학통의 큰 맥을 이어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남 달리 총명하였으며, 시·서·화·자수에도 뛰어났다. 또한 동양 최초 요리서인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도 남겼다. 그녀는 부덕과 재능을 겸비하여 어진 어머니의 전형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시에 반영된 유가적 인격미
정부인의 문학적 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는 것으로, 정부인장씨실기({貞夫人張氏實紀})에 9수,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의 말미에 1수의 한 수를 포함한 10수가 전한다. 비록 그녀가 남긴 시가 10수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유교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애와 철학관을 담긴 인격미가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 12세에 창작한 경심음·성인음·소소음>>>
정부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했을 뿐만 아니라 유가에서 추구하는 수신과 체득의 원리를 강조하는 시를 남겼다. 이러한 사유를 반영한 작품이 12세에 창작했다는 [경신음]·[성인음]·[소소음]이다. 12세의 여아에게서 이러한 시가 창작되어졌다는 점은 매우 주목된다. 먼저 몸가짐을 다짐하는 시를 보기로 한다.([敬身吟])
身是父母身 이 몸은 바로 어버이 몸이니
敢不敬此身 어찌 이 몸 조심하지 않으랴
此身如可辱 이 몸을 욕되게 한다면
乃是辱親身 이는 어버이 몸 욕되게 함이지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에 대한 보존과 근신의 다짐이 표현되어 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이 몸은 곧 어버이의 정신적 지향을 계승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어버이가 물려주신 지순한 육신과 정신적 유산을 욕되게 하지 않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실제로 퇴계의 학맥을 이은 경당의 학문 전통이 자신의 자손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그녀의 이러한 근신의 철학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이는 성현의 말씀을 통한 자기 수양의 다짐으로 연결된다.([聖人吟])
不生聖人時 성인이 살던 때 태어나지 못해
不見聖人面 성인의 모습 뵈옵지 못해도
聖人言可聞 성인의 말씀 들을 수 있고
聖人心可見 성인의 마음도 볼 수 있어요
이는 성현 사모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는 시이다. 시인은 성현이 살던 당시에 태어나 직접 수학하지 못한 아쉬움을 서두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만큼 그녀가 성현의 학문인 성리학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역대 성현들의 말씀과 행적이 담긴 서적이 있어서 그로 인해 성현의 말씀도 듣고 성현의 의도와 정신적 추구를 엿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한다.
이는 마치, 퇴계가 국문 시가인 [도산십이곡]에서 고인의 길이 여기에 있으므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읊은 것과 일치된다({退溪集}, [陶山十二曲]/ 古人도 날 몯보고 나도 古人 몯뵈 古人을 몯봐도 녀던 길 알 잇 . 녀던 길 알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어린 정부인이 이처럼 성현의 학문을 사모하고 따르기를 다짐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다음 시는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철학적 사유를 담은 작품이다.([蕭蕭吟])
窓外雨蕭蕭 창밖에 소록소록 비 내리는 소리
蕭簫聲自然 이 빗소리는 자연의 소리
我聞自然聲 자연스런 빗소리 듣노라면
我心亦自然 제 마음도 자연스러워져요
창밖에 아주 작은 소리로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 소리는 인위적인 가식의 소리가 아니라 자연에서 들려 오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인은 이 자연스러운 소리에 점차 몰입하게 되었고, 그러자면 자연과 인간의 심성이 합일되어 결국 자연과의 합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질지성이 모두 제거되고, 본연지성이 회복되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부인의 소녀기에 창작된 작품 속에 수준 높은 성리학 사유가 담겨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정부인의 이러한 내면에서 형성된 유가적 철학 사유 방식은 인간애의 곡진한 표현으로 확대된다.
<<< 인간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학발시>>>
정부인의 인간에 대한 애정은 이웃집 아낙의 남정네가 먼 변방으로 수자리를 살러 떠남에 따라 전개되는 한 가정의 극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이 시를 창작하게 된 내력을 서두에서 부기해 두었다. 즉, 이웃 마을 여인의 남편이 변방의 수자리를 살러 가자, 이를 애석해 하는 80 노모가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났으나, 너무 상심하여 거의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고 하였는데, 그녀는 이 가정의 극한 어려움을 전해 듣고 그 사정을 슬퍼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鶴髮詩三章註], 姑之夫行役, 其八十之母, 絶而復甦, 其至滅性, 余聞而哀之, 因作此詩). 여인으로 남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동일한 감정을 전이시켜 결국 그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시에 수용하여 담은 것이다.
이는 흡사 조선 후기 대두된 서사시의 창작 배경인 직접 보고 들은(目睹耳聞) 것과 부합되며, 내용 역시 서사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 시는 여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인데, 남편이 수자리 살러 간 데서 1차 상황이 전개되며, 80 노모의 애환이 2차 상황으로 전개된다. 남편은 나라의 부름을 받들어 노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진 나라 온교(溫嶠)가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느라 어머니가 부여잡은 자신의 옷자락을 끊어 버리고 떠났듯이, 그는 무정하게 떠나 버린 것이다({晉書}, 初嶠欲將命, 其母崔氏固止之, 嶠絶 而去). 남편이 출정 나간 뒤의 상황은 이렇게 전개된다.([鶴髮詩]1)
鶴髮臥病 백발 어머님 병으로 몸져누웠건만
行子萬里 먼 변방으로 아들 떠나 보내야 한다오
行子萬里 변방으로 아들 떠나 보내지만
曷月歸矣 그 언제 돌아오려나
이 시는 작중 화자로, 남편을 떠나 보내고 노모까지 수발하면서도 자신의 고독한 정서는 시에 드러내지 않은 여인으로 봐야 한다. 이 여인은 남편과의 이별을 고통할 여유조차 없다. 아들과의 결별을 애통해 하던 노모가 몸져누워 오매불망 아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여인은 자신의 이별 아픔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모의 애통은 살아 생전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강박감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다. 기약 없는 이별과 노모의 애통이 전체 문면에 일관되고 있다. 이는 다음 시에서 여인의 하늘을 향한 축수로 이어진다([鶴髮詩]2).
鶴髮抱病 백발의 어머님 병으로 몸져누워
西山日迫 서산의 해처럼 생명이 다해 가요
祝手于天 두 손 모아 하늘에 빌어 보아도
天何漠漠 무심한 하늘은 말이 없어요
아들의 출정을 애통해 하던 백발의 노모는 급기야 위중지경을 맞이하게 된다. 서산의 해처럼 노모의 생명은 사그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는 다급한 나머지 이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늘에 호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하늘마저 묵묵부답으로 인해 여인의 절박감만 고조되고 있다. 이는 악부체 형식을 띠고 있는데, 4자에 긴박감이 충실히 담겨 있다. 시종 이 여인은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지경에 놓인 것이다. 남편의 가족 부양책임이 자기에게 넘겨져 모든 고통과 희생을 감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인은 이를 체념하고 운명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인은 그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다만 하늘에 호소하고 원망조의 탄식만 발할 뿐이다. 결국 여인은 지금까지 모든 아픔을 삭히며 인내하였다. 하지만 노모의 실성까지 이어지는 현실에서 남편에 대한 서러움과 원망이 복받혀 오르고 말았다.([鶴髮詩]3)
鶴髮扶病 백발 어머님 병든 몸으로 일어나시더니
或起或 허둥지둥 달려가다가 넘어지셨네
今尙如此 어머님 이렇게 당신을 애타게 찾으시는데
絶 何若 당신은 그리도 무정히 떠나셨나요
노모는 아들과의 생이별을 견딜 길 없어 병든 몸으로 무작정 밖으로 내달리며 허공을 향해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고 달리다가 넘어지기도 하였다. 극한 애통과 절박감이 노모로 하여금 실성까지 몰고 간 것이다. 여인의 실성이 그렇게 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극한 상황 전개로 이해될 뿐이다. 이제 여태껏 모든 아픔을 삭히어 오던 여인의 감정이 솟구치고 말았다. 가신 임에 대한 원망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여기에는 노모의 실성에 따른 탄식과 자신의 임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의 정서가 복합되어 토로되고 있다. 여성 화자가 이 말미에 이르러 드러나고 있다.
정부인은 출정 나간 아낙의 남편과의 이별로 인해 발생되는 노모 수발과 자신의 한스러운 신세를 지나쳐 버리지 않고 악부체 형식으로 이를 시에 담아 낸 것이다. 그것도 10대 초반의 여성 작품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는 그녀의 천부적 문예성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가 다만 이렇게 10수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매우 아쉽다. 이웃 아낙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고 그녀의 아픔을 동일하였다. 이는 결국 유교의 仁 사상인 측은지심의 발로이다. 이 작품은 한국 여성 한시사에서도 주목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녀의 유가적 이념의 형상화는 만년 작품에 이르러 자손들에 대한 유교적 덕목에 충실하며 부녀자의 법도를 깨우치는 것으로 집약된다.
<<< 자녀의 훈육에 애쓴 어진 어머니 모습 담겨>>
위에서 정부인의 소녀기에 창작된 시 6수를 살펴보았다. 이어 소개하는 4수는 그녀의 만년 작품이다. 그녀는 84세의 수를 누리며 어진 어머니 형상으로 詩·書·畵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부덕으로 자녀 훈육에 전념하여 훌륭한 인물들을 대거 배출하였던 바, 만년 작품에 이러한 정서가 담겨져 있다. 먼저 74세에 지은 [稀又稀]를 살펴보기로 한다.
人生七十古來稀 칠십세까지 사는 일은 예로부터 드문 일인데
七十加三稀又稀 칠십에 세 살 더했으니 드물고 드문 일일세
稀又稀中多男子 드물고 드문 가운데 아들 많으니
稀又稀中稀又稀 드물고 드물며 드물고도 드문 일일세
이 작품은 정부인의 평온한 운치가 담겨 있다. 일흔을 넘도록 살면서 자녀들을 훌륭히 성장시킨 어머니의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 시의 제목이 우선 이채롭다. 기구의 [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希) 당나라 대표적 시인 두보의 시 [曲江]의 한 구절인 [人生古來七十希](인생고래칠십희)를 원용하고 있다. 먼저 자신이 일흔을 넘게 살고 있는 사실 자체가 세상에 드문 일이라고 전제하고 나서 7남 상일 : 장릉참봉(尙逸 : 長陵參奉)·휘일 : 경기전참봉(徽逸 : 慶基展參奉)·현일 : 이조판서(玄逸 : 吏曹判書)·숭일: 의령현감(嵩逸 : 宜寧縣監)·정일·융일·운일(靖逸·隆逸·雲逸)을 둔 것 역시 세상에 드문 일이라고 하였다. 만년 감회를 읊은 시에 느긋한 정조가 담겨 있다. 이제 자손들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시를 보기로 한다([贈孫信及]·[贈孫聖及]).
見爾別友詩 지금 네 친구와의 이별시를 보니
中有學聖語 시에 성인의 말씀 배운다는 말 있구나
余心喜復嘉 내 마음이 기뻐 널 칭찬하면서
一筆持贈汝 한 수 지어 너에게 준단다
新歲作戒文 새해에 네가 자신 경계하는 글 지었다니
汝志非今人 너의 뜻은 지금 사람과 다르구나
童子已向學 어린 네가 학문에 뜻을 두었으니
可成儒者眞 참다운 선비 될 것일세
위의 두 시는 정부인이 66세에 지은 시이다. 첫 번째 시는 손자인 벽계 은(碧溪 )에게 준 것이다. [載寧李氏家系圖](재영이씨가계도) 의하면, 그는 장부인의 여섯째 아들인 평재 융일(平齋 隆逸)의 맏아들로 태어나 백부인 정묵재 상일(靜默齋 尙逸)의 양자로 들어갔다고 한다. 두 번째 시 역시 손자 밀암 재(密菴 栽)에게 준 것인데, 그는 정부인의 셋째 아들 갈암 현일(葛庵 玄逸)의 셋째 아들이다. 두 시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손자들이 유교적 가문의 전통을 이어 참 선비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성장하고 있음을 기뻐하면서 격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첫 번째 시에서 그녀는 손자의 별우시를 읽고 나서 그 시에 성인의 말씀을 공부한다는 구절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성인의 학문은 공자 및 유가의 철학 사유를 담은 유교 경전을 의미하는데, 유학적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손자들에 대해 기뻐하며 격려의 마음을 담아 작시한 것이다. 두 번째 시 역시 그러한 맥락이다. 새해에 손자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선비로서의 의지를 다지고 심기일전 하기를 다짐하는 것을 보고 격려한 시이다. 그녀는 손자가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 달리 근신하며 유학에 뜻을 두고 있음을 보고 참다운 선비가 되기를 서원하며 격려하였다.
정부인의 자손에 대한 당부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녀는 74세에 가문의 부녀자들이 전통적 요리법을 익히도록 {규호시의방}(閨壺是議方)을 필사하여 대대로 그 맛을 이어가도록 배려해 두었던 것이다. 이 시는 이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데, 재령 이씨 가문의 부녀자들에게 권고하는 시이다. 시집가는 신부에게 재치스러운 귀뜸을 해주고 있다.(이는 {규곤시의방} 소재의 시로 제목 없음)
三日入廚下 새색시 삼일만에 부엌에 들어가
洗手作羹湯 손을 씻고 국을 정성 들여 끓이되
未暗姑食性 시어머님 식성을 모를 터이니
先遺少婦嘗 시누이에게 먼저 맛보게 하여라
정부인은 재령 이씨 가문에서 배출된 여성들이 시댁에 가서 가문 특유의 맛깔스러운 음식을 시댁 식구들에게 제공하도록 이 요리책에 그녀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두었다. 이 책은 동양 최초의 요리서로서 그녀의 국문친필본이라고 한다. 그녀는 삼일만에 시댁의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장만하는 신부에게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였지만, 시댁의 식성에 익숙하지 않을 터이니, 먼저 시누이에게 맛을 보이고 시부모님께 올리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 어머니다운 자애와 인정이 넘치는 시이다.
이처럼 그녀는 자손들에게 매사에 신중하여 가문의 유학적 전통과 품위를 계승하도록 권면하며 격려하였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그녀의 교육적 감화력은 자손들에게 전이되어 유가적 전통의 맥을 계승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적 심미관 듬뿍 담긴 10수의 한시
정부인 장씨 부인의 생애와 후덕이 후손들에게 이어져 경당 장흥효의 학문이 밀암→갈암→대산·소산으로 이어져 당대 영남 학맥을 이어갔다. 이러한 기반은 그녀의 부덕에 의한 것이었다. 그녀는 시·서·화·자수 등에 능할 뿐만 아니라 평소 유교적 덕목을 바탕으로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어머니 형상을 구비하여 신사임당에 버금가는 덕목을 갖춘 어머니로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대 서체의 대가였던 정윤목의 경탄을 자아낼 만큼 호기롭고 굵직한 서체의 면모를 지녔으며, 동양 최초의 요리서를 편찬한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는 그녀가 재령 이씨 가문의 부녀자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자질을 구비케 하기 위한 교재이기도 하여 그 의의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그녀 문예적인 측면에서 천재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전해지는 그녀의 문학 작품인 10수의 한시에는 유가적 심미관이 담뿍 담겨 있었다. 10대 초반에 창작한 6수에 수준 높은 유학의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었다. 이러한 시를 통해 그녀가 어려서부터 이미 유교적 사유를 깊이 소유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체득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웃 아낙의 남정네가 출정 나감으로 인해 파생되는 한 가정의 극한 상황을 악부체 형식으로 시에 담아 내면서 여성 정감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이는 그녀의 유가적 이념에 의한 측은지심의 발로였다.
만년기 작품 4수의 시에는 자신이 70을 넘게 살고 아들을 많이 둔 다복의 심정을 표현하는 한편, 자손들에게 유교적 덕목을 갖추고 훌륭한 선비로 성장해 주길 권면하는가 하면, 여성들에게는 신부에게 시댁에서 정성 들여 만든 맛깔스러운 음식을 시댁 식구들에게 올리기를 당부하였다. 정부인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미덕의 어진 어머니 형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소중한 정신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