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의수도 안동을 논한다(글/정진영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1. 토론의 장을 열면서
안동 사람들에게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말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관공서와 중요 시설마다에는 큼직한 현판이 걸려 있고, 현수막이나 로고 등도 어렵잖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동시에서 안동의 정체성을 정신문화에서 찾아 홍보하거나, 이를 시정방침으로 정하여 적극적인 정책으로 추진한 지가 적게는 3-4년, 길게는 7-8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적잖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오랫동안 ‘변방’에서 전전하다가 ‘정신문화의 수도’(이하에서는 ‘수도’라고 쓴다)에 편입된 지 이제 몇 년이 지났다. ‘수도’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도 전혀 갖지 못하였던 어느 날 무심코 ‘수도’가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참신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딘가 좀 ‘불편하다’는 생각이 잠시 겹쳐졌던 것 같다. 불편함이란 ‘정신문화의 수도’는 특권이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격조 있는 정신적 가치를 그것도 무한정으로 요구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수도’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러 접할 수 있었지만,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심이 아니라 사실은 애써 외면한 셈이다. 그 경위나 과정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그 ‘불편함’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예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속셈과는 달리 타지의 사람들에게 안동을 소개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안동이 ‘수도’라는 사실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설파하기도 했다. 진담은 안동에 대해 생소해 하는 사람들에게 안동을 압축적으로 설명해 내기에 아주 유용하다는 점 때문이었고, 농담은 그 불편함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고려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없는 일을 혼자서만 그렇다고 떠들어 된다면 그 얼마나 ‘정신’나간 소리인가! 그러니 ‘수도’라는 사실을 이야기 할 때는 항상 퇴로를 열어두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어정쩡한 입장은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
이 같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우선은 필자의 글이 아주 전문적이거나 많은 식견과 체계적인 지식을 토대로 쓰여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강조해 두고자 함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라는 사실에 대해 확고한 생각이나 논리를 가진 경우보다는 필자와 같이 어정쩡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무관심과 무지를 탓하기에 앞서 그간 ‘수도’에 대한 공론화와 공개적인 논의가 부족했고, 더구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신문화의 ‘수도’는 행정당국의 의지와 구호로써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수도’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 때의 로고나 구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제 ‘수도’에 대한 진지하고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본격적으로 나눠 볼 때이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에서는 이를 위한 토론의 장을 열고자 한다. 이 글은 그 시작이다.
2. 안동이 왜 '수도'인가
안동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은 2007년 7월 4일이다. 이것은 아마 특허청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특허등록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시작은 훨씬 이전부터였다. 시청 홈페이지에서는 2002년 7월 3일 시장이 시청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도덕이 살아 숨쉬는 ‘국민정신문화의 본 고장’ 등의 시정방침에 대한 연구를 지시한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후 ‘국민’이 ‘한국’으로, ‘본 고장’이 ‘수도’로 재정리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특허등록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준비단계라고 한다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만 5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셈이다.
또한 ‘수도’로의 선포와 홍보 등에는 시장의 의지와 시 공무원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시정방침이 행정조직을 통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추진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수도’로서의 성립요건이 작성되고, 관련 학술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또한 시청 본관 입구와 사업소, 읍면동 현관 입구에는 현판이, 반회보인 까치소식지, 시정홍보지, 각종 국내외행사 책자, 팸플릿, 현수막, 안내장 표지 등에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문구가 게시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수도’와 관련된 시장의 특강이 30여 회 넘게 진행되었고, 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슬로건으로 국내외 여러 곳의 박람회에도 참여하였다. 선포 1주년이 되는 2007년 7월 4일에는 기념행사와 함께 선언문이 발표되고, 표석이 제작 설치되기도 하였다.
그러면 안동은 왜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역시 시청 홈페이지에 그 답을 제시해 두고 있다.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은 흔히들 지식기반사회라고 한다. 지식기반사회를 이끄는 것은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지식과 인간성 실현이라는 정신적 가치이다. 안동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정신적 가치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새 시대를 준비하는 정신적 가치의 생산은 정치나 행정의 중심지가 아니라 오히려 변두리에서였고, 그 변두리는 통일신라와 고려의 화엄사상, 조선의 성리학,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중심지였던 안동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새 시대를 준비하는 정신적 가치는 줄곧 안동에서 생산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안동은 다음의 일곱가지의 전통에 근거하여 21세기에도 우리 삶을 충실히 융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찾아내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다.
일곱가지 전통이란 유교문화의 원형 간직, 지역학인 안동학(安東學)의 존재, 선비정신의 계승,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 배출,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 쉬는 고장,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 한국국학진흥원의 존재 등이다.
이 일곱가지의 전통이 과연 안동 고유의 것인지, 아니면 그 근거와 이유가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여기서 논의할 문제는 아니다. 다만 ‘수도’로서의 안동은 과거에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적 상황이고, 지식기반사회라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인간성이라는 정신적 가치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영광 속에서 발굴해 내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눈여겨 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과거의 가치로 현재의 정신문화 ‘수도’를 건설한 셈이다.
3. 무엇을 논의할 수 있을까?
‘수도’에 대한 논의는 크게는 안과 밖의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안동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고향이 안동인 사람과 타향에서 들어와 사는 사람의 입장 차가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현재 타 시군에 거주하고 있다하더라도 고향이 안동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 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원론적인 의미에서 ‘수도’ 자체의 당위성을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부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선언문에 나열된 화엄사상, 성리학,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안동이었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오늘날의 정신적 가치로 재현해 낼 것이며, 우리의 생활에 융화해 낼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전통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덧보태야 할 안동의 진정한 전통은 없는지도 논의해 볼 문제이다.
또 한편에서는 이미 선포된 일이니 더 이상의 문제제기는 의미 없는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 과거를 위한 문제제기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논의하고 토론하고자 하는 문제는 현재의 ‘수도’를 보다 올바른 자리에 두고자 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논의되고 토론되어야 한다. 더구나 ‘수도’는 과거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저 선언이나 선포로서만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진정한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시당국의 장기적인 계획과 이를 추진할 행정적 조치들이 취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수도’시민으로서의 합당한 도덕성과 정신문화적 가치들을 찾는 일상적인 활동과 의식적인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시당국은 이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그 계획은 과연 ‘수도’건설에 합당한 것인가? ‘수도’시민으로서의 삶과 역할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는 과연 ‘수도’시민으로서 정신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진지하게 되물어보고 고민해 볼 문제들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사랑방에서 이러한 토론의 장을 연 이유는 과거에 대한 시비나 논쟁이 아니라 지금 안동과 안동사람들이 과연 수도로서, 수도시민으로서 그에 걸 맞는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안동의 올곧은 정신문화를 살려가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보고자 함이다.
안동은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다. 그래서 벼슬보다도 학문을 더 중히 여겼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에서 토론의 장을 열면서 스스로 어떠한 성역이나 한계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수도’의 참 모습이 아니겠는가.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과 관련하여 많은 분들의 다양하고도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여기 사랑방에 토론의 장을 열어 둔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을 기대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