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건축문화유산 순례, 그 여정을 시작하며(글/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물 따라
건축문화유산 따라
이제 사람 따라…….
오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멀리 돌아 달려왔다. 이제 안동사람이 된지 정확히 1년이 지나고 있다. 예전에 바람 따라 올 때는 높은 산을 넘어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왔었다. 앞서기니 뒤서거니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을 벗 삼아 긴 시간을 지루함 없이 왔었다. 1년 전 겨울 보따리를 들쳐 메고 올 때 나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따라왔다. 이때, 나는 묵묵히 서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고택체험 도시 안동’이라고 쓰인 지역 광고판을 보고 안동에 다 온 것을 느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어떤 면이 한국정신문화인가?” 그리고 “고택에서 무엇을 체험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지역도 고택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안동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고 또 다시 물어보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문구는 안동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될 문구 중 하나였다.
나는 안동에서 전통건축문화유산을 공부해서 먹고사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전통 또는 문화, 고택이라는 문구를 보면 본능적으로 다시 한 번 본다. 그렇다고 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알고 있는 것도 없는 사람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끼어들어 한마디 말이라도 하고 싶은 평범한 소시민이다. 전통건축문화유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동은 전통건축 야외 도서관이다. 그래서 전통건축물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자주 안동을 찾는다. 과거에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혹자는 안동에 살게 된 나를 물 만난 물고기라고 한다. 이제 나는 안동에 살게 되어 손쉽게 안동에 있는 전통건축물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복 받은 사람이 되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안동에 흘러들어와, 이제 물 따라 안동의 전통건축문화유산 순례를 시작하려 한다. 안동은 다양한 전통건축문화유산이 많은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하는데, “어느 것부터 어떤 시각으로 순례를 시작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아직 명확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평생 찾아야 할 숙제라고 한다.
안동지역 문화유산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역 문화유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지역 건축문화유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안동지역은 건축문화유산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많으면서 유형 또한 다양하다. 그리고 이들 건축문화유산은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아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다양한 가치는 건축문화유산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준이 되는데, 하나의 가치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 건축문화유산은 보편적 가치와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또한 유형적 무형적 가치를 지녔다. 그리고 안동지역의 건축문화유산은 학술적ㆍ역사적ㆍ예술적 가치가 높으면서 보존상태가 양호해 안동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안동지역을 다양한 가치를 지닌 건축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한다. 특히 안동지역은 유교문화 관련 건축문화유산 또는 조선시대 관련 기타 건축문화유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정신문화유산인 유교문화가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안동지역은 조선시대를 지나면서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시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근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를 겪었다. 이와 같은 격동기에 안동지역은 또 다른 문화유산을 만들어 오늘을 살고 있는 안동사람, 더 나아가 한국 사람들에게 유형 또는 무형의 문화유산을 남겨 주었다. 그래서 안동에는 근대기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조선시대의 문화유산은 대부분 양반 관련 문화유산인데, 근대기 문화유산은 양반뿐만 아니라 이하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또 다른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 독립운동을 연구하시는 분들은 안동을 한국 독립운동사의 서막을 장식한 독립운동사의 발상지라고 한다. 당시 독립운동을 지속가능하게 한 힘은 기존 조선시대 지식인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이들 지식인은 안동지역을 터전으로 학맥과 혼맥을 통해 다양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관계를 통하여 그들은 근대기를 이끌었고 소중한 근대문화유산을 남겼다. 이들 근대문화유산은 이전 전통문화유산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안동지역 건축문화유산도 이와 같은 맥락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명한 것은 안동의 문화유산이 안동 땅에 있을 때, 그것이 안동댐 또는 임하댐 물속에 있을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지 타 지역에 있으면 그 가치는 퇴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문화유산은 안동 사람들이 존재의 의미를 알아주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그릇된 점을 바로잡아 주고, 그 가치를 인정할 때 가치가 있는 새로운 문화유산을 더 만들 수 있다.
안동지역은 타 지역보다 양질의 문화유산들이 많아, 타 지역에 가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이 관심 밖으로 밀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화유산이 적은 타 지역은 없는 문화유산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혹자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안동은 100년이 흘러도, 200년이 흘러도 조선시대 문화유산만 남게 될 거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기존의 문화유산도 잘 살펴봐야 하지만 새로이 싹 트고 있는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작년 여름 방학에 안동 시내를 배회한 적이 있다. 나는 안동시내에서 근현대기에 형성된 건물과 오늘날 과거 모습을 재현한 건축문화유산들을 만났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북문동과 용상동의 개량형 한옥들이다. 이들 개량형 한옥들은 도심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한옥으로, 안동이라는 사회문화와 인문지리적 환경이 만들어낸 문화유산 중 하나다. 따라서 안동은 현재 안동이라는 땅 위에 또 다른 건축문화유산을 만들고 있고, 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도 앞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땅과 사람에 대한 이해
안동지역 땅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더운 여름이 되면 산과 바다를 찾아 자연을 즐기러 떠난다. 주말이 되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에 올라 발아래 펼쳐지는 산과 계곡아래 물줄기를 보면서 마음을 치유한다. 안동지역은 어디를 가도 이와 같은 산과 물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연유산이 풍부한 곳이며, 특히 이들은 오염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가치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나만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안동을 흐르는 낙동강과 주변 지역을 촬영한 항공사진을 띠워 놓고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속 강과 하천, 산자락, 들녘은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는데 무지한 난 아직도 헛돌고 있다. 이곳에는 과거 안동사람이 살았었고, 오늘날 안동사람이 살고 있으며, 나 또한 그중 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그곳은 미래의 안동사람이 살아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안동지역 전통건축문화유산들은 산과 낙동강 본류와 지류를 배경으로 터를 잡고 고유한 건축문화를 가꾸어 왔다. 또한 유교문화를 간직한 다양한 조선시대 건축문화유산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한국의 정신문화를 이곳에 심어 놓았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 특히 조선시대의 많은 유학자들은 안동의 자연 지리적 경관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이상적인 터전을 구현했다. 그리고 그 속에 그들은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무형의 정신적 가치와 그들의 숨결을 새겨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문화유산이 많은 안동을 건축문화유산의 보고인 동시에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한다.
언젠가 ‘무궁한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안동지역 땅의 마음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하고 나에게 화두를 불쑥 꺼낸 일이 있다. 이때 나는 「영가지(永嘉誌)」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두 물이 합치는 아름다운 땅이 안동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관심을 갖고 안동지역 땅을 살펴보게 되었다. 안동은 낙동강이 남북이 아닌 동서로 흐르고 있는 곳으로 타 시ㆍ군지역과 산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곳에 크고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안동시내에는 낙동강 본류가 동에서 서로 흘러 문경과 상주지역을 향하여 유유히 흐르고 있다. 이 낙동강은 영주와 예천의 계류와 만나 문경과 상주지역에 이르러 방향을 틀어 남북으로 흐른다.
안동시내 중앙을 흐르는 낙동강 본류는 도산면의 낙동강 본류와 임하면의 계류가 안동시내에서 만나 흐른다. 도산면의 낙동강 본류는 봉화와 청량산의 물이 남쪽으로 도산면을 거쳐 흐르는데, 안동댐에 잠시 머무른 후 다시 안동시내에서 계류와 합수한다. 임동면 계류는 임하댐에 잠시 쉬었다가 안동대학교 앞을 지나 낙동강 본류에 합수한다. 안동댐의 본류와 임하댐의 계류는 임청각 앞에서 합수 한 후 안동시내 중앙을 흘러 안동시 서쪽 풍산 들녘을 적신 후 안동 하회마을을 감싸 흐른다. 동서로 흐르는 물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여러 번 굽이쳐 흐르고 있으며, 굽이치는 강변에 안동사람들은 그들만의 문화와 이상향을 구현하였다. 지금도 안동사람들은 환한 웃음 지으면서 그들의 문화와 이상향을 가꾸며 그 곳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선대들이 그러했듯이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살고 있다.
동서로 흐르는 강물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 물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 물을 받아들여 안동문화의 근간이 되는 자연경관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안동지역의 건축문화유산은 동서로 흐르는 강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변과 산자락에 터를 잡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물 따라 안동의 건축문화유산을 살펴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땅의 마음과 그 곳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간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안동에 와서 물 따라 안동 건축문화유산을 들락거리게 되었는데, 흐르는 물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흐르고 있다. 다만, 도심 강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계곡에 살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이사를 갔고,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안동에는 안동댐과 임하댐, 그리고 이에 딸린 보조댐이 들어섰다. 그래서 오늘날 강변과 하천변에는 새로운 자연경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안동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중년 한분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분은 “예전에는 언제든지 안동 시내를 흐르는 물로 뛰어가 하루 종일 수영하고 놀았다”고 하며 “앞으로 내 후손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안동을 흐르는 크고 작은 물은 안동사람들에게 눈으로만 보고 즐기는 관상용이 아니라 언제든지 만지고 싶으면 만지고, 몸을 식히고 싶으면 식힐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사 온 첫 해 더운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집 아이가 친구들과 길안천에 다녀왔다고 했다. 부모를 잘못 만나 지금껏 휴가 한번 못 데려가 미안한 마음에 재미있었냐고 슬쩍 물어봤다. 아이는 매우 재미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도심에서 메마른 마음을 치유한 듯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렇다, 안동에 사는 우리는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만질 수 있는 좋은 자연유산과 건축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가치를 이해하고 잘 가꿀 때 문화유산은 우리 곁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안동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문화유산은 아무리 가치가 높아도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지역의 문화유산은 안동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때, 외부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이제는 과거의 단편적인 몇 가지만으로,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 하는 식으로 외부사람들을 설득하여 봐주기를 바라던 시대는 지났다. 따라서 안동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창고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이 보물을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보물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실천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또한 이것이 보물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다방면의 사람들이 문화유산에 접근하여 정리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1년을 산 안동사람으로서 본 안동은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다소 있다고 본다. 이차저차해서 굴러들어온 안동 새내기가 된 나는 건축문화유산과 자연유산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동지역 산천에서 살았던 분들과 그분들이 살았던 골짜기와 터전을 살펴보고 정리하려 한다. 이제는 물 따라 사람 따라 안동을 보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그리고 모르고 있었던 또는 사라지거나 새로 생성되는 지역의 건축문화유산을 하나씩 찾아 자랑하고 정리하려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처음에는 서툴고 미흡하고, 엉성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시작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내실을 다질 수 있는 문화유산 정리, 과거의 형식적이고 양적인 통계가 아닌 질적인 정리를 통해 정신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럴 때, 안동지역 건축문화유산의 가치는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존재할 수 있고, 외부 사람들도 더 관심을 갖고 안동 문화유산을 만나러 올 것으로 본다.
작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날이 풀리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안동 하회마을까지 달려 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있는 송천동 앞을 흐르는 물은 어디에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웃에는 어떤 건축문화유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의 게으름으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었는데, 올해에는 실행하려 한다. 그래서 이제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부터, 먼 과거가 아닌 가까운 과거부터 물 따라, 사람 따라, 이야기 따라 안동건축문화유산 순례를 시작하려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