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구곡의 원류, 중국 복건성 무이구곡을 찾아서(글/이오호_안동시 문화예술과장, 퇴계 13대손)
도산구곡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 본다. 무엇이 그토록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가? 구곡 따라 흐르는 물굽이는 옛 것 인데 경관 흐름은 세월 따라 옛 것이 아닌데…….구곡원림은 천지풍파에 묻혀 지고 일궈지고 고쳐져 다시 딱딱한 모습으로 세파에 시달리고 있지 않는가? 아무도 찾지 않는 광야에서 역사의 원류도 모르는 채 옛 정취만 느낄 수 있다.
청량에서 운암까지 굽이굽이 몇 굽이인가? 조선시대 구곡문화는 무이도가(武夷櫂歌) 수용부터 시작해 도산구곡에서 파생 되었다. 도산구곡은 안동댐 조성으로 현재 9곡 중 6곡만 차무이도가(次武夷櫂歌)와 함께 수백 년을 지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퇴계 할아버지께서는 무이산 기록이 담긴 「무이지」를 읽으시고 「무이도가」를 차운하여 구곡시를 지으셨다. 이는 영남학파 학통을 계승하는 의미까지 가지게 된다. 도내 구곡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은 무려 27여 개소로 그중 안동이 6곳으로 가장 많다. 특히 도산구곡은 다른 구곡원림과 달리 ’선비의 자취‘가 남아 있는 산수에 아홉 굽이를 설정하여 마치 도산에 주자가 은거한 것처럼 만들려는 선대들의 깊은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무이구곡과 도산구곡의 공통점에서 그 뜻과 구곡원림의 원류도 찾아볼 수 있었다. 차 무이도가는 상상(想像)가였지만 현지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구곡의 길이와 건물 소재의 차이일 뿐이다. 무이구곡 길이가 9.5㎞이고, 도산구곡이 18㎞지만 구곡의 중심에는 성리의 터전이 다 같이 자리 잡고 있다. 무이서원과 도산서원이 구곡 중 각각 5곡에 위치해 있는 것 만 보아도 도산을 주자가 은거하면서 성리학을 집대성했던 무이구곡으로 만들려는 선대들의 깊은 의도와 원류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도산과 무이가 수만리 떨어져 있고, 수백 년이 지났지만 옛 문헌인 「유도산구곡경차무이도가(遊陶山九曲敬次武夷櫂歌)」 서문에도 “세상이 도산을 일컬어 무이라 한다. … 땅은 뛰어난 사람으로 인하여 같아질 수 있다.” 고 밝히고 무이와 도산을 대상으로 지은 시 「십이시(十二詩)」와 「십팔절(十八絶)」도 닮은 점이 있다고 하면서 도산과 무이는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도 도산구곡에는 선비의 체취가 남아 있고 그 법도가 표출된 도가(櫂歌)와 청정한 공간만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다. 굽이굽이 산수에 깃들어 있는 심오한 뜻은 무이와 다를 바 없지만, 무이는 구곡계를 개방(開放)과 향유(享有)의 병행선상에 있는 반면 도산구곡은 그렇지 못하다. 구곡문화의 중흥은 바로 성리문화의 위대함을 간직하는 것이다. 무이구곡계(九曲溪)의 중심인 5곡 은병봉(隱屛峯) 아래 무이서원에 왜 퇴계선생의 화상과 처서가 함께 전시되고 있을까? 할아버지의 화상 앞에서 두 번의 합장을 올렸다. 순간의 감격은 형용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보시지도 못한 이곳(창주유적상여청滄洲遊跡想餘淸 주희 있던 유적 보려는 것), 단지「무이지」 책 한권을 읽으시고 그 염원과 상상의 도(道)가 도산과 무이를 연결하셨구나! 하는 마음을 느꼈다.
무이의 구곡계는 별유천(別有天)으로 무릉도원의 선계(仙界)에 다다르면 생명력 잃은 이방인들의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속계의 고민들을 이내 녹여 내리게 했다. 신비의 옥녀봉,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2천여 계단의 천유봉, 지상낙원의 무릉도원을 다시금 상상해 보면서 낯설지 않았던 4박5일의 여정은 도산구곡 길에 펼쳐지는 강과 나지막한 야산을 따라 고르게 널려 있는 들판이 포근한 어머니 품처럼 아늑했다. 너그러운 기질을 배태하는 원천으로 성찰하는 선비들의 맑은 지성이 흐르는 강, 무이계곡에 서려 있는 무이도가의 차무이도가를 생각하게 한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