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집에 시집 온 미천한 며느리의 예의범절(글/편집실)옛날 어느 마을의 대가집에서 둘째 며느리를 보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가집은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닌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느 집에서도 그 대가집에 딸을 시집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높은 집안에 모두 시집오기를 꺼려하자 둘째 아들을 장가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노총각으로 늙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제는 아무리 신분이 하찮은 집안에서라도 딸만 주겠다면 며느리로 맞이할 생각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마을의 중매쟁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대감님, 저 옆 마을에 참한 처녀가 하나 있는데 혼인을 지내시렵니까?” 합니다.
“그럼, 누구라도 오겠다는 처녀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네.”
“그러시다면 제가 가서 한번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꼭 성사를 시켜 하루속히 둘째 며느리를 맞도록 해주게.”
대감은 중매쟁이에게 큰 선물을 주며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중매쟁이는 곧바로 옆 마을로 가서 처녀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안됩니다. 우리집은 미천한 집안이라 대가집의 법도와 예의범절을 배운 바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대가집은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라 하니 우리 아이는 당치도 않습니다.”
중매쟁이는 강한 반대에 부딪쳐 그냥 돌아서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매쟁이가 가고난 뒤 부엌에서 엿듣고 있던 딸이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걱정 마시고 저를 그 집에 시집보내 주세요.”
“네가 아무리 부지런하고 똑똑하다하나 그 집안은 우리와는 다른 집안이다. 업신여김과 천대를 혼자서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정 혼인을 하고 싶다면 내가 다른 자리를 알아보마.”
“아버지. 제가 아무리 미천한 집안에서 자라 법도를 모른다고 해도 사람 사는 일이 별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저를 그 집으로 보내주셔요.”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으나 딸이 원하는 것이라 힘들어도 참을 수 있으리라 여기고 혼인을 시켜 주었습니다.
대가집의 둘째 며느리가 된 미천한 딸은 아주 지혜롭고 민첩하게 행동하여 잘 지냈습니다. 한번은 조상님들을 모셔놓은 사당에 제사를 지내려고 음식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대가집이라 준비가 많았습니다. 시아버지는 높은 마루에 올라앉아 준비가 어떻게 되어가나 감독하였습니다. 그러다 변소에 가는 길에 방앗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둘째 며느리가 채질을 하고 앉았는데 한 손으로만 하는 것입니다. 그 힘든 채질을 한 손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하고 있으니 시아버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옳지! 저 한쪽 손은 분명 못쓰는 것인게야.”
시아버지는 냉큼 둘째 며느리를 불렀습니다.
“새아가야! 한쪽 팔에 무슨 탈이 있느냐?”
“아닙니다. 아버님.”
“그러면 어째서 한 손으로만 그 힘든 채질을 하느냐?”
“예, 제가 이 한손으로 부정 탈 짓을 했습니다.”
“부정 탈 짓이라니, 무슨 일을 했기에 그러느냐?”
“아버님, 지금 제사음식 준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코가 나오길래 제사음식 준비하는 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만 코를 풀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부정 탈까봐 그리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둘째 며느리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법 법도 있는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얘, 새아가야. 이제 그만 두 손으로 편히 하거라. 조상님들이 그만한 일로 화내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 떡을 다 만들어놓고 제사 나물을 장만할 때입니다. 부엌에서 일을 하던 둘째 며느리가 맏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제사에 쓰는 장물은 어디 있습니까?”
“자네, 장물 있는 곳을 모르는가?”
“제사에 쓸 것을 따로 봉해 놓지 않았습니까?”
“봉하고 말고 먹던 장물 그대로…….”
“형님, 제사음식에 어찌 먹던 장물을 그냥 쓰겠습니까?”
둘째 며느리는 곧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그릇을 주어 친정집에 보냈습니다. 제사에 쓸 장물을 얻어오라고 말입니다. 밤이 깊어서 제사 지낼 때가 되었습니다. 음식을 모두 차려놓고 기다리자 시아버지가 나와서 잔을 올리려 하였습니다. 그때 둘째 며느리가 얼른 시아버지 손에서 잔을 놓았습니다.
“아니 아가야. 어찌 그러느냐?”
“오늘 제사의 잔은 아버님이 못 올리십니다.”
둘째 며느리의 단호한 말에 시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고 물러났습니다. 제사를 마치자마자 둘째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했습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오늘 잔을 못 올리시게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까 저녁에 보니까 아버님이 변소에 다녀오셔서 그냥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씻지도 않으시고 잔을 올리려 나오시길래 못하시게 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조상님께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염치없이 아버님을 말렸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시아버지는 둘째 며느리의 생각이 옳다고 느꼈습니다.
“얘야, 잘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큰 실수를 할 뻔 했구나.”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은근히 얕잡아 보았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둘째 며느리는 대가집에서 떳떳하고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자격이란, 집안 형편이나 운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아무리 미천한 형편에서 자랐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잘하면 어디에 가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옛 이야기입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