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이후 사람을 미치게 만든 힘의 근원을 찾다(글/임세권_본지 편집위원, 안동대 교수)
이르게 아침을 먹고 7시 좀 넘어서 호텔을 나섰다. 이제 드디어 파리를 벗어나 본격적인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다. 몽마르뜨르를 떠나기 전 미뤄두었던 몽마르뜨르 묘지를 보고 싶었으나 아직 이른 아침이었던지 문을 열지 않았다. 문에는 8시에 문을 연다고 써있었다. 그동안 별로 걸어보지 못했던 몽마르뜨르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8시 반쯤에 다시 묘지 정문으로 왔으나 아직도 문은 닫겨 있었고 문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다시 안내문을 보았다. 그제서야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어로 쓰여 있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이다. 괜히 시간만 허비했다.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를 꺼내고 짐을 정리한 후 몽마르뜨르를 떠났다. 시간은 벌써 아홉시를 넘고 있었다.
몽마르뜨르 묘지 옆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어제 베르사이유로 가던 같은 길을 남서쪽으로 비스듬히 내 달렸다. 찻길은 얼마 안가 오른 쪽으로 숲과 녹지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지나면서 베르사이유로 가는 길과 갈라졌다. 세느강을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교외 기분이 났다. 좌우로 마을들이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고 했지만 길 옆은 대부분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좁은 하천이 나란히 달렸다. 자동차들은 적지 않았으나 달리는데 답답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은 일부러 고속도로를 피해서 지방도로를 타기로 했다. 고속도로는 빨리 달리는데 급급해서 주변 자연경관이나 마을풍경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밀밭길을 지나 중세도시 샤르트르로
40킬로미터 정도를 왔을까 길 양편이 노란 황금색으로 변했다. 눈이 가는 곳 모두가 밀밭이었다. ‘금빛의 밀밭을 바라보면 네 생각이 날거야’ 하고 여우가 금빛 머리칼의 어린왕자와 헤어지면서 해준 말이 생각났다. 여우는 왕자로부터 ‘길들인다’는 것이 서로 간의 관계를 맺는 것임을 배웠다. 여우에게 길들이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밀밭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왕자와 서로 길든 후에 그는 밀밭을 보면 왕자가 생각날 거고 또 밀밭에 부는 바람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었다. 밀밭은 여우와 왕자가 관계를 맺게 되는 매개체가 되었고 그 관계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처음 읽고 감동했던 때가 1971년 봄이었다. 그 봄에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도 콧물이 흐르는 1학년짜리 여중생들에게 어린왕자 이야기를 해주고는 나 혼자 가슴 벅차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9년이 흘렀다니. 밀밭은 참으로 멀리 지나가버린 옛 젊음을 되새겨 주었다.
몽마르뜨르를 출발해서 90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때 샤르트르 시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건너편 높은 언덕 위에 대성당이 위용을 보이며 서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서양문화사 책에서 읽은 중세 서양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고딕성당이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고 그 아래 귀족들의 주택이 눈 아래 황금 들판을 굽어보고 있다. 농민들은 가장 낮은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한 주일 내내 밤낮으로 허리가 부러져라 일을 하고 주일이 되면 그들이 농사지은 곡식과 고기들을 들고 성당으로 가서 신께 바친다. 성당 안에 들어가서 무릎 꿇고 앉으면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에 맞춰 성가대의 고운 노래 소리가 높은 곳에서 천사의 노래처럼 내려오고 높디높은 스테인드글라스는 오색영롱한 빛을 성당 안에 쏟아놓는다. 농민들은 한주일의 피곤한 몸과 혼에 신의 위로를 받고 돌아가 또 다시 영과 육을 다해 괭이질을 한다. 학교에서 배운 중세 도시의 구조와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이다.
도시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은 이곳이 도시라기 보다는 작은 마을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마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세느강의 지류인 외르강이 성당이 서있는 언덕의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데 강은 폭이 십여 미터 정도로 좁았으나 강 양쪽을 커다란 석재를 쌓고 주택과 좁은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마치 인공운하처럼 보였다. 좁은 강에는 맑은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몇 백 년은 좋게 묵었을 돌다리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는데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한 뜰 안에 중세식 주택들이 마치 시간을 거꾸로 해서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해 주었다. 주택의 밑 부분은 강물에 닿아 있고 보트를 바로 띄울 수 있도록 선착장을 마련한 집도 있었다.
무지개빛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플룻소리
그런데 눈에 보이는 풍경과 달리 마음은 주차 걱정으로 바빴다. 골목을 헤매다가 강을 따라 길게 뚫린 좁은 도로 가에 강과 바로 붙어 있는 주차장 하나를 찾아냈다. 주차는 대부분 유료인데 이곳도 주차장 한켠에 동전을 넣는 쇠기둥이 서 있었다. 작은 글씨로 쓴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문맹이 된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한 노인이 지나가는 걸 붙들고 짧은 영어로 사용법을 물었다. 다행히 노인은 영어가 통했다. 잠깐 안내문을 읽은 노인은 오늘은 일요일이니 주차비가 없다고 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럴 때 마치 횡재를 만난 것 같다. 아침 일찍 나왔는데다 시간이 정오를 지났으니 배가 고프다. 운하 옆의 벤치에서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펴고 점심을 때웠다.
골목을 빙글빙글 돌아 올라간 언덕 정상부에 거대한 흰색 대리석의 성당건물이 서 있었다. 1194년에 처음 건축을 하였고 최종 완성은 1260년에 했다니 7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다. 프랑스 고딕성당을 대표한다는 이 성당은 크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데 서쪽에는 최후의 심판, 남쪽에는 영광의 그리스도, 북쪽에는 성모 마리아를 주제한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정면에서 본 성당의 두 첨탑은 다른 성당처럼 쌍둥이 탑이 아니라 양쪽의 모양이 서로 다르게 되어 있는데 16세기에 벼락을 맞아 북쪽의 새탑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세웠다고 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130미터가 넘는다는 긴 중앙 신랑 끝에 반짝이는 십자가가 놓여있는 제단이 보인다. 제단 뒤에는 공사 중으로 천정부터 바닥까지를 한 장의 가림막으로 막아놓았는데 가림막에는 제단 뒤의 화려한 구조물을 사진으로 처리하여 마치 뒷 부분까지 트여있는 듯이 보인다.
이 성당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스테인드글라스의 장미창이다. 장미창이란 성당 벽면의 원형으로 된 큰 창문을 말하는데 12세기 중반 이후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이 유행했다고 한다. 1216년에 만들었다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미창은 지름이 13.36미터라고 하니 밑에서 쳐다보면 창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영롱한 빛으로 인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이다. 장미꽃처럼 펼쳐진 창의 중심에는 어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마리아가 앉아 있고 그 주위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천사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과 예언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성당 안을 돌아보고 나오려는데 어두컴컴한 긴 의자 한쪽에서 기타 반주에 맞춰 풀룻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다시 어둠에 익히고 보니 휠체어에 앉은 긴 머리의 여성이 플룻으로 성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 빈 성당에 울리는 플룻 소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현란한 색채와 어울려 성령의 비둘기처럼 높은 천정 여기저기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오는 듯 했다. 빛과 소리와 색이 삼위일체가 되어 거룩한 공간을 완성시키고 있었다. (소리를 들으실 분은 http://220.68.136.183:8080/~yimsk/chartres.htm )
처음 찾은 캠프장에서 저녁을 굶다.
샤르트르 시를 벗어나서 계속 서북쪽으로 내 달리길 세 시간은 넘은 것 같다. 시간은 아직 네시 반이 좀 넘었는데 해는 한 낮의 그것처럼 뜨겁게 내리쪼이고 산이 없는 평지를 운전을 하다 보니 눈부심이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중간에 한번 쉬긴 했으나 눈꺼풀이 자꾸 내려옴을 느낀다. 옆에 사르테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 쉴 겸 들어갔다. 마을은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아 마치 유령도시를 보는 듯하다.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는데 빵 가게 하나가 문을 연 것이 보였다. 내려서 빵과 음료를 사서 광장 한켠의 그늘진 계단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광장은 넓고 하얗게 반사된 햇볕만이 열기와 함께 빈 광장을 가득 채워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마을 뒤로 돌아가니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1차대전 참전용사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탑의 기단부에는 2차대전 참전용사의 이름이 추가로 새겨져 있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약 백 킬로미터 정도 올라가면 2차대전의 승패를 가른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벌어진 노르망디 해안이다. 그래서 이 근처에는 연합군의 승전을 기념하는 기념물들이 자주 눈에 뜨인다.
길은 양 옆으로 펼쳐진 노란 밀밭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다. 프랑스가 농업국가란 말이 실감이 난다. 몇 군데의 큰 마을들을 지나고 제법 도시 맛이 나는 읍과 같은 시가지도 지났으나 네비게이터의 지시를 따라 가니 길 찾는 걱정은 없다. 프랑스의 도로운전은 무척 편안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교차로를 로타리 방식으로 설계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로타리 방식은 교차로에 신호등을 달 필요가 없고 모든 차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기 갈 곳으로 흘러가도록 해주었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로타리와는 그 효용성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쉬엄쉬엄 오기를 두 시간 반이나 되었을까 오른 차창 밖으로 푸른 풀밭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사진에서 익히 보았던 몽생미셸 수도원의 모습이 아득하게 나타났다. 사르테 마을에서 155킬로, 길은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에 호텔과 캠프장으로 이루어진 관광마을이 있고 이곳의 캠프장이 오늘의 종착점이다. 이미 시간이 8시 반이나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경험하는 유럽의 캠프장이다. 캠프장 사무실이 별도로 있는 줄 알고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가 입구에 있는 호텔 로비가 캠프장 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캠프장 숙박료는 1인당으로 계산하며 전기사용료와 자동차 주차료를 별도 계산한다. 모두 15유로쯤 준 것 같은데 미처 기록을 못했다. 계산을 하면 캠프장 약도에 우리가 캠프 할 장소의 번호에 동그라미를 쳐주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 종이를 들고 캠프장으로 찾아갔다. 캠프장은 숲이 우거져 있었고 각각의 개인별 캠프지는 40평방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차 한 대를 주차하고 텐트를 치면 그래도 널찍한 잔디밭이 남아 그 여유 공간에는 탁자와 휴식용 의자를 놓고 차를 마셔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대체로는 대형 캠핑카들이 많이 보였고 어떤 집은 캠핑카 옆에 또 대형 텐트를 치기도 했다. 지나다니면서 보니 냉장고와 가지가지 조리기구들도 갖추고 있어 집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어쨌든 우리도 텐트를 쳤다. 가지고 온 텐트는 1~2인용의 초소형이어서 자동차와 나란히 쳐놓으니 널찍한 대지에 조그만 개집 하나 갖다 놓은 듯 했다. 그나저나 저녁을 먹어야지, 이제 해도 져가고 시간은 아홉시가 거의 되었다. 밥을 하려고 전기냄비를 캠프장 한쪽에 있는 콘센트에 연결하려하니 소켓 구멍이 맞지를 않았다. 아차, 유럽 캠프장은 콘센트 규격이 다르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이럴 때는 캠프장 사무실에서 빌릴 수 있다는 걸 여행 안내서에서 본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사무실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 했으나 거기서는 빌려줄 여분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구내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살수 있다고 해서 그리로 가보았으나 너무 늦어 이미 상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 된 듯했다. 방법이 없었다. 이 시간에 문 연 식당도 없을테고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온 식빵과 몇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캠프장은 빈자리가 별로 없는데 사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불빛도 텐트 밖으로는 거의 새어나오지 않았다. 남에게 방해가 될까봐 텐트 안에서도 조용조용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감탄스러움이 없지 않으나 또 한편으로는 여기서 사는 한국사람들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도 나뭇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밤중인데도 매미들은 지치지 않고 울어댔다. 프랑스에서의 첫 야영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장을 찾았다. 세면장 건물은 안쪽으로 화장실과 세면 및 샤워장 그리고 입구 양쪽으로는 설거지와 세탁실이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서 화장실도 샤워장도 전혀 붐비지 않았고 나처럼 화장실을 오래 쓰는 사람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밥을 해 먹으려면 전원 케이블을 사야하는데 슈퍼마켓은 8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었다. 겨우 구한 케이블은 이후 여행에 우리 밥을 책임져줄 귀한 물건이 되었다.
천년 넘게 지은 신전 - 신을 향한 인간의 무모한 열정
수도원은 본래 육지와 분리된 바위섬이다. 썰물로 물이 빠지면 뻘밭으로 육지와 연결되고 물이 들면 섬이 되었는데 지금은 캠프장이 있는 곳에서 약 900미터의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섬은 둘레가 약 900미터 높이가 약 88미터에 달하는 원추형인데 정상부에 교회를 지어 교회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듯 뾰족하게 서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모스크의 지붕처럼 보인다. 지금처럼 제방길이 없을 때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고 나오기도 쉽지 않은 요새지였을 것이다. 8세기에 처음 짓기 시작했다는 이 수도원은 단순한 수도원이 아니라 14세기 전반에서 15세기 후반에 걸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과 16세기 후반의 프랑스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종교전쟁에도 함락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지였다. 그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나폴레옹 시기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5세기 후반 로마네스크 양식의 우아한 건축물로 지어진 정상부 교회는 뾰족탑이 19세기에 완성된 것이라고 하니 수도원은 천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교회의 첨탑 위에는 수도원의 이름이 된 성 미카엘 대천사의 상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브랑슈 교구의 오베르 주교는 708년 10월 어느 날 밤에 미카엘 대천사를 만났다. 대천사는 바닷가 개펄에 솟아있는 바위섬에 교회를 짓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미셸은 미카엘의 프랑스 이름이다.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난공불락의 요새답게 두터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안으로 들어가는 성문도 여러 개의 문이 겹쳐 있다. 문은 언제나 목조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는 성벽 위로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수도원 위로 올라가는 초입은 좁은 골목의 양편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은 옛날에는 수도원 아래 형성된 마을이었다. 마을 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미사를 올리는 작은 성당이 하나 있고 그 위에는 공동묘지가 있어 멀리 개펄 건너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공동묘지 위에서부터 본격적인 수도원 지역인데 길은 미로처럼 복잡하고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중세 미스터리 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어둡고 음침한 방들이 좁은 골목으로 이어져 끝없이 위로위로 올라간다. 수도원 정상은 갑자기 경관이 탁 터지면서 온 사방이 지구 끝까지 눈에 들어온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동안 생말로 만의 바닷물이 수도원 밑에까지 들어차 있었다. 이 바다를 건너면 영국일 것이다. 미카엘 천사는 아직도 교회 첨탑에 걸려 있는 짙은 안개에 가려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몽생미셸을 빠져나와 머리를 돌려 꼭대기 교회를 보니 정상에 서렸던 안개가 걷히고 정오의 햇살이 황금색 미카엘을 비추고 있었다. 천년을 넘게 지은 거대한 신전을 보고 나는 신을 향한 인간의 무모한 열정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선돌들의 시위현장 카르냑
벌써 오전이 모두 지나가고 있었다. 갈 길이 바빴다. 이제 서남쪽으로 길을 바꾸어 프랑스의 서쪽에서 대서양을 향해 내밀고 있는 새부리 모양의 브레타뉴 반도 밑부리를 가로질러 비스케이 만의 북쪽 바닷가 카르냑까지 가야한다. 지도에서 직선으로 가늠하니 약 160킬로미터이니 길을 좀 돌아간다고 해도 200킬로 미만일 것이다. 그래도 지방도로를 타야하니 몇 차례 쉬는 것까지 셈하면 3시간 반을 걸릴 것이다. 정남을 향하여 약 30킬로미터를 가던 차는 서남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산은 없고 완만한 구릉의 경사면을 타고 도로가 끝없이 이어졌다. 처음에 느끼던 인상파 그림을 보는듯한 즐거움이 벌써 지루하고 상투적인 풍경화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변화 없는 길을 오래도록 운전한다는 것처럼 피곤한 일도 없다. 운전석 창을 통해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비스듬한 오후의 땡볕을 피해 그늘 속에서 좀 쉬고 싶었다. 오후 네시 반이 되어 앞에 보이는 작은 시가지 안으로 들어갔다.
시내 중심에는 커다란 성당이 하나 서있었고 성당 앞에는 제법 굵직한 나무들이 널찍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성당 앞에는 2차대전 참전기념탑이 있었다. 기념탑을 보고 그곳이 엘방이란 작은 도시임을 알았다. 엘방에서 카르냑까지는 40킬로미터 남짓하다. 해안 가까이 갈수록 도로 양편에는 나무들이 우거진 언덕들이 많아 제법 시원한 풍경들이 지나고 있었다. 엘방을 떠난 지 한 시간 정도 되었을까 차는 벌써 카르냑에 들어와 있었다. 네비게이터는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떠나기 전에 찍어놓은 카르냑의 캠프장으로 정확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캠프장에서 야영지를 배정받고 텐트를 쳐 놓은 후 다시 사무실에서 유적지 지도를 몇 장 받아 차를 타고 유적지를 찾아 나섰다.
카르냑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석문화 유적이 있는 곳이다. 알리뉴망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열석 유적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익히 들어온 곳이고 내가 대학원에서 고인돌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쓰면서 머릿속에 들어와 있던 곳이다. 알리뉴망이란 거대한 선돌들이 여러 줄로 늘어서서 수 킬로미터씩 이어져 있는 것으로 돌이 줄지어 섰다고 해서 열석이라고도 부르고 서 있는 돌 자체는 멘힐이라고도 부른다. 실상 여행 계획을 짜면서 가장 보고 싶은 유적이 바로 카르냑의 알리뉴망이었다. 이제 그 알리뉴망 유적을 직접 보게 된다니 내심 가슴이 뛰었다. 지도를 따라 몇 번 골목길을 돌아 차가 언덕을 내려가길 몇분 정도 지나서 눈앞에 줄지어 선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돌들의 행렬은 끊어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는데 끊어진 곳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돌담 등을 쌓는데 사용하여 없어진 듯 했다. 근처 농가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바윗돌로 현관기둥을 세우던가 아니면 같은 석재의 돌들을 쌓아 벽체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높이 2, 3미터 안팎의 돌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지어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어떤 곳에는 열줄이었다가 열 다섯줄도 넘었다가 다시 일곱 여덟 줄로 줄어들면서 돌들의 대오는 자동차 길 옆으로 계속되었다. 길 옆 적당한 그늘에 차를 멈추고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오천년도 더 전에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대 역사를 벌였을까?
도대체 이 많은 돌들은 어데서 가지고 왔는지? 동원된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었을지? 그것은 도무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79년에 행한 실험에서 32톤의 돌덩이를 200명의 사람들이 4킬로미터 움직이는데 한 달이 걸릴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같은 기간에 100개의 돌을 움직였다면 2만 명이 들었을 것이고 만약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왔다면 4만 명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이 수천 개의 돌들 앞에서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란 걸 새삼 느끼게 되는데 이런 짓거리가 도대체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를 주고 삶에 무슨 보탬이 되었을까, 아니 여기서 보탬을 따지는 게 타당한 것이기나 한지? 돌들은 마치 좀스런 현대인을 향해 시위를 하는 듯이 당당하게 우리 앞에 도열해 있는데 인간들이란 게 겨우 쓰잘데 없는 수치계산에나 매달려 있다는 게 갑자기 ‘쪽팔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놀랄만한 것은 이렇게 단순히 돌을 가져다가 줄맞추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구축하였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는 선돌의 열석 뿐 아니라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거석분묘들이 있는데 수십톤의 돌기둥을 돌려세워 석실을 만들고 석실로 들어가는 긴 통로, 그리고 석실과 통로를 벽에 세운 것과 비슷한 크기의 돌로 덮어 만든 것이다. 석실 위에는 다시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봉분을 만들어 거대한 석총을 이루었는데 겉에서 보거나 안에 들어가 보거나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규모이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실험을 통해서나 그 외의 갖은 방법의 연구를 해서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 했으나 아직 그 누구도 풀었다는 소식은 없다. 인간이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인간이 한 일이다. 그래서 신을 만들었을까?
이틀 동안 이 수 천개의 돌기둥과 거석분묘들을 찾아보고는 1000년 걸려 겨우 몽생미셸 같은 수도원 하나 지었다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두른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