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정에서 동양화에 취하다(글/사진/정연상_안동대 건축공학과 교수)
천천리 및 주변 자연경관의 변화
안동지역의 많은 건축문화유산들은 현재 강가와 산자락, 들녘에서 각자 몫을 다하고 있다. 이들 건축문화유산은 도심을 중심으로 임하임동지역, 도산지역, 서후북후지역, 와룡예안지역, 풍산지역, 남부지역에 터를 잡고 자연 지리적 및 인문적 환경을 배경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갖고 있는 다양한 건축문화유산 순례를 어디부터 해야 할지, 처음에 나는 막막했었다. 그래서 나는 거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여 안동대학교 앞을 흐르고 있는 강을 따라 천전리로 향했다.
천전리로 가면서 나는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임하보조댐과 물 가운데 개호송 소나무 숲을 보았고, 그 너머 산 위 자그마한 정자를 보면서 꼭 가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다짐했다. 천전리는 내가 안동에 살기 전에 자주 찾던 건축문화유산 순례지 중 한 곳으로 조선시대의 문화유산과 근현대기의 문화유산이 있는 곳이다. 나는 이들 문화유산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면서 그들의 채취를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강 건너 백운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안동 건축문화유산 순례의 첫걸음을 임하의 백운정에서 시작했다.
천전리 종택 및 기타 가옥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천전리는 과거 임하현 지역으로 임하댐과 임하보조댐 건설로 옛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1971년 촬영한 사진을 보면 천전리와 반변천 주변 지역은 임하보조댐이 없고 반변천 수량이 적어 모래사장과 하천 가운데 있는 개호송 숲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내앞마을 우측에는 정비되지 않은 하천 물이 내앞마을 앞을 지나 반변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영덕 방향 지방도로는 내앞마을을 지난 후 현 임하댐을 향하고 있고, 마을 서쪽 반변천 변에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1991년 이후 임하댐과 임하보조댐 건설은 천전리 주변 도로 및 마을길과 골목길, 하천 정비를 가속화시켜 마을의 모습을 바꿔 놓기 시작하였다. 마을 앞을 지나는 지방도로는 임하댐 건설로 현재 안동독립운동기념관 터를 감싸 지나도록 바뀌었다.
2000년 이후 천전리 주변에는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섰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천전리 앞 하천도 정비되었다. 그리고 내앞마을 귀봉종택 앞에는 주차장과 공원도 조성되었다. 개호송은 임하보조댐의 담수로 물 가운데 놓이게 되었고, 개호송 주변 백사장은 물밑으로 사라졌다.
백운정의 성장과정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金守一, 1528~1583)이 그의 아버지 청계(靑溪) 김진(金璡)으로부터 부지를 받아 1568년에 조영한 누정건축물로서 반변천 건너 산 중턱에서 사시사철 천전리를 내려 보고 있다.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의「백운정중수기」에 의하면, 김수일의 아버지인 청계 김진은 부암(傅巖) 남쪽의 동쪽 골짜기에 띠집을 지었다고 하며, 이후, 『영가지(永嘉誌)』누정(樓亭)조에는 “김진이 세우고, 그의 아들 수일이 옛 제도에다 더 늘려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김수일의 맏아들인 운천(雲川) 김용(金涌)의 자손들이 관리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허물어진 것을 두 차례 수리하였으나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였다. 백운정은 1743년(영조 19)에 김용의 5대손 김진하(金振河), 김백하(金白河), 김수하(金受河) 등이 주손 김상열(金相說)과 더불어 옛 모습 그대로 중창한 것이다.
현재 백운정의 접근은 임하보조댐 관리소 앞을 이용하며, 우리는 임하보조댐 둑을 지나 10분 정도 걷다보면 산 중턱 나무사이로 백운정과 주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보조댐을 지나면서 물 위 개호송이 만들어내는 자연 경관을 느낄 수 있다. 이 개호송 숲은 의성김씨 입향조 망계 김만근이 마을의 수구를 막기 위하여 조성하였는데, 1605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운천 김용의 주도로 다시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개호송 숲은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의섬김씨 문중과 함께 보호 관리하고 있다. 보조댐에서 백운정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길로 좌우에 잡목들이 자라고 있으며, 백운정 밑 산자락에는 자그마한 논이 있고, 강쪽으로 산수유가 자라고 있다. 최근 뒤 늦게 물이 오른 산수유는 노란 꽃 망우리를 터트리고 있다. 백운정은 之자 모양의 경사로를 따라 오른다. 백운정의 접근은 임하보조댐 둑 외에 백운정 뒤편에서 출입하던 길을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이용하지 않고 있다.
주체와 객체가 되어 본 주변 경관과 공간 체험
백운정은 一자형 정자와 ㄷ자형의 거주 공간 주사를 서로 연결하여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一자형 정자는 온돌방 2간과 마루 4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온돌방은 주사쪽에 있고 마루간은 반변천을 향하고 있다. 마루간은 북쪽과 동쪽에 계자난간을 꾸며놓았기 때문에 출입을 진입로 반대편 남쪽에서 한다. 우리는 디딤돌에 신을 벗고 오르면서 천전리 종택 및 기타 가옥,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및 주변의 자연 경관을 한 눈에 만끽할 수 있다. 백운정과 백운정을 감싸고 있는 자연경관 및 주변 건물은 상호작용하여 우리나라 정자건축문화유산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정자와 자연경관의 상호작용 중심에는 이를 완상(玩賞)하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사람의 가치관과 눈높이에 따라 상호작용 결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백운정은 천전리의 밥 짓는 연기와 자손들의 움직임, 천전리 의성김씨의 역사, 근현대기 안동의 역사를 마루에 앉아 볼 수 있는 곳인 동시에 그 곳을 이용하던 사람이 심성을 가다듬고 가문의 역사와 학문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던 곳이다. 특히 과거 유학자들은 그들만의 가치관으로 틀을 만들어 주변의 다양한 요소를 담아 다양한 경관을 관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자건축을 통하여 다양한 경관을 즐기면서 그들의 이상향을 만들어냈다.
백운정은 정자를 조영하였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통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주변과 상호작용하여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백운정 마루로 올라서 모서리 기둥에 기대어 추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면, 우리 눈앞에는 먹물을 뿌려 놓은 듯한 동양화 한 폭이 다가와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우리가 있는 백운정의 처마와 정자 아래의 반변천 물과 소나무 숲, 멀리 중첩한 산 능선은 상호작용하여 깊이가 깊은 자연경관을 만들어 정자 위 우리를 동양화 속으로 끌어드린다.
정자의 마루에 정좌하면 우리는 또 다른 풍광을 맞이한다. 기둥의 수직선과 난간의 수평선, 처마 끝의 곡선이 만든 정적인 틀은 멀리 내앞마을과 마을 내 사람들, 종택 및 가옥,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먼 산과 유연한 산 능선, 하늘 등을 정제하여 마루에 앉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관을 만끽하게 한다.
마루에서 방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 순간 우리는 머리 펼쳐진 자연경관과 우리가 앉아 있는 백운정이 상호작용하는 공간을 체험한다. 즉 자연경관 외에 인간이 만들어낸 기둥과 문틀과 외부경관이 상호작용하여 공간 이용자로 하여금 다양한 공간체험을 하도록 한다. 따라서 사람이 만든 틀은 건물을 감싸고 있는 자연 경관 및 주변 요소를 담은 계획과 이를 완상했던 사람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객체가 되어 전통건축물을 관상용으로 바라보지 않고 주체가 되어 건축물을 향유할 때 참된 가치를 느낀다.
반변천 둑을 거닐며 백운정을 바라본다
운정은 정자 뒤쪽에 ㄷ자형의 주사(廚舍)를 붙여 口자 배치를 하고 있는데, 주사는 서쪽 2간 온돌방과 부엌 양단 동쪽에 실을 구성하였다. 온돌방 동쪽에는 안마당으로 열린 마루 1간과 그 옆에 고방 1간이 있으며, 정자 사이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널문의 이요문(二樂門)이 있다. 부엌의 전면 서쪽에는 마구간이 1칸 돌출하여 있고, 정자가 있는 동쪽으로는 장서실과 마루방 1칸씩이 있고, 정자와 마루방 사이에는 토벽과 널의 외여닫이문이 있다. 마루방에는 개호송쪽으로 두 짝 판문을 달아 놓아 가까이 310년 된 보호수 회화나무 몸체와 멀리 개호송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단간의 마루간은 작은 규모의 단위공간으로 앞에서 살펴본 정자와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문을 반만 열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면 마루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나무 몸체가 강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문 두 짝을 다 열면 멀리 개호송과 가까이 나무들이 다가오는데 현재 잡목들이 시선을 차단하고 있어 옛 모습을 느끼기 어렵다.
누정건축은 주체가 되어 건물 속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통하여 주변 경관을 즐기는 것이 그 첫째다. 그 다음은 객체가 되어 외부의 자연경관 속에 자리한 건축물을 보는 것이다. 전자는 사람이 조영한 건물 속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주변 경관의 참모습을 보거나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고 사유하는 것이라 한다면, 후자는 건물 밖에서 움직이면서 주변 경관 속 조영물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후자 측면에서 백운정을 나와 맞은편의 반변천 둑을 거닐면서 백운정을 바라보았다. 나의 발길은 반변천 변 소나무 숲에 이르렀고, 소나무 숲에 앉아 자연이 만들어낸 자연의 틀을 통하여 주변 경관을 바라보았다.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반변천과 하천 너머 산 등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백운정에서 본 것과 다른 새로운 경관으로 내에게 다가왔다. 나는 과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백운정과 그들의 터전, 소나무 숲을 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혼자 배회하거나 사유할 수 있는 한 장소를 찾아 마음이 흡족해졌다. 앞으로 안동 건축문화유산을 순례하면서 이와 같은 장소를 또 만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는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