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용상동 풍물시장(글/백소애_편집기자)

철거 앞둔 용상동 풍물시장
전쟁이 나도 시장은 선다. 그러나 패잔병처럼 퇴각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가까이 새로 지은 시장으로 입주하지 못한 용상동 상인들이다. 꽤나 굼뜨게 봄이 왔지만 그들은 더 이상 용상동 풍물시장에서 봄맞이를 할 수 없다.


이번 골목기행은 시장골목이다. 성곡천 복개시장이라고도 불리는, 120여개 점포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용상동 풍물시장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용상동으로 나선다. 시장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지만 몇몇 의류가게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점포정리’ ‘원가할인’을 해도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문은 열어놓았다. 떠나기 전 재고처분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셔터가 내려진 대부분의 점포에는 흰색 스프레이 락카로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셔터고 문이고 뜯어내 속이 다 드러난 건물에는 내부 벽에 번호가 적혀 있다. 번호는 오른쪽 상가를 1번으로 시작해 맞은편 왼쪽 상가로 옮겨 127번으로 끝맺어졌다. 번호로 매겨진 상가는 인근의 새 주소 번호판과 비교되어 더욱 보잘 것 없는, 철거를 앞둔 재래시장의 현재를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상가에는 안동시에서 붙여놓은 무허가 건물 철거 계고서가 붙여져 있다. 쉬 떠나지 못하는 상인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였다. 이 생소한 ‘계고서’는 문득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읽어보았던, 낙원구 행복동에 날아든 그 계고장이 생각나게 했다. 조각마루 끝에 앉아 보리밥에 까만 된장,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조린 감자로 식사를 하는 어머니에게 날아든 그 철거 계고장 말이다.


계고서(2차)
귀하께서는 국유재산인 상기 토지에 무허가 건축물을 점사용하고 있으며, 관리소홀 등으로 도시 미관 저해와 화재, 범죄 등 발생이 우려되어 민원이 야기되는 등 국유재산관리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는 바, 이를 계속 방치함은 심히 공익을 해할 것으로 인정됨으로 2010년 4월 28일까지 점유건물을 철거할 것을 계고합니다. 만일 위 기일 내에 자진 철거치 않을 경우에는 우리 시에서 국유재산법 제74조(불법시설물의 철거)및 행정대집행법 제2조(대집행과 그 비용징수)의 규정에 의거 강제로 이를 집행하거나 또는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집행하게 하고, 그 비용을 점사용자로부터 징수하겠습니다.




마지막 탁주를 팔면 떠나리라
계고서는 3월 16일에 1차로, 4월 7일에 2차로 붙여졌다. 2차 계고서는 4월 28일까지 철거하지 않으면 점포 내 물품까지 임의 처분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뚝 선 용상교회 옆 풍물시장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듯 초라하게 서있다.
안동시는 1988년 낙동강변에 난립되어 있는 포장마차와 천리천 무허가업소 등의 상인들을 이곳 복개천 위 풍물시장에 이주시켜 4~7평 규모의 건물에 일괄적으로 입주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용상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지난 2007년 3월 66칸의 상가로 준공된 새 용상시장에 입주자가 늘지 않자 시는 무허가 풍물시장 철거를 발표했고 입주하지 못한 영세한 상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절반 정도는 입주했지만 나머지 상인들은 갈 곳이 없다. 시에서는 무허가 건물이라 보상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고 상인들은 시에서 허가해 엄연히 장사를 했는데 생업을 포기해야하는 실정이다.



2차 계고서가 붙은 이후 가본 풍물시장에는 점포 안에 남은 물건을 챙기러 온 상인들 몇이 보였다.  아저씨 두 분이 장비를 들고 점포 앞에 섰다. 신축 용상시장으로 옮겨간 분인데 냉장고를 가져가려고 왔다고 한다. 자물쇠가 굳게 잠긴 셔터문을 힘겹게 공구로 자르고 셔터를 올리니 이게 웬걸, 아저씨네 가게가 아니다. 난감한 표정의 아저씨보다 공구를 들고 같이 거든 아저씨가 더 황당한 표정이다. 셔터를 내리고 번호를 매기니 본인도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자기 가게도 못 찾는다며 핀잔을 듣던 아저씨에게 마침 옆 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왜 남의 가게문을 따냐고 화를 내며 다가온다. 한때는 이웃이었을 상인들 사이도 전과 같이 원만하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이 웃지 못 할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주보고 나란히 선 약 300미터 시장골목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시장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카메라를 든 나의 모습에 대부분 경계를 했다. “풍물시장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어서”라고 말하자 그들은 곧 시장골목처럼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골목 끝에 집중되어 있는 포장마차는 애초에 입주점포에서 제외되었다. 젓가락 소리 들리던 대폿집 앞에는 시장을 떠나지 않은 아주머니의 속옷이 널려 있다. 마지막 탁주를 팔면 떠나리라.



무채색 시장골목에 남겨진 빈 점포
생선대가리를 댕강댕강 쳐내던 어물전 앞 나무둥치만 덩그러니 놓여있고, 2007년 12월에 멈춰진 달력을 남긴 채 주인 떠난 상가는 비워졌다. 빨갛게 홀로 선 소화전과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만이 이 무채색의 시장골목에서 색깔을 입은 것들이다. 기름때에 절은 주방기구들이 엎어져있고 한때는 열심히 전화번호를 눌러댔을 거래처 스티커들이 벽면 가득 붙여져 있다. 전화코드가 있는 벽면은 각종 낙서로 가득하다. 메모지 대신 적어둔 벽에 유기사, 미숙, 순옥, 은희 등 주인장의 지인들만 이름을 남기고 있다. 미처 챙겨가지 못한 우편물과 영수증, 계산서가 바닥을 뒹굴고 장판처럼 붙여진 스티로폼 몇 개는 도망간 지 오래였다. 곱창, 천엽, 도루묵, 닭발, 똥집 등의 차림표만 주인 없는 가게를 지키고 섰고 두꺼비집은 입을 딱 벌리고 열려있다. 호떡과 냉국수, 소주를 함께 파는 어울리지 않는 메뉴조합도 이곳에서는 가능했던 듯, 목이 꺾인 복조리와 스피커앰프도 바닥에서 함께 뒹굴고 있었다. 문기둥에 붙여놓은 부적, 등받이가 꺾여나간 의자, 썩은 다리를 한 들마루, 녹슨 전등, 끊겨진 전선, 깨진 유리창, 뜯겨진 간판, 밤이면 우범지대가 되어버리는 이 공간에서 숨어 피우는 담배를 찾는 아이들이 몰려다니고 올 초에는 방화범에 의한 화재도 두 번 있었다고 한다. 음식점과 과일, 채소, 어물전, 옷가게, 포장마차가 주를 이루던 용상시장은 이제 20년 세월을 뒤로하고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곧 철거를 한다지만 풍물시장은 이미 스스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15년간 칼국수 팔았던 우씨 할머니
풍물시장이 사라지면 소방도로가 날 예정이라고 한다. 새 시장으로 입주를 못한 우씨 할머니가 인근에 사는 친구분과 빈 점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올해 일흔셋 된 우씨 할머니는 ‘현대식품가게’란 이름으로 장사를 해왔다. 임하댐 수몰민인 우씨 할머니는 15년 전 1,500만원에 가게를 인수했다. 칼국수도 팔고 채소도 팔았다. 넉넉지는 않아도 노인 먹고 살 길은 됐었다. 이태 전 가게문을 닫았지만 매일 빈 점포에 나온다. 할머니는 무슨 미련이 남아 이렇게 계속 나오는 것일까. 좁은 가게 안에는 양파 몇 알이 굴러다니고 바짝 마른 옥수수만 처량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때는 평생 할 줄 알고 들어왔지. 나 많은 노인이 할 게 뭐 있나, 여 한곤 자리에서 칼국수나 팔면 되겠다 싶었지. 근데 이래 쫓아내이 낭패지.”
“그동안 수입이 없어 어떡하셨어요?”
“지금도 뭐 되는대로 먹고 살고 있지.”
입주할 돈도 없거니와 1988년 당시 입주자가 아니라 새 시장으로 갈 엄두도 못내는 우씨 할머니. 칼국수 팔던 시절엔 혼자 부지런 떨면 그런대로 재미는 있었다. 할머니 친구분이 옛 기억을 더듬는다.
“첨엔 장사가 잘됐어. 우리 외손주가 날 무렵이니까 여 시장도 한 20년 됐네. 가가 지금 군에 갔거든.그때는 사람도 꽉 찼고 북적였는데, 차라리 여기를 개량해서 그대로 장사하게 만들지 왜 그랬을꼬? 저 새로 생긴 데는 이쪽으로 짤름, 저쪽으로 짤름, 시장 맛이 안 나잖애.”


첨엔 복개천이 생기고 무허가 입주자들이 난립하니 시청에서 분필로 한 칸씩 그려 가게 터를 잡아줬단다. 큰 욕심 부리며 살아온 적 없다. 그저 쉬엄쉬엄 장사하게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건조한 손바닥으로 앉은 자리를 쓸어내며 체념의 목소리로 우 할머니는 말했다. 20년간 시에서 허가를 해줘서 장사를 해왔고 그게 삶의 터전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그 공간이 없어지니 우씨 할머니의 착잡한 마음이야 어찌 표현할까. 재래시장을 현대식으로 이전시켜준다고 했을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현실은 장사를 접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마침 시장골목을 가로질러 가던 할머니 한분이 “여는 없어진다더니 왜 아직도 이래 있노.”한마디 하니 우씨 할머니가 눈을 흘긴다. 점포 안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할머니에겐 상처로 남는 말이었다.



굿바이, 용상동 풍물시장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더는 어찌할 재간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둘 시장을 떠났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신축 용상시장으로 옮겨갔지만 철거를 한다하니 마지못해 간 사람도 있다. 점포 벽면에 ‘용상시장으로 이전’이라 큼직하게 써놓은 글자는 같은 시장 안에서도 달라진 운명으로 나뉜 상인들의 삶을 알 수 있다.


널브러진 쓰레기더미와 뜯겨져나간 상가를 거닐자니 시장통 안으로 오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쬔다. 이곳에도 호시절이 있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던 이웃이 있었고 진상 부리던 손님조차 반가웠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상인들 목청이 커지고 흥정이 오가고 막걸리 잔이 부딪치던 장터의 모습을 간직한 재래시장은 이제 우리들 기억 속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화국번이 숫자 하나였던 ‘3’국으로 시작했던 옛 간판을 뒤로하고 나는 시장을 빠져나온다. 소박했던 용상동 풍물시장의 엎어진 식기 하나를 바로 세우고 나가다가 정성껏 모시겠다는 ‘김놈이 야채가게’의 간판을 한참 바라보면서. 햇살이 눈부셔 더욱 어둡게 엎드린 풍물시장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안녕 마뜰 주희네, 안녕 김놈이 야채가게, 안녕 선희네, 안녕 공주네, 안녕 용상동 풍물시장.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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