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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세월 정리하고 안동버스터미널 떠나는 정화 아지매(글/이미홍_객원기자)

안동버스터미널 대원상회 주인장 남정화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온 시민의 숙원사업(?)이었던 안동시외버스터미널이 마침내 옮겨진단다. 더구나 2010년 12월 이전 예정인 송현동 새 터미널은 외곽에 위치해 교통편의 뿐 아니라 넓은 주차시설과 할인매장을 비롯한 상가 등 별도의 부대시설까지 갖추게 된다고 하니, 그동안 좁고 낡은 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느라 불편을 겪었던 시민들로서는 반길 일이다. 안동 발전을 위해서도 뭐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새 것은 금방 옛 것을 잊게 만든다. 새 터미널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터미널 자리엔 터미널이 옮겨가고 곧바로 대형쇼핑몰이 들어선다고 한다. 현재의 운흥동 안동시외버스터미널은 그야말로 몇 달 후면 빛바랜 사진으로만 남는다는 말이다. 지금의 그 낡고 오래된 버스터미널이 사라지는 게 아쉽냐고? 그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터미널이 가진 시간이 아쉽고 그곳을 스쳐가거나 혹은 그 곳을 지켜왔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는 게 아쉬운 거다. 사람이, 내가, 우리가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고 만남을 남기고 이별을 남기고 기다림을 남긴 곳, 그리고 버스대합실 뒤편, 글자조차 희미한 대원상회에서 그 사람들의 흔적을 지키며 20여년을 보낸 남정화(51)의 이야기가 쇼핑몰 콘크리트 아래로 묻히는 게 아쉬운 거다.

영주 아가씨가 안동으로 시집왔으니 출세했지요?
남정화는 60년생으로 영주 문수면에서 태어났다.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했는데 막내라 워낙 사랑을 받아서 본인이 아프다는 걸 모르고 자랐다. 몸 불편한 귀한 딸 고생할까 봐 친정아버지가 멀리 안동까지 수소문을 해서 선을 보고 시집을 보냈다.
“영주 문수면에서 안동으로 시집을 왔으니 출세했지요? 우리 아저씨가 그때 여기서 분식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분식집은 남자 혼자 하기에는 손도 많이 가고 해서 힘이 든다고 제가 시집오고 얼마 안 있어 지금의 슈퍼로 바꿨어요. 우리 아버지가 장사하는 집에 가면 밥은 안 굶고 산다고 선을 보고 한 달 만에 결혼을 시켰어요. 그때는 동네에서 시집 잘 간다고 다들 그랬어요. 근데 시집 와 보니까 우리 아저씨가 돈은 벌기는 버는데 모이는 게 없어요. 시어머니는 안 계시고 시아버지에 시동생에 딸린 식구가 많아서 돈이 안 모였어요. 밥은 안 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생고생을 하며 산 셈이 되고 말았지요.”

결혼해서 처음에는 지금 시청 뒤 골목길 안쪽에 12만원 월세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얼마 안 있어서 남편은 시댁으로 들어가 살아야 한다고 했다. 신안동 시댁으로 들어가서 남편이 죽고도 한참을 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으니 거기서 20년을 살았다. 남편의 죽음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밤에 자다가 심장마비로 남편이 죽었다.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였다.
그때까지는 남편이 장사를 해서 갖다 준 돈으로 돈 걱정은 안하고 그냥 살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정화 씨는 그때까지 집에서 아이들 키우고 살림만 하고 살아서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진짜로 하늘이 노래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은 게 하늘이 캄캄하더라고요. 미친년처럼 돌아다니다가 어쩌다 친구 집을 가게 되었는데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그래요? 요즘 왜 가게를 안 여느냐고 그래서 처음에는 신랑이 외국으로 돈 벌러 갔다고 그랬어요. 나중에 친구가 사실을 알고는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그래도 산 사람은 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걱정을 했어요.”

느닷없는 남편의 부재, 버스터미널에서의 삶 시작
그 친구 집을 나와서 또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마음을 못 잡고 거의 일 년여를 그렇게 눈물로 지내던 정화 씨는 두 아들을 보고 기운을 추슬렀다. 그래서 94년 3월 기운을 차리고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에 나왔더니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세상은 정화 씨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저 사람들은 뭐가 저렇게 좋아서 웃고 있을까?’ 야속도 했다. 그런데 터미널에서 남편과 같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잘 생각했다고 힘내서 살라고 반겨주고, 하루 이틀 장사를 하면서 정화 씨는 서서히 생기를 찾아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정화 씨의 안동버스터미널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시아버지가 상이 군경이셨는데, 어느 날 정화 씨를 앉혀 놓고, 봉화 어느 초등학교에 학교 소사 자리가 났다고 가서 밥벌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너 혼자 가게를 한 번 해보겠느냐고 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그전에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애기 업고 왔다 갔다 하기는 했어도 가게 일은 전혀 몰랐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만 받아서 살았지 집안 형편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몰랐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나서 보니 집안에 돈이라곤 하나도 없고 빚만 오백만원이 있었다. 그때 주택은행에 차세대 적금이란 게 있었는데, 두 아들 이름으로 들었던 적금을 깨서 그 빚을 갚고 나니 가게 세가 몇 백만 원이 또 밀려 있었다. 그래서 이만저만하다고 사정을 얘기하고 시간을 주면 얼마동안 나눠서 갚겠다고 하니까 형편을 알고 있던 사장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죽을 각오로 열심히 장사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약속대로 그 돈을 다 나누어 갚았다.

“그날부터 오늘날까지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지 않은 다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를 열고 일을 했어요. 우리 아버지 생신이면 아침 일찍 갔다가 오후 되면 와서 다시 가게를 열었어요. 재작년부터 목이 아파서 대구 경대 병원에 다니는데 병원 갔다가 버스 타고 정류장 내리면 바로 가게 문 열고 장사했어요.” 이웃이야기 128
94년도에 남편이 죽은 후 알게 모르게 그늘이 되어주던 시숙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한 번씩 집에 다니러 오면 늘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고, 돈 걱정 말고 조카들 잘 키우고 기운 내서 살라고 다독여주고 남편이 없는 시댁에서 그나마 그늘이 되어주셨는데, 그 시숙이 돌아가시고 시어른은 소사 살이 하러 봉화로 가시고 하면서 정화 씨도 두 아들과 함께 시댁에서 나와 독립을 했다. 똑같은 시댁 피붙이라도 손위 시숙 그늘과 손아래 시동생 그늘은 다른 법이었다. 누가 눈치를 줘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이 그렇게 되었다.

“남편 살아 있을 때도 장사는 잘됐지만 이상하게 모아 놓은 돈은 없대요. 시숙은 서울서 은행에 다녔고, 시동생은 같이 살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영주에서 살고 있는데, 잘했든 못했든 어쨌든 없는 형편에 그래도 제가 시아버님을 20년을 모시고 같이 살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가게 문 열고 밤 아홉시 되면 가게 닫는 건 똑같아요. 그러니 잘해 드리면 얼마나 잘해드렸겠어요? 그치만 같이 한 솥에 밥 끓여 차려 드리고 한 집에서 같이 입고 자고 그렇게 모시고 살았어요. 그게 다예요.”
꾸밀 줄 모르고 하는 그 말 속에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들어가 금방이라도 구들장에 눕고 싶은 몸으로 빨래를 하고 식구들 챙기며 살아야 했던 날들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온 정화 씨의 진정이 들어있다.

내세울 것 없는 삶이지만 열심히 살았어요
신안동 꼭대기 허름한 슬레이트집을 얻어 살림을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새고 밤이면 쥐가 나오는 낡은 집이었다. 그때 정화 씨가 찾아간 곳이 동사무소였다. 동사무소에 가서 담당자에게 영구임대아파트 작은 평수 하나라도 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리고 영구임대아파트 신청을 하면서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하지 않았던 장애인 신청도 했다. 장애인 등급이 있으면 아무래도 임대아파트 입주가 쉬울 거 아니냐는 주위의 권유 때문이었다. 태어나고 한두 달 지나서부터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짧아 걸을 때 한쪽 다리를 절었던 정화 씨는 지체장애 4급이 나왔고 영구아파트에 당첨이 되었다. 애써 준 담당자 분이 고마워서 나중에 형편이 나아진 후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옮겨갔는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지금도 그 아저씨가 고마웠던 기억을 못 잊는다는 정화 씨다.

그렇게 해서 99년 8월 정화 씨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시아버지는 적적해져서 그런지 싫어하셨지만 허름한 신안동 집에 살다가 이사 간 아파트는 별천지였다. 아파트 생활은 별천지였지만 한 달 지나 나온 관리비를 보니 정신이 버쩍 났다. 삼십만 원이 다 되어가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아차 싶어 그때부터 물도 전기도 아끼고 세금이며 관리비 내는 날짜부터 챙겼다. 조막만한 가게에서 버는 돈이라야 빤한데 한 푼도 허투루 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작년 언제인가 어떤 아저씨가 찾아와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고 갔는데, 어느 날부터 터미널 기사 아저씨들이 나를 보고 놀리는 거래요. 알고 보니 그 분이 내 사진하고 이야기를 인터넷인가 어디에다 올린 거예요.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가게 열고 한 눈 안 팔고 내 장사 열심히 하며 산 거는 맞지만 솔직히 남 앞에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산 것도 아니고 해서 어디 내세우기에는 부끄러워요. 그저 남한테 손가락질 당할 일 안 하고 애들하고 먹고 살라고 아등바등 열심히는 살았어요.”

이전 앞둔 안동버스터미널, 이별 앞둔 상인들
그런데 두 아들하고 먹고 살기에 바빴지 크게 돈을 모아놓지는 못했다. 콧구멍만한 가게벌이라야 빤한 것, 90년대만 해도 터미널 장사가 할만 했지만 자가용이 늘어나면서 버스 승객은 자꾸만 줄어갔고, 안동버스터미널이 좁은 시내에 있다 보니 주차 문제며 낙후된 시설이며 불편이 누적되면서 되풀이되던 터미널 이전문제가 송하동으로 이전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면서 현재의 버스터미널은 일부 노선만 승객이 좀 있고 나머지는 기본 노선 운행에 그치고 있고, 따라서 터미널 안에 있는 상가들 역시 파장을 앞둔 분위기다. 올해 12월이면 안동버스터미널은 송하동으로 완전히 이전된다. 정화 씨를 비롯한 터미널 상인들은, 현재의 터미널 부지를 산 업주 측으로부터 하반기부터 부분적으로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일차적으로는 6원말까지 가게를 비워달라고 통보를 받은 상태다. 그중에서도 터미널 입구와 터미널 뒤쪽 화장실 가는 길목에 위치한 정화 씨네 점포와 나란히 하고 있는 양쪽 점포는 위치상 제일 먼저 점포를 비워줘야 하는 입장이다. 나란히 하고 있는 세 가게 중 한 곳은 이미 점포 문을 닫은 상태다. 지금도 가게를 열고 있는 옆 점포 청우상회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50여년 가까이 이곳에서 장사를 해온 그야말로 이곳의 터줏대감이시다. 노부부는 이곳에서 장사해서 아들 딸 키우고 평생을 벌어먹고 살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한다. 이전할 돈도 없지만 이제 어디 가서 새로 시작할 기운도 없어 가게 문을 닫으면 이제는 소일 삼아 텃밭이나 가꾸며 살 예정이라고 하신다. 평생을 허리 펼 날 없이 사셨다는 할머니, 번듯한 가게가 아니라 허름한 판자로 지은 가게에 좁은 가게 안보다 밖에 내놓고 파는 물건이 더 많아 아침저녁으로 물건 단속하랴, 손님 눈길 한 번이라도 더 가게 진열하랴, 눈 오고 비 오면 그 눈비 맞아 옷이 다 젖은 채로 장사를 했던 날도 있었다고 했다. 터미널이 붐벼 한때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었고, 손님이 줄어 그냥저냥 할 때도 있었고, 그러다가도 명절이나 방학 때면 여전히 붐빈다는 버스터미널에서의 생활도 이제는 끝이라며 웃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지금은 내가 손님들이 시비를 걸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우리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서른여섯 살이었는데, 거기에다 장사라고는 처음해보는 거라서 진짜 힘들었어요. 술 먹고 시비 거는 사람도 많았고, 젊은 아지매라고 얕보는 사람들도 있고 별별 사람들이 다 있었어요. 그럴 때면 터미널 상가 분들이나 직원 분들이 와서 돌려보내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역전 파출소에 연락해서 순경들 부르고 그랬죠. 술 먹고 행패 부리다가도 순경들 오면 금방 잘못했다고 빌고 가기도 하고. 제가 혼자 늦게까지 있다가 가니까 남아있는 직원 분들이나 터미널 안 상가 아저씨가 문 닫을 때 지켜봐 주시기도 하고 그랬어요. 다들 한 식구같이 정이 들어서 뿔뿔이 흩어진다는 게 안 좋죠.”

세상도 많이 바뀌고, 사람들도 자꾸 변해 가는데, 너만 안 바뀌고 그곳에 처박혀 있을 거냐고 사람들이 그렇게나 못살게 굴더니, 결국 버스터미널도 변화의 바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정화 씨 같은 이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이 또 다른 정화 씨의 눈물을 만들어 내지는 않겠지? 제발 그러지 않길!

“요즘은 손님들도 많이 바뀌어서 옛날같이 술 먹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버스 타기 전에 술 사 가지고 타는 사람도 없어요. 보통 음료수나 커피, 껌, 휴지, 생수, 구운 오징어 이런 것들이 많이 나가지. 손님들도 깔끔한 걸 좋아해서 터미널에서 이것저것 사들고 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요. 설이나 추석 명절 되면 술 선물 사들고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까. 그전에는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아저씨들 보면 무서웠는데, 이제는 사람들을 보면 자꾸 베풀고 싶어져요. 할아버지 할머니들 보면 우리 엄마 아부지 같고, 애들 보면 조카 같고, 아들 또래 군인들 보면 우리 아들 같고 그래요. 그래서 불러서 음료수도 주고 그래요.”
“제가 힘들게 사는 걸 보고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지 아는 분들 중에 소상공인센터인지 어딘지 가면 이런저런 대출을 해 준다고 가보라고 그래요. 또 동사무소에 가서 뭐 무슨 신청을 하면 이전 저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보라고 그래요. 제가 그런 걸 잘 몰라서 못한다고 자꾸 그런 걸 알려주시는데, 저는 제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한 남의 도움 받지 말고 살자 싶고요, 갚을 능력도 안 되면서 빚내지 말자예요. 남의 돈도 무섭고 액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대출 이런 것도 다 싫어요. 다 빚이잖아요. 저는 남의 돈은 단돈 만원도 싫어요. 차라리 풀만 먹고 살아도 남의 돈은 안 써요. 우리 아들이 그래요, 엄마, 왜 맨날 풀만 주냐고. 그러면 내가 그래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고기 실컷 사 준다고요. 아님 니가 돈 많이 벌어 와라 그러죠. 그러면 우리 엄마 지독하다고 그래요.”
그래도 장사가 잘 돼 만원이라도 더 버는 날이면 돼지고기 오천 원어치를 사다 구워주고 밖에서 친구들하고 치킨 한 조각이라도 먹은 날에는 아들이 마음에 걸려 치킨 반 마리라도 사 들고 들어가는 정화 씨다. 한 번도 마음을 지어 먹은 적 없고 본심 그대로인 정화 씨를 아들이라고 모를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엄마로서 살아온 날들이 제일 크다고 말하는 정화 씨는, 일찍 세상을 버린 남편보다 두 아들의 존재가 훨씬 소중하다. 남편이 죽고 애들하고 고생하는 정화 씨를 보고 친구들이 아직 젊은데 혼자 어떻게 사느냐고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하라고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지만 다 거절했다. 아들들을 두고 재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남편과 사이가 안 좋은 친구가 이혼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정화 씨가 그랬다. 이혼을 하고 싶으면 하되 아이들만은 엄마인 니가 키우라고. 아이들 버리면 친구래도 나는 너 안본다고. 엄마라면 자식을 버리고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자식은 전부라고, 정화 씨는 말했다.

아프면 민폐, 건강 잘 챙기는 게 애들 위하는 것
가진 것 없는 정화 씨에게는 몸이 재산이다. 몸만 건강하면 무얼 해서든 못 먹고 살까? 그런 마음으로 불편한 다리지만 그 작은 몸으로 세상을 살아온 정화 씨다. 젊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미련스러울 만치 참을성이 강한 정화 씨의 성격도 한 몫 단단히 했다. 임대아파트 신청을 앞두고 40년을 참고 살다 장애등급 판정을 받으려고 의사를 찾았을 때 다리가 많이 당기고 아팠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도록 병원 한 번 안 오고 참고 살았느냐고 하더란다. 이제는 치료가 너무 늦어버렸다고. 그런데 정화 씨에게는 그 아픔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시작된 당연한 것이라서 투정을 부릴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요즘에 와서 발목을 잡는다. 아픈 다리의 영향이 갑상선으로 가서 무리를 하면 몸이 붓고 기력이 없어 쓰러지기까지 한다.

삼 년째 갑상선 치료를 받고 있는 정화 씨는 몸이 힘들 때면 곧 죽을 거 같지만 자신이 아프면 우리 아들이 고생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열심히 치료도 받고 건강도 챙기려고 노력한다. 늙어서 아들들한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제 겨우 50이 지난 나이, 몸만 아프지 않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싶다.
정화 씨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게 많지 않아 자식들 뒷바라지를 많이 해주지도 못했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한다.

“애들 키우면서 우리 친구들 집에 가보면 다들 공부방에, 좋은 책상에, 컴퓨터가 한 대씩 있고, 영어 학원 수학학원 보내고 하는 거 보면 부럽고 나는 그렇게 못해 주니까 애들한테 미안하고 그랬어요. 친구들이 애들 대학 보내고 하는 것도 너무 부럽고…, 그래도 애들이 착해서 속 한 번 안 썩였어요. 지들 보고 살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가도 이런 바보 같은 못난 엄마라도 있는 게 낫겠지 싶어서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없는 형편에 제 밥벌이라도 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둘 다 공고를 보냈는데, 사회에 나가 생활하면서 느낀 게 있었던지 큰 아들은 다 늦게 전문대에 들어가 공부를 하더니 이제 막 전문대를 졸업하고 취직해 밥벌이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고 한다. 둘째도 졸업을 하고 이것저것 쉬지 않고 일을 찾아 하는데 요즘 제대로 된 일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서 걱정이지만 지 앞가림은 할 나이라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둘 다 엄마가 힘들게 사는 걸 알아서 어릴 때부터 엄마 걱정 안 시키고 알아서들 자기 일은 자기가 챙기며 살아서 생활력이 강하니까 어디 가든 잘 할 거라고 믿고 싶은 게 엄마인 정화 씨 마음이다.

이제 슬슬 제 살길 또 찾아봐야죠
“그동안 이 터미널이 있어서 밥 안 굶고 잘 벌어먹고 살았으니까 이제 뒷정리를 잘 해야지요. 이게 보기에는 허름해도 내 혼자 애들하고 벌어먹고 살기에는 좋았는데 이게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기가 막히지요. 이 가게가 터미널 땅에 가건물지어 장사한 무허가건물이다 보니까 보상이라든가 하는 건 없고 우리는 물건만 정리하고 가게 비워주면 되는 거예요. 우리야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한 달을 더 할지 두 달을 더 할지 하는 데까지 하다가 언제까지는 꼭 비워달라고 하면 비워줘야지요. 지금부터라도 쌀 건 싸고 버릴 것은 버리고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지요. 짐 싸는 것도 걱정인 게 이사하는 것도 우리한테는 돈이래요.”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장사를 계속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화 씨처럼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은 다 정리하고 나면 손 털고 나가면 그만인 거다. 여기 터미널에 있는 상가들 중에 새로 생기는 터미널로 옮겨가는 가게는 한 곳도 없다고 한다. 형편이 조금 나은 이들도 있겠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영세 상인들이다 보니까 1억이 넘는다는 입주금을 내고 새 터미널로 갈 생각들을 일찌감치 접은 거다. 아마도 새 버스터미널엔 크고 화려하게 단장한다는 규모에 맞는 돈 많은 이들이 입주를 할 것이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또 각자의 형편에 맞는 곳을 찾아서 새로 둥지를 틀게 될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정화 씨도 어딘가에 일자리를 찾아 벌이를 나갈 것이다. 한동안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려면 속이야 좀 타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으니 어떻게든 될 터이다. 지금도 식당 일이나 작은 공장 일을 소개해 주겠다는 이들은 있다. 공공근로 일자리도 신청해둘 생각이고, 중앙신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친구는 작은 점포 자리 하나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다고 와서 옆에서 같이 장사를 하자고도 한다. 보증금 삼백만원도 정화 씨한테는 적지 않은 돈이라 망설여지지만 요즘은 없는 이들을 위한 이자가 싼 소액대출도 있으니 알아봐 주겠다고 한다. 친구 말마따나 방도가 생긴다면 라면도 삶아주고 김밥도 파는 작은 분식집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당장 여유가 없어 그렇지 찾아보면 살 길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단지 이제껏 벌어먹은, 세도 싸고 사람들도 정이 들어 익은 이 터전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헌 것은 언젠가는 새 것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법, 이곳에 대형쇼핑몰이 들어서고 나면 지금 정화 씨가 서 있는 가게를 기억해주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들이 이제 스물아홉인 데 자리 잡고 장가가고 할 때까지는 내가 벌어야 되는데 버스정류장이 이렇게 문을 닫고 다른 데로 가니까 우리는 따라 갈 형편도 안 되고 걱정이지요. 이전하는 곳으로 같이 옮겨가지는 못하지만 어디 가서든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해야지요. 그전에 잠시 쉬면서 한 숨 돌리고요.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왔으니까 엄마 가게 정리하면 좀 건강도 챙기고 당분간은 좀 쉬라고 애들도 그래요. 저도 어쩐지 그러고 싶어요. 한 보름이나 길면 한 달 정도는 쉬고 싶어요. 그동안 무슨 일을 할 지 여기저기 일자리도 알아보고요.”

두어 평 밖에 안 되는 가게 안에서 앞만 보고 살아온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의미에서 아무 생각도 안하고 한동안 쉬고 싶다는 정화 씨는 그러나 금방 한 달 정도? 하다가 아니면 한 보름이라도? 한다. 아직 가게 문도 닫지 않았고, 또 누가 재촉하는 이도 없건만 마음부터 바쁜 걸 보니 정화 씨는 아무래도 오래 푹 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괜찮다고 해도 기어이 타 주는 정화 씨의 특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니 이것저것 재고 서두르는 폼이 아무래도 내일이라도 우선 자본금 안 드는 하반기 공공신청부터 하러 갈 태세다. 그래 터미널은 이제 어차피 물 건너갔고, 정화 씨 살 궁리가 먼저다. <안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