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진정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인가?(글/이한용_답사전문가, 자유기고가)
앞서『안동』지에서는‘한국정신문화의 수도’에 관한 논의의 장을 펼친다고 알린 바 있습니다. 과연 정신문화의 수도는 무엇을 의미하고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명칭에 알맞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지, 또 안동이 진정한‘정신문화의 수도’라는 고유명사가 되려면 어떠한 숙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여기 토론의 장을 마련해 둡니다. 여러분들의 참여와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2010년 ‘국가브랜드 대상 전통문화브랜드 부문에서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브랜드가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이 서울’ ‘와우 시흥 ‘아하 순천 처럼 그저 밋밋하게 붙인 촌티 나는 브랜드도 있는데 비해 대상이라니 먼저 축하일 일이다. 이번 수상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브랜드가 정신문화 교육을 통한 인간성 회복과 새로운 정신문화 실천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언제부터 이 말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안동을 알리는 홍보물에서 시작하여 안동 시내의 도로가에서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왜 이 말이 생겼을까? 뭔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작금의 시기가 고도로 발전된 물질문명은 있되 참정신은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번 기회를 통해 안동이 과연 진정한 ‘정신문화의 수도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안동은 시대별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간직한 역사의 보고이자 우리민족 정신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이다.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르는 당위성을 한번 살펴보자. 안동은 세계에서 유교문화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고장이자 퇴계, 학봉, 서애 등 숱한 거유를 배출한 조선의 ‘추로지향이다. 또 안동만의 독특한 ‘안동학이 존재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 그것도 그냥 만세운동 정도가 아니라 만주로까지 망명해 끝까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의 성지이다. 또 양반과 선비정신을 이어온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자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 단일지역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신라천년의 수도 경주보다 더 많다)하고 있으며 문화유산이 가장 잘 보전된 지역이다. 이처럼 안동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부르기에 충분한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이면과 속살을 살펴보면 안동을 과연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칭할 수 있을지 조금 의구심이 들리기도 한다.
안동이 한 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로 존재하려면 다양한 전통문화와 정신문화의 재조명과 전통문화 콘텐츠 개발이나 유교전문박물관 건립 등 외형의 확장도 필요하다. 안동의 혼을 정립하기 위한 독립운동테마파크, 유림사관학교, 안동학연구센터 등도 그 뒤를 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정부분 외, 내형의 확장과 진단은 전문가 그룹에게 맡기고 필자는 그간 안동을 드나들며 보고 느낀 점을 몇 가지 올려볼까 한다.
지도층의 의식각성부터
한 나라 정신문화의 수도로서의 안동이 되려면 먼저 지도자층의 의식부터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비록 권력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기개와 의리만은 남달랐기에 남들이 다른 곳보다 한금 더 높게 쳐준 곳이 안동 아니겠는가? 그러나 현대에 와서도 안동은 과연 그러한 곳인가? 필자는 감히 아니라고 본다.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안동인의 의식이다. 타지방 사람들로부터 보수적이다 못해 이제는 ‘꼴통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TK지역의 고루한 의식은 안동도 더하면 더 했지 예외는 아니다. 과거 자급자족적 농경시대엔 골골마다 집성촌을 형성, 일족간의 연대를 통해 이방인을 배척해도 아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또 마을 내 모두가 친인척이다 보니 ‘우리가 남이가’란 의식이 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방과 연대를 지향하는 이 시대에 있어 그런 고루한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시대의 조류에 밀려 영원히 낙오하고 말 것이다.
지도층의 의식 개혁이야말로 사회를 가장 빨리 변화시키는 요체이다. 그 시발점은 이미 백여 년 전 동산 유인식이나 석주 이상룡이 걸어간 길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공자 맹자는 시렁 위에 두었다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던 석주 이상룡의 구국의 길이나, 고루한 유림에서 혁신의 선봉에 서기까지 부친으로부터는 의절을, 스승으로부터는 파문을 당하는 아픔 속에서도 보수적인 안동땅에 혁신이라는 씨앗을 뿌린 동산 유인식이야말로 이 시대 안동인이 받들어야 할 표상이다. 의식각성과 혁신의 피눈물 나는 길이야 말로 작금의 위기에 처한 안동이 살길이다. 안동 식자층의 일대 각성이 요구된다.
일제치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을 때 안동의 지식인은 스스로 목숨을 던져가며 그 정신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향산 이만도나 회은 유도발처럼 지식인이 먼저 위태로움 앞에 실천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안동에 그런 의로운 정신적 지도자가 있기나 한 것인가? 타 도시보다 더 심한 편 가르기가 만연하고 학연, 지연, 씨족 따지기와 그 많은 문중의 소소한 자존심 싸움과 이방인에 대한 심한 텃세야 말로 안동의 오랜 고질병이지 않은가? 말만 양반과 선비의 후예요, 누구의 몇 대 손이라고 자랑하고 다녔지, 그 행동과 정신은 과연 깨어있기나 한 것인가? 식자층이라 거들먹거리면서 못 배운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돈을 벌어도 세상의 좋은 일에는 한 푼도 내놓을 줄 모르는 여타의 졸부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아! 돈 밖에 모르는 지독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보수의 본향으로 내몰린 안동에 있어 제2의 퇴계나 학봉 같은 정신적 지도자가 있는가? 아니면 향산 이만도나 석주 이상룡, 백하 김대락 같은 실천하는 지식인이 있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갖춘 그런 식자층라도 있는가? 안동이란 동네만 팔아먹을 줄 알고 과거의 조상만 팔 줄 알았지, 근래에 들어 뭔가 내세울 만 한 게 없지 않는가? 안동답답이가 되어 조상의 꼬투리를 부여잡고 전통을 지킬 줄만 알았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기에는 어딘지 좀 남부끄러운 도시는 아닌지?
필자는 어디에 가서나 이렇게 말한다. “안동! 참 대단한 도시이다. 조선시대 권력의 곁불도 쬐보지 못한 영남 남인의 후예들이지만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선 진정한 독립투사의 고장이라고. 文과 義가 조화된 그런 선비의 도시”라고.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이런 전통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안동도 여타의 도시처럼 별반 다르지 않지 않는가? 일전에 안동의 한 시민단체가 사무실이 없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을까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았으나 사무실 한층은 고사하고 더부살이 모퉁이 한 켠도 내어주는 이가 없어 정말 절망했단 소릴 들었다. 명색이 양반의 도시,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중심은 천하고 어둡고 낮은 일
‘안동’ 하면 떠오르는 단상이 많지만 두 가지만 들어 보겠다. 십여 년 전 <매일신문>에 안동시장통에서 간장을 파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다. 제목은 아마 ‘독립운동가 후손 간장 리어카를 끌다’였던 것 같다. 마누라는 간장독을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남편을 간장을 사라고 큰 북을 들쳐 메고 두드리는 풍경. 쏘아보는 그 눈빛이 고단에 지쳐 세상을 원망하는 그런 눈빛이었던 것 같다. 집도 없이 시장통을 전전하면서도 자존심은 살아 있어 자신을 안동의 명문 안동권씨의 후손이라고 했다. 아! 그 한 장의 사진이 필자를 얼마나 눈물 나게 했는지. 대체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국가가 못 한다면 그 막강하다는 안동권씨 문중은 무얼 하며 하다못해 안동사람들은 무얼 하는지. 독립운동에 전 재산과 부친까지 바친 그 후손이 생활고에 시달려 리어카를 끌고 간장이나 팔아야 하는지.
후일 수소문해 찾아보니 그는 추산 권기일의 후손이었다. 추산이 누구이던가? 안동 남후의 안동권씨 부정공파 명문의 자제로 조부 밑에서 한학을 하다가 한일병합 직후인 1912년 천석꾼의 전재산을 처분, 만주에서 경학사, 부민단 등 독립군기지 건설 및 교육활동에 투신했다. 1920년 그의 나이 서른다섯인 그해 경신참변이 일어나 신흥무관학교 부근 수수밭에서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된다. 세월이 흘러 리어카를 끌던 후손의 아들 역시 가난 때문에 중학교도 못 마치고 안동에서 택시를 몰고 있다. 조국을 위해 전재산과 목숨을 바쳤건만 조국은 후손에게 무관심과 가난만을 남겨 주었다.
또 하나 더! 안동권씨 집성촌인 가일에 가면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다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한 권오설 생가터가 있다. 근대 안동이 낳은 제1의 인물을 꼽자면 누구이던가? 당연히 막난 권오설 아닌가? 세상이 그를 어둠으로 내몰아 그렇지 실천력과 조직력을 보여준 당대 최고의 활동가였던 이 사람을 안동은 어떻게 그렇게 푸대접할 수 있는지. 일제하 3대만세운동의 하나인 6.10만세운동의 총연출자가 바로 권오설 아닌가? 그러나 사회주의자란 이유로 그간 안동인들이 보여준 무관심과 냉대는 그것을 지켜보는 제3자의 가슴조차 안타까움에 저며들게 하는데 그 후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긴 오죽했으면 고향 마을을 떠났겠는가?
정신문화의 수도를 논하는데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 사례가 근래 안동인이 보여준 정신의 한 단면이자 마음씀씀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백여 년 전만 해도 선비정신이 살아있어 의로운 일에 앞장섰지만 근래에 안동은 어떠한가? 말로만 정신문화의 수도, 선비의 고장이라고 떠들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중심은 천하고 어둡고 낮은 일에 있다”고 했던가? 안동이 국학의 중심이요, 정신문화의 수도라면 먼저 지극히 낮아질 일이다. 퇴계를 위시해 학봉이나 서애 같은 대유학자의 잔영만 쫓을 게 아니다. 동산 유인식이나 석주 이상룡 같은 개명한 유학자도 안동을 올곧게 세운 정신이라면 정신이다. 어디 그뿐인가? 현대 안동이 낳은 동화작가 권정생도 안동을 대변하는 정신이라면 한 정신이다. 그리고 권정생과 교우하던 청송의 이오덕 같은 이도 안동문화권이 낳은 아웃사이더요 걸물이라면 걸물이다. 지극히 안동적인 것을 찾고 아끼며 사랑하다 쓸쓸히 떠난 소극 서주석도 다시 재조명 해볼 일이다. 이들도 안동인들이 과거 추앙해 마지않는 재야의 선비나 대유학자 못잖게 받들고 추억해야 할 현대판 인물들이다. 다양성 속에 강함이 존재하고 그런 높낮이 없는 그물망이야말로 어려움에 처해 더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안동인의 본모습 아니던가? 안동이라면 적어도 유림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와 다양한 사람에게도 눈 돌리는 관용과 열린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영혼의 안식처 같은 곳, 안동
안동이 한 나라의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고자 한다면 안동에 몸담고 그 땅의 곡식을 먹고 조상의 영혼을 들먹이며 안동사람들이 먼저 깨어 일어날 일이다. 안동인들이야말로 고루한 유림에서 대오각성해 혁신유림이 되었던 동산 유인식도 되고 24일간 단식으로 순절, 안동선비의 기개를 만천하에 알린 향산 이만도도 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답과 종택을 팔고 풍찬노숙하며 만주벌을 누비던 백하 김대략도 되고 석주 이상룡도 되어라! 역사나 문화재 전공자가 아니었지만 일개 안동인으로서 홀로 깨어 일어나 안동의 문화재와 족보와 분묘를 찾아 일일이 발품을 팔아 기록으로 남긴 소극 서주석도 되어라. 그럴 때 안동이 진정한 한국의 정신문화의 수도이지 국무총리나 도지사가 찾아와 연설문에서 몇 번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운운했다고 해서 그게 어디 온전한 것이겠는가?
필자는 감히 제안한다. 안동이라면, 그냥 평범한 일개의 도시 안동이 아닌 적어도 한 나라를 대표할 정신문화의 수도로서의 안동이라면 공공근로 숲가가꾸기 하나를 해도 안동의 정신이 살아 있게 스토리텔링을 넣어 안동답게 구현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책 입안자인 안동의 고위 공무원도 그 자세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남들과 같이 해서 안동이 어디 남 앞에 내놓을 안동, 그것도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겠는가? 퇴계의 예뎐길이나 서애의 부용대 산책길이나 공민왕 몽진설화나, 삼태사가 견훤을 물리친 병산전투의 무대 등등 숱한 전통과 전설이 올올이 스민 곳을 찾아내고 다듬어서 이 시대의 수양공간으로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골방에 갇혀있던 종부들의 이야기도, 내방가사와 함께 새롭게 발굴하여 포장하면 살아있는 안동의 전통과 역사가 될 것이다. 2008년 8월 임청각 앞 회화나무 ‘神木 절단사건 후 나무 한 그루에도 영혼을 불어넣어 지키려 한 안동인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물질문명이 판치고 정신문화가 땅에 떨어진 이 시대에 감히 사상과 정신의 거처로서 안동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고려 때 왕조의 ‘편안한 동쪽’이 바로 ‘安東’이 되었듯 정신문명의 위기인 이 시대에 또 한 번 나라의 ‘편안한 동쪽’ 그곳이 안동이길 빌어본다. 일례로 필자가 살고 있는 계룡산 자락에는 단학(丹學) 학인들이 모여드는 성지 같은 곳이 있다. 그곳이 으리으리한 곳도 아니고 눈을 혹하게 할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단학의 최고 스승인 봉우 권태훈(鳳宇 權泰勳)의 마지막 거처이고 묘자리가 있기에 전국에서 내남없이 모여든다. 이처럼 안동도 혼란스런 세상에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그런 곳이길 빈다.
안동, 유교적인 예와 도가 숭상되는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영원히 빛나길 빈다. 그곳은 강자와 물질이 독점하고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고명한 정신과 옛것을 지키며 분수껏 살아가는 이들이 만드는 신명난 도시가 되길…….
안동아! 네 비록 먼발치에 서 있지만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고 애정 있게 지켜보리라! <안동>
글쓴이 이한용 씨는 경북 칠곡군 웃갓(上枝)이 고향으로 안동 70사단에서 군 생활을 했다. 그 연유로 일찍부터 안동을 짝사랑해 안동의 곳곳을 기웃거렸다. 프리랜서 작가를 거쳐 <한겨레신문> 문화기행 상임인솔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찾은 곳이 안동이다. 안동이 고향은 아니지만 안동을 고향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